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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현장] 박원순 실종 보도 6시간의 혼돈
미디어현장 | 등록일 : 2020-09-01

지난 7월 9일 저녁 6시경, 박원순 서울시장의 실종이 언론에 처음 보도됐다. 이후 인터넷 매체들은 오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국민의 알 권리’를 방패 삼아 속보와 단독 경쟁으로 오보를 양산하고 있는 우리 언론의 나아갈 방향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실종 신고가 접수된 지난 7월 9일, 서울시청 앞에서 관련 소식을 전하기 위해 대기중인 방송기자들 ⓒ연합뉴스

 

 

그날, 오후 6시쯤 첫 보도를 접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실종신고 접수’. 스마트폰 <연합뉴스> 앱 알림을 통해서였다. 처음엔 어쩌면 해프닝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신고자가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딸이라는 이어진 속보에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방송을 앞두고 CBS 출연자 대기실에 있을 때였다. 방송 시각인 오후 6시 25분 전에 카카오톡으로 전파된 ‘받은 글’에서 박 전 시장은 이미 고인이 돼 있었다. 그 시각 경찰은 수색 중이었다. 공식 발표는 6시간이 지나 자정을 넘긴 7월 10일 새벽에 이뤄졌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는 시사 프로그램인 만큼 당일 벌어진 뉴스를 정리하는 코너가 있다. 정관용 앵커는 방송 시작 전에 ‘박 시장 실종 사건’에 대해 “취재된 만큼, 사실로 확인된 만큼만 차분하게 방송하자”고 제안했다. 출연자들 사이에 이견은 없었다. 이런 사안일수록 속보 경쟁보다는 정확한 보도가 중요하다는 암묵적 동의가 깔려 있었다. 그런데 방송을 하는 동안, 언론을 표방한 몇몇 인터넷 사이트에는 박 전 시장 시신이 발견됐다는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장소까지 특정했다. 그 시각에도 경찰은 박 전 시장을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확인했다. 그런 보도를 한 언론사의 기자들이 경찰에 앞서 박 전 시장 시신을 발견해 보도했을 리는 없었다. 예정에 없던 휴가, 실종 신고, 죽음을 암시한 듯한 메모, 박 전 시장이 관저를 나선 시각과 동선 등을 짜깁기해 미뤄 짐작했거나, 그런 추정을 소재로 만들어진, 이른바 ‘찌라시’라고 불리는 정보지를 가공했을 가능성이 크다. 

 

첫 오보 이후 ‘복붙’한 듯한 기사 쏟아져

 

매체 비평 전문지인 미디어오늘을 보면, 첫 오보는 월간조선이 냈다. 오후 6시 45분, 웹사이트에 <[속보] 박원순 시장 시신 발견, 성균관대 부근에서 발견>이라고 내보냈다. 직후 수많은 인터넷 매체가 경주마처럼 비슷한 보도를 쏟아냈다. 법률 관련 매체인 로톡뉴스는 오후 6시 52분에 <[속보] 박원순 서울시장, 극단적 선택… 성균관대 근처서 시신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월간조선의 첫 보도 이후 약 30분 동안, 이름도 낯선 매체 10여 곳이 월간조선 기사를 복사해 붙인 듯한 기사들을 쏟아냈다. 그 기사들에서, 어떤 제보를 받아 확인 중이라거나 박 전 시장 측근들을 통해 확인했다거나 하는 취재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미뤄 짐작하건대 ‘국내 최대 부수를 자랑하는 조선일보의 자매지인 월간조선이 보도했으니 사실이겠지’ 하면서 그대로 ‘복붙’했거나 조사 몇 개만 바꿔 서둘러 쏘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는 사이, 어느 순간 월간조선 기사는 사라졌다. 뚜렷한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다. 오보를 내보낸 언론사 가운데 충청리뷰는 문제의 기사를 <박원순 시장 발견은 오보 “정정합니다”>라는 제목의 기사로 대체했다. 

 

그 시각 이후 오보들은 다른 오보들을 먹고 자랐고 확대재생산하는 양상으로 바뀌었다. 문일석 브레이크뉴스 발행인은 오후 8시 22분 <박원순 서울시장 사망…“여권 큰 대선후보 잃은 것”>이라는 제목으로 “경찰은 실종된 박 전 시장을 오후 9시경 발견, 서울대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기사 출고 시각은 8시 22분인데, 대략 40분 뒤인 ‘9시경’에 경찰이 발견해 이송했으나 사망했다고 예고하고 있다. 앞으로 벌어질 특정 시점의 일이 미리 알려질 수는 없다. ‘알려졌다’라는 표현으로도 그 무모함을 가릴 수는 없다. ‘알려졌다’는 기자들이 출처를 감출 필요가 있거나 사실관계를 확신할 수 없을 때 주로 쓴다. 

 

명백한 오보로 밝혀진 뒤에도 이 기사를 작성한 문 발행인은 같은 기사 뒤에 ‘보도 이후 후기’를 덧붙여 오보가 아니라 특종이라고 주장했다. 후기의 일부를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박 시장이 실종 이후 생환을 했다면 이 기사가 오보이겠으나, 박 시장이 시신으로 돌아와 오히려 특종성 기사로 볼 수도 있습니다. 오보는 아니며, 적확한 예측보도의 하나였습니다.” 관측이나 전망 기사의 형식을 띠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측보도를 하기에 매우 부적절한 사안이다. 스스로를 40년 이상 경력을 가진 언론인이라고 소개하는 모양인데, 아직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SNS를 통해 전파된 출처 없는 오보 

 

이런 사안일수록 전문성 있는 매체의 오보는 더 치명적일 수 있다. 의료 관련 매체인 청년의사는 오후 9시 30분께 <[속보] 실종된 박원순 서울시장, 서울대병원으로 이송 중… 사망한 듯>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본문에는 “의료계 복수 관계자는 박 시장이 이미 ‘DOA(Dead on arrival, 도착시 이미 사망)’라고 했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그 시각 역시 경찰이 대대적으로 수색을 벌이던 때였다. “의료계 복수 관계자”와 병원 도착 때 이미 사망한 상태임을 뜻하는 전문용어인 ‘DOA’라는 표현은, 독자로 하여금 이 기사에 대한 상당한 신뢰감을 갖게 했다. 하지만, 이 기사 역시 허위였다. 이 매체는 이튿날 “믿을 만한 정보로 판단해 기사를 게재했으나, 사실과 다른 기사로 혼란을 초래한 데 대해 독자 여러분과 유가족 등 관계자 여러분께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라며 사과문을 실었다. 앞서 언급한 로톡뉴스도 ‘오보 사과문’을 통해 “신중한 보도가 이뤄졌어야 했던 때에 속보 경쟁에 휩쓸려 경솔한 판단을 했습니다. 이 보도는 사실관계가 명확하게 확인되기 전에 보도 결정을 내린 편집장의 잘못이 가장 큽니다”라고 밝혔다. 경찰이 북한산 일대를 수색한 끝에 박 전 시장의 시신을 발견한 시각은 10일 0시께였다.

 

최초 출처를 알 수 없는 ‘받은 글’은 카카오톡과 텔레그램 등 SNS를 통해 전파됐다. “잠시 뒤 엠바고 해제, 서울대병원 빈소 예정”, “한 시간 전 서울대병원 옮김. 엠바고 상태. 대통령 결재 남은 상태”, “서울대병원 DOA(Dead on Arrival)” 등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유통됐다. 보도 유예를 뜻하는 ‘엠바고’라는 표현은, 경찰과 언론은 이미 사실을 다 알고 있는데도 정부가 보도를 틀어막고 있다는 오해를 불렀다. 언론계 종사자들이라면 ‘대통령 결재’ 이후 보도가 가능하다는 식의 표현에 황당함을 느꼈겠지만, 언론계의 관행을 잘 모르는 이들에겐 뭔가 있어 보이는 권위로 포장될 수 있는 장치다. 그날 밤, 여권의 대선주자였던 박 전 시장의 죽음을 둘러싸고 모종의 음모가 있는 것처럼 포장한 찌라시도 돌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조선일보 자매지인 월간조선을 제외하곤 시민들에게 ‘언론’으로 익숙한,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신문들과 방송들은 의미 없는 속보 경쟁에 불나방처럼 뛰어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언론사 기자들도 ‘단독’의 선봉에 서고 포털사이트의 관련 뉴스 ‘대문’을 차지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을 것이다. 그 욕망을 자제하게 만든 것은 언론인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에 뿌리를 둔 진실을 추구하는 저널리즘을 실현해야 한다는 의무감, 엄정한 팩트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들이 앞으로 무작정 달려 나가고 싶은 욕망을 제어 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여기에 더해 주요 언론사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보도 등 과거의 과오에서 배운 교훈을 밑돌 삼아 제도적 장치를 참고했을 수도 있다.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이하 권고기준)이 그것이다. 자살 관련 인터넷 기사나 방송 뉴스 뒤에 대부분 따라붙는 안내문(“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도 이 권고기준에 따른 것이다. 

 

“자살보도에는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로 시작하는 권고기준은, 다섯 가지의 원칙을 제시하면서 항목마다 대여섯 가지의 세부 사항을 적시하고 있다. 특히, 유명인의 자살 보도에 대해 더욱 신중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첫 번째 원칙인 ‘기사 제목에 ‘자살’이나 자살을 의미하는 표현 대신 ‘사망’, ‘숨지다’ 등의 표현을 사용합니다’에는 “자살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살로 단정 지어 보도하지 않습니다: 자살로 명확히 판정되기 전까지 사인을 자살로 추정하거나 단정하는 보도는 삼가야 합니다”라고 권고한다. 박 전 시장의 실종이 알려진 시각부터 숨진 채 발견된 6시간 동안 그의 죽음을 단정적으로 보도한 모든 오보들은, 기사의 기본도 갖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기자협회의 자살 보도 관련 권고를 정면으로 위배한 것이다.


‘구체적인 자살 방법·도구·장소·동기 등을 보도하지 않습니다’라는 두 번째 원칙은, 특히 자살 동기를 단순화한 보도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이렇게 조언한다. “자살은 단순화하기 어려운 복잡한 요인들로 유발됩니다. 따라서 표면적인 자살 동기만을 보도할 경우 결과적으로 잘못된 보도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유사한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자살을 부추길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 원칙 ‘자살 사건을 보도할 때에는 고인의 인격과 유가족의 사생활을 존중합니다’에 이르면, 병원 영안실을 순회하며 기사가 되는 죽음을 캐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취재하라’는 수습 교육을 받은 연차 높은 기자들은 ‘그런 권고 다 지키면서 어떻게 취재하느냐’는 볼멘소리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세상은 정말 많이 바뀌었다. 기자들도 바뀌었다. 무엇보다도 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위험한 

취재 관행 변호에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던 ‘국민의 알 권리’의 핵심인 그 국민이 바뀌었다. 이제는 기자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대신,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가르치고, 한국기자협회가 제정한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과 실천요강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 등을 교육해야 한다. 

 

위기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동안, 어쩌면 한때, 기자는 꽤 매력적인 직업이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권력에 맞서 사실과 진실을 취재하고 바르게 전달해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옹호하라고 배웠다. 그런데 진보와 보수, 여와 야, 수구기득권 세력과 그에 맞서는 세력의 대결 양상에 더해 세대와 이념, 성을 둘러싼 갈등까지 한꺼번에 불거진 가운데, 기자라는 호칭이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은 세상이 되고 말았다. “당신은 누구의 편이냐”는 물음에 시달리고, “사실과 진실의 편”이라는 답은 그 물음에 가 닿지를 못한다. ‘기레기’, ‘기더기’ 같은 조롱이 그 매력을 뒤덮고 말았다. 외부 환경 탓보다는, 대부분의 언론과 기자의 책임이 더 크다. 

 

내가 23년 동안 재직했던 한겨레는 올해 ‘취재보도준칙’을 개정하면서 “오늘날 한국 언론은 심각한 신뢰의 위기를 겪고 있다”며 “시민의 바람과 공공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지 않고는, 당면한 ‘신뢰의 위기’를 극복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진단했다. 언론과 기자의 책임이 더 큰 만큼, 신뢰를 다시 찾는 것도 오롯이 언론과 기자의 몫이다. 한겨레 외에도 이제는 ‘레거시 미디어’라고 불리는 여러 언론사들이 취재보도준칙과 윤리강령 등 나름의 기준과 원칙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위기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길이 보인다. 기본을 지켜야 혼돈 속에서 헤매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그 기본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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