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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산업 성장의 초석을 놓은 포스코. 그러나 그 명성 뒤에는 노동자들의 희생과 지역 주민의 피해가 숨어 있었다. 이 사실이 보도된 후에도 침묵하던 포스코는 취재기자를 상대로 5,000만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했다. 쇳물 속에 녹아든 피와 눈물을 세상에 드러낸 포항MBC의 취재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포스코, 판도라 상자 열리나
“작업장에 분진과 쇳가루가 얼마나 날리는지 눈을 뜰 수 없었어요.”
“마스크도 없이 벤젠 같은 발암물질을 다 마셨죠”
직업성 암을 호소하는 포스코 퇴직 노동자들의 증언이다. 그들은 작업 현장에서 장기간 발암물질에 노출됐지만 포스코의 영향력에 압도돼 ‘직업병’이라는 말을 꺼내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제철소는 대부분의 생산 공정에서 노동자들이 발암물질에 노출돼 직업성 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여러 국제 연구 논문들도 노동자들의 증언을 입증했다. 사태의 심각성은 다큐 방송 직후 현실로 확인됐다. 방송 후 불과 한 달 만에 포스코 퇴직 노동자 10명이 직업성 암을 호소하며 집단으로 산재 신청을 했다. 반면 지난 10년간 포스코에서 직업성 암으로 산재 신청을 한 노동자는 네 명에 불과했다.
“맨날 병원 다니는 게 일인데 이거 너무 억울하잖아요. 이렇게 산다는 게”
“공해 저감할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니거든요. 결국은 기업의 이윤이 문제거든요”
포스코를 비롯한 포항 산단 주민들의 환경 피해는 ‘포스코 50년 역사’와 함께 해왔다. 포스코와 가장 가까운 포항시 남구 해도동 주민들은 수시로 날아드는 쇳가루 분진 탓에 환경성 질환을 호소하고 동네에는 암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그리고 “포항시민 13만여 명이 거주하는 8개 읍면동 지역이 오염 물질에 고노출되고 있다”는 환경부 연구 결과도 확인됐다. 해당 지역의 주민들은 아이를 데리고 계속 살아야 할지 불안해한다. 전문가들은 포스코를 비롯한 포항 산단의 영향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또 기업들은 규제와 처벌이 없으면 환경 설비에 많은 비용을 투자하지 않는다고 조언한다.
“포스코가 없으면 포항이 망한다 이런 사고방식이 팽배합니다”
“시장, 시의원, 국회의원 모두 포스코와 연관된 게 있는지”
포스코의 노동환경 문제에 대해선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 중앙정부 모두 미온적이다. 아니 ‘친포스코적’ 이다. 주민들이 수십 년간 환경 피해를 호소해왔지만 누구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대다수 언론도 포스코에 유리한 홍보성 기사는 쏟아내는 반면 노동환경과 관련한 비판 기사는 거의 쓰지 않는다. 다큐멘터리 방송 이후에도 침묵의 카르텔은 여전히 견고하다.

“포항MBC를 응원합니다”
방송 이후 시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2주 만에 유튜브 조회수가 2만 회를 넘어섰고 시민사회단체들의 지지와 응원 성명이 쇄도했다. 포스코의 제철소가 있는 포항과 광양에서는 시민 1,200여 명이 “포항MBC를 응원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인증사진을 찍은 뒤 온라인에서 공유하기도 했다. 시민들의 응원에 힘입어 방송은 포항MBC에서만 세 차례 방송했고, MBC 전국 편성으로도 방송했다. 그러나 대다수 언론 매체들은 방송에서 제기한 포스코의 노동환경 문제를 심층적으로 보도하지 않았다. 한편 전문가들은 제철소의 직업병과 환경 피해 사례는 국제적으로도 흔치 않다고 조언했다. 그래서 방송을 영문 번역판으로도 제작해 공유할 계획이다.
왜 포스코, 그리고 직업병인가
2019년 포스코는 시민노동단체가 선정한 최악의 살인 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에도 포스코에선 근무 중이던 노동자가 떨어지거나 기계에 끼여 숨지거나 다치는 사고가 비일비재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은 포스코의 무리한 작업 인력 감축과 노후된 설비 탓에 죽음의 행렬이 멈추지 않고 있다며 규탄 성명을 잇달아 발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은폐한 의혹까지 드러나 국정감사에서도 포스코에 대한 비난이 이어졌다. 그러나 안타까운 죽음의 행렬은 멈추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불과 한 달 사이에 다섯 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포스코는 시민들에게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고 구체적인 대책도 제시하지 않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바로 노동자들의 직업성 암이다. 과거 1970~80년대 포스코는 대한민국 산업 성장의 초석을 놓았지만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은 열악했다. 포스코뿐만 아니라 그 시기 우리 사회는 ‘직업병’이라는 말조차 낯선 어두운 시대를 관통했다. 일하다 병에 걸려도 당연한 걸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었다. 2019년 산재 사망자 2,020명 가운데 1,165명, 57%가 직업병으로 사망했다. 2017년부터 직업병 사망자가 산재사고 사망자를 앞질렀다. “일하다 죽거나 병에 걸려서는 안 된다”는 보편적 지성이 판도라의 상자에 갇혀 있던 직업병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 것이다. 유럽과 비교하면 늦긴 했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직업병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직업병 노동자들이 여전히 산재로 인정받지 못한 채 고통받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아직도 기업들은 ‘직업병’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들추고 싶지 않아 하고, 정부는 느슨한 규제를 통해 기업에 사실상의 면죄부를 주고 있다. 우리 사회는 ‘직업병을 인정하는 사회에서 기업과 정부가 치러야 할 비용’을 감당할 의사도, 그럴 준비도 돼 있지 않다. “일터에서 죽지 않기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사회적 화두가 된 대한민국에서 왜 ‘직업병’에 대해선 이토록 무관심한 걸까?” 이 질문에서 다큐멘터리는 출발했다. 그리고 해답은 포스코에 있었다.

간절함, 포스코의 영향력을 넘어서다
포스코 노동자들의 직업병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기획한 건 2019년 봄이다. 2018년부터 출입처를 포스코로 옮긴 뒤 포스코의 노동환경 문제를 지속적으로 취재해 보도해오던 차였다. 취재의 시작은 포스코 퇴직 노동자 가운데 암과 백혈병, 루게릭병 등에 걸린 사람이 적지 않다는 소문이었다. 포스코 직원들은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퇴직 후에도 포스코 출신이라는 걸 자랑스러워하고, 산재 사망 사고처럼 포스코의 잘못이 드러난 현안에 대해서도 좀처럼 언급하기를 꺼리는 분위기다. 이렇게 애사심이 강한 조직에서 나온 소문이니만큼, 분명 직업병의 실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금속노조 포스코지회와 함께 직업병 제보를 받은 결과, 포스코 퇴직 노동자 20명가량이 폐암과 백혈병, 루게릭병 등 직업성 의심 질환에 걸린 사실을 확인했다. 제작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 같았다. 대한민국 제조업을 대표하는 포스코에서 직업병 피해 제보자를 다수 확보했고 열악한 작업 환경과 직업병을 은폐한 정황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작은 시작부터 난항에 부딪혔다. 막상 방송 출연과 인터뷰를 요청하자 제보자들은 하나같이 손사래를 쳤다. “포스코의 직업병을 고발하는 다큐에 자신들이 출연하면 주변으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될 텐데 그걸 견딜 자신도 없고, 포스코와 맞선다는 자체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또 “포항에서 한 다리 건너면 포스코 관계자들인데 포스코와 척지면 포항에서 살기 힘들다”는 게 이유였다. 포스코의 영향력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포스코 직원뿐만 아니라 포항 시민의 상당수도 “포스코와 포항, 그리고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말할 수 없는 섬뜩함이 느껴졌다.
결국 방송 출연에 동의하는 제보자를 찾느라 봄이 지나가고 코로나19 사태가 겹치면서 제작은 지연됐다. 심지어 출연이 가능하다던 루게릭병 제보자의 경우, 갑자기 병세가 악화돼 숨졌다는 소식까지 전해왔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다섯 명의 출연자가 확정됐다. 봄에 시작한 제작은 여름이 끝나갈 무렵인 8월 말에야 첫 촬영을 시작했다.
제보자들의 증언은 충격적이었다. 포스코에서 40년 근무한 뒤 폐암에 걸려 시한부의 삶을 살았던 정원덕 씨의 기침 소리는 촬영 내내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회사가 시키는 대로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도 열심히 일하다 폐암에 걸렸는데, 회사가 직업병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이런 회사는 없어져야 한다”라는 인터뷰는 그의 유언이 되고 말았다. 방송 한 달 전 정원덕 씨는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직업병 노동자의 마지막은 너무나도 처참했다.
포스코와 불과 500m 거리에 있는 포항시 해도동. 이곳 주민들의 쇳가루 분진 피해는 포항 시민은 물론 방송을 본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렸다. 쇳가루 분진을 뒤집어쓴 주택과 암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주민들의 증언, 그리고 오래전부터 문제를 제기했지만 지방자치단체와 환경부 등 누구 하나 관심을 갖지 않는 답답한 현실은 과연 이곳이 2020년의 대한민국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사실 포항시 해도동의 쇳가루 분진과 주민들의 암 발병 실태는 2007년 포항MBC에서 이미 심층 보도한 적이 있었다. 방송 제작을 위해 13년 만에 다시 찾은 동네는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였다. 쇳가루 분진이 쌓이고 주민들은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주민들이 직접 작성했다는 35명의 암 환자 명단은 답답하고 억울한 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포스코를 비롯한 포항 산단 인근 8개 읍면동 지역에 사는 13만여 명의 주민이 산단 오염 물질에 고노출되고 있다”는 환경부 보고서는 주민들을 충격과 불안으로 몰아넣었다. 보고서를 직접 확인한 얼굴에는 걱정과 분노가 가득했다. “설마 했는데 이 정도로 심각한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당장 이사를 해야 하냐”며 울먹이기도 했다. “포스코가 자기 돈 벌려고 유해 물질을 배출하고 주민들은 환경성 질환에 걸려 고통을 받는데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는다. 이런 포항에는 희망이 없다”는 하소연에서는 절망이 깊게 배어 있었다. 주민들은 “부조리한 현실이 용인되는 배후에는 ‘침묵의 카르텔’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미 몸소 체득하고 있었다. 방송은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 언론으로 연결되는 ‘침묵의 카르텔’의 민낯을 카메라에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 그럼에도 누구도 반성하지 않았다. 카르텔은 여전히 견고하다.
포스코, 오만과 편견
방송 이후 포스코는 어떤 입장도 표명하지 않았다. 침묵의 카르텔에 동참한 감독기관인 경상북도와 경북도의회, 고용노동부, 환경부도 공식 입장이 없었다. 철저히 침묵했다. 입장문은 난데없이 한국 노총 소속의 포스코 노조에서 나왔다. “다큐가 왜곡과 악마의 편집으로 포스코 노동자의 자긍심을 상실시켰고, 포항을 살지 못할 도시로 이간질시켰다”며 “앞으로 포항에 대한 투자와 사회공헌 활동 일체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협박성 내용이었다. 포스코 노조는 이후에도 방송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포항MBC의 정당한 취재 활동까지 방해했다. 포스코 산재 사망 사고와 관련한 현장 취재를 물리력으로 가로막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작업 헬멧을 바닥에 내던지고 폭언도 서슴치 않았다. 포스코의 임원급 직원들은 당시 충돌 현장을 지켜보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포스코 노사의 이런 비상식적인 행태에 대해, 시민단체와 정치권, 언론계는 지역사회 전체를 상대로 한 협박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포항MBC는 간판 뉴스를 통해, “이번 다큐는 수십 년간 묻혀온 철강 노동자들의 직업병 실체를 드러내고, 누구든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우는 노동자를 위한 방송이다. 또 포스코는 성역이 아니라 언론의 상시적인 감시를 받아야 할 포항의 한 구성원이다”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후 한국기자협회와 방송기자연합회 등 언론기관과 대다수 언론사도 포스코 노조를 규탄하는 성명과 기사를 잇달아 냈다.
포스코 노조에 대한 비판 여론이 수그러들 즈음, 이번에는 포스코가 전면에 나섰다. 다큐멘터리 방송으로 인해 포스코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제작자인 기자 개인을 상대로 5,000만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방송 이후 침묵을 지켜오던 포스코의 첫 공식 대응이었다. 포스코는 소장에서 방송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포스코가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제작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주장과 포스코의 주장은 상반됐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사실관계의 검증이 필요했고 그러려면 포스코의 적극적인 인터뷰가 꼭 필요했다. 그러나 포스코는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들의 일방적인 주장이 담긴 서면 답변서를 우편으로 보내왔다. 결국 다큐멘터리에서는 반론권 차원에서 포스코 주장의 요지를 정리해 방송했다. 이런 사정을 차치하더라도 방송 내용에 문제가 있다면 입장문 발표나 언론 중재 등의 공식적인 절차를 밟는 것이 상식이지만 포스코는 ‘기자 개인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이라는 비상식을 선택했다. 세계적인 기업 포스코가 이렇게 비상식적으로 언론에 대응하는 저의는 과연 뭘까? 포스코가 그동안 보여준 일련의 행태에 비춰 보면 “포스코에 비판적인 기자의 취재 활동을 위축시키려는 의도”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시민단체와 환경단체, 금속노조와 언론노조 등은 잇따라 성명을 내고 “포스코의 소송 제기는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대기업의 횡포”라며 포스코를 강하게 규탄했다.
박병완 포항MBC 사장은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글을 통해, “이번 다큐 등을 통한 포항MBC의 포스코 문제 보도는 지역 언론의 존재 이유를 증명했다”며 언론을 좌지우지하려는 포스코의 행태에 대해 전사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아울러 기업의 이윤을 위해 시민의 안전이 희생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언론의 사명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