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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을 떠들썩하게 수놓았던 n번방 사건은 차츰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과연 n번방 사건 이후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인터랙티브 시작 화면 <출처 - 경향신문 n번방 리와인드 인터랙티브 화면 갈무리>
“n번방 같은 디지털성범죄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난 4월 디지털성범죄 문제를 오랫동안 다뤄온 단체의 활동가, 교수, 변호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했던 질문이다. 당시 ‘박사방’ 조주빈 검거 사실이 알려지며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에 대한 기사가 쏟아질 때였다. 정말 궁금했다. 왜 비슷한 범죄가 반복되는지, 막을 방법이 도저히 없는 건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조치는 뭔지….
돌아오는 답을 종합해보면 뜯어고쳐야 할 문제는 하나가 아니었다. 법은 늘 한발 늦고, 제도는 안일하고, 사회는 쉽게 피해자를 탓했다. 뾰족한 해법이나 대안을 짧은 기사에 담긴 어려웠다. 그래서일까. 사건팀에서 지난 4~5월 거의 매일같이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다루는 기사를 써도 어딘가 찝찝했다. 이러다 n번방도 ‘잔혹했던 사건’ 쯤으로 소비되다 언젠가 또 다른 범죄의 ‘전신’쯤으로 불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지난 5월 어느 날.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두고 넘쳐나는 ‘단독’과 ‘속보’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독자가 늘어나며 사건을 향한 관심도 슬슬 사그라들 때였다. ‘박사’ 조주빈을 비롯한 핵심 가해자들이 속속 재판에 넘겨지던 시기이기도 했다. 재판은 서울부터 춘천, 대구까지 전국에 동시다발로 열렸다.
당시 수사 상황을 잘게 나눠 전달하는 지면 기사에 한계를 느낀 한 선배가 사건팀 회의에서 기획을 제안했다.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만들어 보는 건 어때요? n번방 가해자들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고 있고, 사회는 쉽게 피해자를 탓했다. 뾰족한 해법이나 대안을 짧은 기사에 담긴 어려웠다. 그래서일까. 사건팀에서 지난 4~5월 거의 매일같이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다루는 기사를 써도 어딘가 찝찝했다. 이러다 n번방도 ‘잔혹했던 사건’ 쯤으로 소비되다 언젠가 또 다른 범죄의 ‘전신’쯤으로 불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지난 5월 어느 날.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두고 넘쳐나는 ‘단독’과 ‘속보’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독자가 늘어나며 사건을 향한 관심도 슬슬 사그라들 때였다. ‘박사’ 조주빈을 비롯한 핵심 가해자들이 속속 재판에 넘겨지던 시기이기도 했다. 재판은 서울부터 춘천, 대구까지 전국에 동시다발로 열렸다.
당시 수사 상황을 잘게 나눠 전달하는 지면 기사에 한계를 느낀 한 선배가 사건팀 회의에서 기획을 제안했다.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만들어 보는 건 어때요? n번방 가해자들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고 있나 궁금해서요.” 그렇게

누군가는 알고, 누군가는 모르는 ‘n번방’의 조각들을 찾아
며칠 뒤 사건팀과 뉴콘텐츠팀의 회의가 열렸다. 기획자와 디자이너, 취재기자들이 모여 첫 번째 회의를 했다. 텔레그램 성착취 가해자들의 재판 상황을 종합해보자는 아이디어에서, 디지털 성범죄를 방관해 온 사회구조 전반을 되짚어 보는 내용으로 기획이 커졌다. 2020년의 n번방을 거슬러 올라가면 ‘웹하드 카르텔’과 ‘소라넷’을 지나, 고교생 집단성폭행 비디오 사건, 세운상가 암시장의 빨간책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나누다 방향이 정해졌다.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범죄란 점에서 본질은 같았다. 말 그대로 n번방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었다.
회의에서 누군가는 n번방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지만 오래된 일이라 잘 몰랐던 사건들을 구체적으로 알게 돼 놀랐다. 누군가는 요즘 2030세대가 당시 잘 알려진 사건을 모른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런 대화를 주고받다 디지털 성범죄의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n번방이 등장하게 된 사회구조를 진단하고 대책을 고민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이었다. 누군가는 알고, 누군가는 모르는 ‘n번방 전신’ 격인 수많은 사건들, 그 기록을 따라 디지털 성범죄를 되감아 보기로 했다.
사건만 나열하는 것으론 부족했다. 한국 사회의 구조와 맥락 속에서 수많은 사건들이 매 순간 어떻게 소비됐고, 어떻게 방치됐는지 보여주는 작업이 필요했다. 숱한 순간들이 쌓인 결과물로서 n번방이 등장했단 메시지를 전달하자는 취지였다. 성착취 범죄가 수년간 반복돼 왔다는 점, 법은 불가역적 피해가 발생하고 나서야 굼뜨게 바뀐다는 점, 성범죄를 용인하는 사회 분위기가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피해를 키웠다는 점 등이 기획 단계에서 집중한 내용이었다.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사건, 법, 사회 세 가지 축을 담기로 했다. 시대별 사건과 함께 사건의 배경이 된 당시 법과 사회인식을 제시하면, 사회가 그동안 어떻게 n번방에 조각을 보탰는지 보여줄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1953년 최초의 형법에 ‘정조에 관한 죄’를 규정한 때부터 2020년 n번방이 등장하기까지, 총 14개의 카테고리로 구분해 사건을 정리했다.
한편으로는 ‘빨간책-비디오-인터넷-스마트폰’으로 이어지며 진화하는 가해자의 도구, 가해자 시선을 내면화한 법·제도의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 별개의 타래를 기획했다. ‘#가해자의 도구’로 엮인 타래를 따라 올라가 보면, n번방에 가입해 성착취물을 돌려본 ‘스마트폰’은 1970년대 세운상가 암시장에서 팔리던 ‘빨간책’으로 이어진다. ‘#가해자 중심 사고’ 타래는 성폭력 피해자를 가해자와 약혼시켰던 1950년대 사법부부터 시작한다. 시간 흐름에 따라 피해자를 낙인찍고, 가해자를 일상으로 돌려보낸 법과 제도의 무책임함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인터랙티브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이름이 붙었던 사건의 명칭도 모두 바꿨다. 대표적으로 여전히 언급되곤 하는 ‘빨간OOO 사건’이나 ‘O양 비디오’ 사건의 경우 ‘고교생 집단성폭행 비디오 사건’, ‘여성 연예인 불법촬영물 사건’으로 바꿨다. 피해자 이름과 특성을 부각시킨 채 유희거리로 소비하고, 피해 당사자를 숨게 만드는 명칭에 대해 기획에 참여한 구성원 모두가 문제의식을 느꼈다. 그렇게 ‘#사건명 바로잡기’ 타래도 더해졌다. 인터랙티브 구성이 정해진 후 사건팀에선 곧바로 자료와 사건 설명 정리에 돌입했다.
뉴콘텐츠팀 문을 두드리면 길이 보인다
기획은 처음부터 인터랙티브 아이디어로 시작한 만큼 시각화가 관건이었다. 뉴콘텐츠팀에선 인터랙티브 구현 과정에서 n번방이 등장하기까지 수많은 사회적 현상들이 유기적으로 엮여 있단 걸 보여주는 데 초점을 뒀다. 시간순으로 사건을 배열하되 연관된 사건끼리 선으로 연결해 타래를 만들었다. 2017년 ‘웹하드 카르텔과의 전쟁’을 누르면 위로는 ‘위디스크 운영 시작(2004)’, 아래로는 ‘양진호 전 한국미래기술 회장 1심 징역 7년(2020)’까지 총 6개의 타래가 묶여 이어진다.
사건을 타래로 엮어 인터랙티브를 보는 독자들로 하여금 디지털성범죄의 오랜 역사, 늘 더딘 법과 제도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자 했다. n번방이 낯설고, 유난하고, 새로운 범죄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과거를 되돌아보고, 시각을 전환하는 계기를 제공하려는 취지이기도 했다. 특히 인터랙티브 끝에선 1953년부터 시작된 빨간선들이 2020년 n번방 사건을 둘러싼 빨간점들로 이어져 내려와 한곳에 모이는 시각적 효과를 구현하는 데 방점을 뒀다.


젠더 이슈를 다루면서도 제대로 된 기획기사를 쓸 수 있고, 기자로서 성장할 수 있다는 경험은 소중하다. 몇 년 전만 해도 젠더 기사는 ‘젊은 여성 기자들이 온라인용으로 쓰는 기사’라는 인식이 은연중에 있었다. 20대 페미니스트 기자가 젠더 이슈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런 이슈를 다룬 기사를 잘 쓸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저연차 기자들은 실제로 기획 아이디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곧잘 벽에 부딪히곤 한다. 이번 기획기사는 선배들의 조언으로 오히려 단순히 재판 상황을 종합하는 기획에서 사회구조 전반을 되짚는 기획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아쉬운 점도 있다. 현재 n번방 가해자들은 어떤 처벌을 받고 있는지, ‘n번방 방지법’이 통과됐다며 떠들썩하던 제도 개선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시시각각 바뀌는 정보를 담진 못했다. 출고 시점 이후 기사를 매번 업데이트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인터랙티브 콘텐츠가 일회용이 아닌 만큼, 가능하다면 조만간 그간 진행 상황을 모아 업데이트를 해볼까 한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인터랙티브 페이지와 지면 기사 모두 같은 문장으로 마쳤다. 실제로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은 아직 진행 중이다. 가해자들 재판이 이어지고, 시민들은 여전히 사법부가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며 길거리에서 손팻말을 든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역시 한국 사회 실패의 기록으로 남지 않도록 법과 제도, 사회가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으면 한다. 그때까지 ‘더 이상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범죄를 방치하지 말라’는 시민들 목소리를 앞으로도 충실히, 효과적으로 전할 생각이다. 지면으로, 인터랙티브 같은 뉴콘텐츠로, 또는 ‘플랫’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