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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그대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유령 노동자들은 디지털 사회의 명암처럼 우리 사회에 가려져 있다. 인공지능이 발달할수록 늘어날 이들의 모습을 살펴보고, 향후 이들을 위해 어떤 대안이 마련돼야 할지 알아본다. 편집자 주

이른바 ‘유령 노동(ghost work)’은 우리가 자동화됐다고 생각하는 지능 기계 뒤에서 투명 인간처럼 일하는 노동자를 지칭한다. 즉, 주로 빅테크 기업들이 응용하는 인공지능 기술 장치의 보조 심부름꾼이자 허드렛일을 수행하는 이들이다. 이들 신생 노동자는 마치 산업 시대 생산 라인에서 자동화장치에 의존해 자동차를 조립하고 관리하는 노동자의 모습과 흡사한 모양을 띤다. 학문적으로 유령 노동이란 개념은, 언론정보학자 메리 그레이(Mary L. Gray)와 인공지능 연구자 시다스 수리(Siddharth Suri)가 공저한 《고스트워크》에 처음 등장했다.
이를테면, 유령 노동은 이미지 데이터를 직접 분류·입력해 코딩하고, 플랫폼으로 거래된 물건을 배송하고, 지능 기계의 알고리즘 오류를 잡는 등 지능 기계를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각종 단순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위태로운 인간 노동을 뜻한다. 유령 노동과 유사한 노동 유형으로는, ‘그림자 노동(shadow work)’이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림자 노동은 사상가 이반 일리치(Ivan Illich)의 오래된 개념으로, 여성이 수행하는 가사 노동이 대표적 사례다. 이는 자본주의 산업사회에서 재화와 서비스 생산에 있어 임금 노동과 함께 필수적인 보완물로 요구되는 ‘무급 노동’을 지칭한다. 즉 남성 위주 임금노동의 보완물로서 그림자 노동이 존재해왔다. 기실 자본주의 역사 이래 그림자 노동이 미치는 경제성장에 대한 절대적 기여에도 불구하고 이는 사회적으로 무시됐다. 비공식 경제처럼 주로 ‘집안 여성’ 혹은 ‘가정주부’의 영원한 일이자 ‘일하는 남성’을 위해 조력하는 무상(무보수)의 일로 취급됐다. 흥미롭게도 자본주의는 남성 위주의 공식 경제를 눈에 띄지 않게 떠받치는 여성의 그림자 노동을 짝패로 선택해 온 것과 흡사하게, 오늘날 인공지능 기계의 허드렛일에 인간 유령 노동을 폭넓게 배치하고 있다.
노동의 종말론 대 유령 노동의 현실
지난 몇 년간 해외 미래 노동 연구 보고서들은, 인공지능 기계에 의한 노동 대체 속도가 새로운 일자리 창출 속도보다 현저히 커서, 궁극에는 거의 모든 인간의 노동을 흡수해 자동 기계화할 것이란 관측을 내놨다. 게다가 몇 년 전부터는 아예 미 실리콘밸리 엘리트들과 서구 좌파 논객들 모두가 한목소리로 일명 ‘완전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Fully Automated Luxury Communism)’란 용어까지 내놓고 있다. ‘화려한 공산주의’는 이른바 자동화와 ‘탈’ 노동의 유토피아적 미래사회 전망이다. 논의의 핵심은, 인공지능 등 선진 기술로 인해 미래 인간은 임금 노동의 굴레로부터 해방되고 재화의 희소성을 풍요로 대체하고 우리 모두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얻고 여가를 즐기며 자아실현도 꾀하는 ‘탈노동’의 유토피아적 세계에 도달한다는 전망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들 ‘노동 종말’의 테제와 달리 현실에서는 인공지능 알고리즘 기술에 의존하는 ‘자동화’ 장치들이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빠르게 유령노동의 일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오늘날 인공지능의 알고리즘 자동화 현상이 단순히 ‘스마트공장’ 부문 내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에 크게 일조한다. 인공지능 기술이 단순히 공장에서 활용되는 것을 넘어, 인간 사회 보편의 응용 기술로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앞선 산업 시대의 공장 제조 기계의 자동화와 다른 범용 문법이 작동하고 있음을 뜻한다. 즉 인공지능이 사회 현실의 주요 판단과 행위를 위한 기술 설계로 굳어지면서, 가면 갈수록 현실에서 사회공학과 기술공학의 사리구별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자. 이미 직원 AI 면접, 지능형 무인점포, 플랫폼 배달 노동의 알고리즘 경영, 고객 소셜 데이터 신용 평가, 인공지능 스피커, 법원 판결 빅데이터 알고리즘, 인공지능 예술 창작, 무인자동 요리 및 안내 로봇 서비스, 언론 기사봇, ‘이루다’와 같은 소셜미디어 챗봇, 바둑 및 체스 인공지능 기사, 학술토론 인공지능, 빅데이터 물류 관리 및 유통 알고리즘 시스템, 유튜브나 넷플릭스 콘텐츠 취향 분석 및 예측 알고리즘, 소셜미디어의 맞춤형 광고 알고리즘, 댓글 자동생성 알고리즘, 소셜미디어 이용자 매칭 정치 캠페인 등등 인공지능 기술이 삶의 곳곳으로 파고들면서 사회적 명령과 판단의 자동 대행 효과를 구현하고 있다. 이들 모두는 현실의 많은 일을 자동화하면서도, 동시에 이를 보조하는 수많은 인간 유령 노동을 필요로 한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는, 이른바 ‘비대면(언택트)’ 자동화 무균 시장의 확장을 도모하고 있다. 세계 경제는 장기 침체일로에 있으나, 국내외 인공지능 자동화를 주도하는 빅테크들의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비대면 청정 시장은 주로 소비 영역에서 형성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대체로 비대면 소비 경제의 확장은, 유통, 물류, 배송, 고객 서비스 부문을 동원해야 가능하다. 달리 보면, 청정 소비는 부단히 손과 몸을 움직여 물질 자원을 연결하고 분류하고 나르는 플랫폼 중개형 유령 노동의 일을 확대한다. 예컨대, 지난 1년여 코로나19 국면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비대면 소비가 크게 늘어 배송업체는 두 배 이상의 매출 성장을 보이고 있다. 반면, 코로나19 생활고로 인한 택배와 배달 노동자 종사 인구가 크게 늘고, 물류창고 노동자와 택배 노동자와 배달 기사의 과로사 또한 크게 증가했다. 지난해 초 아마존닷컴은 급증하는 물류와 배송 업무로 인해 10만 명의 노동자를 신규 채용했다. 당시는 미국 실업수당 신청자 수가 3월 말 이래 약 2,600만 명을 넘던 시점이었다.
미국 전체 노동인구 숫자로만 보면, 아마존의 자동화된 물류 시스템 관리와 주문 배달의 증가로 인해 신규 고용 창출이 크게 늘어난 듯 보인다. 하지만, 숫자 너머 한 꺼풀 뒤집어보면 좀 다르다. 플랫폼 기술로 형성된 자원 유통 방식의 급격한 기술혁명과 맞물린 재난 시대 일감을 찾는 인간 노동을 값싼 심부름꾼들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의 내용은 안정된 정규직이라기보단 배송과 배달 업무 급증에 따른 비정규직 단기 임시고용이란 점을 기억해야 한다. 코로나19 국면 국내외 유통업체들의 물류창고 자동화와 연동된 불완전 노동 활용 방식은, 앞으로 비대면 인공지능 자동화 경제가 우리에게 선사할 정확한 민낯이라 볼 수 있다.
육체노동에서 비물질노동까지
유령 노동은 몸을 움직여 하는 노동뿐만 아니라 비물질노동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확대되는 추세다. 육체노동을 유령화하는 것 그 이상으로 데이터 세계 내 유령 노동 활용 또한 심각하다. 대표적으로는, 아마존닷컴이 온디멘드 인력 플랫폼으로 오래전부터 쓰고 있는 ‘메케니컬 터크(mechanical turk)’(줄여서 ‘엠터크’)를 꼽을 수 있다. 엠터크는 일손이 필요한 의뢰인이 원하는 다양한 업무를 플랫폼에 등록하면 구직자가 엠터크 플랫폼에 분 단위로 쪼개진 건당 단기 일자리를 얻는 수요 기반 온라인 노동시장이다. 엠터크를 통해 유령 노동자들은 마케팅 조사, 이미지 태깅 및 분류 등의 이미지 레이블링 작업, 데이터베이스 구축 작업, 온라인 상품 게시 내용 점검, 온라인 고객 응대 등을 주로 한다.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각 노동자는 살아있는 사람으로 관리되기보단 개별 특성이 사라진 아이디로 식별된다. 배당된 업무는 비숙련의 일인 경우가 많다. 각자가 독립된 시공간의 효율성 속에서 수행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린다. 서로 대면할 필요 없이 업무가 이뤄진다. 보수는 대체로 최저 임금이거나 그보다 낮은 수준에서 지급된다. 언제든 대체 가능한 인력이 무수히 존재한다. 많은 경우 실시간 일의 수행 과정이 데이터 기록으로 통제된다. 일은 자유롭지만 경력 개발 기회와는 단절된 일거리일 경우가 흔하다. 근본적으로, 비물질 유령 노동은 샛별배송 노동 형태만큼이나 누가 노동을 하고 있는지 누가 노동을 내게 제공했는지 알기 어렵고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구조적 특징을 갖고 있다.
우리의 경우, 2020년 7월 14일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이 발표되고 ‘디지털 뉴딜’의 청사진이 제시되면서 유령 노동의 위상 또한 크게 드러났다. 정부가 향후 5년간 총 39만 개의 ‘디지털 댐’ 일자리를 마련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데, 그 가운데 75%가 ‘데이터 레이블링’이란 4개월짜리 단기 계약의 비물질노동 일자리란 점이 흥미롭다. 마치 이는 정부가 ‘데이터댐’ 건설을 위해 공공취로형 디지털 근로를 마련하거나, 21세기형 ‘인형 눈알 붙이기’로 알려진 인공지능 기계 보조역인 유령 노동을 권하는 것과 같았다. 엠터크의 유령 노동자가 주로 고학력의 청년 노동자들에 집중됐던 것처럼, 우리의 국가 뉴딜형 일자리도 이와 흡사하게 안정되고 ‘양호한 일자리’와 거리가 먼, 청년 중심의 유령 노동자들이 포진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우려했던 인간 노동과 자동화 로봇 사이 대립이나 노동의 대체에 대한 철없는 낙관이나 아주 비관의 공포스런 전망과 달리, 현실주의적으로 보면 유령 노동과 자동화 로봇의 보완적 결합을 꾀하며 노동비용을 줄이면서도 노동강도를 극대화하려는 우리 현실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기업들은 값싼 노동 인력을 활용하면서도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대중화된 소비 시장을 활성화하는, 이른바 유령 노동과 지능 기계의 절충주의적인 노동 인력시장을 도모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인공지능 자동화 최종 단계의 역설
자동화 기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과 컴퓨터가 할 수 있는 일 사이의 틈”을 메꾸기 위해 임시직 유령 일자리를 끊임없이 만들 수밖에 없다. 자동화의 영역이 확대되는 여정을 살펴보자. 인간은 인공지능이 잘 수행하지 못하는 틈을 메꾸려 유령 노동의 임무를 매번 배정받고, 또다시 인공지능 개발자가 업그레이드된 지능 장치를 새롭게 또 고안하면 그 틈에 또 다른 유령 노동을 만들어내는 연쇄 고리를 만들어낸다. 실지 완전한 자동화 사회의 결승점에 다가간 듯싶으면 저 멀리 이동시킬 것이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사회적으로 범용화되고 위로부터의 인공지능이 강제될 때, 인간의 노동이 완전히 소멸하기보단 잉여가치의 추출을 위해 노동의 형식과 내용이 재배치되고 달라질 확률이 높다.
기술적으로 보더라도, 머신러닝 등 인공지능은 본질적으로 인간 두뇌의 특정 기능을 모방해 그 효율성을 극대화한 자동화 기술 모델이다. 궁극적으로 인간과 같은 자율적 선택과 판단을 내리는 자기완결성의 완전한 회로 구조를 갖지 못하고, 그것의 궁극적 실현 또한 불투명하다. 설사 인간에 가까운 지능 수준에 이르더라도, 지능 기계의 에너지 공급이나 물질대사를 돕기 위해서라도 유령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당분간 크게 증가할 것이다. 여기서 언급하는 ‘당분간’은 인공지능 자본주의의 역사로 보자면, 앞으로 100년이 될지, 1,000년이 될지 모를 인공지능 체제 아래 기식하는 고된 인간 노동의 우울한 미래일 수 있다. 근거 없는 미래학자들의 말을 빌려 ‘탈노동’과 ‘노동의 종말’을 손쉽게 점치는 일은, 인간의 산노동과 비물질노동이 자동화 지능 기계인 인공지능의 보조 역할로 전락해 미래에도 끈질기게 유지될 위태로운 유령 노동의 리얼리즘적 무게를 무시하는 처사다.
문제는 앞서 ‘당분간’이란 표현만큼, 자동화가 완수되는 ‘최종 단계’가 언젠가는 끝날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화려한 공산주의’는 지금의 기술 권력 아래서는 지속적으로 유예되고 미끄러진다. 《고스트워크》의 공저자들은 이를 ‘인공지능 자동화 최종단계의 역설’이라 부른다. 곧 인공지능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위로부터의 억압적 속성이 바뀌지 않는다면, 지능 기계에 예속된 채 플랫폼 노동, 남반구 임시직 노동, 여성의 그림자 노동 등이 거대한 유령 노동군으로 확대 재생산될 확률이 높다.
인공지능 알고리즘 자동화는 당장 우리를 임금노동의 굴레로부터 자유롭게 하기보단 정반대로 위태로운 노동에 들러붙어 더 노동의 질을 떨어뜨리는 쪽으로 작동할 공산이 크다. 인공지능 기술 변화와 자동화의 영향은 위태로운 산업예비군과 비정규직 노동, 특히 초단기 알바, 특수 고용직, 서비스 일용직, 단기 계약직, 인력시장 노동 등 다양한 임시직 노동을 흡수하며 유령 노동자를 크게 늘릴 확률이 높다. 결국, 동시대 유령 노동은 우리에게 숙명처럼 다가올 ‘노동의 종말’을 기다리기보단, 이질적으로 점점 나빠지고 위태로워진 기술 예속형 노동에 대한 대안을 우리 스스로 적극 마련하길 요청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