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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당장 눈앞에 있지 않으면 믿으려 하지 않는다. <기후재앙 눈앞에 보다>는 VR과 입체 사운드 등 실감형 기술을 활용해 독자가 직접 기후재앙을 체험하도록 해 주목받고 있다. 시리즈의 기획부터 완성까지 뒷이야기를 들어 본다. 편집자 주

“기후위기를 ‘읽고’, ‘보는’ 차원을 넘어 독자·이용자가 직접 기후재앙의 현장을 체험하는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이고 싶다.” 중앙일보 창간 55주년 기획 <기후재앙 눈앞에 보다> 시리즈는 이런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360도 VR 영상, 입체 사운드 등 실감형 기술을 활용해 기존에 볼 수 없었던 혁신적인 저널리즘 콘텐츠 제작에 도전한 이유다.
특히 시민 상당수가 ‘나와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먼 미래의 일’로만 여기는 기후변화 이슈는 이런 체험형 콘텐츠에 가장 적합한 스토리라고 판단했다. 실제로 기후변화는 이제 기후 위기로 불릴 만큼 인류가 당장 직면한 현실적인 문제가 됐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20 세계 위험 보고서>를 통해 지구의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기상이변’을 지목했을 정도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도된 많은 기후변화 뉴스들은 추상적인 위험만을 경고해 온 게 사실이다. “2050년 혹은 2100년이 되면 지구가 뜨거워져서 인간이 살기 어려울 정도로 혹독한 환경이 될 것”이라는 뉴스는 기자 입장에서도 기시감이 들었다. 이번엔 기존의 저널리즘 문법에서 벗어난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시도하고 싶었다. 마침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실감형 콘텐츠 공모’를 한다는 소식에 기획안을 제출했고 선정됐다. 곧바로 특별취재팀(천권필·정종훈·김정연·남궁민·최연수·박건 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이 꾸려졌고, 국내외 취재를 포함해 기획안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최근 기후재앙의 징후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한라산과 제주 바다를 집중 취재하기로 했다. 해외의 경우, 다양한 기후재앙의 현장을 담기 위해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와 그린란드 빙하, 세계 최대 산호초 지대인 호주의 그레이트배리어리프에 가기로 했다.
언택트 취재를 시도하다
취재는 출발부터 예상치 못한 난관을 만났다. 바로 코로나19였다. 이 때문에 그린란드, 시베리아, 호주 등 당초 계획했던 해외 취재가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고민 끝에 취재팀은 ‘언택트(Untact) 취재’를 하기로 했다. 현지 전문가와 기관 등과 협력해 기후변화 현장을 취재하는 새로운 협업 방식이었다. 어찌 보면 탄소 배출량이 월등히 많은 항공기를 타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기획에 더 적합한 취재 방법이었다.
중앙일보의 해외 취재 경험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그린란드에 사는 유일한 한국인인 김인숙 씨, 다이버 겸 해양생물학자인 호주의 리처드 피츠패트릭(Richard Fitzpatrick) 등과 연락이 닿았고 취재에도 속도가 붙었다. 협의를 통해 취재 포인트를 정하고, 현지에서 촬영한 영상 소스를 보내면 국내에서 편집과 후반 작업을 거쳐 완성된 콘텐츠를 제작하기로 했다. 100건이 넘는 메일과 SNS를 통해 수많은 메시지가 오갔고, 클라우드와 항공운송 등을 통해 받은 영상의 용량은 2TB(2,048GB)가 넘었다.
그린란드에서는 20년 전보다 7개나 빠르게 녹고 있는 빙하 현장을 촬영하고, 썰매개마을 주민, 빙하 관광 가이드, 선장 등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이 느끼는 기후변화의 증언을 기록했다. 또, 세계 최대 산호초 지대인 호주 그레이트배리어리프가 백화현상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360도 카메라로 수중촬영했다. 리처드는 수중 마이크 장비를 착용하고 바다에 들어가 왜 기후변화로 산호가 죽어가고 있는지 직접 설명했다. 시베리아 취재는 지역 자체가 워낙 오지인 데다 영어도 잘 통하지 않은 탓에 촬영 업체를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38도에 이르는 기록적인 폭염의 영향으로 최악의 기후재난을 겪고 있는 시베리아 취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렵게 현지 촬영팀을 섭외했고, 헬기를 타고 산불 현장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다양한 시도를 통해 전 세계 기후변화의 현장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증언을 VR 영상 등으로 생생하게 담을 수 있었다.
국내 취재의 경우 날씨가 가장 큰 변수였다. 기후변화로 죽어가는 구상나무를 취재하려면 한라산 정상까지 올라가야 했지만, 고산지대다 보니 드론을 띄우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사전 답사를 위해 올라간 첫날에는 비가 워낙 많이 내려서 구상나무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중간에 내려와야 했다. 다행히 촬영팀과 올라간 날에는 날씨가 맑았고, 이날 제주도가 역대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할 정도로 더워서 지구 온난화가 한라산 구상나무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었다.
바다 역시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가진 취재기자가 360도 카메라를 들고 제주 다이버들과 함께 바닷속으로 직접 들어갔다. 이전에 제주도의 해양쓰레기 문제를 취재할 때 함께 다이빙을 했던 제주 다이버를 섭외했다. 제주에서 1만 회가 넘는 다이빙을 한 그는 제주 바다를 가장 오랫동안 지켜본 기후변화의 증인이었다. 그의 도움을 받아 온난화의 여파로 급격하게 변해 버린 제주 바다의 모습을 VR 영상으로 담을 수 있었다.

기사가 아닌 콘텐츠의 관점에서
실감형 콘텐츠 제작 과정도 취재만큼이나 난관이 많았다. 이전에 언론사에서 제작한 실감형 콘텐츠가 거의 없다 보니 모든 걸 맨땅에서 시작해야 했다. 미국과 유럽 등 해외 콘텐츠 사례를 연구하면서 조금씩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침 VR 영상에 관심이 많은 사내 콘텐츠 기획자(천상욱)가 합류하면서 제작에도 속도가 붙었다. 그는 기사가 아닌 콘텐츠의 관점에서 완성도를 높이고 이용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고자 다양한 시도를 했다. 특히 입체사운드를 도입해 이번 기획 시리즈에 담긴 묵직한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감정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다. 메인 영상은 웅장한 느낌의 곡을 택해 콘텐츠의 스케일을 표현했고, 각 지역의 스토리에 맞는 서정적이면서도 템포가 느린 음악을 고르는 등 청각적인 경험에도 중점을 뒀다. 또, 레이싱 드론 등 다양한 촬영 기법을 통해 기존의 저널리즘 콘텐츠에서 볼 수 없었던 몰입감 있는 영상을 제작했다. 이 과정에서 광고 영상 등 감각적인 영상 콘텐츠를 주로 제작해 온 외주제작사가 참여해 영상미와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실감형 콘텐츠 웹사이트1)는 가장 심혈을 기울여 제작했다. 스토리와 VR 영상, 그래픽, 사운드 등을 결합한 기후재앙 기획 시리즈의 최종 완성품이기 때문이다. 짧게 소비되는 기사와 달리 ‘에버그린 콘텐츠’로서 생명력을 길게 유지하려면 웹사이트의 완성도를 높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를 위해 중앙일보에서 다양한 인터렉티브 뉴스 콘텐츠를 제작해 온 웹 기획자(유선욱), 개발자(김진영·허정희), 디자이너(김수빈·임해든)들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들에게도 PC와 모바일 이용자들에게 최적화된 실감형 콘텐츠 웹사이트를 제작하는 건 새로운 도전이었다. 모바일 디바이스가 가진 한계로 인해 기술적으로도 적용이 쉽지 않았다. 수많은 테스트와 시행착오를 거쳤고, 한 달이 넘는 제작기간 끝에 비로소 완성도 높은 디지털 스페셜 콘텐츠를 내놓을 수 있었다.
이렇게 <기후재앙 눈앞에 보다>에는 취재기자뿐 아니라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영상PD 등 다양한 직군이 콘텐츠 제작에 참여했다. 이를 통해 고도화된 저널리즘 콘텐츠 제작을 위한 협업 모델을 구축할 수 있었다.

콘텐츠 혁신의 성과들
“언론사 콘텐츠가 특이점에 도달했다”
“혹시 사라질지 모를 제주 한라산의 구상나무를 360도로 기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네요. 한국에서도 이런 콘텐츠 계속 나오면 좋겠습니다”
9월 22일 중앙일보 창간일에 맞춰 디지털과 지면에 순차적으로 공개된 시리즈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관련 기사는 중앙일보 웹과 애플리케이션, 그리고 포털에서 3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1면에 소개된 ‘한라산 크리스마스의 죽음’ 기사는 온라인에서 75만 명이 읽었다. 유튜브에 올린 VR 영상도 30만 명 이상이 봤다. VR 영상과 입체 사운드, 스토리를 결합한 디지털 스페셜은 12만이 넘는 방문자 수를 기록했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소비되고 있다. 본 기획은 ‘한국디지털저널리즘 어워드-디지털스토리텔링 부문’과 ‘2020 과학언론상-올해의 의과학취재상’ 등을 수상하는 등 외부에서도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저널리즘 콘텐츠”라는 평가를 받았다.
<기후재앙 눈앞에 보다> 시리즈는 아직 끝난 게아니다. 어쩌면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 더 많은 이용자가 체험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콘텐츠로서의 생명력을 어떻게 키울지 고민해야 한다. 기후변화 뉴스를 ‘경험’할 수 있는 또 다른 스토리를 발굴해야 하는 것도 과제다.
취재팀은 그동안 <대기오염과 전쟁>2), <플라스틱 아일랜드>3) 시리즈를 통해 다양한 환경 이슈를 주제로 한 새로운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꾸준히 시도해 왔다. <기후재앙 눈앞에 보다> 시리즈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를 통해 미세먼지, 플라스틱, 기후변화 등 코로나19와 함께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이른바 ‘신데믹(syndemic)’의 위기를 혁신적인 저널리즘 방식으로 조명했다. 앞으로도 이용자들이 새로운 뉴스를 경험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저널리즘의 혁신을 이어 나갈 계획이다.
1) https://news.joins.com/Digitalspecial/434
2) https://news.joins.com/Digitalspecial/407
3) https://news.joins.com/digitalspecial/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