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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마르크스의 ‘계급투쟁’을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우리 대부분은 우리가 각자 위치에서 이 세계를 바라보며 살아가고 싸운다는 사실을 잘 안다. 고려대 교육방송국 학생들은 같은 학교 학생의 죽음을 지나치지 않았다. 왜 우리의 동기는, 친구는 죽음을 맞이해야 했는지 서투르지만 굳세게 탐구하고 찾아 나섰다. 편집자 주
지난해 겨울, 학교 교문 앞에서 홀로 피켓 시위를 하는 한 어머니가 있었다. 군에서 자살한 아들의 죽음을 호소하는 어머니 앞을 지나며 발걸음이 무거웠다. 학내 방송국에서 이 사안을 무심하게 지나칠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사전 취재를 시작했다. 고 최현진 학우는 군에서의 괴롭힘과 스트레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이미 사건은 기성 언론에서 단신 보도로 다뤄졌다. 더 자세한 뒷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당시 진행 중이던 재판 자료와 변사사건 조사기록 등을 넘겨받았다. 약 1,800쪽에 달하는 보고서였지만 쉬이 넘길 수 없는 내용이었다. 친구들과의 채팅 내용과 동기들의 진술이 그가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렸음을 생생히 보여 줬다.
도움받지 못하고 말라간 이들
최 학우 사망 이후 몇 개월 뒤 해당 부대의 한 부사관은 뒤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그의 부모님 역시 갑작스러운 아들의 죽음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같은 시기 우리는 육군 복무 중 휴가를 나와 자살한 조 일병에 대한 국민청원을 접했다. 유가족, 변호사, 주변인을 인터뷰하고 세 사람의 변사사건 기록을 읽으며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간부의 괴롭힘이나 업무 과중 등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다. 또 이는 심리 검사, 상담을 통해 표출됐지만 시정되지 않았다. 군의 억압된 구조 안에서 힘들어하며 결국 죽음에 다다른 세 사람의 이야기를 모아 그들의 ‘말라가는 죽음’을 알아보기로 했다.
인터뷰에 응한 정신과 전문의는 이들이 정신적인 가혹행위로 인해 분노와 절망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한다. 각종 검사에서 최 학우는 괴롭힘 피해, 괴롭힘 목격, 수면 문제에 대해 이상 반응을 보였다. 이에 실시한 부대 주임원사와의 면담에서 최 학우는 항목을 착각했다며 넘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군 동기에게는 장난스러운 분위기라 솔직하게 답해도 달라질 게 없을 것 같아 말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승급이 걸려 있어 솔직하게 응답하지 못한 부사관도, 주위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한 조 일병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죽음에 다다르기까지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 비슷한 피해 경험이 있는 이들도 같은 어려움을 호소했다. 친구, 동기, 선배들 그리고 학교 커뮤니티를 수소문해 간부에게 괴롭힘을 당한 학우를 만났다. 병영 생활 전문상담관을 찾아 피해사실을 호소했지만, 이는 결국 간부에게 보고돼 다시 질책을 당했다고 전했다.

제도 문제를 실증적으로 밝히기
그렇게 다수의 피해사례를 들으며 여전히 군의 스트레스 관리 제도에 허점이 있음을 느꼈다. 군인의 기본권 보장의 필요성과 정신건강 관리는 이미 <군인복무기본법>과 <군 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을 통해 법령으로 명시됐다. 이 법령이 현실에서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짚어내는 것이 문제였다. 이를 교차 검증하기 위해 먼저 책임 주체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시도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막막한 마음으로 관련 문헌 자료부터 읽기 시작했다. 병영 스트레스 관리와 군 자살사고와 관련해 접근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연구 자료를 찾아 공부했다. 국방 연구 자료들에도 자살 예방 노력이 군 전체 체계가 아닌 각 부대 지휘관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지휘관들의 전문지식은 부족했다.
뚜렷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관련 전문가들을 찾아나섰다. 인터뷰 요청은 대부분 거절로 돌아왔다. 매일 섭외를 거듭한 끝에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원, 군상담심리사, 병영 생활 전문상담관, 국가인권위원회 군 인권 조사관, 전 국방부 군 인권 자문위원 등을 만나 각기 그들이 바라보는 현상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덕분에 자살 예방 및 스트레스 관리의 체계부터 온전한 자살 방지에 대한 현실적인 어려움까지 고민할 수 있었다.
끝끝내 익명 요청을 강조했던 한 병영 생활 전문상담관이 기억에 남는다. 통화를 하며 2시간 가까이 현 제도의 문제를 토로했지만, 보도를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담을 수 없는 그의 이야기는 병영 생활 전문상담관이 계약직이라는 점을 들며 간접적으로나마 전달됐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목소리
학교 온라인 강의와 병행하며 도전한 첫 다큐멘터리의 취재 과정은 내내 미숙했다. 잘하고 있는 건지, 혹여 사실과 다른 내용이 나갈 경우 큰일이 벌어지지는 않을지 때로 막막함이 밀려왔고, 문득 불안했다. 군 자살이 새로운 이슈가 아닐 수 있다는 점도 고민 중 하나였다.
‘과거에 비하면 요즘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니지.’ 사람들은 군 문제를 대할 때 과거와 비교하는 습성이 있다. 최근 군에서의 정신적 피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도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 눈앞에 있는 피해자들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겪은 괴롭힘과 폭언은 앞날에 대한 희망을 꺾어놓을 만큼 절대적이었다.
무엇보다 제작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학생 사회에서 해당 사안에 목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 학우 사망 사건에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학생회는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TF를 꾸렸다. 조 일병이 속한 서울대 자연과학대 학생회도 카드 뉴스, 언론 제보를 통해 활동했다. 이에 공감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소중한 한 사람의 죽음에 1,000여 명 넘는 학우들이 자보에 연서했다. 이들의 호소를 다큐멘터리의 후반부에 담았다. 군 복무 당사자인 학생들의 생생한 목소리 덕분에 군 자살 이슈가 여전히 학생들에게는 절절한 문제임을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대학 언론은 존재하기에
고려대 교육방송국(KUBS)은 유튜브와 페이스북으로 방송을 송출하고 있다. 제작 과정에서 역량의 한계를 체감했다. 유가족처럼 우리를 기자로 바라봐주시는 분들이 있는 한편 세상 물정 모르는 학생으로만 취급하는 분들도 여럿 만났다. KUBS 두 명이 취재, 촬영, 편집을 모두 맡았다. 그렇게 완성한 23분 분량의 다큐멘터리는 유튜브를 통해 송출됐다. 조회 수는 1,000회 가량, 몇 안 되는 댓글에는 아들을 잃은 어머니들의 절절한 댓글들이 대부분이다.

대학 언론의 한계일까 하는 허무한 마음이 들 때쯤, 제9회 디지털저널리즘어워드 수상 소식이 전해졌다.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죄스러웠다. 최 학우의 안치실을 찾아 문제 해결에 함께하겠다고 기도를 드렸던 때가 떠올랐다. 해결된 바가 없는 것 같아 상의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어워드 수상을 통해 작품이 기사에 인용되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대학 언론이기에 할 수 있었던 이야기다. 일반 언론에 비해 더욱 자유로운 주제와 의견 개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가족들을 찾아온 기성 언론 중에서는 이내 취재를 포기한 곳도 있다고 한다. 군 문제 당사자인 학생으로서 주체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자 했다. 함께 목소리 내는 학생 사회를 조명했다. 대학 언론의 위기가 오랜기간 이야기되는 현실이지만 각자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영상으로 밝히고 싶었다. 학생 사회를 꾸리는 하나의 주체로서 지속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보안 문제로 민감한 주제임에도 목소리에 힘을 보태고자 협조해 준 모든 취재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취재의 정확성을 위해 아픈 기억을 되짚게 한 유가족들에게는 죄송스러웠지만, 오랜 취재기간이 끝날 때까지 협조해주신 덕에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 밖에도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밑바닥에서 시작하느라 도움을 청하기 위해 끈질기게 괴롭혔던 선배들도 많은 도움이 됐다.
언론인으로서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더 갈고 닦아 나가야겠다고 다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