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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가끔 ‘다르다(different)’는 말과 ‘틀리다(wrong)’는 단어를 혼동한다. 오늘 먹은 냉면이 좋았다면 “이 냉면은 기존 냉면과는 틀려”가 아니라 “기존 냉면과는 달라”라고 해야 한다. 세상에는 각기 다른 마음과 육체를 부여받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게는 모두 각자의 의미가 있다. 어느 누구도 틀리지 않았다. 다음 글은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들의 다름’을 공유하며 역설적으로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증명해 내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썸머1), 곧 프라이드의 달인 6월인데 ‘퀴퍼(퀴어 퍼레이드)’ 없는 6월이 말이 되나요? 온라인 퀴퍼라도 열렸으면 좋겠다.”
“오, 나이키 에어맥스 줄 서기처럼요?”
“네,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우리가 하면 되지. 헵찌(필자)가 리드해볼래요?”
13일 만에 8만 6,225명이 참여한 온라인 퀴어 퍼레이드(이하 온라인 퀴퍼) ‘우리는 없던 길도 만들지’는 동료이자 닷페이스 대표인 썸머와의 대화에서 시작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상상을 실현으로 옮겨준 썸머의 힘이 놀랍지만, 그때는 걱정이 앞섰다. ‘내가 별생각 없이 던진 말이 일이 됐구나’, ‘지금 하고 있는 캠페인만으로도 바쁜데.’ 그런 걱정을 눌러 줬던 것은 다름 아닌 이태원 코로나19 사태였다. 5월 초였던 당시 이태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일부 언론에서는 퀴어 혐오적인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나처럼 상처를 받았을 퀴어 친구들에 대한 걱정이 컸다. 이럴 때일수록 퀴어들에게 서로 힘을 주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진행에 속도를 붙이기로 했다. 6월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퀴어들이 힘을 얻기 위해서는 온라인 퀴퍼에 길게 늘어진 행렬을 통해 ‘당신의 곁에 당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그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처음 떠올린 나이키 에어맥스 줄서기처 럼2)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를 달아 행진 이미지를 올리는 방식이 제격이었다. 사진을 올리는 개인 피 드에서는 각자의 신념과 정체성을 표현하는 경험을, 같은 해시태그가 모이는 피드에서는 다 같이 모여 서로에게 용기를 주는 경험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방식을 쓰려면 인스타그램에 올릴 이미지가 필요했다. 다양한 퀴어 및 지지자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참여자가 직접 커스텀 캐릭터를 만들 수 있는 웹사이트를 개설하기로 했다. 우리가 상상한 긴 행렬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참여자가 많아야 했다. 그러려면 참여 장벽이 낮아야 했다. 행진에 참여하는 만큼 캐릭터를 만드는 경험에서도 재미를 준다면 장벽을 낮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용자 경험(UX, User eXperience) 초기 기획을 담당한 동료 혬이 ‘겟 레디 위드 미(Get Ready With Me)’ 콘셉트를 제안했다. ‘오늘은 퀴퍼 가는 날. 우리 같이 준비해요!’라는 말을 시작으로 매 단계에 대한 리액션(Reaction)을 넣고 참여자가 처음 입력한 닉네임을 계속 부르며 참여자들과 친밀감을 형성하려고 했다.
최종 캐릭터 디자인이 나오기까지
매력적인 콘셉트가 준비됐으니, 그에 맞는 디자인이 필요했다. 나는 구체적 의도를 먼저 세우기보다 일단 디자인을 해보면서 의도를 완성하는 습관이 있다. 컴퓨터를 켜고 일러스트레이터를 실행했다. 최소한의 세 가지 기준을 두고 디자인을 시작했다. 참여자들에게 배제되지 않는 경험을 줄 것, 시각적으로 재미가 있을 것, 닷페이스의 브랜드 정체성(BI, Brand Identity)을 적용할 것. ‘퀴어(Queer)’라는 단어가 ‘기묘한, 괴상한’이라는 기존 단어의 뜻을 전복했다는 점에서 외계인 캐릭터를 떠올렸다. 영화 <록키 호러 픽쳐 쇼(The Rocky Horror Picture Show)>에서 삽입곡 <타임워프(Time Warp)>가 흐를 때 기묘한 생명체들이 춤을 추는 모습처럼 색색의 퀴어 플래그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한다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닷페이스의 캐릭터 ‘닷냥이’의 외형을 본떠 BI와도 잘 어울리게 디자인했다. 시안이 마음에 들었던 나는 신나는 마음으로 전체 회의에서 피드백을 요청했다. 그러나 동료 더기의 결정적인 피드백으로 이 외계인들은 폴더 속으로 들어갔다.
온라인 퀴어 퍼레이드 3차 시안 <출처 – 필자 제공>
“헵찌,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려면 캐릭터에 자신을 대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외계인 캐릭터로는 그런 느낌을 주기 어려워 보여요. 그리고 큰 행진 이미지가 만들어졌을 때 요구르트 광고 속 유산균 느낌이 들 것 같아요. 캐릭터의 매력이 이벤트의 성패를 결정할 텐데 좀 더 고민해 보면 좋겠어요.”
사람 캐릭터를 그리는 데 자신이 없었지만, 피드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유산균 같다는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다시 일러스트레이터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자기를 대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기준을 세우고 길거리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헤어스타일, 옷 등을 참고했다. 그러다 보니 시각적 재미가 사라졌고, 닷페이스의 BI도 많이 지워졌다. 나는 개발, UI/UX를 맡아준 스투키 스튜디오(이하 스투키)에 조언을 구했다.
“헤어나 의상 아웃라인, 팔 동작이 다양하면 좋겠어요. 색도 RGB 느낌으로 하면 어떨까요? 사람들은 퀴퍼에서 평소에 못 해본 헤어스타일, 옷차림을 하고 싶을 거예요.”
금쪽같은 피드백이 쏟아졌고 ‘평소에 못 해본 차림’이라는 기준을 새로 추가했다. 이전에는 길거리의 사람들을 상상하며 디자인했다면, 피드백 이후에는 ‘퀴퍼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을 상상하며 작업했다. 결과적으로 나온 디자인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이제 시각적 재미는 해결이 됐다. 다만 어떻게 해야 참여자들에게 배제되지 않는 경험을 줄지 고민했다. 신기하게도 이 고민을 하면서 시각적 재미를 더 많이 줄 수 있었다. 이를테면 여성형과 남성형을 구분할 수 없는 헤어스타일을 고민하다 보니 분수 머리, 불꽃 머리 같은 재미있는 헤어스타일을 만들 수 있었다. 옷을 그릴 때도 성별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다 보니, ‘홀터넥3)+한복 바지’ ‘저고리+그물 스타킹’ 같은 재미있는 조합이 많이 나왔다.
반대로 시각적 재미를 위해 ‘아예 사람 피부색이 아닌 색을 피부에 입히자’라고 결정했더니 이모지, 레고 등에서 인종 중립을 표현할 때 자주 쓰이는 ‘샛노란’ 색을 선택할 수 있었다. 인권에 관해 이야기할 때 자주 쓰이는 ‘상상력’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디자인에서 쓰이는 ‘상상력’이라는 단어가 어쩌면 같은 것을 향할 수도 있겠다는 배움을 얻었다. ‘정치적으로 너무 올바른 결과물이 나와서 재미가 없으면 어떡하지?’라는 우려를 꺾어버리는 배움이었다.
오픈 했다고 최종이 아니야
만반의 준비를 거쳐 오픈 날이 됐다. 그날 저녁, 팀원들이 ‘일 안 하고 이것만 보고 싶어요’라고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상상했던 참여 인원을 훌쩍 넘기도 했고 재미있는 참여자들이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만 할 수 있었던 반려동물들의 행진도 눈에 띄었고 생수, 뻥튀기 사진을 올리는 참여자들도 있었다.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는 이들은 커스텀 캐릭터를 그려서 참여하기도 했다. 우리가 제시하는 한정된 옵션 안에서 조합을 선택해 참여해야 하는 이번 퀴퍼 특성상 ‘각자의 다양한 모습으로 참여하는 게 가능할까?’라는 걱정이 있었는데 역시 참여자들의 상상력은 나를 뛰어넘었다.
오픈 후 손이 더 바빠졌다. ‘행진 파트너’ 아이템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행진 파트너는 기업이나 퀴어 단체의 로고나 디자인이 들어간 아이템을 목록에 추가하는 일종의 광고 상품이다. 짧은 기간 동안 이벤트 오픈을 준비하느라 아이템의 종류를 기대보다 많이 제공하지 못한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각종 기업과 퀴어 단체 담당자들이 생각해낸 아이템들은 그 아쉬움을 없앨 정도로 선택지를 풍성하게 해주었다. ‘SEX’라는 단어를 무지개 색 대문자로 쓴 이브콘돔의 대담한 깃발, ‘선생님’을 연상시키는 초등성평등연구회의 리코더, 누가 봐도 아이디어의 주체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제주퀴어문화축제의 감귤 색 티셔츠. 책의 표지나 제목을 활용해 깃발을 만든 출판사들도 있었다. 다양한 광고주들의 빛나는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일은 정말 즐거웠다. 어떤 참여자들은 ‘계속 아이템이 늘어나네. 또 만들어야지!’ 하면서 행진 파트너 아이템을 입은 캐릭터를 새로 올리기도 했다.
오픈 후 참여자들의 피드백도 많이 있었다. 도움이 된 피드백이 여럿 있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시력이 전혀 없는 전맹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 텍스트를 추가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스투키에서도 문제에 크게 공감해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개발자 태경은 인스타그램 이미지를 올릴 수 있는 복사 기능 등 대체 텍스트 외에도 더 구현해야 할 게 있다고 했지만 오픈 기간이 짧아 모두 구현하지 못해 아쉬워했다. 이후에 어떤 정보를 제공할 때는 접근성을 꼭 체크해야 한다는 기준이 생겼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의견을 낼수록 온라인 퀴퍼가 더 안전하고 열린 이벤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이번에 배운 중요한 기준들을 가이드로 만들 예정이다.
쾌적한 협업을 위한 조건
함께 협업한 디자인스튜디오 스투키를 이야기하지 않고 온라인 퀴퍼를 회고하기는 어렵다. 스투키와 일하게 된 건 동료의 추천 덕분이다. 디자인 경험이 있는 데다 제2회 월경 박람회에서 각자의 월경 특징에 맞는 캐릭터를 만들 수 있는 웹 콘텐츠, ‘멘넴’의 캐릭터 드로잉을 바탕으로 랜덤 캐릭터를 만드는 웹 콘텐츠 등을 디자인·개발한 스투키가 파트너로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협업은 찰떡 그 자체였다. 회고 회의 내내 ‘쾌적한 협업’이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됐고, 스투키와의 마무리 회식에서는 모두 진심으로 다음 협업을 기약했다. 어떻게 이런 협업이 가능했을까?
첫째는 솔직하고 명확한 초기 커뮤니케이션이다. 첫 미팅 때 ‘닷페이스에서 할 것’, ‘스투키에게 요청하고 싶은 것’, ‘스투키가 원하는 것’ 등을 터놓고 이야기하며 조율하는 과정을 거쳤다. 덕분에 “그걸 우리가 해요?” 같은 말이 오가는 혼란스러운 커뮤니케이션이 생기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스투키는 원하는 것으로 ‘돈을 벌고 싶고 멋진 협업 경험을 얻고 싶다’, ‘멋지고 핫하게 나와서 포트폴리오로 쓰고 싶다’고 이야기했는데, 신기하게도 그게 전부 이뤄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