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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민 케인>
기획연재 | 등록일 : 2020-03-02

영화 '시민 케인'은?

미국의 실존 인물로 신문왕이라 불렸던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에게서 영감을 얻은 영화. 한때 미국 언론계를 장악했던 주인공이 로즈버드(Rosebud)’란 한마디를 남기고 죽는다. 그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오만과 모험, 독선과 고독으로 점철된 한 언론 재벌의 인생을 조명한다. 오슨 웰스(Orson Welles) 감독의 데뷔작으로 직접 주연까지 맡은 1941년 흑백영화. 프레임 속의 모든 대상에 초점을 맞추는 딥 포커스등 당시로는 획기적인 촬영, 편집 기법으로 세계 영화사의 위대한 고전이자 걸작으로 꼽힌다. 원제 Citizen Kane.

 


 

 

한 사람의 일생을 어떤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소.”

 

언론 재벌인 찰스 포스터 케인(오슨 웰스 분)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인 로즈버드(Rosebud)’가 무엇인지 추적하던 기자 제리 톰슨(윌리엄 알랜드 분)은 이렇게 말한다. 관객들은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불 속에 던져지는 눈썰매(케인이 어릴 때 타던)가 로즈버드란 것을 알지만 톰슨은 끝내 알지 못한다.

설령 톰슨이 알아서 기사로 쓴들 무슨 큰 의미가 있으랴. 그 로즈버드가 어릴 때의 순수한 기억이든, 돌아가지 못한 동심의 세계이든, 그것 하나만으로 누구의 삶을 섣불리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 삶이 단조롭고 보잘것없다 하더라도 말이다. 하물며 언론 재벌로 한 시대를 떠들썩하게 만든 인물이라면. 그래서 톰슨은 로즈버드를 그가 가질 수 없었던 것, 아니면 그가 가졌다가 잃어버린 그 어떤 한 조각이라고 추측하고 만다. 가지려고 했지만 가지지 못한 것,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가지고 있지 않은 작은 조각. 감독 오슨 웰스가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 구성을 통해 <시민 케인>에서 말하고자 한 것도 바로 그 쓰레기로 태워지는 잃어버린 삶의 한 조각에 대한 허망함일 것이다.

 


 

영화 <시민 케인>신문왕이라 불린 미국의 실존 인물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에게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출처 - 영화 <시민 케인> 스틸컷>

 

 

<시민 케인>1941년 겨울, 뉴욕인콰이어러(New York Inquirer)를 비롯해 37개 신문사의 발행인이자 2개 라디오의 소유주였던 70세의 찰스 포스터 케인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플로리다에 세워진 그의 개인 소유 저택은 세계 최대 규모로 쿠빌라이 황제의 쾌락의 궁전에서 이름을 따 제나두(Xanadu) ()’으로 불린다. 세계 온갖 보물을 사들인 박물관이 10개나 되며 10만 그루의 나무가 심겨 있고, 20만 톤의 대리석이 깔린 초호화 궁전이다. 이런 곳에서 노년을 보내다 죽음을 맞은 그는 당연히 최고의 기삿거리가 되고, 그의 죽음은 모든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시민 케인> 역시 뉴스를 전하듯 케인의 인생 필모그래피를 내보낸다. 어머니가 여인숙을 운영하던 가난한 어린 시절부터 어느 손님이 밀린 방세로 준 버려진 광산에서 황금이 쏟아져 벼락부자가 된 후에 언론 재벌로서의 부침, 두 번의 요란한 결혼과 이혼, 대통령의 질녀인 첫 부인과 아들의 사망을 비롯해 두 번째 부인의 자살 기도로 이어진 불행한 가정사, 무너져가는 왕국에서 홀로 지낸 말년의 은둔생활 등을 보여주며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유명인의 오비추어리(Obituary, 사망 기사)가 그렇듯, 비난은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에 케인을 바라보는 <시민 케인>의 시선은 너그럽다. “케인은 세상의 개혁에 기여했고, 많은 업적을 장식한 인물이라고 말한다.

 

과감한 혁신으로 신문왕 자리에 오른 케인

 

그러나 <시민 케인>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본 것은 위대한 미국인이다. 정말 그럴까.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가 거물인 것만 알고 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전해야 한다. 케인의 마지막 말인 로즈버드에 분명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의외로 별 거 아닐지도 모르지만. 기자인 톰슨의 취재는 이렇게 케인의 진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그의 삶의 궤적과 중요한 화두를 확인하기 위해 과거 그와 함께했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가난과 아버지의 폭력으로 불우했던 어린 시절이나 결국 비극으로 끝난 결혼 등의 사생활은 한 인물의 삶에 있어서 직·간접으로 중요한 사건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이를 미뤄두고 뜻밖의 횡재로 갑부가 된 언론 재벌, 발행인으로서의 케인을 만나보자. 25세에 모든 재산을 물려받은 그가 왜 은행가이자 후견인인 대처(조지 쿨로리스 분)가 권유한 당시 유망한 금광, 유전, 부동산 사업을 거부하고 신문사에 뛰어들었을까. 분명 때문은 아니었다.

그가 처음 뉴욕의 인콰이어러지를 인수하면서 보여준 모습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그의 말대로 그는 신문사를 경영할 줄 몰랐다. 단지 자기 생각대로 했다. 1면 톱으로 <기업합병으로 시민을 착취한다>, <지주들이 빈민굴을 없애는 데 반대한다>, <월스트리트에 구리 사취범이 등장했다> 등 선동적이고 직설적인 폭로·고발 기사를 과감하게 실어 노동자와 서민의 지지를 얻어냈다. 그는 성실한 근로자들이 돈에 눈먼 해적들에게 강도질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노동자들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외쳤다.

노동자들의 입장을 지지하고 자본가와 권력자 고발을 두려워하지 않은 케인은 신문사 경영에도 혁신적이었다. “뉴스는 24시간이라며 침구까지 들여와 온종일 신문사에서 지내면서 판 갈이를 하고, ·석간 발행을 시도했다. 그리고 우리는 가정주부의 소문 따위는 취급하지 않는다며 실종 사건을 지면에 싣지 않으려는 편집국장을 해고했다. 인콰이어러를 뉴욕의 불꽃만큼이나 중요한 신문으로 만들겠다면서 1면에 다음과 같은 <발행인의 맹서>를 직접 써서 실었다. “본인은 이 신문을 통해 시민에게 진실만을 전해드리겠다. 모토는 빠르고 간단히 (신문을) 즐길 수 있으며 결코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본인은 불굴의 투지로 싸울 수 있는 장을 마련하겠다.”

언론의 진실과 독립, 그리고 여론의 장의 역할, 영원불변의 언론의 가치와 책임을 강조하고 천명했다. 덕분에 인콰이어러는 뉴욕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신문이 됐고, 그는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 됐다. 케인은 그 여세를 몰아 다른 신문사와 인력들을 과감히 인수, 영입해 나갔다. 대통령의 질녀와 결혼했지만, 대통령을 비판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예정된 것처럼 언론을 권력의 지렛대로 삼아 정치에 뛰어들었다. 근로자들의 친구로서 싸우는 자유주의자임을 자처하면서 그들의 빈곤과 실업을 해결하는 주지사가 되겠다고 외쳤다.

 

독선과 오만으로 변질된 케인의 최후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훗날 두 번째 부인이 될 가수 지망생 수잔(도로시 코민고어 분)과의 불륜으로 낙선하고, 1929년 대공황으로 언론 재벌로서의 화려한 시대도 기울어졌다. 아집과 오기는 수준 미달의 실력을 지닌 아내를 성악가로 만들기 위해 자기 신문들의 1면에 톱으로 공연 기사를 싣고, 비판적으로 공연평을 쓴 학창 시절부터 친구이자 신문사의 오랜 동료인 릴런(조셉 코튼 분)를 해고하기도 한. 하지만 그의 행보는 결국  으로 막을 내린다. 그의 독선과 오만은 내겐 사람들의 생각을 쓸 수 있는 권한이 있죠. 예를 들면 신문 말이요란 말로까지 내닫는다.

 

 

 

뜻밖의 횡재로 갑부가 된 주인공 찰스 포스터 케인이 유망한 사업을 거부하고 신문 산업에 뛰어든 것은 때문만은 아니었다. <출처 - 영화 <시민 케인> 스틸컷>

 

 

진실이 아닌 생각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신문을 통해 그가 얻고자 한 것은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 사랑은 릴런드의 다른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인식시켜놓고 그들로 하여금 받기만을 바라는 사랑이었다. 자살 소동까지 벌이고 떠나면서 수잔은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아. 내가 당신을 사랑하길 원할 뿐이라고 말한다. 이런 왜곡된 사랑이 언론의 시민, 독자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없음 또한 두말할 필요도 없다. 신문사는 제나두 성이 아니고, 발행인은 쿠빌라이 황제가 아니다.

오슨 웰스는 로즈버드가 어떤 의미이든, 케인이 어떤 삶을 살았든 그도 그저 미국의 한 시민에 불과하다고 말하려는 듯하다. 영화 제목도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까. 케인도 나는 과거에도 미국 시민이었고, 지금도 미국 시민이고, 앞으로도 미국 시민이라고 외쳤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신문의 진정한 가치와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거대자본을 이용해 그 가치와 사랑을 자기만족을 위해 변질시킨 발행인. 어쩌면 그에게 시민이란 명칭은 조롱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조롱은 8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할 것이다.

 

 

 





 

* 이번호를 끝으로 이대현의 <영화 속 언론>을 마칩니다. 애써주신 필자와 애독해주신 독자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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