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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부재의 기억>
취재기제작기 | 등록일 : 2020-04-01

20144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했다. 304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이후 대한민국은 이 같은 대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고,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말하고 나누고 기록했다. 이승준 감독이 단편영화 <부재의 기억>을 만든 이유도 같다. 그는 <부재의 기억>2020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에 출품했다.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그간의 여정을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2019331, 바람이 아직 찼다. 안산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이하 416 가족협의회) 사무실 강당에서 유가족을 모시고 <부재의 기억(In the Absence)> 첫 시사회를 가졌다. 낯익은 분들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긴장됐다. 누군가의 고통과 아픔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작업을 한다는 건, 다큐멘터리 감독의 숙명이라 생각하면서도 미안하고 한편으로는 걱정됐다. 상영이 시작됐다. <부재의 기억>에는 배가 침몰해가던 모습이 초반부터 그대로 나온다. “저걸 또 봐야 돼?” 유가족이 한 분 두 분 나가기 시작했다. <부재의 기억>을 처음부터 함께했던 장훈 운영위원장(전 진상규명 분과장)이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기울어져 있는 배 모습이 뉴스에 엄청 많이 나왔죠? 그 장면, 가족들에게는 찢어지는 고통입니다.” 반 이상이 자리를 떴다. 그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됐다. 영화가 끝난 후 가진 대화의 자리에서 한 분이 간곡히 부탁했다. “감독님, 해외에서도 알려진 분이라고 하니까 하나만 부탁할게요. 세월호 참사, 해외에도 널리 알려주세요.” 그 부탁을 꼭 지킬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진 아카데미 시상식 다큐멘터리 후보작 프레젠테이션 <출처 - 필자 제공>

 

2014416일 이후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국내 언론은 대부분 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보와 왜곡이 넘쳐났고 진실은 차단됐다. 한국독립PD협회에 소속돼 있던 동료 선후배 독립 PD들이 현장에 내려갔다. 뭔가 제작하려는 계획은 전혀 없었다. 기록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렇게 416기록단이 만들어졌다. 나는 내려가서 함께 기록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얄궂게도 시간이 맞지 않았다. 당시 나는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후반작업 중이었다. 그걸 중단하고 내려갈 수가 없었다. 더 큰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2014416일 이후, 버스 안에서, 거리에서 교복 입은 아이들을 보면 눈물이 났다. 미안했다. 상상하기 힘든 고통의 현장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세월호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

 

20171월 초, 영어로 된 페이스북 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내가 잘 아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그는 나를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잘 지내지? 난 지금 필드오브비전(Field of Vision)에서 일해. 요즘 한국은 대통령 탄핵 관련 촛불집회로 아주 떠들썩한데, 그와 관련된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를 찾고 있거든. 답장 부탁해.” 필드오브비전? 생소했다. 검색해봤다. 필드오브비전 웹사이트에는 뉴스에 나올 만한 이슈들을 다룬 단편 다큐멘터리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알고 보니 필드오브비전은 이베이(eBay) 창시자 오미디야르(Omidyar)가 만든 퍼스트룩미디어(First Look Media)라는 대안 미디어의 자회사였다. 전 세계의 흥미로운 이슈를, 뉴스가 아닌 영화의 문법으로 접근해 단편 다큐멘터리를 제작배급하는 회사였다. 수익보다는 공익적인 성격이 더 강한 집단이었다. 기획안을 받아 제작하기도 하지만, <부재의 기억>처럼 전 세계의 다큐멘터리 감독들과 직접 접촉해서 특정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줄 것을 요청하기도 한다.

함께 일해왔던 감병석 PD와 의논을 했다. “세월호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 PD는 세월호 관련된 다큐멘터리들이 계속 나와야 한다고 했다. 난 주저했다. 여전히 세월호는 마주하기 두려웠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416기록단에 참여하지 못한 부채 의식도 있었다. 세월호 참사의 고통이 어디에서 시작됐고, 그것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담담하게 바라보는 작업은 큰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다 싶었다. 필드오브비전은 우리의 생각에 공감하며 세월호 참사에 관한 단편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줄 것을 요청했다.

  

아카데미 후보자들을 위한 만찬 및 기념 촬영 <출처 - 필자 제공> 

 

<부재의 기억>416가족협의회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프로젝트였다. 우선 장훈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과 세월호 참사로 숨진 단원고 학생, 교사 등의 삶과 꿈을 엮은 책 416 단원고 약전(경기도교육청)의 저자 중 한 명인 오현주 작가를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어떤 다큐멘터리를 만들려고 해요?”, “고통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려고 합니다. 저는 진상 규명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도, 그걸 잘하는 감독도 아닙니다. 차분히 바라보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습니다.” 한참 나중에 들은 이야기였지만 416가족협의회는 2014416일 당시 상황을 담담하게 담아내는 작품,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파헤치려고 하지 않는 다큐멘터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적절한 시기에 416가족협의회와 만났던 것이다. 416가족협의회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해주기로 했다. 보유하고 있던 영상과 사진 자료를 제공해줬고, 촬영과 인터뷰에 동행하기도 했다. 416기록단은 그동안 모아놓은 자료와 촬영본을 그대로 제공해주기로 했다. 이제 현장으로 들어가는 일만 남았다.

 

<부재의 기억>을 완성하기까지

 

20172월 말쯤 첫 촬영을 시작했다. 촛불 정국은 막바지로 흘러가고 있었다. 탄핵 인용이 되던 날은 안국동 길거리에서 유가족들과 함께 있었다. 박근혜 정권이 무너지자 거짓말처럼 세월호 인양이 시작됐다. 그 순간들을 담았다. 세월호가 인양된 목포신항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많은 취재기자가 그곳을 찾았다. 한 기자가 가족에게 무심코 질문을 던졌다. “지금 심정이 어떠세요?”, “그걸 질문이라고 합니까? 배가 저기 있는데, 내 아이가 탔던 배가 저기 있는데 심정이 어떤지 물어요? 어떤지 모릅니까?” 현장 분위기를 존중하지 않으면 그 매체 역시 존중받지 못했다. 자업자득이었다. 언론에 대한 불신감은 여전했다.

20178월 무렵 촬영을 마무리하고 416기록단과 416가족협의회가 제공한 자료들을 보기 시작했다. 상당한 양의 자료를 일일이 다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적으로도 힘들었다. 아이들 휴대폰에서 나온 사진과 영상을 보고 나면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옆에 있는 것 같았다. 편집하는 내내, 아니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도 그랬다.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부재의 기억> 후반 작업은 약 1년이 걸렸다. 꽤 오래 걸린 셈이다. 편집 때문이었다. 날것의 재료들을 어떤 원칙으로 배치할지 고민스러웠다. 게다가 30분 이내의 단편으로 만들어야 했다. 처음부터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세월호 참사 당일, 첫 신고부터 배가 선수만 남고 침몰할 때까지 약 2시간 동안을 분 단위 시간 순서대로 구성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해경에서 촬영한 현장 영상이 있었고, 아이들을 포함한 승객들의 휴대폰 영상과 사진, 문자가 있었으며 구조를 지휘하던 해경, 청와대 등의 기관들 사이의 통화 음성이 있었다. 영화에 쓰인 세월호 화물칸 CCTV 영상은 참사 이후 한참 나중에 복원돼 사용할 수 있었다. 당시를 재구성하는 데 충분한 자료였다. 과연 그 시간 동안 배 안팎으로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었고,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배열하다 보면 세월호 참사의 고통은 수많은 인명피해보다 국민을 구조해야 할 국가의 부재에서 왔다는 견해를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자료의 어떤 부분을 쓸 것이며, 그 의미가 효과적으로 전달되는지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편집이 어느 정도 진행된 이후 프로듀서와 이야기를 나눴고 이를 바탕으로 수정 작업을 진행했다. 그렇게 나온 1차 편집본을 필드오브비전과 공유했다. 거칠게 편집됐음에도 그들은 흥분했다. 강렬한 이야기와 충격적인 풍경들로 가득 차 있다고 했다. 그때 처음으로 아카데미상에 응모할 만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첫 편집본에 대한 세밀한 코멘트 역시 잊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워낙 복잡하다 보니 맥락이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의견 차이도 있었다. 세월호가 목포신항에 들어오는 순간을 촬영할 때 많은 어머니가 분노하고 울부짖으며 소리쳤다. 그 모습을 본 필드오브비전 관계자들은 공감에 앞서 당혹스러워했다. 감정이입에 방해된다고 했다.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감병석 PD가 알고 있는 서양인들에게 보여주니 역시 마찬가지 반응이 나왔다. 장례식에서도 잘 울지 않는 그들 문화를 고려해보면 수긍할 수 있었다. <부재의 기억>은 처음부터 해외를 겨냥하고 만들었다. 그래서 수정했다. 그들의 판단을 믿어보기로 했다.

편집본에 대한 의견 교환, 재편집, 다시 의견 교환, 그리고 재편집. 최종본이 이상하리만치 나오질 않았다. 201712월 말, 필드오브비전에서 조심스럽게 제안을 했다. “그동안 우리가 <부재의 기억>에 너무 빠져 있었던 것 같다. 감독도 프로듀서도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최종본을 만들 수 없는 것이다.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각을 갖고 있는 외부 편집감독이 필요할 듯하다.” 몇 개월째 그 안에 빠져 있으면 판단력이 흐려지게 마련이다. 그게 편집의 과정이다. 편집감독을 두자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필드오브비전에서 비용을 댔다. 그렇게 만난 뉴욕의 한 편집감독과의 작업이 시작됐다. 그가 편집하는 동안 나는 손을 놓았다. 아예 신경을 끄고 있었다. 새로운 편집본이 나온 뒤엔 몇 차례 의견교환을 교환했다. 내가 다시 건네받아 최종적으로 정리를 했다. 그렇게 해서 20189, 29분짜리 <부재의 기억>이 최종 완성됐다.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후보작 공식 상영회 <출처 - 필자 제공> 

 

세월호 참사를 널리 알린 아카데미 시상식 참가

 

공동제작사이자 배급사인 필드오브비전은 우리에게 201811 뉴욕에서 개최되는 뉴욕다큐멘터리영화제(DOC NYC) 단편 다큐멘터리 경쟁부문에 초청받았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세계 최초 공개가 그 영화제에서 이뤄진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DOC NYC는 익숙한 영화제는 아니었다. ‘왜 좀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영화제를 선택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필드오브비전에는 계획이 있었다. <부재의 기억>이 그 영화제에서 단편부문 대상을 받은 것이다. 그 순간부터 아카데미시상식은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카데미상은 본래 어떤 영화든 응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 일정 기간 이상 극장에서 상영해야 응모할 수 있다는 조건이 있다. 단편 영화가 미국 극장에서 개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다른 한 가지 방법이 더 있었다. 아카데미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는 것이다. DOC NYC는 그런 영화제들 중 하나였다.

그 후 나는 <부재의 기억>을 초청한 해외영화제들에 참가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상영이 끝나고 불이 켜지면 관객들의 눈이 빨개져 있거나 눈물을 훔치고 있는 모습을 종종 확인할 수 있었다. 세월호 선장이 먼저 나오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웅성거렸고 한숨을 쉬었다. 관객과의 대화가 끝나면 내게 다가와서 우리도 저런 일이 있었다. 재난과 참사가 있었을 때 국가가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해서 불쌍한 국민들이 희생된 일이 있었다며 손을 꼭 잡았다. <부재의 기억>은 이후 암스테르담 월드포토페스티벌,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인디(INDY)단편영화제, 미국전미영화협회(AFI) 다큐멘터리영화제 등에서 작품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뉴욕에서 봉준호 감독, 유가족과 함께 <출처 - 필자 제공> 

 

201911월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국제다큐멘터리협회상(IDA Award) 시상식이 있었다. <부재의 기억>10편의 후보작 중 하나로 선정되어 초청을 받았다. 필드오브비전은 시상식 전에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특별 상영회를 갖자고 했다. 아카데미상 후보에 들기 위한 프로모션 차원이었다. 그제서야 아카데미상이 어떻게 선정되고, 프로모션을 왜 하는지 이해됐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한 차례씩 상영회를 가졌다. 후보작 선정 투표권을 가진 아카데미 회원 혹은 다큐멘터리 영역에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 대상의 상영회였다. 반응은 여전히 좋았다. 그해 12, 아카데미상 예비후보(Shortlist)가 발표됐고, <부재의 기억> 단편 다큐멘터리 예비후보 10편 중 하나에 선정됐다.

20201월 중순 아카데미상 최종 후보작 발표 날, 유튜브로 생중계하는 행사를 직접 봤다.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은 초반부에 발표를 했는데 제일 먼저 <부재의 기억>이 호명됐다. 기쁘다기보다 다행이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해외에 널리 알려달라는 세월호 유가족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게 됐으니까.

예상대로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가하는 것은 세월호 참사를 널리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국내 언론과 수많은 인터뷰를 했고, 사람들이 세월호를 다시 기억하는 계기가 됐다. 해외 언론들 역시 <부재의 기억>에 주목했다. 특히 뉴욕타임스, 가디언, 인디와이어(IndieWire) 등 해외 유명 매체에서 ‘<부재의 기억>은 최고의 단편 다큐멘터리라며 추켜세웠다. 상영회를 찾은 관객들 반응도 뜨거웠다. 함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다른 단편, 장편 다큐멘터리 감독들 역시 <부재의 기억>은 진심으로 응원하고 훌륭한 작품이라고 말해줬다. 수상하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3주간 미국에서 머물면서 언론과 미국 관객들이 보여준 관심과 공감만으로도 충분히 할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상식 당일 레드카펫, 아이들 얼굴이 그려진 스카프를 든 유가족과 함께 <출처 - 필자 제공> 

 

함께 시상식에 참여했던 유가족 한 분이 말했다. “영화 <부재의 기억>에는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아카데미 회원들의 성향을 충족시켜주지 못했지만, 현실에서는 희망을 만들 겁니다.”

유가족, 생존자, 잠수사들의 큰 응원도 있었다. <부재의 기억>을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걱정이 참 많았는데, 그리고 참 미안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부재의 기억>을 만들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수상을 하게 되면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 세월호 참사로 고통 받는 유가족, 생존자, 잠수사들에게.

꼭 기억하세요. 세상이 여러분들 곁에 있습니다(Please do remember it. The world is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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