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상세
일인칭 시점의 액션캠을 통해 전해지는 리얼한 현장은 대리 체험을 하는 듯 극도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와 같은 독특한 방법으로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전달함으로써 시청자의 공감을 얻은 울산MBC <액션캠>. 지방 제작의 한계를 극복하고 확장과 유통이 가능한 콘텐츠로 한 걸음 나아간 <액션캠>의 제작 과정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늘 그렇듯 새로운 프로그램과 아이템에 목말라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를 반복하던 날이었다. 케케묵은 기획안과 휴대폰 메모장, 수첩 등을 뒤적이다 몇 해 전 들었던 오프라인 강의가 생각났다. 글로벌 콘텐츠 트렌드에 관련된 내용이었고 당시 주목하던 영상들이 기록된 페이지를 찾아냈다. 그중에 눈에 띄었던 한 장면이 있었다.
호주의 한 방송,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의 비하인드 컷이었다. 그런데 현장에 투입된 카메라맨이 보통의 방법과는 다르게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촬영하고 있었다. 멀찍이 떨어져 트라이포드를 정렬하고 정돈된 샷으로 촬영한 TV 뉴스용 화면이 아니었다. 흡사 거대한 화염에 맞서 사투를 벌이는 소방관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 비하인드 컷 다음에 소개된 송출용 영상, 이렇게 담긴 화면은 아니나다를까 생동감과 몰입감이 넘쳤다.
그 순간 머리를 스쳐간 한 가지 생각. 대한민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수십 개씩 거치해 놓은 고프로, 빅시아, 소니 액션캠과 같은 초소형 카메라. 이를 저 카메라맨에게 부착한다면? 아니, 저 불과 맞서 싸우고 있는 소방관의 헬멧에 직접 부착한다면? 더불어 전달하게 되는 일인칭의 시점이 VR 게임을 연상케하는 대리 체험과 극도의 몰입감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액션캠>은 그렇게 시작됐다.
<액션캠>의 기획 배경은 ‘지역, 권역을 넘어선 콘텐츠의 제작’이었다. 로컬리티의 구현이라는 지역 방송의 책무와 더불어 확장이 용이하고 유통, 판매가 가능한 콘텐츠 개발 또한 지역 방송 PD의 과제중의 하나다. 하지만 거대 자본을 앞세운 수도권 중심의 콘텐츠 제작 집단과 달리 몇백만 원 수준의 제작비와 소수의 인력만으로는 시청자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사로잡기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액션캠>은 이러한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B급 연예인과 촌스러운 세트로 어떻게든 ‘서울 프로그램’을 흉내 내는 것과는 달리 말 그대로 ‘살아있는’ 화면과 예측 불가능한 이야기라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지는 않을까. ‘일인칭 시점’과 ‘리얼한 현장’. 이 두 가지 바탕 아래 삶의 곳곳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들의 스토리가 가미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방송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국장과 사장의 허락을 바탕으로 기획안을 썼고 여러 노력 끝에 한국전파진흥협회(RAPA)의 제작지원금도 받게 됐다. 이제는 실무에 들어갈 시간. 작가진을 꾸렸고 대책 회의에 들어갔다. 문제는 ‘액션캠’을 빛나게 할 리얼함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관내 소방서 중 화재와 사건 사고가 가장 자주 일어난다는 곳에 며칠 동안 뻗치기를 하면 뭔가 터지긴 하겠지? 하지만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과 인력, 제작비는 충분한가? 설사 그런 환경이 갖춰진다 하더라도 우리가 만족할 만한 리얼한 사건이 일어날 확률은? 세팅되지 않고 계획적이지 않은 아이템을 향한 무조건적인 돌진은 무모하기까지 했다.
방향을 조금 바꿔 보기로 했다. 일단 영상의 공급이 얼마나 가능한지 시장 파악부터 해 보기로. 일상 혹은 업무 중에 액션캠을 부착해서 촬영하고 있는 집단이나 개인을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소방관과 해양경찰은 실제 업무에 액션캠을 활용하고 있었다. 전국의 소방본부에 모두 연락을 취했다. 프로그램 기획 의도를 설명했더니 자료들을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해양경찰은 언론사 배포를 위한 영상들을 업로드하는 웹하드를 공개해줬다. 그 외 경찰청, 산림청, 국세청, 철도청, 특별사법경찰대, 동물보호단체 등 가능성이 있는 기관들을 접촉하며 영상 제공의 가능성들을 하나씩 타진했다. 그렇게 확보한 취재처와 아이템들을 정리하니 최소 5회의 방송분은 준비가 됐다. 그렇게 준비된 첫 방송의 아이템 중 하나가 바로 경남 통영 해경의 홍도 다이버 구조 현장이다.
잊으려는 기억을 박제하려고 한 것은 아닌지
2020년 6월, 2명의 다이버가 경남 통영의 ‘홍도’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하다 높은 파도를 만나 해상 동굴에 고립됐다. 다행히 다이버들은 모두 구조됐지만 그 과정에서 해경 한 명이 순직하게 된 사고였다. 거센 바람과 파도를 견디기 힘들었던 다이버들은 폭 1.5m, 높이 6m의 좁은 동굴 속에서 몸을 숨기고 있었고 이를 구하기 위해 해양경찰 구조대는 12시간이 넘는 사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목숨을 잃게 된 꽃다운 나이의 젊은 구조대원.
다행스럽게도 통영 해경에서 다각도로 촬영해 둔 영상들이 많았다. 자료들을 모아 사건을 재구성하는 편집본을 완성했고 왕복 8시간의 험한 뱃길을 통해 현장 후속 취재까지 마쳤다. 첫 회 방송을 앞둔 사내 시사회에서 감동을 받았다는 많은 동료들의 말에 좋은 출발의 조짐과 자신감을 얻었다. 다행인지 2020년 8월, ‘이달의 PD상’을 받는 영광까지 누렸다.
첫 출발은 좋았지만 연출자에겐 또 하나의 고민이 더해진다. 극한의 상황과 치열한 삶의 현장을 마주하는 이들의 노력과 감동을 담아내겠다는 의도는 굳건하나, 누군가의 아픔과 상처를 마주해야만 하는 내적 갈등 역시 상존하기에 늘 마음이 편치 않다. 당시 홍도 다이버 구조 현장을 맡아 취재했던 김밀 PD의 수상 소감 중 일부에서도 그러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기억하지 않고 흘려버려야 하는 사건, 사고의 현장을 <액션캠>이 박제해서 잊힐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혹은 현장의 땀방울을 담는다는 명목으로 바쁜 구조대원들을 귀찮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풀리지 않는 윤리적, 도의적 고민을 안고 그분들을 찾아가서는 그저 감사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던 적도 여러 번입니다….”
인명피해 ‘0’의 기적
2020년 10월 8일 밤 23시 14분, 울산의 주상복합 건물 한 채가 불길에 휩싸였다. 엄청난 강풍이 동반된 이 날, 3층에서 발화된 불길은 순식간에 바람을 타고 33층 아파트 외벽으로 번졌다. 도심 한가운데 커다란 불기둥이 솟구치듯 건물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울산 시민은 물론이며 BBC 등 외신들도 주목을 한 이 화재는 마치 오래된 영화 <타워링>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인력 1,600명, 차량 264대 등 화재 진압을 위한 동원 규모도 엄청났던 이 화재가 더 놀라웠던 건 인명피해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방송 시작 두 달, 이젠 뼛속 깊이 <액션캠>의 DNA가 자리 잡고 있는 PD에게 이런 큰 사고를 접하고서 드는 생각은 바로 ‘저 현장에 액션캠이 들어가 있을까’이다. 피해를 입은 시민들껜 너무나 죄송하지만 우리가 접근하지 못하는 저 공간 속에 많은 사람과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숨어 있진 않을까. 프로그램을 만드는 연출자에겐 가혹하지만 숙명과도 같은 두뇌의 작동 기제일지 모른다.
지난 10월 8일 울산 33층 주상복합 건물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는 해외에서도 화제였다. <출처 – BBC 화면 갈무리>
당장 소방서에 전화해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기다리기로 했다. 목요일 밤늦게 일어난 화재는 금요일까지 이어졌고 홍보팀 관계자들 역시 수없이 쏟아지는 속보성 기사에 먼저 대응해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주말을 기다리고 난 후 울산소방본부 홍보팀으로부터 <액션캠> 영상 파일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우리에게 허락된 파일은 2개였다. 하나는 사건 다음 날 아침까지 불씨가 남아있던 건물의 화재 진압 현장. 또 하나는 화재 당일, 구조대원들이 30층 건물을 걸어 올라가 가족들을 무사히 구출해내는 장면. 미리 살펴본 영상은 꽤 흥미로웠고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여기에 현장 취재, 인터뷰 등을 곁들이면 1시간 특집을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먼저 잡혀 있던 아이템들을 한 주씩 뒤로 미루고 작가, 편집자, 자막 디자이너, 음악 감독 등이 빠듯한 일정을 조정해 무리한 일정을 소화해냈다.
건물 화재와 관련된 조사가 끝나지 않았고 피해 주민들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입장에서 사고를 부각시키고 들춰내는 것은 아닌지 많이 고민했다. 또한 노출 가능한 영상의 범위 등을 놓고도 소방관과 피해 주민들과의 협의와 조율을 통해 수위를 조절해냈다. 하지만 대형 사고 현장에서 ‘사람’을 먼저 구하려는 소방관들의 노력과 자신보다 주변을 먼저 생각한 ‘이웃집 히어로’들의 모습을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연출 스태프에게는 먼저였다.
진심이면 통한다고 했던가. 방송 직후, 감동적으로 시청했다는 후기들이 지역 맘카페에 올라왔고 후에 유튜브에 업로드 한 영상에도 수백 개의 진심어린 응원의 댓글들이 가득했다.
확장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
<액션캠>은 기본적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소방관, 해양경찰, 경찰들의 영상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꾸려나간다. 그러나 뻔하고 흔한 영상에 갇히지 않고 아이템의 확장을 위해 다양한 시도도 병행했다. 간호사의 몸에 액션캠을 부착해 대한민국 최초로 코로나19 음압병실(음압병동이 아닌 병실 내부)을 촬영해 간호사들의 노고와 환자들의 심리 상태를 생생하게 전달했다. 또한 소방관들의 화재 진압 현장과 훈련 과정 등의 24시간을 동행 취재했으며 동물 복지를 위한 ‘행동 풍부화’ 훈련을 담았던 동물원 사육사, 시각 장애인 안내견 도우미, 장애인 스포츠 댄스 선수들의 일인칭 시점도 보여줬다. 올해 여름 대한민국 전 국토를 뒤집어 놓은 물난리 현장과 동해 앞바다에 성행하는 불법 고래 포획 및 고래 사체 인양 수중 영상 등을 통해 뉴스 한 줄 너머에 있는 생생한 현장을 전달했다. 또한 잃어버린 반려묘들을 찾아주는 고양이 탐정,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다이버들의 세계, 사육 곰 학대 현장, 불법 개 번식장 등 보다 다양한 아이템을 시청자들에게 선보이고자 노력했다. 또한 일회성 지상파 방송에 그치지 않고 <액션캠> 유튜브 단독 채널을 만들어 3개월 만에 전체 조회수 120만 회, 구독자 수 5,500명 등 유의미한 기록도 차곡차곡 쌓아나가고 있다.

<액션캠>은 2021년 1월, 20회로 마지막 방송을 맞는다. 회당 500만 원의 외부 지원이 종료되고, 이후에 자체적으로 제작을 이어가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액션캠>의 시작부터 우리는 확장과 유통이 가능한 콘텐츠를 고민해 왔고 여전히 그 가능성에 대해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지난하고 힘든 과정 속에서 오늘도 양질의 콘텐츠 제작을 고민하고 있는 모든 지역 방송사 제작진들과 함께 내일도 한걸음 더 나아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늘도 '세상의 모든 액션'과 마주하며 애쓰고 있는 우리 연출 스탭들의 '뜨거운 액션'에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