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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현장] 30주년 맞은 PD수첩
미디어현장 | 등록일 : 2021-01-05

2020년은 MBC의 대표 시사 프로그램 <PD수첩>이 방송 30주년을 맞은 해다. ‘장수’가 쉽지 않은 우리나라 방송 현실에서 드문 사례이자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긴 세월을 버텨온 <PD수첩>의 궤적과 앞으로의 행보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1990년부터 방송을 시작한 MBC <PD수첩>  <출처 - MBC 방송 화면 갈무리>

 

 

 

<PD수첩>은 1987년 6월 항쟁의 산물이다. 내가 1986년에 MBC에 입사했을 때 PD들은 시사 문제를 다룰 수 없었다. 당시 큰 인기를 끌고 있던 <인간시대> 같은 휴먼 다큐나 <출발 새아침>처럼 주부를 대상으로 하는 아침 정보 프로그램 정도가 PD들이 세상사를 다룰 수 있는 장이었다. 사회문제를 다룰 자격증은 기자들에게만 주어졌다. 그런데 1987년 6월 항쟁으로 변화가 왔다. 6월 항쟁 이후 PD들이 만드는 시사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왔고 1990년에 이 시작됐다.

 

<PD수첩>은 당시 기자들의 저널리즘과는 필연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조건이 있었다. 출입처가 없다는 점에서 고급 정보 없이 맨땅에 헤딩하는 식이었고, 전통이 없으니 지켜야 할 규칙이나 대를 이어 배울 선배들이 없어 아마추어리즘이라는 비판도 꽤 들었다. 그러나 출입처가 없으니 눈치 볼 것 없이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었고, 배울 선배가 없으니 이어받을 나쁜 관행이나 불합리한 규칙이 없다는 측면도 있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영어 학습용으로 보던 미국 CBS의 <60분(60 minutes)>을 통해 취재 방법이나 언론인의 자세를 배웠다. <60분>의 언론인들이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방송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니 차장만 되면 책상에 앉아 후배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뉴스 조직의 관행이 문제로 느껴졌다. 작가와의 협업을 통해 PD 개인이 아닌 ‘팀’으로서 취재했다는 것도 강점이었다. PD들은 짧은 ‘복무’를 마치고 다른 프로그램으로 인사이동 됐지만 작가들은 오래 남아 노하우를 축적하고 전통을 만들었다.

 

디지털 시대, 탐사 저널리즘의 역할에 대한 고민

 

나는 이 30년을 버텨내고 나름의 성과를 얻은 것은, PD들에게 자율성이 비교적 많이 주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MBC의 PD 조직은 권위주의 시대에도 나름의 자율적인 문화가 있었는데 시사 프로그램을 만들면서도 그런 자율성이 중요한 원칙이 됐다. 기자 조직에서는 취재해 온 뉴스가 이런 저런 이유로 ‘킬(kill)’ 되는 것이 다반사였던 시대에 PD들은 일단 취재가 된 것을 방송하지 못하게 막는

것을 금기로 여겼다. 이 생긴 지 넉 달 만에 노태우 정부의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내용을 비판하는 <그래도 우리 농촌 이대로 둘 수 없다>라는 프로그램이 방송 연기되는 상황이 발생하자 PD들은 제작 거부에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군사정부의 때를 벗은 지 몇 년 지나지 않은 때 그런 발상을 했다는 것이 놀랍다. 결국 그 사태로 MBC 노조위원장과 사무국장이 해고되고 PD들이 거의 다 교체되는 격변을 겪었다. 그러나 거기에 굴하지 않고 노조를 중심으로 싸워서 1992년에는 50일간의 장기 파업으로 해고자들을 복귀시키고 단체협약의 공정방송조항을 강하게 만들었다.

 

MBC 노사 단체협약의 특징은 ‘국장책임제’라는 특별한 조항이 있다는 것이다. ‘방송의 실무적인 책임과 권한을 국장이 가진다’는 것인데 경영진이 방송 내용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이 조항이 있었기 때문에 이 황우석 사건 같은 매우 민감한 취재를 경영진에 보고하지 않고 장기간 할 수 있었다. 이처럼 을 이야기하자면 노동조합의 역할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MBC의 저널리즘을 지켜온 것은 회사가 아니라 노동조합이었다. 기자나 PD, 아나운서 등 방송의 전면에 나서는 이들뿐 아니라 엔지니어, 경영직군 등 무대 뒤에 있는 구성원들도 월급을 올리는 것보다 공정방송을 보장하는 단체협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신이 있었고 그것이 MBC 저널리즘을 지켜왔다. 그런 구성원 전체의 저항정신이 없었다면 PD 열명 남짓으로 구성되는 작은 조직인 은 쉽게 고립돼 고사했을 것이다.

 

그 정신이 가장 크게 발휘됐던 때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등장한 뒤부터 2012년 7월, 170일 파업이 끝날 때까지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내내 MBC 구성원들은 폭압적인 탄압을 하는 정권과 싸웠다. 그 정도의 탄압과 그에 맞선 끈질긴 저항은 언론사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사례가 아닐까 한다.

 

2017년 12월 MBC의 적폐 체제가 무너진 뒤 우리는 정상화를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뉴스와 을 다시 바로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은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정상궤도로 돌아왔다. PD수첩팀이 소속된 MBC 시사교양본부가 인적자원을 거의 집중하다시피 지원했고, 여러 화제작을 만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방송 환경이 변했다는 것도 절감해야 했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함께 시장 상황이 급변해 지상파방송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다. 언론 전반의 신뢰도까지 급전직하로 떨어졌다. 우리는 우리의 진정성에 대해 과거보다 훨씬 더 의문을 갖는 시청자들과 만났으며, 그들은 굳이 TV가 아니더라도 많은 정보 획득원을 갖고 있다. 때로는 그 정보원이 허위 정보와 음모론, 이를 통한 균열과 증오를 파는 곳이지만 시청자들은 오히려 그 정보를 더 신뢰하고 달콤하게 소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영방송의 탐사 저널리즘은 과연 어때야 하는지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탐사 저널리즘, 사회문제 해결 지향해야

 

나는 대한민국 사회에 신뢰라는 자원이 바닥난 상태라고 느끼고 있다. 광범위한 사회 구성원들이 참이라고 믿는 사실들이 과거보다 현저히 줄어들었다. 똑같은 사실을 두고 한쪽은 참이라고 하고, 반대편은 거짓이라고 한다. SNS를 기반으로 확산하는 가짜뉴스부터 부실한 팩트체크를 통해 양산된 오보까지, 뉴스 수용자들을 혼돈에 빠뜨리고, 때로는 사실과 다른 확신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기본적인 사실 확인을 할 수 있는 기성 언론조차도 아마도 상업적 이유에서 정파적인 입장에 오염된 뉴스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어떤 문제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광범위한 공감이 없으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현재와 같은 상태라면 우리 사회는 문제 해결 전망을 잃고 항구적인 갈등상태로 들어가지 않을까 우려가 크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공영방송이야말로 우리 사회 구성원 간에 신뢰가 얼어붙은 현실을 녹이고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는 주체가 아닌가, 또 그렇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역할을 하기 위해 공영방송은, 특히 공영방송의 탐사 저널리즘은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이 믿고 공감할 수 있는 정확한 사실들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용의 정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필요하다. 도 팩트체크 시스템을 강화했다고 알고 있는데 그런 노력을 계속해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사실을 획득하는 과정의 취재 윤리도 최고 수준으로 정립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의 불신은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태도가 부족한 데서 시작된다. 나는 사회 구성원 간에 대화가 촉진되고 정확한 사실을 중심으로 공감이 확산해 문제를 해결하려면 공영방송이 먼저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회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자세를 갖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이 사실과는 다른 것으로 보이는 주장을 하더라도 성급하게 틀렸다고 결론짓기보다 그들의 이야기를 끈기 있게 듣고 그것이 실제 사실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혹은 의외로 근거가 있는지, 마음을 연 정확한 취재를 통해 설명함으로써 사회적인 공감을 확산시킬 수 있다.

 

나는 또한 공영방송의 탐사 저널리즘이 사회문제를 ‘해결’해내는 저널리즘을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탐사 저널리즘이야말로 긴 시간을 들여 복잡한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 있는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저널리즘이다. PD수첩>을 예로 들면 45분 내용 중에서 2~3분 정도를 할애하면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할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특히 국회가 그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조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취재 과정에서 어떤 이슈에 대해 찬성 혹은 반대하는 의원들을 인터뷰하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해결되는 방향으로 상당한 자극을 줄 수 있다. 문제를 드러내는 데 멈추지 않고, 문제 해결 과정을 촉진하고 감시하는 저널리즘이 확산한다면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가 결국 대화를 통해 올바른 방향으로 풀리지 않을까 기대한다.


진실한 정보 제공자로서 공영방송의 필요성

 

그러나 공영방송의 저널리즘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내부적인 노력만으로는 어렵다. 공영방송을 둘러싼 두 가지 제도적인 문제 해결이 반드시 필요하다. 첫 번째는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민주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정권이 공영방송사의 사장을 결정할 수 있는 현재의 지배구조는 공영방송을 망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다. 공영방송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너무나 중요한 문제인데 현 정부와 정치권은 손을 놓고 있었다. 이제부터라도 본격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

 

두 번째는 공영방송의 재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 정부는 광고 체계, 방송발전기금 징수 등에서 공영방송을 종편 채널과 차별해 부담을 가중하는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이것은 공영방송의 생존 기반을 허무는 문제가 매우 큰 정책이다. 나는 수신료 문제를 포함해 공영방송의 재원 구조를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원구조를 불안정하게 해놓고 공영방송에 제 역할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을 바라는 일이다.

 

민주주의는 주권자인 시민들이 올바른 정보를 가질 수 있을 때 제대로 작동한다. 그러나 과연 한국 사회의 시민들이 과거보다 더 정확하고 진실한 정보를 향유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정확하고 진실한 정보의 제공자로서 공영방송의 저널리즘은 여전히, 아니 오히려 훨씬 더 중요해졌다. 공영방송 내부의 노력과 함께 우리 사회 전체가 공영방송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노력을 해야 할 때다.

 

그럼에도 요즘은 공영방송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목소리는 듣기 힘들어졌다. 전반적인 언론 신뢰도가 추락하면서 공영방송에 대한 기대도 약해졌다. 아예 TV를 보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니 공영방송을 지키기 위해 재원을 더 지원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희망적이지 않다. 최근 읽은 책에서 공영방송의 필요성에 대한 반가운 글귀를 발견했다. 조항제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쓴 《한국 언론의 공정성》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친다.

 

“공영방송은 ‘스스로 선택하는’ 인터넷의 시대에, 공동체의 안위에 꼭 필요하지만, 잘 찾지는 않는 정보나 남의 목소리를 ‘의도하지 않더라도(inadvertently, 텔레비전의 여러 프로그램을 보면서 꼭 원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지식, 정보 등을 얻을 때의 상황을 묘사하는 용어)’ 들을 수 있게 해 주는 몇 안 되는 계기다. 정치와 병행되면서 지극한 편향을 가진 신문, 남을 포용하기보다 자기 말하기 바쁜 인터넷, 젊은 층에 의해 진보적으로 활용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적 성격을 띠면서 냉소적 집단 행동의 위험성이 내재된 SNS, 이런 언론, 미디어에 의해 포위된 정당과 의회 등으로 이뤄진 한국적 환경은 공영방송의 역할을 매우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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