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동학개미운동’이란 말이 널리 알려졌다. 그리고 그 열풍의 중심에는 밀레니얼 세대라 불리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왜 그토록 주식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재테크에 큰 관심을 가질까. 젊은 기자들이 주축이 돼 그 해답을 찾아본 <2030 자낳세 보고서> 취재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국장의 주문은 단순했다. “청년들이 왜 이렇게까지 ‘돈돈돈’하는지 당사자인 청년 기자들이 직접 취재해 봐라.” 편집국 전체에 창간 기획 아이템을 공모했더니, 절반 가까이가 ‘돈’이나 ‘재테크’ 관련 아이템이었다고 한다. 밀레니얼 세대의 주식투자 열풍을 다룬 <2030 자낳세 보고서> 기획팀은 그렇게 첫발을 뗐다. 팀장을 포함한 팀원들 모두 20대 후반~30대 초반 5년 차 미만의 기자들로 구성됐다. 회사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기획팀이 꾸려졌던 지난해 9월은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으로 불리는 개인 투자자들의 주식 매입이 활발했던 시기다. 2020년 3월 코로나19로 인한 폭락장이 ‘V자 반등’을 시작하면서 카카오나 테슬라 같은 유명 성장주들의 가격도 무섭게 올랐다. 많게는 80% 이상의 수익을 낸 사람도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 전례 없는 투자 열풍의 중심축엔 단연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 출생자)가 있었다.
밀레니얼 세대의 주식 투자를 보는 기성세대의 눈엔 호기심과 우려가 뒤섞여 있다. ‘월급을 잘 모으면 서울에 아파트 한 채는 살 수 있었던 시대’를 살아온 이들에게 ‘월급만으로는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절박함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낯선 것이었다. 빚을 내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를 한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면 IMF 외환위기와 닷컴버블 같은 어두운 과거의 기억들이 자연스럽게 연상되기도 한다.
밀레니얼의 주식 투자 현상을 다룬 기존 기사들도 대부분 이러한 기성세대의 인식을 따르고 있다. “저금리 시대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피상적 분석을 내놓거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과 ‘빚투(빚내서 투자)’라는 신조어를 사용해 위험을 경고하는 식이다. 정작 이러한 기사들에 청년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풍성하지 않았다. 한두 줄짜리 문장 정도로 짧게 인용될 뿐이었다.
기존 기사와의 차별화를 위해 우리 팀이 세운 원칙은 명확했다. 첫째, 청년들의 목소리를 풍성하게 담을 것. 둘째, 이들의 선택에 대해 성급하게 가치평가를 내리지 않을 것. ‘돈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는 진보 언론의 관성을 깨면서도, 청년들의 주식 투자 현상에 담긴 의미와 맥락에 대한 비판적 시선은 잃지 말자는 ‘이중의 목표’를 세웠다.
청년들은 왜 주식 투자를 시작했고 구체적으로 언제 월급의 한계를 느꼈을까. 지금의 주식투자 열풍은 최소한의 투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중상위 계층만의 의제가 아닐까. 그렇다면 정부의 자본시장 정책에 특정 집단의 이해가 과잉 대표될 가능성은 없을까. 답을 찾으려면 청년들에게 직접 물어야 했다. 시리즈의 첫 회를 투자 경험이 있는 밀레니얼 청년 70명 인터뷰로 시작했던 이유다.
<2030 자낳세 보고서>는 오늘의 청년들이 왜 그토록 ‘돈’에 집착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당사자인 청년 기자들이 직접 취재했다. ⓒ권도현 경향신문 기자
경제적 자유, 불안정 노동의 다른 이름
‘청년’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고는 했지만, ‘청년’은 사회적으로 동질한 집단이 아니다. 나이가 같더라도 어떤 경제·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냐에 따라 삶의 양태는 크게 달라졌다. 그렇다면 누구를 ‘청년’으로 호명할 것인가. 이는 모든 청년 관련 기획이 필연적으로 직면하게 되는 딜레마다.
대표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수밖에 없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고졸과 대졸, 직장인과 자영업자와 학생, 정규직과 비정규직, 주식과 부동산 투자 경험, 서울(수도권)과 그 외 지역 등 다양한 인구통계학적 특성을 가진 인터뷰이를 섭외하기 위해 신경을 썼다. (취재 초반 기획팀에 파견 왔던 수습기자들의 도움이 컸다.)
그렇게 만난 청년들의 경험은 균일하지 않았다. 한 청년은 변동성이 큰 단타 매매를 일종의 ‘게임’처럼 소액으로 ‘즐긴다’고 했다. 다른 청년은 ‘2040년 은퇴’라는 확고한 목표를 세운 뒤 채권과 주식, 원자재 같은 서로 다른 자산군에 ‘분산투자’하며 안정적인 수익률을 실현하고 있었다. ‘영끌’과 ‘빚투’라는 말로 일반화하기에 이들의 선택은 꽤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공통점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주식투자를 하는 궁극적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많은 인터뷰이는 ‘경제적 자유’라는 키워드를 언급했다. 경제적 자유를 실현하고 싶다는 말은 지금 당장 경제적으로 쪼들린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일만으로는 내 삶을 책임질 수 없다”는 불안감에 가깝다. 안정적인 대기업에서 근속 연수가 짧은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후 월급 없이 생계를 이어갈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는 기획자, 의사 세계의 치열한 경쟁과 긴 노동시간에 답답함을 느끼다가 주식을 접하고 해방감을 느꼈다는 의사, 월급쟁이 삶에서 탈출하려다 자영업 쳇바퀴에 빠져버렸다는 편의점 점주….
청년들의 주식 투자 열풍은 노동환경의 변화와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고, 투자는 불안정한 노동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구명조끼’였다. 인터뷰를 통해 ‘발견’한 이 결론은 기획 전반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이 돼줬다.
청년들의 주식 투자 열풍은 노동환경의 변화와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었다. ⓒ권도현 경향신문 기자
청년 내부의 격차는 커지고 있다
1화에서 청년 70명의 심층 인터뷰로 질적 분석을 시도했다면, 2화에서는 이들이 전체 청년에서 어느정도의 비율을 차지하고, 어떤 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졌는지를 양적으로 분석하려 했다. 이를 위해 여론조사 업체 피앰아이(PMI)와 함께 구조화 설문(표본 1,000명)을 진행했다.
설문조사의 결론을 미리 하나로 정해두지는 않았다. 대신 우리가 세웠던 가설들을 최대한 많이 검증해볼 수 있도록 70여 개 문항을 만들었다. 투자 경험이나 투자를 하는 가장 큰 목적, 월소득과 자산 규모 같은 기본적인 질문은 물론 ‘대학에 가는 것은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이다’, ‘생계 걱정을 안해도 된다면 일을 그만하고 싶다’같이 노동과 교육에 대한 인식에 대한 질문도 포함했다. 이중 보도할 가치가 있는 ‘사실’을 찾아내기 위해 수많은 그래프를 그려가며 결과를 분석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 열 명 중 네 명은 주식 투자를 해본 경험이 있었다. 투자를 하는 1순위 목적은 역시 ‘주택 구입 자금 마련’(21.4%)이 컸다. 청년들이 투자하는 이유는 ‘월급만으론 내 집 마련이 어려워서’라는 정설(?)이 실증적으로 확인된 셈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했던 것은 청년층 내부의 분화였다. 스스로의 사회·경제적 계층을 ‘상’으로 인식할수록 투자 성공을 낙관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들은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금융 교육의 중요성을 학습했고,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이 서로 보완하는 개념임을 체화하며 자랐다. 대출에도 적극적이었다. 반면 ‘하’계층일수록 투자는 운이 좌우하는 영역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컸다. 자산뿐 아니라 희망까지 대물림되고 있는 것이다.
지면의 제약 때문에 기사에 비중 있게 소개되지는 못했던 흥미로운 부분들을 짚은 독자나 연구자들도 있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페이스북에 “월소득 500만 원이 넘는 청년이 12%나 됐는데 스스로를 상류층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1.4%에 불과하다”며 중산층의 재정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소득은 높지만 계층은 낮다고 답한 이른바 ‘개천용’ 그룹은 적극적 투자자(투자 경험 4개 이상) 비율이 전체 평균보다 높은 그룹이기도 했다.
사실 이러한 통계들은 줄글보다는 그래프 등으로 시각화해 보여주는 것이 더 적합하다. 지면 그래픽에 싣지 못한 통계들은 <자본주의가 낳은 세대, 밀레니얼(MZ)에게 돈과 투자를 묻다>, <나의 동학개미 유형은> 등 두 개의 별도 인터랙티브 페이지를 만들어 전달하고자 했다.
이번 기획은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한 취재가 아니라, 취재를 하면서 결론을 만들어간 기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권도현 경향신문 기자
투자는 공정하다는 어떤 낯선 생각
이번 기획은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여기에 맞춰 취재하는 기사가 아니라 취재를 하면서 결론을 만들어간 기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인터뷰이가 해준 생생한 발언 하나하나가 기사의 주요한 줄기가 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투자는 공정하다”는 명제다. 한 대학교 투자동아리 회장은 인터뷰 중 투자의 매력을 설명하면서 “투자는 매도도 매수도 내 선택이다. 금수저든 흙수저든 마찬가지기 때문에 오히려 공정하다”고 했다. 보도가 나가고 SNS상에서 “청년들의 주식투자 현상을 설명하는 데 무리하게 ‘공정 담론’을 갖다 붙였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는 인터뷰 전까지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투자가 공정하다’는 인식엔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기회의 평등 확보를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이 반영돼 있다. 하지만 100만 원이 있는 사람과 1억 원이 있는 사람이 같은 경기장에서 경쟁하는 이 시장에서, 우리는 투자를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온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한 윤리가 옳고 그르냐를 떠나, 우리 세대는 각자도생과 자기 책임의 윤리를 게임의 규칙으로 이미 받아들인 것이 아닐까. 나는 한 두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느끼곤 했다.
3회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인터뷰와 박진영 어피티 대표의 인터뷰는 이러한 청년 독자들에게 말을 걸고자 했던 우리 나름의 시도였다. 25년차 애널리스트인 김 센터장은 과거 사례들로 비춰볼 때 지금같이 ‘뭘 해도 되는 장’은 매우 예외적인 상황이며, 이러한 예외 상황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며 “시간을 이기는 돈만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9세 여성인 박 대표는 ‘돈알못’ 출신의 문과생에서 경제 전문 매체 어피티를 창업한 케이스다. 그는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는 차원에서 체계적인 돈 공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동시에 돈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각각 50매가 넘는 인터뷰였지만 주식 투자 자체를 부정적으로 그리지는 않으면서도, 각종 통계와 역사적 사실을 활용해 주식시장 과열 우려를 균형있게 전했다는 점에서 호응이 컸다.
기획팀에 합류하기 전까지 나는 주식 한 주 사본 적이 없었던 돈알못(돈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23살에 1억 원 가까이 모았다는 청년을 만났을 땐 “나만 바보처럼 살고 있구나”라는 위기감이 들기도 했다. 한 명의 청년 노동자인 나도 ‘월급만으로 노후를 보장받기 어려운 삶’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이러한 위기감이 실체보다 과장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청년들의 투자를 위험하다거나 비합리적이라고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의 청년들에게 투자가 ‘유일한 희망’이 아니라고 말하려면 적어도 주거는 불안하지 않게 해주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합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할 바탕을 제시해줘야 한다. 이번 기획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우리의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