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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제작기] 매일신문 <코로나19 취재기>
취재기제작기 | 등록일 : 2020-04-29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310일 오후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에서 휴식을 마친 간호사들이 코로나19 환자 관리병동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파이팅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 - 매일신문 DB>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29일부터 누적 확진자 1,000, 국내 최초 아파트 코호트격리까지 이뤄진 대구는 도시 전체가 재난 현장이었다. 최근 신규 확진자 0명을 기록하며 안정화로 접어들기까지, 대구 주민과 의료진, 언론의 역투기를 기록했다. 편집자 주

 

코로나19로 대구는 사투(死鬪)를 벌였다. 지난 2월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환자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방역과 의료 인력이 최일선에 섰지만 갈수록 병상은 모자랐고 사망자도 늘었다. 신천지 대구교회에서 시작된 집단감염은 요양시설과 아파트, 정신병원 등으로 번졌다. 지역민의 일상도 멈췄다. 도심과 거리에는 사람들이 사라졌고, 가게들이 문을 닫았다. 개학도 늦어졌다.

 

언론들도 역투(力鬪)했다. 병원과 보건소, 신천지 대구교회 등 남들이 피하는 곳을 찾아다녔다. 감염 우려에도 현장에 갔고 사람들을 만났다. 확진 판정을 받은 기자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공포를 부추기는 과열 보도는 문제였다. 가짜뉴스도 불안을 키웠다. 이런 가운데 사람들은 스스로 희망을 만들어갔다. 전국에서 의사와 간호사가 달려왔고, 시민들은 기부와 자원봉사를 통해 힘을 보탰다.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지역사회에서 시작해 국가 전체로 커졌고, 이제는 세계 인류가 힘을 합쳐야 극복해야 할 문제가 됐다. 언론 역할에 대한 많은 고민도 던져졌다.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하고, 정치적 논쟁에 휩쓸려 반드시 다뤄야 할 문제에 소홀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223일 오후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대구동산병원(중구)에서 경증 환자가 구급차에서 내려 병원으로 걸어가고 있다. <출처 - 매일신문 DB>

 

 

대구 첫 확진자 그리고 두 달

 

218일 대구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왔다. 국내에선 31번째였다. 앞서 120일 국내 첫 확진자 나온 지 한 달 남짓 지난 시점이었다.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31번 확진자가 신천지 대구교회 예배에 참여한 사실이 확인됐다.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집단감염이 현실이 됐다. 신천지 신도를 중심으로 지역사회로 감염이 빠르게 퍼졌다.

 

220일 청도 대남병원에서 경북 첫 사망자가 발생했다. 같은 날 정부와 대구시는 31번 확진자와 함께 예배를 본 신천지 대구교회 신도 명단을 확보해 전수조사에 나섰다. 대구의 초··고교는 39일까지 개학을 연기하기에 이르렀다. 다음날 경북대병원과 영남대병원 등 확진자가 다녀간 병원 응급실이 줄줄이 폐쇄돼 의료 현장의 혼란이 커졌다.

 

 

36일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대구 남구청 공무원과 자율방재단이 신천지 대구교회

일대를 방역하고 있다. <출처 - 매일신문 DB>

 

223일 대구에서 처음으로 56세 여성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 정부는 위기 경보를 경계에서 심각 단계로 격상했고, 나흘 뒤 대구의 누적 확진자는 1,000명을 넘었다. 경북 울진과 울릉을 제외하고 모두 확진자가 발생하는 등 감염 도미노가 이어졌다. 확진 판정 이후 병상이 없어 집에서 대기하던 사람이 목숨을 잃는 일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대구의 중앙교육연수원을 전국 첫 생활치료센터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3월 들어선 병원과 요양시설, 콜센터 등지에서 집단감염이 확인됐다. 특히 37일 대구의 한마음아파트에서 무더기로 확진자가 나왔고, 신천지 신도가 집단으로 거주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곳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아파트 코호트격리가 이뤄졌다. 다행히 이틀 후인 9, 한때 하루 700명이 넘었던 대구의 신규 확진자는 100명대로 낮아졌다.

 

대구는 첫 확진자 발생 한 달 이후부터 차츰 상황이 안정화됐다. 410일에는 신규 확진자 0명을 기록했다. 첫 확진자가 나온 지 53일 만이었다. 이날 대구의 완치율은 77.5%에 이르렀다. 신천지 대구교회의 집단감염에서 시작된 코로나19를 종식할 수 있다는 기대가 현실로 다가왔다.

 

모든 곳이 현장, 모든 사람이 취재원

 

코로나19는 대구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도시 전체가 재난 현장이 됐다. 기자로서 가는 곳은 모두 취재 현장이었다. 병원과 보건소는 물론 직장과 가정, 학교 등 감염병의 여파가 도시 전체를 뒤덮었다. 또 만나는 모든 사람이 취재원이었다.

 

현장에서 확인한 재난은 홀몸 노인과 노숙자,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에 더 혹독했다. 특히 혼자 생활하는 노인들이 고립됐다. 복지시설이 전부 문을 닫았고, 각종 방문 서비스도 중단돼 불편을 겪었다. 생계 활동에도 제약을 받았다. 14,000명을 대상으로 하는 대구의 노인돌봄서비스 사업이 대폭 축소됐다. 음식 장만과 청소, 병원 방문 등의 서비스가 중단된 것이다.

 

20여 명이 생활하는 한 노숙자 쉼터의 경우 입소자 중에서 확진자가 나왔지만, 시설 폐쇄가 이뤄지지 않았다. 나머지 입소자들은 갈 데가 없다는 이유로 감염에 노출된 채 생활해야만 했다. 출입문을 잠그는 등 사실상 강제 격리 상태에 놓여 인권 침해 논란도 불거졌다. 또 만성질환자가 있음에도 병원 방문이나 약 처방이 제때 이뤄지지도 않았다.

 

취재 현장에는 감염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특히 신천지 예수교회와 관련된 곳을 취재할 때가 가장 조심스러웠다. 신천지 대구교회를 비롯해 위장교회와 센터, 복음방 등을 찾아다녔다. 사태 초기에 이곳들은 방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마스크와 손 세정제, 손 씻기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현장에서 확진자를 만나는 일이 발생했다. 취재했던 홀몸 노인 중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확진 판정은 취재 후 열흘이 지나 이뤄졌고, 나도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를 받게 됐다. 다행히 음성이 나왔지만, 접촉자 격리 기간까지 현장 취재를 나갈 수 없었다.

 

그러던 중 기자 사회의 감염 우려가 현실이 됐다. 32일 국내 언론사 가운데 처음으로 대구일보 기자 한 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 기자가 출입한 대구 북구청 홍보팀 직원도 검사 결과 양성이 나왔다. 확진 판정 기자가 방문했던 곳마다 비상이 걸렸다. 기자는 업무 특성상 접촉자가 광범위해 자칫 지역사회 슈퍼 전파자가 될 수 있어서다.

 

 

그대들은 우리의 영웅들입니다.” 
323일 오후 대구동산병원 코로나19 비상대책본부 앞 벽면에 전국 각지에서보 내온 수천 장의 의료진 응원편지들이 가득 붙어 있다.

 

<출처 - 매일신문 DB>

  

다행히 추가 확진자가 없었지만, 이후 지역 기자들의 취재는 상당히 위축됐다. 병원과 보건소, 행정기관, 다중이용시설 등의 직접 방문을 줄여야 했다. 신문사 건물 출입도 엄격하게 통제됐다. 현장 기자들은 물론 외부 인사의 방문을 제한했다. 감염으로 신문사 건물이 폐쇄될 경우를 대비해 비상 제작 시스템도 마련했다.

 

스스로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

 

재난을 극복하는 힘은 사람들의 헌신에서 나왔다. 의료 인력이 부족하다는 소식에 의사와 간호사들이 대구로 달려왔다. 시민들은 십시일반으로 마스크와 방호복 등 의료장비를 보탰다.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손수 도시락을 만들어 병원으로 전달했다. 아이들은 응원 내용을 담은 손편지를 만들었다.

 

사태 초기 첫 확진자가 나오자마자 스스로 임대료 낮춘 건물주가 등장해 관심을 모았다. 220일 대구 중구 서문시장의 한 상가 건물주(74)는 세입자들에게 고통을 같이하는 의미에서 한 달간 월세를 받지 않겠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이 건물주는 2017년 서문시장 화재 때도 2년 넘게 월세를 깎아주면서 세입자들과 어려움을 나눈 바 있다.

 

시민들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자원봉사를 했다. 전세버스 기사들은 감염에 대한 두려움을 무릅쓰고, 대구의 경증 환자들을 전국 곳곳의 생활치료센터로 옮겼다. 보호장비 착용과 장시간 운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지게차 운전기사는 구호 물품 상·하차 작업을 도왔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본인 지게차를 동원했다.

 

맞춤형 기부도 시민들 사이에서 시작됐다. 대구 수성구의 16 중학생은 몇 년간 모아온 자신의 돼지저금통을 털었다. 이렇게 마련한 12만 원을 갖고 이주여성쉼터를 찾아, 어린아이와 함께 머무는 이주 여성들에게 식사를 선물했다. 시민들은 쌀과 도시락, 밑반찬 등 먹을거리와 직접 만든 수제마스크, 손 소독제, 보드게임 등을 모았다.

 

다른 지역에서도 정성이 쏟아졌다. 전라남도의 마을활동가와 사회적기업은 마을이 마을을 돕는다라는 취지로 구호 물품을 대구로 보내왔다. 전남 시· 22곳 주민 대부분이 참여해 조금씩 정성을 모았다. 직접 만든 파김치와 생강청, 재배한 쌀과 꽃, 소금, 고구마말랭이 등이었다. 이는 대구의 발달장애인 120여 가구에 나누어졌다. 구호 물품 모집을 추진한 문병교 전남 마을활동가네트워크 대표는 이웃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고, 대구 주민을 돕는 것이 나를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힘을 보탰다. 3월 초쯤 핀란드에서 공부하는 최원석(36) 씨는 현지에서 직접 마스크를 구해 대구·경북으로 보내왔다. 최 씨는 경북 안동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일하는 고교 동창의 SNS 글을 보고 기부를 결심했다. 무엇보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긴 줄을 선 사람들이 남 같지 않았다고 최 씨는 말했다.

 

가짜뉴스와 과열 보도가 부추긴 혐오와 공포

 

지역사회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타 가짜뉴스가 활개를 쳤다. 가짜뉴스는 바이러스보다 더 빠른 속도로 퍼졌다. 감염병에 대한 염려로 신경이 곤두선 지역민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가짜뉴스에 대해 사실 확인 기사를 썼지만 허사였다. 이미 사람들은 거짓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취재에도 혼란을 가져왔다. 확진자가 폭증하던 때 가짜뉴스로 인해 취재 업무에 과부하가 걸렸다.

 

대구에서 첫 확진자가 나온 다음 날인 219일 전후로 허위 사실을 담은 문자메시지가 퍼졌다. ‘코로나 확진 내용을 클릭하니 은행 계좌에서 전액이 인출됐다, 경찰서에 접수된 피해가 58건이다라는 거짓 문자가 돌았다. ‘31번 확진자가 퇴원을 요구하면서 간호사와 몸싸움을 벌였고, 신천지 신도들이 병원으로 몰려와 업무를 방해했다라는 사실무근인 내용도 SNS를 중심으로 순식간에 확산됐다.

 

온라인의 악성 루머도 문제였다. 1,500여 명의 자원봉사 의료진에 대한 나쁜 소문이 퍼졌다. 지역 숙박업체들이 담합으로 의료진에게 바가지요금을 받는다거나,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해 자비로 숙식을 해결한다는 헛소문이었다. 이를 사실로 믿은 다른 지역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대구에 대한 혐오 감정을 드러냈다.

 

과열 보도는 공포를 부추겼다. 특히 318일 경북 경산의 17살 고등학생이 숨졌을 때 문제가 도드라졌다. 당시 전국지의 기사는 자극적이었다. “비 오는 날 마스크 줄 서고 발열”, “코로나 의심도 못 했다라고 제목을 달았다. 학생의 죽음이 마스크 5부제코로나바이러스때문이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하지만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감염병으로 지역 의료 체계가 어떻게 붕괴했고, 신속한 진료와 적절한 처방이 이뤄지지 않은 배경을 진지하게 분석한 기사는 찾기 어려웠다.

 

속보 경쟁은 오보를 낳기도 했다. 42일 오후 통신사와 전국지, 인터넷 언론 등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대구의 50대 의사가 사망했다고 앞다퉈 보도했다. 하지만 오보였다. 오보가 확인된 이후에도 몇몇 언론사들은 국내 172번째 사망자 국내 첫 의료진등 베껴 쓴 기사를 그대로 내보냈다. 당시 이 의사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고, 불행히도 다음날 오전에 사망했다.

 

 

329일 대구의료원 앞 한 어린이집 건물에 코로나19와 싸우는 의료진들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들고 찍은 아이들의 사진이 붙어 있다
<출처 - 매일신문 DB>

 

 

재난 저널리즘의 정치적 거리 두기

 

코로나19 사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소모적인 논쟁이 많았다. 총선을 앞둔 탓에 정치적인 평가가 넘쳤다. ‘우한 폐렴이냐 코로나냐 명칭을 둘러싼 갑론을박, ‘대구 봉쇄대구 코로나라는 말을 둘러싼 여야 갈등 등이 대표적이었다. 늘어나는 확진자와 모자란 병상으로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불필요한 논란이었다.

 

이 와중에 의료 현장에선 갖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서울 소재 병원의 항암 치료를 받지 못한 대구의 6살 아이도 있었다. 백혈병을 앓고 있던 이 아이의 치료는 2주 전에 잡혀 있지만, 대구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병원 출입 금지를 통보를 받았다. 아이의 어머니는 천막을 치고서라도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사정했지만, 병원 측은 감염병을 예방하고자 출입과 치료를 제한한다고 했다.

 

대구시의 대응도 미숙했다. 병원들이 열이 있는 환자의 진료를 꺼렸지만, 이에 대한 신속한 해법 마련은 보이지 않았다. 집단감염에 대한 대응도 부족했다. 요양병원 환자와 종사자에 대한 검사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산발적으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또 늦춰진 긴급생계자금 지원과 의료진 수당 지급도 문제로 남았다.

 

이 같은 일을 계기로 언론들은 감염병에 대한 보도준칙을 정립해야 할 숙제를 안았다. 감염병이란 재난 속에서 선후(先後)와 경중(輕重), 완급(緩急)을 판단해야 할 기준이 필요했다. 감염과 방역, 진단과 치료, 삶과 죽음 등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언론은 중심을 잡지 못했다. 바이러스 감염을 막고자 시민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했듯이, 왜곡·과장 보도를 예방하고자 언론이 정치적 거리두기를 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영국 언론 가디언이 제시한 코로나19 관련 독자와의 약속이 하나의 모범이 될 듯하다. 가디언은 신뢰할 수 있는 사실과 새로운 관점·통찰을 제공할 것 세계 지도자들이 위기 대응에 책임을 다하도록 탐사보도를 할 것 가난한 사람의 어려움에 집중할 것 국제적인 시각을 제공할 것 등을 약속했다.

무엇보다 약속의 마지막 문장이 가슴에 와 닿았다. “더 나은 사회와 공정한 삶을 위해 희망을 제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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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 : 2020-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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