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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c광주방송 <200억대 해경 VTS 기준미달 제품선정 논란>
취재기제작기 | 등록일 : 2020-03-02

해상교통관제시스템(VTS)은 바다 위의 내비게이션이라 할 정도로 해양 안전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때문에 해경의 VTS 선정 또한 그 무엇보다 신중하고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 진도와 완도, 목포와 군산 지역 VTS 입찰 비리는 세월호 사고로 이후 같은 참사를 겪고 싶지 않은 국민을 다시 한번 분노케한 사건이었다. 이를 추적한 kbc광주방송의 취재기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편집자 주

 

대형 해양사고는 엄청난 인명, 재산, 환경 피해를 발생합니다.” 해경 해상교통관제시스템(VTS, VesselTraffic Service System, 이하 VTS) 홍보 영상1)에 적힌 글입니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진도 VTS의 관제 소홀로 초기 구조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쳐 논란이 됐습니다. 해경은 이 같은 재난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VTS 개선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번에 취재한 VTS 사업은 다름 아닌 세월호 당시 문제를 일으킨 진도와 완도, 그리고 목포와 군산 지역의 사업이었습니다.

해경의 VTS 입찰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처음엔 단순한 민원성 제보라고 생각했습니다. 입찰에서 떨어진 업체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입찰 과정에 불만이 있을 테니 대부분이 그렇듯 하소연을 하려는구나 싶었습니다. 제보자는 VTS가 세월호 당시 문제가 됐던 해상 안전에 관련한 사업인데이번 입찰에서 해경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장비들이 선정됐다고 말했습니다. 사실이라면 큰 문제지만 전문적인 분야인 데다 당장 그 말만 믿고 취재 일정을 바꾸기도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제 사무적인 태도가 부끄럽게도 제보자는 타지역에서 직접 광주로 와서 기다리겠다며 며칠이 걸려도 좋으니 꼭 만나고 싶다고 부탁했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느껴진 제보자의 간절함에 저희는 당장 다음날 약속을 잡고 만나기로 했습니다.

 

사람 목숨이 달린 거잖아요

 

제보자는 해경 VTS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해경이 200억 원 규모의 VTS 개선 사업을 진행하면서 조달청 입찰 과정에서 한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는데, 그들이 제안한 장비 성능이 해경의 기준에 미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레이더 수신기의 다이내믹레인지(dynamic range), 무선 통신VHF(very high frequency) 등 낯선 용어와 전문적인 내용이라 이해가 쉽진 않았지만, 자료가 틀리지않다면 해당 제품들의 성능이 수치상 기준보다 낮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비전문가인 제가 봐도 기준 미달인 제품들이 어떻게 조달청의 국가 기관 입찰 사업에서 선정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제보자는 조심스럽게 조달청 입찰 과정의 문제점을 언급했습니다. 해당 사업의 입찰은 조달청이 선정한 전문평가위원들의 심사를 통해 이뤄지는데 1위 컨소시엄과 심사에 참여한 특정 평가위원들의 유착이 의심된다는 겁니다. 제보자는 생명을 지키기 위한 VTS 사업이 문제투성이란 점에 분노를 느끼고 어렵게 제보를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안산에서 나고 자란 저 또한 문제를 바로잡아 보겠다는 책임감을 갖고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해경 VTS 입찰 비리를 탐사보도한 <200억대 해경 VTS 기준미달 제품선정 논란> <출처 - kbc광주방송 화면 갈무리>

      

 

이런 잘못은 뿌리 뽑아야 합니다

 

본격적인 취재에 앞서 제보자가 건넨 방대한 자료들과 며칠을 씨름했습니다. 바다 위의 내비게이션이라고 할 수 있는 VTS는 육상과 달리 카메라가 없어 그 역할을 대신할 레이더와 레이더 정보를 다루는 운영체제, 관제센터와 선박의 통신수단 등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만큼 전문적이기 때문에 입찰에 참여하는 컨소시엄도 4~5곳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취재 과정에서 제보자의 신원이나 내용이 노출될 가능성이 커 나름대로 더욱 신중을 기했습니다. 자신의 피해보다 공익을 우선시한 제보자의 진심을 잊지 않고 VTS에 대해 공부하면서 자료도 더 꼼꼼하게 검토했습니다. 전문가의 도움 없인 사실 확인이 어려운 분야였기에 사전 취재 과정에서 시간도 오래 걸렸고 어려움도 많았지만 선배들의 배려로 취재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취재를 할수록 제보를 믿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여전히 20144월 해경 VTS의 관제 소홀이 불러온 진도 앞바다에서의 참사가 생생하지만 바뀐 것은 없었습니다. 기준 미달이 의심되는 장비는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먼저 레이더 안테나가 수집한 정보를 받는 수신기의 다이내믹레인지가 해경 기준인 125db 이상보다 낮은 120db 이상이었습니다. 또 무선 통신의 VHF 수신감도는 낮을수록 좋은데 업체 장비는 약 07dBm으로 기준인 16dBm보다 높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장비인 레이더 안테나의 경우, 해경은 우리나라의 지형을 고려해 레이더 안테나가 혹독한 상황에서도 초속 75m의 바람을 버티도록 조건을 정했으나, 실제로 업체 제품은 수평적 바람이라는 제한된 상황에서만 초속 75m의 바람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문제 있는 장비들을 설치할 경우 위급 상황에서 레이더 안테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해상교통 정보를 제대로 수집할 수 없습니다. 겨우 정보를 수집하더라도 관제센터에서 수신하기 어려우며, 사고를 막기 위한 해당 선박들과의 무선 통신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참사가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도 얼마든지 가정할 수 있었습니다.

 

허점투성인 조달청 전문평가위원 제도

 

이처럼 조달청 입찰 과정에서 당연히 탈락해야 할 기준 미달 장비들이 선정된 황당한 일이 벌어진 데는 앞서 말한 것처럼 1위 컨소시엄과 심사에 참여한 일부 평가위원 사이의 유착 정황이 있었습니다. 평가위원들의 채점표를 살펴보니 유독 두 명의 평가위원이 진도와 완도, 목포와 군산 두 사업 모두 심사에 참여해 해당 컨소시엄에 다른 평가위원들보다 4점 정도 높은 점수를 준 겁니다. 묘하게도 두 심사위원의 점수를 빼면 1, 2위가 바뀌는 큰 점수였고, 취재 결과 해당 평가위원들은 1위 컨소시엄에 참여한 업체에게 학회의 후원을 받는 등 유착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게다가 해당 업체는 이미 평가위원에게 향응을 제공한 부당 거래로 적발된 전력이 있었고 이후에도 업체 이름만 바꿔 온갖 입찰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업체가 제재를 받아도 가처분신청 등을 통해 얼마든지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현실, 여기에 조달청이 평가를 맡긴 전문평가위원들의 명단은 조달청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돼 얼마든지 업체의 사전 접촉이 가능하단 내용도 확인했습니다.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 규모에 이르는 국가기관 조달과정의 허술함이 곳곳에서 드러났습니다.

 

잘못은 있는데 잘못한 사람은 없어

 

해경과 조달청에 대한 본격적인 취재에 나섰습니다. 해경과 조달청 모두 취재진이 어느 정도까지 취재를 마치고 자료를 확보한 것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관련 내용에 대해 제대로 공개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결국 취재 과정에서 확인한 내용을 보여준 뒤에야 문제를 인정했습니다. 기자에게 문제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마음이야 당연하지만 국가 기관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단 감추려고만 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앞섰습니다. 저희가 확인한 내용과 별개로 양쪽을 통해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해경과 조달청의 입장도 왜곡하지 않고 전달하기 위해 취재 과정에서 오고 간 대화와 자료 등을 정리하고 비교하는 작업 등은 탐사 취재 경험도 부족하고 당일 제작하는 리포트와 다르다 보니 시행착오도 많았던 기억이 남습니다.

두 기관 모두 논란이 되는 장비들이 기준 미달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먼저 해경은 이에 대해 자신들의 기준 자체엔 문제가 없고 기준 미달 장비를 선정한 것은 자신들이 아닌 조달청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기준을 제시하고 여기에 만족하는 물건을 사달라고 입찰을 맡긴 건데 조달청에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물건을 골라주고선 사라고 한 경우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사업 재검토나 재입찰을 진행하고 싶어도 그 이유를 자신들이 다시 소명해야 해 곤란한 입장이라고 말했습니다. 조달청은 일부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장비가 선정된 것은 맞지만 심사는 조달청이 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평가위원들이 한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전문 분야인 만큼 전문평가위원들의 심사에 따라 입찰이 결정되며 자신들은 그 심사에 개입할 수도, 해서도 안 된다는 겁니다. 입찰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수요 기관인 해경에서 결과가 부적합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고도 설명했습니다. 또 조달청은 해당 업체가 과거 다른 사람들에게 향응을 제공한 사실과 평가위원들의 유착 정황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달청의 입장은 입찰 과정에서 부적절한 결과가 발생했는지 여부가 불분명하고 수사 권한 등이 없어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는 것뿐이었습니다.

해경과 조달청 모두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표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데, 누구 하나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고 서둘러 사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노만 젓고 있었습니다. 잘못은 있는데 잘못한 사람은 없는 황당한 책임 미루기 속에, 생명을 지키기위한 해상 안전이란 사업 목적은 침몰한 지 오래였습니다.

 

소를 잃더라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VTS로 통칭하는 해상교통관제시스템과 장비들의 용어가 생소하고 내용이 복잡한 만큼 문제가 되는 내용들을 최대한 쉽게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지난해 회사가 디지털 광학 기술(DLP, Digital Light Processing)과 디지털 정보 디스플레이(DID, Digital Information Display)를 보도 스튜디오에 새로 설치해 이를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기자가 직접 출연해 해경의 기준과 문제가 되는 장비의 성능을 비교해가며 기준 미달 제품 선정에 대해 보도할 수 있었습니다. VTS가 무엇인지, 해상 안전에서 왜 중요한지 방송 뉴스의 특성을 이용해 간결하게 보도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 과정에서 세월호에 대한 언급은 자극적이지 않도록 주의했습니다.

보도국 식구들의 지원도 큰 힘이 됐습니다. 취재 인력이 부족한 편인 지역 민방은 취재기자들이 하루에 하나 꼴로 리포트를 제작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kbc의 경우 이미 탐사팀을 운영하고 있어 3년 차막내 사건기자들이 해경 VTS를 탐사 취재하는 과정에서 업무 공백이 불가피했지만, 선배들의 격려와 도움으로 무사히 취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 다시 한번 보도국 식구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VTS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해경과 조달청 모두 잘 알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다. <출처 - kbc 광주방송 화면 갈무리>

 

 

이렇게 어렵게 첫 보도를 통해 해경 VTS 사업에서 기준 미달 장비가 선정됐다는 내용과 1위 컨소시엄과 조달청 전문평가위원의 유착 의혹 내용이 방송된 뒤 조금씩 변화의 가능성이 보였습니다. 해경은 자체 조사를 통해 해당 장비들이 최종적으로 부적합하다고 결정되면 조달청에 협상 불가를 통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조달청은 해명 자료를 통해 전문평가위원 제도의 개선을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약속과 달리 해경의 조사는 더디기만 했습니다. 화제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듯 업체의 소명 자료를 기다리는 중이라거나 내부 사정 등을 이유로 들며 차일피일 통보를 미뤘습니다. 이 과정에서 계속된 취재 결과 재조사를 한다면서 1위 컨소시엄과 협상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이 시기에 취재팀은 지역 민방 기자로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kbc광주방송은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전역을 대상으로 방송하는 만큼 지역 내 영향력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형 사건·사고 등을 제외하면 뉴스를 전국에 송출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한계도 분명합니다. 그래서 먼저 보도하더라도 통신 등의 매체에 밀려 포털사이트엔 나중에 올라가기도 하고 저희가 생각한 보도의 중요성만큼 화제가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이번 해경 VTS 보도의 경우에도 문제가 다른 지역에 알려지지 않다 보니 빨리 해결되지 않고 흐지부지될 수도 있겠다는 불안함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저희가 내린 결론은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지역 민방으로서 우리 지역에서 문제가 되는 일이라면 다른 곳의 관심과 사회적 영향과는 별개로 끝까지 취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보도가 계속 이어지자 다행히 민영방송네트워크를 통해 전국에 이 사실을 알릴 수 있었고 해경은 진도와 완도 사업에 대해 조달청에 사업 불가를 통보하는 등 조금씩 변화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취재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보도 이후 진도와 완도, 목포와 군산뿐 아니라 다른 VTS에서도 레이더 안테나 파손 등 문제가 많다는 제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국 곳곳에 설치한 레이더 안테나가 플라스틱 제품으로 업체의 장비 설명서보다 낮은 풍속에도 쉽게 망가져 임시로 붙이거나 천막을 씌워 사용되는 등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는 VTS가 있습니다. 또 조달청은 전문평가위원 제도를 개선한다고 했지만 아직도 수많은 분야에서는 전문평가위원을 통한 입찰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언제고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보도와 별개로 VTS 사업과 조달청 입찰 사업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취재를 이어가겠습니다.

 

 

 

 

 

 

 

1) http://www.kcg.go.kr/kcg/si/sub/info.do?page=2842&mi=2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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