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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5일,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된 상황에서도 제21대 총선은 66.2%의 높은 투표율을 기록하며 끝이 났다. 후보자와 유권자가 직접 얼굴을 마주하는 ‘콘택트(Contact) 선거’가 불가능했기에, 새로운 형태의 선거가 치러졌다. 코로나19는 선거 문화를 어떻게 바꿨을까. 그리고 결과에는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지난 제21대 총선을 되돌아본다. 편집자 주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다. 여야 후보자와 정당이 경쟁하고, 유권자가 심사하는 선거 오디션이다. 그중 4년마다 열리는 총선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등 300명을 새로 선출하는 정치 올림픽이기도 하다.
특히 총선은 행정부를 이끄는 대통령 1인을 뽑는 대선에 비해 유권자와 공직 후보자의 심리적·물리적 거리가 훨씬 더 밀착돼 있다. 유권자가 사는 지역구 단위로 국민을 대표할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총선 선거운동 기간엔 평소에 보기 힘든 현직 국회의원, 의원 후보자, 여야 유력 정치인들을 지하철, 전통시장 등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다. 총선은 대의민주주의에서 권력을 위임받는 의원과 위임하는 유권자의 ‘정치적 거리’가 가장 좁아지는 시기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속에 치러진 제21대 총선은 선거의 기존 문법에서 벗어났다.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와 ‘자가 격리’가 2020년 전 지구촌의 모토가 된 덕분이다.
대다수 한국 유권자들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정치적 거리 좁히기’의 복잡한 교차로 속에서도 참정권을 포기하지 않았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참여가 저조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제21대 총선 투표율은 66.2%를 기록해 28년 만에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이번 ‘코로나 선거’에서는 유례가 없는 선거 캠페인이 펼쳐진 가운데, 전례를 찾기 어려운 여당의 역사적 압승으로 마무리됐다. 거대 양당 체제로의 회귀, 지역구도의 강화 등 정치권에 적지 않은 고민도 안겼다.
코로나19가 바꾼 ‘언택트 선거’
전대미문의 감염병은 전대미문의 선거를 낳았다. 선거운동에서 투표까지 선거의 모든 것이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 이튿날인 16일 “이번 총선은 다시 한번 세계를 경탄시켰다”며 “국민의 적극적인 협력과 참여 덕분에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 속에서도 우리는 주요국 가운데 유일하게 전국 선거를 치를 수 있었다”고 했다. 실제로 영국은 지방선거를 1년 미루고, 폴란드는 대선을 우편 투표로 대체하기로 했다. 이 와중에도 한국이 전국 단위의 선거를 예정대로 실시한다는 것은 국제적 관심사가 되기도 했다.
코로나19 이전에 선거 운동의 주류는 대면·접촉 운동 방식이었다. 온라인 시대에도 대면 선거 운동은 여전히 유효한 전략이었다. 후보자뿐 아니라 유세차, 선거 운동원을 동원한 길거리 선거 운동이 활발한 이유다. ‘콘택트(Contact) 선거’에서 가장 강력한 스킨십 수단은 악수였다. 후보자들은 동네 곳곳을 누비며 악수를 건네고, 명함을 돌렸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악수는 구시대의 선거 운동이 됐다. 악수는 코로나19의 전염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방역 당국이 명시적으로 자제를 요청했다.
‘마스크 유세’도 이번 총선의 특징이었다. 정치인은 얼굴을 알려야 한다. 신인 정치인은 더욱 그렇다. 또 정치는 말로, 선거 유세는 입으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속에서 입후보자들도 마스크를 써야 했다. 얼굴 절반을 가린 채 자신을 알리고, 연설할 수밖에 없었다. 자가 격리 시대를 맞아 가라앉은 사회 분위기 탓에 후보들은 확성기를 틀고 율동을 하는 떠들썩한 선거 운동도 자제했다.

코로나19 감염 공포 앞에서 방역 고려가 없는 대면 운동은 그 자체로 민폐가 되는 분위기였다. ‘언택트(Untact) 시대’의 선거라는 말까지 나왔다. 후보자들은 유권자와 접촉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 딜레마를 풀어야 했다.
반면 온라인 선거 운동은 만개했다. 특히 후보자 각자의 이름을 넣어 만든 ‘○○TV’ 등 유튜브 선거는 대세가 됐다. 동영상 플랫폼이 다양해지고 각종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이 늘어나면서 거의 모든 후보자는 온라인 선거 운동에 열중했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기존의 온라인 선거 운동도 이전 선거보다 훨씬 비중이 커졌다.
선거 운동뿐 아니라 투표도 코로나19 여파를 피할 수 없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이번 총선에서 본업인 선거 관리만큼이나 방역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선관위는 ‘안전한 투표’를 기조로 내세웠다. 체온 37.5도와 호흡기 증상을 기준으로 투표소와 임시 기표소로 가는 유권자를 나눴다. 모든 유권자는 마스크를 쓴 채 입장해 발열 검사를 받고 손 소독을 한 뒤 비닐장갑을 끼고 투표했다. 사전투표를 했던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투표했다. 이전 선거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풍경이었다.

코로나19 블랙홀, 더욱 지독해진 ‘우리와 그들’
형식이 달라지면 내용도 달라지는 것일까. 코로나는 선거 운동 형식뿐 아니라 의제도 바꿨다. ‘코로나19 블랙홀’이 모든 선거 이슈를 집어삼키면서 이번 총선은 도무지 새로운 담론을 찾기 어려운 선거였다. 젠더 문제나 환경 등 선진국형 의제뿐 아니라 경제, 부동산, 교육 등 전통적인 선거 이슈도 코로나19 ‘쓰나미’에 휩쓸려 사라졌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한국 정부는 다른 나라 정부보다 성공적인 방역 모델을 만들었다. 코로나19 초기엔 중국인 봉쇄 논란, 마스크 수급 등으로 비판 여론이 컸다. 하지만 이후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 정부가 코로나19에 속수무책 무너지면서 한국 정부가 견지해온 개방성·투명성·민주성의 방역 대응은 외신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여당은 코로나19 대응을 총선에 적극 활용했다. 코로나를 ‘국란’으로 규정하고 힘을 합쳐 극복하자는 프레임을 꺼내 들었다. 문재인 정부가 방역과 검사에서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였다. 많은 유권자가 결국 ‘국난 극복’과 ‘안정’을 내세운 여당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야당의 전통적 선거 프레임인 ‘정권 심판론’과 ‘중간평가론’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야당은 정부와 시민을 분리해 코로나19 방역이 성공한 것은 정부 역할이 아닌 높은 시민의식 의식 때문이었다고 반박했지만, 여당의 프레임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야당은 대안적 프레임을 제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여당의 코로나19 프레임을 수세적으로 반박해야 했고, 그럴수록 여당의 프레임은 더 강화됐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하면 할수록 코끼리는 더 생각나기 마련이다.
코로나19가 낳은 긴급재난지원금 논쟁은 ‘누가 더 많이 현금을 뿌리나’ 수준으로 전락했다. 당·정·청이 토론과 조율 끝에 ‘소득 하위 70% 가구 지원’이라는 절충안을 발표했지만, 여의도에선 다시 논쟁이 불붙었다. 생계지원에 소극적이던 야당은 정부 발표 뒤 돌연 “전 국민에 50만 원”이라는 안을 발표했고, 여당은 덩달아 “전 가구에 지급”으로 맞받았다. 자고 일어나면 “돈을 더 주겠다”는 뉴스가 이어졌다. 국가 재정에 대한 진지한 고민 대신 선거 유·불리에 따라 ‘묻고 더블로 간다’는 식이었다. 포퓰리즘 비판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새로운 의제가 없다 보니 결국 익숙한 전략은 ‘우리와 그들’의 대결, 진영 결집이었다. 거대 양당이 중도층과 소통하며 그들을 포괄하는 전략 대신에 기존 지지층을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선거 캠페인을 이끌었다. 거대 양당 체제로 재편되면서 소수정당은 몰락했다. 양당 구도에 맞춰 동서 지역 구도도 되살아났다. 중도층 유권자들은 마음을 줄 정당을 찾기 어려워 마지막까지 고심을 거듭해야 했다.
특히 여당과 제1야당의 비례 위성정당 싸움은 목불인견(目不忍見) 수준이었다. 소수정당의 원내 진입을 돕고, 다양한 가치가 반영되는 국회를 만들자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거대 양당의 지지층을 흡수하기 위한 급조 페이퍼 정당 경쟁으로 변질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취지를 정면 배반한 것이다. 모정당과 위성정당이 서로 의원을 꿔주고 받으며 ‘1+1 선거운동’을 하는 기괴한 일도 벌어졌다. 개표 결과 거대 양당이 비례대표 47석 중 36석을 가져가는 ‘독과점 구도’가 만들어졌다.
대통령 마케팅도 극렬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비례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 또 다른 범여권 비례 위성정당인 열린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 지키기’ 경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적자’, ‘서자’, ‘효자’, ‘DNA검사’ 등 전근대적 정치 수사가 오갔다. 아무리 여당과 위성정당이라지만 삼권분립에서 의회의 역할, 행정부와 입법부의 건강한 긴장 관계에 대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열린민주당에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지키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미래통합당은 기다렸다는 듯 “조국을 살릴 것이냐 경제를 살릴 것이냐”며 조국 프레임을 내밀었다. 지난해 온 나라를 두 동강 낸 ‘조국 사태’가 총선에서도 재연된 것이다.
군소 야당들은 한술 더 떴다. 우리공화당과 친박신당은 공보물에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까지 넣으면서 이미 탄핵당한 대통령 마케팅을 벌였다. 극렬 지지층을 자극, 3% 이상 득표해 원내에 진입하겠다는 얄팍한 선거 공학이었다. 선거 막판 막말 논란이 불거진 것은 ‘우리와 그들’의 싸움에서 어쩌면 필연과도 같은 것이었다.
온라인 선거운동은 이 같은 지지층 결집 경향을 더욱 강화했다. 유튜브나 SNS는 기존 지지층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플랫폼이다. 후보자 입장에서는 나를 지지해온 유권자에 소구하는 메시지를 내놓는 경향이 강해진다. 지지층이 아닌 보통의 유권자들과도 광범위하게 대면해야 하는 오프라인 선거운동과는 성격이 다르다.
유권자 입장에서도 내가 지지하는 후보의 SNS만 팔로우하고, 내가 동의하는 유튜브 채널만 구독하기 쉽다. 수용자 맞춤형 알고리즘은 이런 경향을 부추긴다. 기존 편향성을 강화하는 필터버블(filter bubble) 속에서 유권자는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과 소통할 기회보다는 나의 기존 생각을 강화하는 이들과 밀착했다. 공론장의 양극화 속에서 상대 후보 비방 등 온라인 선거운동 과열로 위법게시물이 폭증했다.
코로나 총선, 장미를 피워낼까
이번 제21대 총선은 역대 최악의 ‘삼류 선거’라는 비판이 많다. 꼼수 비례 위성정당 창당과 막말 논란 등 선거 과정 전반은 긍정적 평가를 할 만한 대목을 찾기 어렵다. 유권자가 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한 결과와는 별개로 영·호남 지역 구도의 부활, 제3정당의 몰락 등 돌아봐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선거는 끝났지만 정치는 계속되어야 한다. 최악의 선거가 곧바로 최악의 정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6·25전쟁으로 혼란스러웠던 1951년 당시 영국의 한 언론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고 했다. 하지만 쓰레기통에서도 장미꽃은 기어이 피어났다. 패스트트랙 충돌 등으로 역대 최악의 ‘동물국회’라는 오명을 쓴 지난 국회조차 민심에 따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질서 있게 통과시킨 역사가 있다.
제21대 국회는 코로나19가 규정한 선거전 속에서 탄생했다. 유례를 찾기 어려운 선거였지만, 민주주의의 꽃을 만개시킬 씨앗은 어딘가에 또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비닐장갑을 끼고 줄을 서서 참정권을 행사한 유권자들을 떠올려본다. 그 행렬 속에 민주주의를 성숙시킬 위대한 힘이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