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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7년 승객과 승무원 115명을 태우고 서울로 향하던 여객기 KAL858기가 미얀마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폭파됐다. 단 한 구의 시신도 발견하지 못한 채 33년이 지나도록 무수한 의혹에 뒤덮여 있는 사건. 대구MBC가 이 사건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KAL858기 추정 동체를 발견하고 진상 규명 촉구에 나섰다. 편집자 주

대구MBC 특별취재단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격으로, KAL858기 동체를 찾는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다. <출처 -
지난해 3월 일본군 위안부 특집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미얀마를 열흘 정도 방문했다. 대구의 문옥주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던 미얀마 현지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미얀마는 사실 우리 세대에게는 매우 특별한 나라다. 과거 버마로 불리던 동남아 국가로, KAL858기 실종 사건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KAL858기가 안다만 상공에서 사라진 1987년 11월 29일은 6월 민주항쟁으로 쟁취한 제13대 대통령 직접선거를 2주일 앞둔 때였다. 온 나라가 선거 열풍으로 떠들썩했고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학력고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이듬해인 1988년 대학생이 된 나는 캠퍼스 벤치에서 우연히 주운 대자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사건이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에 의한 자작극이라는 주장이 실렸기 때문이다. 그 이후부터 KAL858기 실종 사건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사건이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구MBC에 입사했지만 지역방송이라는 한계 때문에 취재할 기회를 찾지는 못했다. 그러나 언젠가 꼭 취재를 하겠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취재진은 미얀마에서 일본군 위안소와 관계자들을 취재하면서도 KAL858기와 관련된 내용을 묻고 다녔다. 그러던 중 현지 코디를 통해 KAL858기의 엔진을 인양한 어선의 선장이 있다는 의미 있는 정보를 얻었다. 우리는 귀국한 뒤 KAL858기 유족회 지원단 총괄팀장인 신성국 신부를 찾아갔다. 17년째 KAL858기 실종 사건의 진실 규명에 매달려 온 신 신부는 이미 선장을 만나 상세한 조사를 마친 상태였다. 그에 따르면 KAL858기의 엔진 사진을 선장에게 보여줬더니 같은 모양이라고 대답했고 또 다른 선장은 비슷한 지점에서 같은 모양의 엔진을 건졌다고 했다.
취재진은 취재부장과 보도국장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했다. KAL858기 동체를 찾고 싶다고 하자 처음에는 놀라는 눈치였다. 그러나 우리가 취재한 내용을 설명하니까 기꺼이 동의했다. 지역방송이 다루기에는 너무 큰 소재지만 정보만 확실하다면 엄청난 특종이라며 데스크들은 의욕까지 보였다.
우연한 기회로 시작한 취재, 수색으로 이어져
얼마 뒤 특별취재단이 꾸려졌고 우리는 미얀마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제보를 한 어선 선장을 만나기 위해 양곤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인 다웨이까지 날아갔다. 어선 선장은 다웨이 시내에서 차로 1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는 변두리에 살고 있었다. 30년 이상 어선 선장을 하고 있는 그는 안다만 해역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사람이었다. 선장의 말은 매우 구체적이었고 KAL858기 엔진을 건졌다는 곳의 정확한 좌표 위치까지 갖고 있었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좌표는 천분의 일초까지 나온 것으로 오차범위가 5m 이내다. 좌표만 정확하다면 KAL858기를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격이지만 선장의 말이 맞으면 한 번 도전해 볼 만하지 않을까? 문제는 선장의 말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였다. 엄청난 예산과 시간이 들어가는 취재인 만큼 섣불리 결론 낼 수는 없었다. 취재진은 한 달 이상 간격을 두고 두 차례나 더 미얀마를 방문해 선장의 제보가 잘못된 정보일 가능성은 없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KAL858기 동체를 찾는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다.
특별취재단은 의욕은 앞섰지만 처음부터 어려움에 부딪혔다. 여러 차례 미얀마를 드나들며 현지 수색에 사용할 배를 구하느라 애를 먹었다. 미얀마 정부에 정식으로 KAL858기 수색을 위한 취재 허가를 낼 엄두도 못 냈다. 북한에 의한 테러 사건으로 결론이 났고 국제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어서 미얀마 정부가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족들의 끊임없는 요청에 문재인 정부도 수색을 고려했지만 새로운 증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취재진은 미얀마 현지의 인적 네트워크를 이용해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겨우 배를 구했다. 수색에 나설 배를 찾는 데만 몇 달이 걸린 것이다.
첫 수색일은 KAL858기가 실종된 11월 29일 바로 다음 날로 잡았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앞을 가로막았다. 취재진은 수중촬영에 사용할 수중드론을 구입했지만 가장 중요한 음파탐지기(SONA, Sound Navigation And Ranging)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KAL858기 동체를 찾는 데는 음파탐지기가 필수품이어서 자칫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빠졌다. 수색이 2주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웃지 못 할 사정이 있었다. 취재진은 처음에는 KAL858기를 건졌다는 선장의 어선을 빌려 저인망 그물로 바다 바닥을 훑으면서 동체를 찾아볼 계획이었다. 하지만 선주가 반대하는 바람에 어선을 빌리는 데 실패했다. 어쩔 수 없이 겨우 운반선을 빌렸는데 문제는 해저에 있는 물체를 찾는 음파탐지기가 없었던 것이다. 수색일은 점점 다가왔고 우리는 입술이 바짝 타들어갔다.
취재진이 음파탐지기를 구하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 딱했던지 김성전 씨가 <다이빙 벨>의 주인공인 해난구조 전문가 이종인 씨를 소개해줬다. 김성전 씨는 공군 중령 출신의 전 민항기 조종사로 2004년부터 KAL858기 실종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김성전 씨는 이종인 씨와 천안함 사건의 진실 규명을 위해 함께 고생해 온 사이였다. 김성전 씨의 제안에 우리는 가뭄에 단비를 만난 것 같았다. 취재진은 이종인 씨에게 KAL858기 수색 계획을 말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이종인 씨는 두말도 하지 않고 수색을 도와주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국내 최고의 해난구조 전문가가 대구MBC 특별취재단에 합류하게 되었다. 우리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다.

취재진은 해난구조 전문가 이종인 씨에게 KAL858기 수색 계획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출처 -
언론사 최초로 KAL858기 수색에 나서
2019년 11월 27일 대구MBC 특별취재단은 드디어 KAL858기 수색을 위해 미얀마로 향했다. 다웨이에 있는 호텔에 도착해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취재단은 수색에 필요한 장비를 준비했다. 수중카메라와 이어진 전선과 밧줄을 묶는 작업이 밤새도록 이어졌다. 다음날인 2019년 11월 30일 새벽 5시, 취재단은 항구로 향했다. 2~3시간밖에 자지 못해 다들 피곤했지만 역사적인 일에 참여한다는 생각에 설렘과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2006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진실 위원회) KAL858기 실종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수색에 나선 지 13년 만이고 언론사로서는 처음이었다.
특별취재단을 태운 배가 6시간 정도 항해해 목표 지점에 다가가자 음파탐지기에 길이 10m가 넘는 금속성 물체들이 잡혔다. 직경 200m 안 해저에 수많은 금속성 잔해들이 있었다. 어선 선장이 준 좌표 위치에 가까이 갈수록 금속성 잔해들이 해저에 흩어져 있는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취재진은 수중드론으로 촬영에 나섰지만 시속 6노트가 넘는 조류 때문에 해저까지 내려갈 수는 없었다. 다음날 이종인 수색단장이 기지를 발휘해 무거운 쇠 도르래를 수중드론에 매달아 촬영을 시도했다. 다행히 54m 해저에 도착한 수중드론이 몇십 분간 촬영했지만 특이한 것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1차 수색은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버렸다.
특별취재단은 우리나라에 돌아온 뒤 수중드론이 촬영한 영상을 꼼꼼히 확인했다. 그 결과 아주 의미 있는 그림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록 3초밖에 안 되는 짧은 영상이지만 그물로 둘러싸인 큰 물체가 촬영된 것이다. 취재진은 이 물체가 KAL858기 동체임을 알았고 수중드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특수 수중카메라를 준비했다.

KAL858기 폭발의 범인 김현희는 제13대 대통령 선거 전날 서울에 입국해 대통령 선거에 최대 변수로 작용하기도 했다. <출처 -
5전6기만에 촬영 성공
2019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특별취재단은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보며 다웨이공항에 내렸다. 2020년 새해 첫날, 우리는 2차 수색을 위해 다시 배에 몸을 실었다. 이번에는 목표지점에서 음파측정기를 이용해 10m 이상 되는 물체 4개를 확인했다. 그중에서 길이 30m에 높이가 10m 정도 되는 추정 동체도 있었다. 취재진은 특수 수중카메라를 물속에 넣어 직접 촬영에 나섰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수중카메라가 해저에 닿으면서 진흙이 묻는 바람에 렌즈가 가려져 촬영이 불가능했다. 이종인 수색단장이 궁리 끝에 높이 1m 20cm 정도의 틀을 만들어 수중카메라를 위쪽에 수평으로 매달았다. 틀 다리도 장애물에 걸리지 않게 썰매날 모양으로 만들었다.
덕분에 수심 약 50m 해저에서 KAL858기 동체로 추정되는 잔해들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성벽처럼 우뚝 솟은 큰 물체와 엔진 모양의 둥근 물체를 비롯해 수많은 잔해들을 찍을 수 있었다. 어선 선장의 말 그대로였다. 하지만 이 잔해들이 KAL858기의 것인지 식별할 수는 없었다. KAL858기인지 알기 위해서는 잠수사가 직접 들어가 확인하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곳곳에 그물이 흩어져 있어, 잠수사가 내려가면 그물에 걸려 사망사고로 이어질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수색 마지막 날에는 수중카메라 틀이 장애물에 걸려 꼼짝도 못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카메라를 회수하지 못하면 2차 수색은 실패로 돌아가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이종인 수색단장은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우리를 인솔했던 잠수사를 바다에 투입한 것이다. 틀이 그물에 걸린 지점은 수심 30m 정도니까 잠수사가 수중카메라 틀과 연결된 줄을 타고 내려가 장애물과 얽힌 그물의 밧줄을 끊고 올라오면 된다. 그렇지만 만의 하나 잠수사가 그물에 걸리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이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긴장감에 가슴이 죄어왔다. 5분이나 지났을까? 수중카메라가 찍은 화면에 잠수사의 모습이 나타났고 그는 계획대로 틀과 엮인 그물의 밧줄을 끊고 유유히 수면으로 올라왔다. 모두들 환호했다. 하지만 수중카메라를 회수하느라 하루를 다 보내고 말았다. 33년을 기다려왔던 유족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취재진은 수색을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고 하루만 더 해보기로 했다.
2차 수색 넷째 날인 2020년 1월 4일, 특별취재단은 비장한 마음으로 다시 안다만 해역으로 나섰다. 다행히 이날은 파도가 잠잠하고 자연광도 매우 좋아서 수색을 시작한 이래 수중촬영하기 가장 좋은 날이었다. 마침 하늘 위로 여객기 한 대가 유유히 지나갔다. 33년 전 KAL858기가 지나갔던 그 항로다. 배가 목표 지점에 도착하자 바로 수중카메라를 바다에 내렸다. 바닷속은 잠잠했지만 역시 촬영은 쉽지 않았다. 수중카메라가 KAL858기 추정 동체를 둘러싼 그물에 계속 걸렸다. 취재단은 점점 초조해졌다. 시간은 자꾸 흘렀고 철수 시간은 1시간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허탈했다. 모두 절망에 빠진 그 순간 하늘은 우리에게 미소를 지었다. 수중카메라가 KAL858기 추정 동체의 엔진과 날개를 포착한 것이다. 누가 봐도 비행기의 엔진과 날개가 분명해 보였다. 동체의 잔해들이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나타났다. 이종인 수색단장은 대형 여객기라고 단정했다. 이 지역에 지금까지 KAL858기 이외에는 추락한 게 없으니까 KAL858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촬영 동체는 KAL858기가 거의 확실
대구MBC 특별취재단은 항공 전문가 여섯 명을 상대로 촬영한 영상이 KAL858기가 맞는지 확인했다. 다섯 명은 KAL858기라고 말했고 한 명은 대형 여객기라고 대답했다. 특히 날개와 엔진을 연결하는 장착대인 파일론의 모양이 KAL858기의 기종인 보잉707과 같다고 했다. 추정 엔진은 카메라와 8~10m 정도 거리에서 촬영됐는데 취재진은 이 엔진의 크기를 측정해 봤다. 추정 엔진의 지름과 실제 KAL858기 엔진의 지름이 같다면 858기일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KAL858기 엔진의 지름은 약 1m이다. 취재진은 지름이 1m인 원형 고리를 만든 뒤 같은 수중카메라로 8m 떨어져 원형 고리를 촬영했다. 그 결과 추정 엔진과 KAL858기의 엔진이 같은 크기로 확인됐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사고 자료도 일일이 확인했다. 대구MBC가 촬영한 지점에 추락한 항공기는 KAL858기 이외에는 없었다.
대구MBC는 2020년 1월 23일 서울 <뉴스데스크> 시간에 톱뉴스로 40분 동안 KAL858기 추정 동체 촬영 소식을 전했다. 이튿날도 톱뉴스로 전국 방송으로 20분 정도 보도했다. 33년 만에 나타난 KAL858기 추정 동체의 모습에 국민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KAL858기 실종 사건에 대한 관심도 폭발적으로 커졌다. 거의 모든 매체들이 관련 소식을 보도했다. 유족들도 예상하지 못한 반가운 소식에 모두들 눈물을 글썽였고 이제 가족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유족들은 취재진의 손을 몇 번씩 꼭 잡고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33년 동안 국가는 직무를 잊었고 언론은 유족들을 외면해 왔다. 그런데 유족들이 왜 이런 말을 해야만 하는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대구MBC 특별취재단은 지난 3월 초 다시 미얀마 안다만 해역을 찾았다. 더 확실한 증거를 찾기 위해서 3차 수색에 나선 것이다. 이번에는 KAL858기의 또 다른 엔진 촬영에 성공했다. 2차 수색 때 촬영된 엔진은 날개와 연결된 것이지만 이번 것은 밑 부분이 크게 깨진 채 홀로 떨어진 다른 엔진이었다. 지난번 수색에서 촬영된 엔진과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찍혔다. 취재단은 객실과 화물칸이 있는 주 동체도 촬영했다. 비행기의 외피가 압력에 휘어지는 것을 막는 스트링거, 화물칸과 객실을 나누는 보와 지지대, 세로대와 같은 것을 확인했다. 전문가들은 추가로 촬영한 영상을 보고는 KAL858기가 확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금도 진실을 숨기는 세력이 있다
취재진은 대한항공 측에 공문을 보내 KAL858기 추정 엔진의 영상을 확인해 줄 것을 요청했다. 유족 대표들과 함께 대한항공 사옥까지 찾아갔지만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 김호순 KAL858기 유족회장은 “언론이 대한항공 비행기를 찾아 줬는데 감사해야 할 일이지 왜 이런 식으로 협조하지 않느냐”고 강하게 항의했다. 마이동풍이었다. 대한항공은 자기들도 피해자라면서 확인해 줄 이유가 없다며 유족들의 염원을 외면했다. 대한항공은 왜 이런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KAL858기 실종 사건에 대한 진실은 3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출처 -
대구MBC 특별취재단은 KAL858기 동체 수색 외에도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취재도 병행했다. KAL858기 실종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참여정부 당시 출범했던 국정원 발전위원회의 민간조사관들을 접촉해 새로운 사실을 확인했다. 이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직접 썼다는 조사관은 취재진에게 놀라운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는 실종사건 당시 미국 CIA와 안기부가 김현희 일행의 행적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말한 것이다. 이는 국정원 발전위원회가 보고서에서 안기부가 사전에 김현희 행적을 몰랐다고 기록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다. 이 민간조사관은 외국 정보기관으로부터 받은 정보를 언급하면 나중에 국정원이 정보 협조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보고서에는 담을 수 없었다고 변명했다. 그렇다면 이런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노태우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안기부가 이 사건을 선거에 적극 활용한 무지개 공작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안기부가 폭파범의 행적을 사전에 알고 있었으면서도 폭파를 막지 못했다는 얘기이다. 이로 미뤄볼 때 전두환 정권은 최소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했고 이런 자신들의 잘못도 숨긴 것이다.

특별취재단은 항공 전문가 여섯 명을 상대로 촬영 영상 속 비행기 동체가 KAL858기가 맞는지 확 인 했다. 그중 다섯 명이 KAL858기라고 대답했다. <출처 -
취재진은 사건 발생 바로 전날 아부다비의 한 식당에서 주아랍에미리트 한국대사관의 고위공무원 A 씨가 KAL858기 부기장을 만나서 긴급 시 신호 방법 등을 물은 사실도 확인했다. 유족이 이런 사실을 수상히 여겨 A 씨에게 전화를 걸어 그 이유를 묻자 그는 뜻밖에도 협박을 했다. 유족에게 ‘자식들을 생각하면 조용히 사는 게 좋을 것이며 언론에 절대로 알리지 말라’고 말한 것이다. 취재 결과 A 씨는 김현희의 존재를 최초로 확인했고 검거에도 결정적인 공을 세운 인물로 밝혀졌다. 나중에 외교부의 최고 직위인 대사까지 오르기도 했다. 3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숨겨야만 하는 진실이 무엇이기에 이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한 것일까?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KAL858기 실종 사건은 20세기 한국 역사의 최대 미스터리이자 항공사고 역사상 가장 큰 수수께끼로 기록되고 있다. 33년이 지났지만 단 한구의 시신도 돌아오지 않았고 사고 원인은 아직도 의혹투성이다. 115명의 희생자는 아직 안다만 해역에 수장돼 있고 진실은 바다에 묻혀있다. 대한민국은 이들을 철저히 외면해 왔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너무도 간단하다. KAL858기 추정 동체를 건져 올리기만 하면 된다. 비행기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동체를 인양하면 거짓은 금방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철저한 재조사를 통해 한 점 의혹도 없이 진실을 밝혀야 한다. 정부는 늦었지만 이제라도 유족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역사에 기록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