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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제작기] 동아일보 오리지널 시리즈 <증발-갑자기 사라진 사람들>
취재기제작기 | 등록일 : 2020-12-07

불편한 진실을 꺼내는 일은 말 그대로 ‘불편한’ 일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이 세상을 조금씩 앞으로 떠밀기에 누군가는 꼭 해야만 하는 일이기도 하다. 갑자기 사라진 사람들을 추적해 불편한 진실을 내놓은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의 사연을 듣는다. 편집자 주

 

 

동아미디어그룹 뉴센테니얼본부가 히어로콘텐츠를 알리기 위해 제작한 스티커 <출처 - 동아미디어그룹 사보>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올해 5월 히어로콘텐츠팀을 출범시켰다. 동아미디어그룹의 뉴스룸 혁신 전략 보고서 〈레거시플러스〉에서 제안한 내용을 현실화시킨 조직이다. 

 

‘히어로콘텐츠’란 깊이 있는 취재와 참신한 그래픽, 동영상, 디지털 등을 결합해 독자들의 주목을 받는 복합 콘텐츠를 뜻한다. 이를 두고 〈레거시플러스〉 보고서는 “고발, 심층, 흥미, 유용, 새로움으로 나눌 수 있다”며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새롭고 유용한 정보를 시의적절하게 제공하거나 멀티미디어 스토리텔링 등을 통해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선사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출입처에서 나오는 대형 단독기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탐사 기법을 활용한 보도 역시 히어로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히어로콘텐츠팀은 특히 저널리즘의 가치와 경쟁력을 강화해 레거시 미디어의 ‘비전’을 제시하는 막중한 책임도 부여받았다. 이런 설명과 함께 히어로콘텐츠팀장을 맡으라는 통보를 받은 때가 5월 13일. 어디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했다. 하지만 무엇이든 해내야했다. 히어로콘텐츠팀의 첫 ‘스토리텔링’은 그렇게 시작됐다.

 

히어로콘텐츠팀의 시작

 

첫 회의가 열린 5월 14일. 팀원으로 배치된 기자 다섯 명과 처음으로 인사를 나눴다. 반은 설렌 표정, 반은 불안한 표정이었다. 지금부터 당장 뭘 할지 논의하는 건 불가능했고, 또 그래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각자의 출입처를 챙기며 매일매일 기사를 쓰던 후배들이 머리와 마음을 비우도록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게 먼저라고 판단했다.

 

“며칠 간 푹 쉬자. 휴식하며 멍을 때려도 좋고, 책을 읽거나 영화를 봐도 좋다. 그러면서 취재하고 싶은 아이템을 자연스럽게 찾아보자.” 

 

우리는 정말로 푹 쉬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고, 구립도서관 회원증을 끊어 모처럼 책 냄새도 맡았다. 미뤄 뒀던 휴가도 다녀왔다. 물론 문득문득 무엇을 취재할지 걱정이 생겼지만 의식적으로 외면했다.

 

며칠 후 무작정 비울 수는 없어서 공부를 시작했다. 미국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한 팀원이 세미나를 주관했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선진국 언론들이 어떤 탐사보도와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였는지 공유하고 토론했다. 깊은 취재와 독특하고도 파격적인 탐사 기법, 다양한 디지털 기술이 결합된 보도를 잇달아 접하며 팀원들 모두 신선한 자극을 받았다. “우리도 한번 제대로 만들어 보자”는 의지와 목표가 뚜렷해졌다.

 

세미나 때 공부한 히어로콘텐츠들은 표현 기법도 인상적이었지만, 저널리즘 본연의 가치에 집중해 밑바닥을 조명하거나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 것들이 많았다. 히어로콘텐츠팀 역시 기술이나 기법에 집착하지 않고 저널리즘 본연의 가치에 천착하기로 뜻을 모았다.


‘증발’을 선정하기까지

 

그렇게 마음을 비워 나가며 취재 아이템을 고민했다. 5월에도 부동산과 코로나19 문제가 심각했고 국회는 시끄러웠으며 인터넷에서는 각종 단독 기사가 매일 쏟아졌다. 먼저 부동산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고민해 봤다. ‘n번방’ 사건을 좀 더 취재해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고, 코로나19로 심각해진 노동시장 문제도 다각도로 고민해 봤다. 분야를 나눠 기초취재를 해봤지만 무릎을 탁 칠 만한 아이템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그때 다시 저널리즘 본연의 가치를 생각해 봤다. 우리가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깊이 탐사하지 못한 곳은 어디였을까. 팀원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킨 곳은 바로 ‘낮은 곳’이었다.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려면 우리 사회의 낮은 곳과 어두운 곳을 조명하는 ‘탐사 보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때 한 팀원이 ‘증발’이란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여러분들은 혹시 ‘증발’하고 싶을 때 없으세요? 스스로 사라진 사람들을 한번 취재해 보는 건 어떨까요. 일본은 이미 증발자들이 상당히 많다고 합니다.” 모든 팀원들의 눈이 번뜩였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보는 증발. 그러나 선뜻 시도해 보지 못하는 그 행위를 직접 실행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정말로 증발을 택했다면 그 이유와 사연은 무엇일까. 그 속에 우리가 찾는 ‘낮은 곳’의 삶이 응축돼 있지는 않을까.

 

증발이란 한 단어를 시작으로 브레인스토밍이 활발하게 오갔다. 팀원들은 “우리나라도 비슷한 사례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취재를 시작하자”고 입을 모았다. 개인적으로는 증발이란 용어가 저널리즘적으로 탁월하다고 생각했다. ‘실종’이나 ‘가출’ 같은 법률용어보다 파급력이 커보였다. 증발이란 행위와 실제 증발자들이 취재만 된다면 실종과는 전혀 다른 맥락과 사연이 녹아있을 것 같았다. 누구나 한 번 쯤 ‘증발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만큼 공감하는 독자도 많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일단 숫자가 필요했다. 자발적 실종자들이 실재하는지, 그렇다면 그 수는 증가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실종신고 자료를 잘 공개하지 않는 경찰청에 정보공개를 청구했고, 2015년 325명에 불과한 성인 실종신고 건수가 2019년 841건으로 급증했다는 통계를 입수했다. 이들 전부를 증발자로 볼 수는 없지만 증발자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확인한 것이다.

 

양극화와 고용난이 심각한 한국 사회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자발적 선택, 즉 ‘증발’일 확률이 높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들을 추적하면 한국 사회가 외면한 ‘낮은 곳’을 발견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경찰에 접수되는 건은 빙산의 일각이며 완벽히 증발해 사회와 단절된 사람들은 더 많다는 점에 착안해 다방면으로 자료를 수집했다. ‘증발-갑자기 사라진 사람들’ 기획은 그렇게 시작됐다. 취재팀이 구성된 지 약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의 첫 콘텐츠 <증발-갑자기 사라진 사람들> 1부 화면 ⓒ동아일보

 

 

다각도의 취재와 검증


증발자를 찾기 위해 도시 곳곳을 찾았다. 쪽방촌과 집창촌, 온라인 채팅방까지 탐문했지만 증발자들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느 순간 ‘접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시간만 허비할 수 없었다. “차라리 다른 아이템을 해 보고 싶다”고 선배들에게 토로할 때마다 돌아온 답은 “절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 봐”였다.

 

정말로 포기하지 않고 해 보니 실타래가 하나씩 풀렸다. 법원이 증발자들에게 ‘실종 선고’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것이다. 대법원 홈페이지에는 약 6,000명의 실종선고문이 누구나 열람이 가능토록 100% 공개돼 있었다. 증발자의 실체를 확인하고 이들의 삶을 탐사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였다. 하지만 한국 언론이 실종선고문을 취재한 적은 없었다.

 

판결문 6,000여 건을 분석해 실종 기간이 10년 이내인 226명을 추렸다. 실종선고문에 적힌 이름과 생년월일을 토대로 증발자들을 추적했지만 이 역시 쉽지 않았다. 가족들을 대리해 실종선고 사건을 맡은 변호사, 법무사는 물론이고 복지기관, 마을회관, 노인정, 근처 음식점까지 범위를 넓혀 증발자의 삶을 추적했다. 1회에 보도된 증발자(문 모 씨)와 그 누나의 사연은 이렇게 석 달에 걸친 추적 끝에 알려질 수 있었다. 4회에 등장한 실종선고자 부모 2명의 사연 역시 같은 방식으로 취재했다.

 

증발 현상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려면 실종선고문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증발자들을 다시 한번 찾아 나섰고, 한 제보자가 알려 준 고시텔에 접촉했다. 서울 용산구 한복판에 있는 이곳은 증발자들이 모여 사는 공간이었다. 고시텔 관계자들과 증발자들을 석 달간 접촉한 끝에 2회 주인공 네 명을 취재할 수 있었다.

 

물론 이들이 처음부터 취재에 적극 응했던 것은 아니다. 수차례 찾아가 취재 의도를 자세히 설명했다. 고시텔을 돕는 단체가 운영하는 무료 급식소에도 찾아갔다. 히어로콘텐츠를 만들려는 언론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노력이라 여겼다.

 

증발자 증언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검찰, 법원, 법률구조공단 등을 통한 ‘크로스 팩트체크’도 병행했다. 증발자의 부모, 누나, 학창 시절 친구, 전 직장 동료 등 접촉 가능한 인물을 가급적 많이 만나면서 퍼즐 조각을 맞춰 나갔다. 변호사를 통해 실종선고 소송 당시 서류를 입수하고 증발 행위를 둘러싼 사실관계도 확인했다. 증발 기획의 주인공은 엄연히 증발자지만 사실로 검증된 내용만을 보도하기 위해서다.

 

 

새로운 보도 방식을 고민한 끝에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맞춰 ‘멀티미디어 스토리텔링’ 사이트를 별도로 제작했다. <출처 - 인터랙티브 화면 갈무리>

 

 

동아미디어그룹 전체의 협업

 

취재가 끝난 후에는 ‘새로운 보도 방식’을 치열하게 고민했다. 증발의 이유와 사연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기 위해 기사는 내러티브 형식으로 작성했다. 숫자만으로는 독자의 마음을 끌 수 없다는 판단하에 각종 통계는 일부러 싣지 않았다. 

 

특히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맞춰 ‘멀티미디어 스토리텔링’ 사이트를 별도로 제작했다. 일단 취재팀이 형식과 레이아웃을 잡으면 동아닷컴의 제작팀이 멀티미디어 스토리텔링을 직접 제작하고 다시 취재팀 의견을 받아 수정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경영전략실과 뉴센테니얼본부 소속 팀원 두 명이 실무 제작을 주도하며 동아닷컴과의 ‘협업 창구’를 맡았다.

 

멀티미디어를 구현하는 작업에도 공을 들였다. 뉴스디자인팀 기자가 직접 그린 웹툰 일러스트와 사진부 기자가 촬영한 드론 영상을 삽입했다. 사진은 취재 단계부터 사진부와 협업해 지면용과 디지털용을 나눠 찍었다. 2회의 경우 네 명의 사연을 드라마틱하게 보여 주기 위해 고시텔의 방을 클릭하면 각 인물로 연결되는 인터랙티브 방식을 시도했다. 동아닷컴의 실무 제작팀은 취재팀의 제안과 구상을 적극 수용하며 혁신적인 기술을 구현했다. 디지털뉴스팀은 사전에 치밀한 전략을 세워 온라인 유통을 대폭 확대했다.

 

신문 지면도 파격적으로 만들어 보려고 노력했다. 한 달가량 편집부 기자와 협업하며 사전 제작 수준의 콘티를 만들었다. 온라인에서 활용한 웹툰 일러스트와 고시텔 그래픽도 지면에 적극 반영했다. QR코드를 기사 끝에 삽입해 손쉽게 ‘멀티미디어 스토리텔링’으로 연결되도록 했다. 편집국도 매회 두 면씩 지면을 허용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디지털뉴스팀은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취재 후기 영상까지 제작해 동아닷컴과, 포털사이트, 유튜브 등 온라인에 적극 선보였다.

 

증발 취재물을 질 높은 콘텐츠로 가공하기 위한 협업의 과정은 동아미디어그룹 전체의 협업이었던 셈이다. 참여자가 많은 만큼 일을 조정하고 진행시키는 과정이 지난하고 힘들 때도 있었다. 글자 폰트 같은 세부 요소를 두고도 수차례 조정을 해야 했다. 하지만 협업의 결과물이 나오고 콘텐츠의 질이 높아질 때마다 묘한 행복감을 얻었고, 구성원들 간 믿음도 단단해졌다.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호흡이자 시너지였다.

 

히어로콘텐츠팀원 모두 그동안 협업을 많이 해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자들이 그동안 했던 협업은 함께 호흡하며 시너지를 내는 것이 아니라 일을 잘게 쪼개만 놓은 ‘분업’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협업이란 이름 아래 분업에만 익숙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 반성했다. 레거시 미디어의 미래는 분업이 아닌 협업에 있음을 확인한 시간이기도 했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의 첫 콘텐츠인 <증발-갑자기 사라진 사람들> 시리즈가 저널리즘 본연의 가치를 100% 구현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멀티미디어 스토리텔링 역시 아직 갈 길이 멀다. 다만 한 가지 강조한다면 세상이 빠르게 진화하더라도 저널리즘 본연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증발-갑자기 사라진 사람들> 시리즈가 관심을 받은 건 제도권 밖 낮은 곳의 실태와 증발이라는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내서라고 생각한다. 히어로콘텐츠팀의 이런 경험들이 레거시 미디어의 밝은 비전을 만드는 발판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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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 유성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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