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KBS 다큐인사이트 제작팀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만삭의 위안부’ 박영심 할머니의 영상을 단독으로 발굴했다. 그간 누구나 볼 수 있었지만 아무도 확인하지 못했던 사실, 오랜 침묵에서 벗어나 이제야 진실을 알릴 수 있게 된 귀한 영상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중국 장쑤(江蘇)성 난징(南京)에 있는 ‘리지샹 위안소 옛터 진열관’ 밖에 세워진 ‘만삭의 위안부 동상’ ⓒ연합뉴스
“위안부 영상 특종 발굴?” 아니다!
클릭 몇 번만 하면 누구나 쉽게, 아주 짧은 시간에 찾을 수 있다.
먼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1)(NARA,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에 접속한다. 검색창에 ‘ADC 10455’를 입력하면 ‘PUSH SOUTH’라는 동영상 파일이 제일 상단에 보인다. 클릭하면 바로 동영상이 재생된다. 누구나 다운로드 가능하다. 총 12분 21초 분량. 중국 남부에서 철도 건설, 전투, 휴식 등을 취하는 연합군의 모습, 그리고 9분 53초부터 위안부를 구출하는 장면이 나온다. 참 쉬운 작업이다. ‘Shot List’에서 영상 설명도 볼 수 있다.
Summary: Seq: Wounded Australian soldiers on litters await evacuation at Onbaung
... Seq: Chinese troops and supplies at Kunming are loaded into C-47s, planes take off.
그런데 ‘위안부’에 대한 내용은 전혀 찾을 수 없다.
이번엔 검색창에 ‘ADC 9706’를 입력해 보자. ‘WORLD WAR Ⅱ IN CHINA’라고 이름 붙여진 파일을 클릭하면, 동영상이 재생되고, 이 역시 다운로드 가능하다. 이 영상 중 8분 24초부터가 ‘2017년 서울대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발굴한 18초 분량’의 영상이다. 영상 설명은 다음과 같다.
Summary: Sequence: Chinese refugees loading belongings and household goods on RR freight trains... MS, Chinese girls.
여기에는 ‘Chinese girls’라는, 위안부와 관련됐다고 유추할 수 있는 단어가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NARA 검색창에 ‘Chinese girls’를 입력해 보자. 약 29개의 동영상 파일을 확인할 수 있고, 그중에 ADC 9706 - WORLD WAR Ⅱ IN CHINA 파일이 있다. 그러나 ADC 10455(‘만삭의 위안부’ 영상)은 검색되지 않는다.
즉, ADC 10455는 누구나 볼 수 있고, 다운받을 수 있도록 공개돼 있지만 위안부 영상이라는 설명이 달려있지 않아, 수천, 수만 개의 영상을 일일이 보고 그 내용을 확인하지 않는 이상 위안부 영상임을 알 수는 없는 셈이다.
새로운 영상을 찾아보자!
올해 한국전쟁 70년 관련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새로운 영상 자료를 찾는 작업을 같이 준비했다. 우선은 KBS와 한국 내 여러 기관이 가진 영상 자료를 확인했고, 이후 독일, 프랑스, 미국 등의 영상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먼저 KBS와 국내 기관에서 보관 중인 영상 자료를 모두 모았다. 1990년, KBS의 ‘6·25 40주년 특별제작반’(CP: 강대영 PD)은 13개국 30여 개의 방송국과 라이브러리 그리고 개인 소장 영상 자료를 수집했다. 총 분량은 약 450시간. 특히 미국 NARA에서 수집한 주요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 ADC(Army Depositary Copy): 1944년 5월~1951년 11월의 세계와 한국 상황(96시간)
△ LC(Library Copy): 1951년 11월~1954년 10월의 한국 상황(88시간)
△ MID(Military Intelligence Department):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노획한 필름(11시간)
이외 국가기록원, 한림대아시아문화연구소, 영상 자료원 등에도 비슷한 내용의 영상자료들이 들어와 있었다.
NARA에 워낙 방대한 자료가 있음을 알게 됐기에 좀 더 많은 자료를 얻을 필요를 느꼈다. 2019년 말경, NARA 현지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기록연구사(Archivist)와 사전 협의를 한 후, 인터넷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을 찾아 리스트업 했고, 이 자료에 기초해서, 2020년 3월 영상리서처가 직접 NARA를 방문했다. 처음에는 일단 전반적인 상황 파악을 한 후, 5월경 제작진 촬영 취재 시 다시 한번 확인해서 수집하는 일정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3월 초, 당시 미국은 아직 코로나19 초기 단계여서 입출국에 대한 제한이 없고, NARA 입출입도 자유로운 상황이었다. 영상리서처는 영상을 일일이 확인하고, 그중에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선별해 복사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일단 영상의 양이 너무 많았고, 또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5월에 확인 작업을 위한 출장이 어려울 것 같은 예상이 들었다. 그래서 일일이 영상 확인하는 작업을 멈추고, 출장 일정을 며칠 연장해, 한국 관련 자료를 최대한 많이 확보한 후, 귀국해 내용을 확인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한국에 돌아와서 확인해 보니, 파일 수만 약 9,000개, 개당 10분씩으로만 계산해도 9만 분, 약 1,500시간 분량이었다.
‘정말 무식한’ 방법으로 영상 확인하기
3월 중순부터는 일일이 영상을 확인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꼼꼼히 보다가,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 두 배, 네 배 빠르게 보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까지도 영상리서처와 영상을 나눠서 확인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오래된 필름 자료를 하루 종일, 좁은 편집실에서 며칠씩 보다 보면, 눈도 아프고, 약간 토할 것 같은 느낌도 나고, 솔직히 “지금 내가 뭐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중간중간 새로운 영상을 발견하는 소소한 즐거움으로 그 작업을 계속하고 있던 중, 5월 초 영상리서처가 갑자기 “위안부 영상인 것 같다”고 했다. 구출된 위안부가 “만세”라고 하는 걸로 보아, 조선인 위안부 영상이 맞는 것 같다고 판단했다. ‘8·15 광복 기획 등 별도 프로그램에서 사용할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고, 다른 영상 확인 작업을 계속해 갔다.
그런데 5월 중순, 위안부 문제가 많은 사회적 관심을 받게 되는 상황이 됐고, ‘위안부 영상’을 다시 한번 꼼꼼히 확인했다. 그 결과 이 영상이 2017년 서울대 연구팀이 찾은 영상의 앞 상황이고, 특히 만세를 부르는 분이, 사진에만 존재했던 박영심 할머니의 모습으로 추정돼 그 내용을 보도국에 전달했고, 5월 28일 뉴스로 다뤄졌다. 뉴스에 나간 후에 “영상이 역사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움직이는 영상 속에서 무서움, 두려움 같은 것을 읽어낼 수 있 다는 점에서 할머니들의 고통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등의 전문가들의 반응이 있었다. 일반 시청자들로부터는 KBS가 수신료 받는 공영방송의 역할에 충실했다는 반응이 있었다.
구출 당시의 박영심 할머니 <출처 - 필자 제공>
‘위안부 영상’ KBS 홈페이지 공개
수집한 ADC 10455번 영상이 조선인 위안부 영상임을 확인한 후, NARA 홈페이지에서 검색해 봤다. 누구든지 볼 수 있게 공개돼 있었다. ‘허~헛’ 하는 헛웃음이 나오는 상황, 누구나 찾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상황이었구나! 다만 못 찾을 뿐이었구나! 라는….
이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KBS가 보유한 영상을 시청자에게 공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1945~1955년 KBS가 보유한 대량의 영상 아카이브를 시청자들이 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공개해, 관련 학자와 전문가들이 연구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더불어 관심 있는 일반 시청자들이 영상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생생한 모습을 가감없이 느낄 수 있도록 함으로써, KBS의 공익성 및 공영성에 충실하자는 것이었다.
이번 위안부 영상도 KBS 홈페이지2)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영상은 NARA 홈페이지에서도 다운로드 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중요한 것은 영상의 세부적인 목록과 내용이다. 그래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ADC 내용 목록집을 같이 내려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번 위안부 영상과 ADC 목록집 공개를 시작으로, 더 많은 KBS 영상 아카이브가 시청자에게 공개되는 시스템이 갖춰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