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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전주방송총국 <새만금표류기>
취재기제작기 | 등록일 : 2020-04-01

방송계의 빈부 격차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인적·물적 자원이 부족한 데다 스타 시스템에 기댈 수도 없는 지역 방송사는 콘텐츠 제작의 어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편견과 고정관념을 깬 참신한 프로그램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지역 방송사의 가능성을 보여준 <새만금표류기> 제작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인디테인먼트라는 말을 후배 PD들에게 처음 꺼냈을 때의 반응은 시큰둥함이었다.

인디테인먼트? 그게 원래 있던 말인가요?”

물론 아니었다. 내가 고안해 낸 단어였기 때문이다. 독립을 뜻하는 인디펜던트(Independent)와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를 합성한 나만의 신조어.

인디테인먼트? 그래서 뭐그걸어떻게 하자는 거죠?” 얼굴에 한 아름의 물음표를 머금은 후배들에게 나는 호기로운 투로 이렇게 말했다.

이제 대한민국 방송계는 인디테인먼트(Inde-tainment) 이전과 이후로 나뉠 거야!!”

 

 

 

우리 방송계에 인디는 없는가

 

우리나라에도 인디 음악, 인디 영화 등 다양한 예술 장르에서 나름의 지분을 갖고 활동하는 독립군들이 존재한다. 막강한 자본의 지원 아래 거대한 예술 산업 생태계를 구축한 주류 콘텐츠 사이에서, 예술 독립군들은 각자 거점을 확보하고 서서히 대중과의 소통 공간을 넓히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그들의 노력은 성과를 얻어가는 중이다.

그렇다면 방송은? 유튜브로 대표되는 새로운 플랫폼의 개인 방송 콘텐츠들은 일단 논외로 치자. 기존의 지상파든 케이블이든, 방송 영역에서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아주 오랜 시간 그 견고함을 자랑해 오고 있다. 특히 중앙지방이라는 접두어로 싹둑 구획된 방송계의 빈부격차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거대 자본과 스타 시스템이라는 풍성한 자원 속에서 뽑아내는 방송 콘텐츠에(그런 걸 우린 오랫동안 중앙방송이라 칭하고 있다) 시청자들은 절대적 지지를 보낸다. 반면 현실 여건상 거대 자본의 변변한 지원도 없고 스타 시스템에 기생할 수도 없는 지역방송 콘텐츠는 그냥 재미없고 따분하고 촌스러운 지방방송 따위일 뿐이다.

이런 안팎의 여러 악조건과 싸워야 하는 지역 방송 종사자들의 마음은 어제나 오늘이나 항상 깊은 좌절감과 자괴감 그 언저리를 헤맨다. 16년째 촌피디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온 나의 숙명 또한 다를 바 없다.

그렇다고 그냥 주저앉아 사람들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그대로 감내하며 살아야 할까? 내 대답은 이렇다. 아주 단호하게. 아니!

 

 

사진 리얼 생존 버라이어티 <새만금표류기> <출처 - 필자 제공>

 

리얼 생존 버라이어티, 새만금표류기

 

<새만금표류기>는 지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총 세 개의 시즌으로 제작된 KBS전주방송총국의 특집 프로그램이다. 3부작은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지역의 시청자들이 순전히 재미를 통해 의미를 찾을 수 있는 흥미로운 로컬 콘텐츠 제작이 과연 가능한가를 시험해 본 나름의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녹록찮은 과정이었지만 그 지난한 여정 속에서 내 머릿속에 자연스레 떠오른 개념이 바로 인디테인먼트였다. 풀어 말하자면 인디 정신으로 무장한, 그러나 아주 볼만하고 재밌는 지역의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 물음이 곧바로 이어질 것이다.

그 시도는 성공했는가?”

글쎄일단 답은 보류하고, 지금부터 펼쳐 보일 <새만금표류기> 제작 과정을 통해 그 성공 여부를 독자 여러분들이 직접 판단해 보시면 어떨까 싶다. 어차피 인디테인먼트라는 새로운(?) 장르는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니 말이다.

<새만금표류기> 시리즈는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한 예능 프로그램이다. 아직 민간인에게 개방되지 않은 새만금 내부 어딘가를 예닐곱 명의 출연자들이 45100시간 동안 자급자족을 통해 버텨내는 일종의 생존 게임 콘셉트라고 할 수 있다. 수도, 전기, 심지어 화장실 하나 구비돼 있지 않은 야생의 땅 새만금에서 출연자들이 어떻게 합심해 눈앞에 닥친 난관을 극복해 나갈 것인가가 바로 이 프로그램의 관전 포인트인 셈이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콘셉트는 독해지고 더욱 다양한 장르들이 차용됐다. 시즌 1이 순수 청년 일곱 명의 야생 모험기였다면, 마지막 시즌 3는 기존 콘셉트에 개그콘서트 6인방의 무규칙 이종 예능 장르 체험기(공포, 판타지, 익스트림 스포츠, 퀴즈쇼 등) 추가 옵션으로 붙었다. 두 번째 시즌은 기존의 TV 플랫폼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인기 유튜버들을 전면에 내세웠고, 아프리카TV와의 협업을 통해 촬영 현장을 인터넷 방송으로 생중계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각 시즌은 그렇게 나름의 색깔과 매력이 있었다고 <새만금표류기> 제작진은 자부한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처음부터 순수 예능을 염두에 두고 기획된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작품이 그러하듯, 이 콘텐츠 또한 여러 우연들이 만들어 낸 합작품이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제적 공간, 새만금

 

1991년 착공해 30년째 공사가 진행 중인 새만금은 대한민국에서 손에 꼽히는 문제적 공간이다. 군산, 부안, 김제 앞바다를 통째로 막아 세계 최대의 간척지를 만들어 쌀 생산 자급화를 이룩하겠다는 정부의 원대한 포부로 시작됐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끊임없이 환경 논쟁에 시달려 온 게 바로 이곳 새만금이다. 착공 이후 총 여섯 차례 정권이 바뀌면서 개발과 중단이 반복됐고 그 사이 국내 쌀 생산량은 소비량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애초의 계획이 무색해져 버린 새만금은 이런저런 고민 끝에 새로운 비전을 세우고 총 여섯 개 영역(·생명용지, 산업·연구용지, 국제협력용지, 관광·레저용지, 환경생태용지, 배후도시용지)으로 나눠 개발을 진행 중이다.

착공 이후 30. 아직 매립 공사도 완료되지 않은 새만금 개발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20여 년 동안 지속된 환경 논쟁은 여전하다. 이 말 많고 탈 많은 공간을 수십 년째 지켜본 전라북도민들의 마음은 어떨까.

희망의 땅에서 지리멸렬과 염증의 땅으로 바뀐 새만금. 이 공간을 두고 KBS전주방송총국에서 10년 계획을 세워 매해 특집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의견이 어느 날 총국장을 통해 제작부에 하달됐다. “총국장님이 강원도 출신이라 뭘 모르셔.” 총국 내 일선 PD들의 반응은 이렇듯 시큰둥했다. 새만금을 둘러싼 갈등을 오랫동안 프로그램으로 다뤄온 PD들에게는 새만금은 이제 그만!’이라는 정서가 이미 깊고 넓게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PD들 전원을 앉혀놓은 술자리에서 새만금 10년 프로젝트를 설파하는 총국장의 눈빛은 너무 선하고 초롱초롱했다. 누군가는 이 프로젝트에 투신해야 할 분위기가 형성됐고, 하필이면(!) 내가 그 주인공으로 낙점됐다. ‘새만금 2016-2025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게 2016년 초의 일이다.

 

새만금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만든다고요?

 

새만금 2016-2025 프로젝트의 포문을 연 작품은 다큐멘터리였다. <새만금리포트 2016>이라는 프로그램은 솔직히 말해서 제목만큼이나 심심하고 재미없었다. 환경이냐 개발이냐, 국가 주도 공공매립이냐 사기업 투자를 통한 매립이냐, 대기업 스마트팜 유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 등등. 그간의 새만금을 둘러싼 다양한 주제를 총정리하는 느낌의 다큐멘터리였는데, 결론은 새만금이 여전히 문제적 공간이며 대한민국 혹은 전라북도민에게 또한 지리멸렬의 땅임을 재확인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되고 말았다. ‘아뿔싸! 이 계획에 참여하지 말았어야 했어

그렇게 후회감에 압도돼 <새만금리포트 2016> 제작 막바지에 다다랐던 어느 날, 내 머릿속에 쓰윽 스쳐가는 이미지 하나가 있었다. 생기발랄한 청춘남녀들이 셀카봉을 들고 활짝 웃으며 광활한 야생의 땅 새만금을 누비는 그림. 새만금을 기존에 없었던 전혀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아기와 같은 순백의 시선으로 새만금을 바라볼 수 있다면. 어쩌면 바로 그 지점에서 기존의 갈등으로 구획된 관념이 아니라 이 공간에 대한 전혀 새로운 희망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새만금은 기성세대의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이 공간을 누벼야 할 젊은 친구들의 몫이니까. 그렇게 스쳐간 생각과 이미지가 좀 더 다양한 콘셉트와 장치들로 풍성해지면서 <새만금표류기>라는 기획의 퍼즐이 하나하나 맞춰지기 시작했다.

 

무한한 창작의 자유가 만든 성과

 

201797<새만금표류기> 첫 촬영이 있던 날은 지금도 내 기억에 생생하다. ‘교양과 예능의 콜라보를 표방한 이 작품은 열악한 제작비와(3,500만 원) 제작 인력(피디 한 명, 작가 두 명, 외주카메라 일곱 명 등) 그리고 방송 경험이 거의 전무한 아마추어 출연진 일곱 명과 함께 시작됐다. 무엇보다도 열악했던 것은 촬영 공간인 새만금 그 자체였다. 민간인이 들어갈 수 없는 그곳은 이미 얘기했듯 , 전기, 화장실, 숙소도 없는 순도 100% 야생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게 녹록찮은 환경이었지만, 그래도 열정과 패기만큼은 차고 넘쳤던 것 같다. 이 고된 여정에 제작진은 물론 출연자들도 앓는 소리 하는 사람이 없었다.

객관적인 지표가 없으니 알 수는 없지만, 첫 시즌에 대한 반응은 좋았다. 방송국 내에서의 평가는 차치하고, 내 주변 평범한 시청자들(예를 들면 나의 가족이나 이웃)의 평이 후했다. 가령 이렇게 말이다. “! 이건 지역 방송 같지 않아! 서울에서 만든 것 같잖아!그 말을 듣고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잘 몰랐지만, 적어도 내가 세웠던 계획을 성공적으로 완수했음을 알 수는 있었다.

그 후 2018년과 2019년에 시즌 2와 시즌 3를 연이어 선보였다. 시즌을 거듭하면서 제작비는 늘어났고 그 덕에 제작 인력을 좀 더 풍성하게 구축할 수 있었다. 물론 서울(혹은 중앙이라 지칭되는 곳)에서 만들어내는 여타 예능 프로그램들과 비할 바는 못 됐다. 하지만 제작비 규모나 출연자들의 인지도로 그들과 맞짱 뜰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대신 <새만금표류기> 제작진에게는 무한한 창작의 자유가 보장돼 있었다. 콘텐츠 제작에 관한 한 우리가 행하는 어떠한 파격적인 실험에도 KBS전주방송총국 내 구성원들은 위아래를 막론하고 지지와 성원을 보내줬기 때문이다.

그러한 조력이 가장 큰 빛을 발한 대목은 아마도 시즌 2에서 감행한 유튜버 출연진 구성일 것이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바로 2년 전인 2018년만 해도 SNS 기반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의 지상파 방송 출연은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TV가 아닌 다른 플랫폼에서 젊은이들 사이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제작비 여건상 기존의 스타 시스템을 활용할 수 없었던 우리는, 거꾸로 TV 플랫폼에 어느 정도 목마름을 가지고 있는 인터넷 방송 스타들과 손을 잡으면서 각자의 욕망을 채워나갈 수 있었다.

로컬 예능 <새만금표류기>의 오락성과 브랜드화 전략은 이러한 파격적인 합종연횡을 통해 꽤 큰 성과를 거뒀다.

 

인디테인먼트의 현재진행형, <새만금표류기>

 

예나 지금이나 지역 방송 종사자들의 고뇌는 깊다. 오랜 고정관념이 여전히 철옹성처럼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순도 100% 예능 프로그램이 서울 기반 방송제작 환경에서만 가능하다는 생각은 온당한 것일까? 지역방송은 여전히 촌티 나는 화면발로 재밌는 중앙방송을 지역 시청자들에게 전달하지 못하게 하는 훼방꾼인가? “지방방송 !”라는 말은, 우리에게 아직도 유효한가?

<새만금표류기> 시리즈가 이 낡은 편견에 회심의 한 방을 날리는 프로그램으로 대중들에게 기억되길 우리 제작진은 바라고 또 바란다. 그 간절함을 통해 어느 날 불쑥 튀어나온 단어가 아마도 인디테인먼트일 것이다.

거대한 변화는 언제나 주변부에서 시작됐다. 누가 알겠는가. 인디테인먼트라는 이 소박한(?) 개념이 언젠가 대한민국 방송계에서 장대하게 피어나는 날이 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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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 이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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