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사 상세
[미디어포럼] 제5회 리영희재단 시민강좌 참가기
미디어포럼 | 등록일 : 2020-11-06

지난 9월 7일부터 11월 2일까지 리영희재단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제5회 리영희재단 시민강좌’를 열었다. 이번 강좌의 주제는 ‘인공지능 시대의 가짜뉴스와 민주주의의 위기’. 여러 전문가들이 가짜뉴스가 넘쳐나는 현실에서 언론이 해야 할 역할과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되짚어 본 이번 강좌를 지면에 옮긴다. 편집자 주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눠져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지금까지도 그렇고 영원히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발전, 사회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 

 

고 리영희 선생이 1977년 펴낸 《우상과 이성》(한길사)의 머리말 ‘읽는 이에게’에 쓴 이 말이 출발점이었다. 리영희재단은 리영희 선생 타계 10주기를 맞은 올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공동 주최한 ‘제5회 리영희 시민강좌’를 리영희 선생이 평생 그토록 강조하셨던 ‘진실 찾기’라는 화두를 중심에 놓고 진행했다. 

 

‘인공지능 시대의 가짜뉴스와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시민강좌는 지난 9월 7일 한겨레 논설주간과 KBS 사장을 지낸 정연주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의 ‘저널리즘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를 시작으로, 11월 2일 신명직 일본 구마모토가쿠엔대(熊本学園大学) 동아시아학과 교수의 ‘국경 넘어선 언론, 무기가 되다’까지 모두 여덟 개 강의로 이뤄졌다. 

 

이번 강좌에는 언론계의 현직 기자와 PD에서부터, 대학교수, 학자, 언론소비자운동 활동가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강사가 참여해 가짜뉴스의 문제점을 다각적으로 짚어보고, 이를 극복해 진실에 나아가는 방법을 찾았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한 건물에서 진행된 강좌는 코로나19 예방수칙을 준수해 현장에는 10인 이하의 수강생만을 허용한 상태에서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강좌 내용은 유튜브 리영희재단 채널1)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필자인 김보근 한겨레 선임기자. 이번 시민강좌의 사회를 맡았다. <출처 - 리영희재단 유튜브 화면 갈무리> 

 

 

우상이 된 첨단 기술 

 

강좌는 리영희 선생이 강조한 ‘진실’을 찾기 위해 진행됐지만, 사실 리영희 선생이 이야기한 ‘진실’은 오늘날 가짜뉴스 시대의 ‘진실’과는 결이 다른 것이었다. 리영희 선생이 지금으로부터 43년 전 《우상과 이성》을 썼을 때는 진실을 왜곡하고 거짓을 퍼뜨리는 가장 강력한 세력이 권력이었다. 쿠데타 등으로 집권한 뒤 장기집권을 꾀했던 박정희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당시 권력층이 그들이다. 그들은 정보를 독점하고, 언론사에 압력을 넣어 기자를 해직시키고, 심지어 기자를 붙잡아 가둔 뒤 고문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그렇게 이 땅의 권력자들이 거짓과 폭력으로 우상을 만든 상태에서, 리영희 선생은 기자를 포함한 지식인이 그 우상에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 다시 현재로 돌아와 보자. 그렇게 강력했던 ‘권력이 만든 우상’은 이제 꽤 약화됐다. 하지만 우리 앞에 우상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영화 <매트릭스>가 그린 가상의 세계를 연상시키는 더 큰 우상이 자리 잡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 중심에 인공지능(AI)과 정보통신기술(ICT)로 대표되는 첨단 기술이 만들어놓은 ‘가짜뉴스’가 놓여 있다. 

 

필자는 이번 시민강좌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참여하고 강의 한 꼭지와 8강 전체 사회를 맡았다. 그 과정에서 새삼 느낀 것은 기술의 진보가 너무나 빠르다는 점이다. 또한 그에 발맞추기라도 한 듯 가짜뉴스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빠른 기술의 발달은 우리가 지금 어떻게 기사를 취재하는지만 봐도 명확히 드러난다. 이즈음 기자들의 경우 인터넷을 검색하고,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페이스북에 유명 인사가 어떤 글을 남겼는지 살펴보고, 유튜브에서 조회수가 높은 영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취재 방식이 상당히 일상화돼 있다. 20년 안쪽의 경력을 가진 상당수 기자들은 이런 취재 활동이 마치 오랜 옛날부터 지속돼온 취재 관행인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변한 것이 그렇게 오래전 일은 아니다. ‘불과 25~30년 전’만 해도 기자들은 원고지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서 기사를 썼다. 변화는 너무나 짧은 시간에 너무나 크게 일어났다. 필자가 지난 9월 14일 시민강좌 두 번째 시간에 ‘기술 발전과 언론의 변화’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 또한 ‘불과 ○○년 전’이었다. 


한쪽 날개로 날 수는 없다 

 

변화의 선두에는 인터넷이 있었다. 인터넷이 대중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 것은 영국의 컴퓨터학자 팀 버너스리(Timothy Berners-Lee)가 1989년 ‘월드 와이드 웹(www)’을 발명한 이후다. 그 이전의 인터넷은 문자 형태만 주고받는 등 대중적이지 않았다. 버너스리가 세계 최초의 웹사이트(info.cern.ch)를 만든 것은 ‘불과 29년 전’인 1991 년 8월 6일이다. 

 

최초의 블로그는 ‘불과 26년 전’인 1994년에 만들어졌는데, 이미 낡은 방식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최초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식스디그리즈닷컴(sixdegrees.com)이 시작된 것은 ‘불과 23년 전’인 1997년이었다. 페이스북은 당시 하버드대 학생이었던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가 ‘불과 16년 전’인 2004년 2월 4일 첫 서비스를 시작했다. 유튜브는 ‘불과 15년 전’인 2005년 4월 23일 ‘동물원에서’(Me at the zoo)라는 동영상을 최초로 업로드했고, 애플은 ‘불과 13년 전’인 2007년에 스마트폰인 아이폰을 출시했다. 로봇이 기사를 작성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년 전쯤’인 2010년대 초 미국에서였다. 

 

이런 기술의 발전은 리영희 선생이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대표적 진지로 꼽았던 전통 언론의 기반을 빠르게 허물어뜨리는 한편, 가짜뉴스가 확산되는 데 기술적 조건이 됐다.

 

김선호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10월 12일 진행된 제5강 ‘SNS 시대, 필터버블과 확증편향’ 강의에서 “가짜뉴스가 확산되고 있는 현실을 보면, 리영희 선생의 저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1994, 두레)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리영희 선생이 ‘좌우의 날개’를 강조한 것은 한 사회에서 여론이 한쪽으로 기울어졌을 때 그 사회는 독재화하거나 파시즘화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연구위원은 이어 “좌우의 날개를 정치학적으로 얘기하면 숙의 민주주의에 해당한다”고 설명한 뒤, 숙의 민주주의에 대해 “토론과 깊은 생각을 통해 자기의 생각과 반대되는 것이나 생각하지 못했던 것까지 생각하는 힘을 갖는 것이 기초”라고 정의했다. 김 연구위원은 그러나 최근 현실에서는 “SNS가 엄청난 정보를 주지만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끼리끼리 모이도록 함으로써 이념적 편향을 갖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김 연구위원은 SNS로 인한 확증편향과 필터버블은 가짜뉴스를 확산시키면서 좌우 한쪽 날개만을 신봉하게 만드는 등 숙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우려했다. 


 

SNS 시대, 필터버블과 확증편향’에 대해 강의한 김선호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과 필자 <출처 - 리영희재단 유튜브 화면 갈무리> 

 

 

진실을 찾는 방법은 연대와 협력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현실을 어떻게 극복하고 다시 진실에 접근할 수 있을까. 시민강좌의 강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현재의 해법은 리영희 선생 시대의 해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아가야 얻을 수 있다. 리영희 선생이 기자나 지식인의 ‘개인적 고난을 각오한 글쓰기’를 강조했다면, 강좌에 참여한 강사들은 ‘기자·지식인뿐만 아니라 언론 소비자까지 아우르는 연대와 협력’만이 가짜뉴스가 판치는 시대에서 진실 찾기를 가능하게 만든다고 봤다. 

 

 

‘민주주의의 위기, 저널리즘의 자세’에 대해 강의한 최승호 뉴스타파 다큐팀 PD <출처 - 리영희재단 유튜브 화면 갈무리> 

 

 

정연주 동아투위 위원은 그 가운데서도 무엇보다 언론인이 진실 추구 자세를 포기하지 않는 것을 가장 중심적 요소로 꼽았다. 정 위원은 “진실이라는 것을 아는 것도 쉽지 않고, 그것을 밝혀내는 것은 더욱더 쉽지 않다”고 전제하면서 “언론인이 ‘진실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라는 생각을 갖고, 정확한 팩트 찾기 노력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인의 그러한 자세가 전제될 때만 가짜뉴스를 극복할 발판이 마련된다는 것이다. 

 

김언경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소장은 언론 수용자 교육을 강조했다. 김 소장은 “누군가 가짜뉴스를 만들어내는 경우, 그들을 수용자들로부터 외면받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를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상당히 느리지만 가장 중요한 가짜뉴스 대응책”이라고 말했다.  

 

 

‘혐오 표현과 언론’에 대해 강의한 김언경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소장 <출처 - 리영희재단 유튜브 화면 갈무리> 

 

 

사실 기술의 진보는 늦출 수도 막을 수도 없다. 그러나 언론인과 소비자가 어떤 준비와 태도를 가지는가에 따라 그 기술 진보의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리영희 선생이 고문으로 참여했던 한겨레 창간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한겨레는 1988년 국민이 모아준 50억 원의 창간기금을 갖고 신문사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는 당시 신문을 만들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무엇보다 당시 통용되던 제작 시스템을 그대로 이용한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1988년에는 국내 신문사들이 납 활자 시스템을 사용했다. 기자가 기사를 원고에 쓰면, 그 원고의 내용에 맞는 납 활자를 문선공이 뽑는 것이다. 이런 제작 방식을 사용해 신문을 만들려면 적어도 200억 원 이상의 돈이 필요했다는 게 당시의 평가였다. 

 

 

‘언론 소비자 속지 않기’를 주제로 강의한 최은경 전남과학기술대 교수 <출처 - 리영희재단 유튜브 화면 갈무리> 

 

 

그런데, 한겨레는 50억 원으로 창간에 성공했다. 보편화돼 있었던 납 활자 방식을 쓰지 않고, 일본의 한 벤처기업과 함께 소형 컴퓨터와 32비트 워크스테이션을 여러 대 이어붙이는 방식으로 슈퍼컴퓨터화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시스템을 갖추는 데 든 비용은 불과 15억 원이었다. 한겨레의 사례에서 우리는 새로운 신문을 만들겠다는 열정을 뒷받침했던 것은, 역시 기술 진보였음을 알 수 있다. 

 

 

‘가짜뉴스의 생성과 유통’에 대해 발표한 김완 한겨레 기자 <출처 - 리영희재단 유튜브 화면 갈무리> 

 

 

문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하는 것이다. 첨단 기술이 가짜뉴스를 만드는 데 이용되는 현실은 마치 통제받지 않은 야생마들이 마음대로 날뛰어 잘 가꿔놓은 채소밭을 엉망으로 만들어놓는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언론인이 진실 추구의 자세를 버리지 않고, 소비자가 꾸준히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통해 가짜뉴스를 선별하는 눈을 키운다면 결론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때 어쩌면 현재의 야생마가 규칙을 지키는 힘찬 경주마가 돼서 저널리즘의 새 장을 여는 데 기여할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놓지 않고 싶다. 다시 중요한 것은 리영희 선생이 강조했던 ‘진실 추구’의 정신이다.

 

 

 

 

 

 

 

 

1) https://www.youtube.com/user/rheeyeunghui

저자의 다른 미디어
  • 필자 : 김보근
  • 소속 :
  • 직함 :
  • 발행 : 2020-11-06
  • 조회수 : 7
  • 키워드 :
블로그 공유 트위터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