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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을 세상에 처음 알린 것은 기성 언론이 아닌 두 명의 대학생이었다. n번방의 실체를 고발하고, 사건의 실마리를 푸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추적단 불꽃’. 국민일보 특별취재팀이 그들과 함께한
시작은 지난해 6월 말, ‘추적단 불꽃(이하 불꽃)’에게 걸려 온 전화 한 통이었다. “이걸 알리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불꽃이 마주한 세계를 수화기 너머로 전해 듣는데 도무지 실감이 안 났다. ‘갓갓’은 뭐고, 텔레그램은 또 뭔가. 눈으로 보고 나서야 어렴풋하게 실체를 알았다. 익명에 기댄 그들만의 세계에서 여성은 ‘노예’였고 성착취는 ‘놀이’였다. 불꽃의 고민이 이해가 됐다.
가장 큰 걱정은 피해자의 안위였다. 대부분 미성년자였는데, 이미 신상정보가 텔레그램에서 공공연하게 떠도는 상황이었다. 사건이 알려지면 부적절한 호기심으로 더 큰 범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 잠도 설쳤다고 했다. 그래서 더 알려야 한다고 단호히 답했다. 피해자가 있으니 고발해야 한다고, 성범죄의 특수성을 고려해 차분히 접근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다음 고민은 경찰이었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 당연히 수사가 진행 중일 거라고 불꽃은 추정했다. 만약 경찰이 그들의 텔레그램 방에 잠복해 있는 상황이라면 보도가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질문은 명확한 답을 알았는데 두 번째 질문에서 말문이 막혔다. 경찰과 취재를 함께할 수 있을까.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기사 작성보다 피해자 구제와 범죄의 사슬을 끊기 위한 실체 파악이 중요했다. 알아보니 접수된 신고는 없었다. 불꽃은 전화를 끊고 곧장 인근 경찰서로 향했고 정식으로 신고했다.
불꽃과의 협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2018년 불꽃과 두 달간 함께 일해 본 경험이 있어 기자 준비생인 그들을 격려하며 인연을 이어가던 터였다. 관심사가 같아 친해졌다. 약자로 치부되는 여성이 놓인 기형적 사회와 그 미래. 그들이 기자가 되고 싶은 이유도, 국민일보 특별취재팀이 기자가 된 목적도 이런 부조리함을 뜯어내고 싶어서라는 걸 서로 잘 알았다. 그래서 불꽃은 사건을 접하고 가장 먼저 국민일보를 떠올렸다.
‘기자’가 아니어서 가능했던 일들
불꽃이 “기자가 아니라 한계가 있다”고 한탄할 때마다 우리는 “그래서 오히려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답했다. 회사의 논조나 지시에 따라 취재 방식 또는 기사 방향을 수정하지 않아도 됐고 여러 지침에 맞게 톤을 낮출 필요도, 틀을 굳이 따를 필요도 없었다. 무엇보다 시간적 제약이 없으니 마감에 시달릴 필요도 없었고 공간적 제약이 없으니 피해자를 만나러 전국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언론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데도 자유로웠다.
불꽃의 방향을 퇴색하지 않기 위해 속도를 맞추기로 했다. 보고를 받은 국민일보 데스크는 상황을 함께 지켜보면서도 불꽃의 의도와 분노를 우선에 뒀다. 성인지 감수성을 지니고 접근해야 하는 ‘n번방 사건’의 특성상 보다 민감한 취재팀의 판단을, 그보다 더 정확한 불꽃의 선택을 존중했다. 불꽃이 수집한 자료와 수사 상황, 피해자와의 접촉 과정 등을 전달받고 또 함께 취재 방향을 논의할 때도 쫓기지 않았기에 데이터는 풍부해졌다. 하지만 이게 기사가 될지, 우리의 방향이 맞을지 내심 불안했다. 그때마다 평소 취재팀의 문제의식을 잘 알았던 데스크는 “그 예민함을 믿는다”고 했다. 지난 몇 년간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한 대대적인 변화의 동력은 불편함을 수반한 예민함이었다.
보도는 불꽃이 먼저였다. 지난해 9월 그간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미성년자 음란물 파나요?”…‘텔레그램’ 불법 활개>란 기사를 뉴스통신진흥회 제1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전을 통해 보도해 최고상을 받았다. 불꽃 덕에 수사가 시작됐고 가해자도 여러 명 검거했지만 공론화는 더뎠다. 그래서인지 불꽃은 공모전에서 1등을 하고도 줄곧 무력했다.
왜 불꽃을 앞세웠나
낙담하지 않았다. 디지털 성착취 문화가 음지에서 단단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불꽃을 더 부지런하게 만들었다. 기성 언론이었다면 못 했을 일이다. 안 그래도 사건이 쏟아지는데 보도가 되고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기삿감에 매달릴 여력이 없다. 국민일보는 계속 불꽃의 속도에 맞추기로 했다. 경찰 수사와 함께 피해자 구제가 진행되고 있었던 상황이기에 기사를 무리하게 내보내지 않아도 됐다.
취재의 키는 여전히 데스크가 아닌 취재팀에게 있었다. 가장 큰 고민을 했던 부분은 보도 시기다. 데스크는 수시로 상황을 점검하면서도 빠듯한 일정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 안에서 상황을 직접 보고 있는 기자의 판단이 우선이었다. 취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됐던 지난해 말에서 올해 초 본격적으로 보도 시기 논의를 시작했다. 불꽃의 공모전 보도와 국민일보의
여러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두고 상황을 주시했다. 지난 2월 경찰이 텔레그램 성착취 가해자 66명을 검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이마저도 대중의 관심에서는 멀었다. 더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지난 3월 9일(지면 3월 10일)부터 국민일보는
수평적 논의 방식 고민해야
기사 작성에 돌입했던 올해 1월쯤, 언제 보도하든 시리즈의 첫 기사를 신문 1면에 실어주겠다는 방침이 나왔다. 발제한 기사는 총 네 편이었는데 모두 신문 한 면 분량으로 배면하기로 했다. 보도 시기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얼마나 기자의 판단을 존중했는지, 이번 사건을 얼마나 중대하게 여기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보도가 다가오자 기사 방향을 전적으로 기자에게 맡기고 책임만 넘겨받은 데스크의 고민이 시작됐다. 출처 표기였다. 논의는 데스크와 취재팀, 불꽃이 함께했다. 기자와 대학생 활동가가 함께 취재를 이어간 전례 없는 기사였고, ‘맨땅에 헤딩’하며 지금껏 사건을 끌고 온 불꽃을 제대로 밝히는 것은 당연했다. 여러 방식이 제안됐다. 본문에 언급해주면 어떨까, 불꽃의 인터뷰를 별도의 기사로 송고하면 어떨까. 모두의 동의를 얻은 것은 ‘공동 바이라인1)’이었다. 취재의 공을 취재팀과 불꽃이 나눠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고 그때까지만 해도 대학생 두 명이 공모전에 제출하기 위한 팀명으로 사용했던 불꽃이라는 이름에 ‘추적단’이라는 설명을 붙였다. 불꽃은 바이라인에 포함될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며 고마워했다. 국민일보 기자들도 ‘특별취재팀’이라는 익명 바이라인을 택했다. 범인 검거와 피해자 구제가 다 이뤄질 때까지, 나아가 성착취 행태가 근절될 때까지 곳곳에 잠복해 계속 취재를 이어가기 위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신변보호를 위한 목적도 있었다.
서술 시점(視點)을 결정할 때도 머리를 맞댔다. 기존 편집회의에서는 낯선 논제이지만, 사건의 공론화를 위해서는 기존 보도 방식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특별 취재팀이 불꽃에게 1인칭 서술방식을 제안하자 다들 “그게 가능하겠냐”고 물었다. 흔하지 않지만 못할 것도 없었다. 이번에는 데스크가 의도를 물었다. 지금까지 성범죄 보도는 사실상 가해자의 시점에서 상황을 관전하는 형식으로 기술됐다. 따라서 피해 사실을 최대한 축소하는 것이 중론으로 여겨졌다. 이번 사건은 매우 이례적인 형태였고 이미 기사화가 된 상황에서도 범행은 계속됐다. 그곳에서 어떤 가해가 벌어졌는지 극히 일부라도 전달해야 사건의 실체가 선명해질 거라고 판단했다. 그러려면 누구의 시점에서 상황을 바라보도록 기사가 이끌고 있는지가 서술의 핵심이었고 1인칭 추적기 형식이어야만 기사를 읽는 독자들이 가해자 시점에서 피해 상황을 바라볼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었다. 데스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익숙하지 않은 작법이지만 오히려 이질감을 줄여줄 수 있겠다고, 친절한 보도가 될 수 있겠다고 했다.
모두의 동의를 얻어
조력자, 그 이상이었던 ‘불꽃’
국민일보 보도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여성들의 분노에서 시작한 공론화 움직임은 범국민적 공분으로 이어졌고, 이는 유의미한 정책적 변화로 이어졌다. 그 중심에는 사건에서 내내 손을 떼지 않았던 대학생 두 명이 있다. 국민일보는 얼마 전 불꽃을 편집국으로 초청해 방담을 진행했다. 사건을 겪으며 느낀 감정을 토대로 앞으로 언론이 이런 사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묻고 답을 듣는 자리였다. 수십 년간 취재 현장에 있었던 데스크는 까마득한 기자 준비생 두 명의 눈을 바라보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이후 국민일보는 그들에게 트라우마 심리치료를 제공하면서 보호하기로 결정했다.
만약 보고를 받은 데스크의 일방적 지시에 따라 취재팀이 움직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기자의 판단과는 다르게 당장 기사를 내보내자고 했거나 혹은 첫 보도를 놓쳤다며 취재를 중단시켰다면 어땠을까. 불꽃의 존재를 가볍게 여겼거나 취재에서 배제했다면 어땠을까. <n번방 추적기>는 기성 언론 특유의 권위의식을 내려놨기 때문에 탄생할 수 있었다. 저연차 기자의 불편함에서 시작된 <n번방 추적기>는 데스크의 인내와 존중으로 완성됐다. 기자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 지금의 뉴스룸을 이끄는 선배들이 수평적 의사결정 방식을 깊게 고민해보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