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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오리엔티드(mobile oriented). 모바일로 봐도 재미있는 콘텐츠가 아니라 모바일이라서 더 재미있는 콘텐츠가 우리의 목표입니다.”
카카오TV 서비스가 시작되기 몇 개월 전, TV에서 카카오TV로 이직하고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사람들은 이제 TV를 보지 않는다’는 말은 그 말 자체가 TV보다도 더 낡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매체에 대한 고민은 양가적이다. TV PD들은 ‘어떻게 TV를 보게 할 것인가?’하는 질문을 혹처럼 달고 다닌다. 그 대답은 ‘TV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하자!’와 ‘재미있는 콘텐츠는 사람들이 찾기 마련이니 매체에 얽매이지 말고 재미있는 걸 만들자!’의 두 갈래로 분화되곤 한다. 언뜻 생각하면 두 번째 대답이 맞는 것 같다. 이제 사람들이 보는 것은 방송이 아니라 콘텐츠다. ‘금요일 밤 9시 50분’에 TV 앞에 앉아있지 않아도 궁금하면 다시 찾아볼 수 있는 경로는 무수히 많다.
문제는 방송사의 수익 구조가 콘텐츠 사업자보다 플랫폼 사업자에 가깝다는 것이다. 콘텐츠 자체를 팔아서 수익을 남기는 구조가 아니라 콘텐츠를 미끼로 플랫폼에 유입된 시청자를 광고주에게 팔아 수익을 남기는 구조. 매스미디어가 시작된 이래로 유구하게 이어져 온 이 구조는 이제 수명을 다하고 있다. 그 끝을 알리는 경고음도 울린 지 이미 오래라 귀가 먹먹할 지경이다. 시청률 30%는 평균적으로 나오던 시대에 만들어진 구조가 시청률 평균이 3%인 시대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삐걱댈 수밖에 없다. ‘콘텐츠만 잘 만들면 사람들은 보기 마련’이란 말은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플랫폼 사업자인 방송사 입장에선 ‘본방’으로 보지 않는 이상 돈이 잘 안 된다. ‘TV만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고민은 MBC <백파더>와 같은 여러 종류의 대규모 생방송이나, 중계차를 활용한 MBC <편애중계> 같은 답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디지털 미디어보다 TV가 더 익숙한 고령층을 노린 트로트 열풍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잘 만들면 보기마련’의 ‘잘 만들면’도 기준이 너무 높아졌다. 사실 어지간하면 TV 콘텐츠는 재미있다. 수십 년 쌓인 제작 노하우가 어디 가겠는가. 별 이유 없이 TV를 틀어놓던 시대였다면 우연히 눈길을 주었다가 계속 보게 만들 만큼의 재미는 다들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이제 충분하지 않다. 볼 것이 너무 범람해 피로감마저 호소하는 시대에 재미만으로 ‘일부러 찾아보게’ 만들려면 그냥 잘 만드는 수준으로는 역부족이다. 심지어 잘 만들어진 콘텐츠라고 주목받는다는 보장도 없다. 본 사람들에게는 호평을 받아도 큰 반향 없이 흘러가는 경우도 많다.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재미만큼이나 그 눈길을 만날 기회를 얻는 운도 중요하다.
자유로운 디지털 플랫폼, 카카오TV
그런 면에서 카카오TV라는 플랫폼은 매력적으로 보였다. 이제 집에 TV가 없는 사람은 많아도 스마트폰이 없는 사람은 없다. 정확히는 광고주들의 관심사인 20~40대만큼은 그렇다. 그 모든 사람들의 스마트폰에 다른 건 없어도 카카오톡은 깔려 있다. 눈길을 만날 기회를 잡는데 조금은 더 유리한 것이다. 잘 만들기만 하면 말이다.
사실 디지털 플랫폼이 기존의 미디어보다 파급력이 더 커졌다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같은 시간에 전국 단위로 한 방에 콘텐츠가 송출되는 매스미디어에 비해, 디지털 콘텐츠의 소비는 산발적으로 이뤄진다. 어떤 사이트에서는 열풍을 일으키며 ‘이게 대세인 것도 모르는 지상파는 바보!’라고 원성이지만 바로 옆 사이트에서는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호흡이 짧고 빠른 디지털 시장에서 ‘대세’라고 할 만한 현상은 오히려 TV보다 더 드물게 일어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장면들 또한 여전히 다수가 TV 콘텐츠다. TV 수익의 근간인 ‘본방 시청’이 줄어들어 수익성이 떨어졌을 뿐 사람들은 계속해서 TV 콘텐츠를 어떤 식으로든 소비하고 있다. 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세상을 보게 되는 디지털 미디어와 달리 한 방에 쏟아붓는 매스미디어의 파급력은 앞으로도 당분간 유효할 것이다.

반면 디지털 플랫폼의 장점은 자유로움에 있다. ‘디지털 플랫폼의 상대적인 자유로움’이라고 하면 TV가 얽매여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부터 떠올릴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대중에게 동시다발적으로 송출되는 TV 콘텐츠에 공영성을 담보하는 심의는 꼭 필요하지만, 지나치게 경직된 시선으로 시대의 흐름과 괴리를 느낄 때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 문제로 답답해하는 TV 종사자들에게 디지털 플랫폼은 일종의 해방구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유튜브처럼 개인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영상물을 올리는 플랫폼이라면 모를까, 기업에서 제작하는 콘텐츠는 기업의 이미지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카카오는 전 세대를 아우르는 가족 기업의 이미지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TV보다 더 까다로운 자체 심의를 적용하기도 한다. 꼭 그것 때문이 아니어도 대형 포털에서 제공하는 동영상 서비스는 흡연 장면의 규제 등 지상파 심의와 큰 차이 없는 기준을 적용받으며, 유료서비스의 경우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사전심의까지 받아야 한다. TV 콘텐츠가 방송의 시의성을 고려해 사내 심의를 간소하게 거치고, 추후 문제가 될 경우 방심위의 사후심의가 이뤄지는 것을 생각하면 디지털 플랫폼이 훨씬 비효율적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 셈이다.
다만 윤리적 심의의 영역이 아니라 ‘광고 효과’를 규제하는 심의의 영역에서만큼은 훨씬 자유로운 것이 사실이다. 상호 언급, 브랜드 노출 등과 관련된 규제는 받지 않는다. 직장인 인생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회사의 모습을 다루겠다는, 참으로 말이 되는 기획으로 출발했던 MBC <구내식당> 같은 프로그램이 광고 효과에 대한 규제 때문에 방송 내내 주인공 회사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L기업’, ‘N기업’으로 부르던 모습은 웃지 못할 코미디였다.
반면 이러한 규제에서 자유로운 디지털 플랫폼이라서 나올 수 있었던 기획이 카카오TV의 주식 예능 <개미는 오늘도 뚠뚠>이다. 사실 <개미는 오늘도 뚠뚠>은 TV 예능의 문법을 따르는 콘텐츠이다. 모바일 플랫폼에 맞추어 세로 포맷으로 제공되고 있긴 하지만 화면을 위아래로 나눠 아래는 주식 차트 등의 자료를 보여주는 용도로 활용할 뿐, 촬영된 화면과 편집은 예의 TV로 보아도 큰 무리가 없다. 실제로 ‘너무 짧다, TV처럼 길게 보여 달라’는 시청자들의 여론이 자주 보인다. 20분 내외의 숏폼 콘텐츠로 보기엔 아쉬운 서사라는 뜻이다. 제작진들 또한 주식을 거래하는 과정과 전문가들의 설명까지 충실히 담아내기엔 숏폼의 짧은 분량이 다소 벅차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어쩌면 TV로 볼 때 더 편한 콘텐츠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예인들이 실제로 주식을 거래하며 종목명과 가격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장면을 TV에서 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 기업의 이름과 주가 현황까지 언급하니 문제의 소지가 될 심의 규정이 한둘이 아니다. 아니 그 전에 합법적인 주식 거래임에도 불구하고 불로소득과 사행성을 조장한다며 비난 여론에 휩싸였을 가능성이 크다. 제작 문법의 문제가 아니라 다룰 수 있는 소재의 측면에서, <개미는 오늘도 뚠뚠>은 디지털 플랫폼이라서 가능한 콘텐츠였다.

분량의 제한이 없다!
더욱더 실질적인 의미에서 디지털 플랫폼이 TV보다 자유로운 영역은 바로 ‘분량’이다. TV 콘텐츠는 편성 시간과 광고 판매량을 채우기 위해 초 단위까지 분량이 정해져 있다. EBS의 <지식채널e>처럼 더러 실험적인 숏폼 콘텐츠가 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TV 콘텐츠는 한 시간 내외의 방송 분량을 만들어내야 한다. 시청률이 잘 나오는 프로그램은 광고 판매를 늘리기 위해 2시간 가까이 편성이 늘어나기도 한다.
디지털 플랫폼에서는 글도 영상도 모든 것이 짧아야 한다는 말이 금과옥조처럼 여겨진 지 오래지만, 긴 호흡의 콘텐츠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도 분명히 있다. <개미는 오늘도 뚠뚠>이 짧다고 불평하는 여론이 많은 것처럼 어떤 이야기를 충분히 설명하고 보여주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있기 마련이다. 이런 긴 이야기를 향한 욕망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에서 한 시간 단위의 콘텐츠를 꾸준히 소비하고 있다. 인터넷에 범람하는 수많은 숏폼 콘텐츠들이 기존의 긴 호흡의 콘텐츠를 대체했다기보다는, 시장이 다양한 호흡의 콘텐츠로 확장됐다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다. 모바일에서 ‘짧음’을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오래 집중해서 보기 어려운 미디어라는 단점을 강조하는 셈이기도 하다.
하지만 짧은 콘텐츠는 그만큼 자유롭다. TV 콘텐츠는 기획 단계에서 아무리 매력적인 아이디어가 나와도 ‘그래서 이게 한 시간 분량이 나오는가?’에서 한 번 막히고, ‘정규 편성되면 매주 이어갈 수 있겠는가?’에서 또 한 번 막힌다. 수많은 아이디어가 이 두 질문 앞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져갔다. 어떤 인물이 매력적이어도 ‘한 시간, 매주’를 끌고 나갈 동력이 있다고 판단되지 않으면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급감한다. 어떤 마법 같은 순간을 연출할 수 있겠다는 기획이 나와도 그 매력적인 장면은 기껏해야 5분~10분 내외이다. 나머지 50분은 출연자들의 지난한 준비과정, 이런저런 사연들과 말장난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고 그만큼 프로그램은 색깔을 잃는다. 그러고 나면 남는 것은 세상의 무수히 많은 요리 종류만큼 뽑을 수 있는 먹방, 여행지만큼 뽑을 수 있는 여행, 사람 사연만큼 뽑을 수 있는 상담·토크, 노래의 수만큼 뽑을 수 있는 음악 쇼 같은 것들이다. 스테디셀러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카카오TV에는 분량의 제한이 없다. ‘20분 내외의 숏폼 콘텐츠’라는 가이드라인이 있긴 하지만 편성 시간만큼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이야기를 담기에 가장 적당한 시간이라고 PD가 판단한 만큼 만들면 된다. 연출자에게 굉장히 매력적인 지점이다. 분량이 적다고 억지로 내용을 채워야 할 일도, 분량이 넘쳐서 너무 재미있는 촬영분을 눈물을 머금고 버려야 할 일도 훨씬 적다. 물론 길게 만들면 그만큼 중간광고가 더 많이 붙기야 하겠지만.
<개미는 오늘도 뚠뚠>이 소재의 차원에서 ‘TV가 할 수 없는 것’을 다룬 기획이라면, <톡이나 할까?>는 방법의 차원에서 ‘모바일 미디어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기획이었다. TV로 보나 모바일로 보나 비디오 콘텐츠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TV 콘텐츠를 보기도 하고, 스마트TV의 커다란 화면으로 유튜브를 감상하기도 한다.
PD와 시청자 모두 새로운 매체에 적응 중!
카카오TV가 요구한 ‘모바일이라서 더 재미있는’ 콘텐츠는 그럼 어떤 것일까. 개인화된 장비, 스마트폰의 다양한 기능을 활용한 참여형(immersive) 콘텐츠들이 떠오르지만 여기서부터는 사실상 게임의 영역과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요구되는 기술의 수준도 복잡해진다. 여전히 비디오 콘텐츠는 린백(lean-back) 미디어의 영역에 속한다. 넋 놓고 보고 싶을 때 자꾸 뭘 시키면 귀찮기만 하다. 그럴 거면 게임을 하지.
가장 선명하게 떠오른 것은 ‘세로 프레임’이다. 세로 프레임이야말로 모바일이 TV와 가장 다를 수 있는 속성이다. 카카오TV 모닝의 다섯 개 프로그램을 만드는 PD들은 일단 ‘세로 프레임’을 선택하고 이 안에서 기획을 구체화해나갔다. 물론 미디어가 그 동안 가로 프레임을 고수해온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기술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다양한 피사체를 담기에 프레임은 가로로 넓은 편이 유리하다. 세로 프레임은 넓은 풍경을 담기에도, 공간을 설명하기에도, 여러 명의 인물을 담기에도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그 말은 한 명의 인물을 담는 데는 세로 프레임이 훨씬 매력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가장 오래된 프레임의 예술인 미술사를 보아도, 인물화를 담을 때만큼은 캔버스를 세로로 세웠다. 오죽하면 세로 프레임을 가리키는 영어 단어가 ‘portrait(초상화)’이겠는가. 한 명의 인물이 매력적으로 꽉 찬 화면, 세로로 메시지가 쌓이는 카카오톡의 인터페이스, 텍스트로 이뤄지는 대화인 만큼 짧은 시간 밀도 있게 구성할 수 있는 인터뷰. <톡이나 할까?>는 모바일 콘텐츠의 방법론적 고민에 대한 결과물이다. 카톡으로 주고받는 대화를 한 시간 동안 보긴 힘들었을 테니 TV였다면 이 기획도 아웃이다.
카카오TV의 제작진은 대부분 TV 콘텐츠 제작에 종사하던 이들이다. 때문에 오랫동안 익숙하게 해온 TV 콘텐츠 제작 방식을 이곳에서도 거의 동일하게 유지하고 있고 만드는 풍경도 거의 똑같다. 당연히 제작 스탭들도 고스란히 옮겨왔다. (<개미는 오늘도 뚠뚠> 1회에서 노홍철 씨가 낯익은 스탭들을 보며 ‘다 여기로 온 거냐’며 놀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서 제작 현장에서는 실제로 TV 매체에 있을 때와 큰 차이를 실감하지 못한다. 오히려 불편한 점도 있다. TV 매체가 자유롭게 활용하는 풍부한 IP와 자료도 없고, 저작권 협의나 심의허가, 계약 등의 절차를 간소화하기도 어렵다. 콘텐츠만 잘 만들어서 송출하기만 하면 그대로 감상으로 이어지는 TV와 달리 모바일 플랫폼은 애플리케이션의 UI, 디자인 같은 서비스가 얼마나 매끄러운지에 따라 감상 경험이 달라지는 외부 요인의 영향이 크다. 이건 PD의 영역이 아니니 PD들은 자신들의 콘텐츠가 다른 이의 손에 의해 감상 경험이 좌우되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 매체의 역사가 다른 만큼 경험이 쌓일수록 더 많은 것들이 개선될 것이고, 그 시간만큼 카카오TV도 기성 매체가 돼갈 것이다.
아직 카카오TV의 PD들은 새로운 매체에 적응해나가는 중이다. 그리고 그건 시청자들도 똑같다. 사실 우리는 모두 제작자임과 동시에 시청자이기도 하다. 우리 역시 우리가 몸담은 매체에 콘텐츠를 실어 보내면서, 동시에 쉼 없이 새로운 플랫폼의 콘텐츠를 소비한다. 모두에게 낯선 시대다. 모두가 TV의 위기를 말하지만,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동시에 새로운 매체 또한 끊임없이 변화와 적응을 거칠 것이다. 우리는 길고 짧은 콘텐츠를 모두 즐길 수 있다. TV와 새로운 매체가 더 풍성한 볼거리들을 만들어가길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