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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제작기] MBC <오느른>
취재기제작기 | 등록일 : 2021-03-09

전라북도 김제의 논 한가운데 4,500만 원짜리 폐가를 산 어느 PD의 영상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누구나 한 번은 꿈꾸지만 ‘밥벌이와 생계’의 압박 때문에 행동하지 못하는 시골 살이를 해낸 그에게 사람들은 공감을 보탠다. 무계획을 계획 삼아 ‘지상파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그의 제작기에 귀 기울인다. 편집자 주

 

 

MBC PD가 시골집을 구입해 리모델링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유튜브 <오느른> 시작 화면 <출처 - 유튜브 화면 갈무리>

 

 

유튜브 영상들을 보면 볼수록 궁지에 몰리는 느낌이었다. 야심차게 유튜브 오리지널 콘텐츠를 해보겠다고 부서까지 옮겼지만 ‘연출하지 않아서 오히려 생경한 재미를 주는 아마추어 일반인들의 동영상, 그들의 날것 같은 그림에서 오는 친숙함을 방송국의 제작 경력으로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1인 방송에 최적화된 플랫폼인 유튜브에서 방송국 PD가 플레이어가 되는 것이 맞는 것일까?’ 하는 근본적인 궁금증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 쌓여만 갔다.

 

다행인 걸까. 일 잘한다고 소문 난 프리랜서 작가, PD와 함께 준비하던 수억짜리 유튜브 예능 프로젝트가 무산되던 날, 몇 개월의 시간과 노력이 사라지는데 우울한 마음 한편에는 유튜브 콘텐츠에 자신이 없던 내가 안도하고 있음을 느꼈다. 어느새 새로운 도전이 가져다주는 짧은 열정과 설렘은 식어 버리고 입사 이래 처음으로 느끼는 무기력감에 답도 없는 질문만 되뇌었다.


무계획이 기획

 

‘굳이 무리할 필요 있나. 나도 적당히 할까.’

 

2020년, 지상파의 꽤 새로운 도전이라 평가받은 <오느른_오늘을 사는 어른들: 4,500만 원짜리 폐가를 샀습니다>는 이런 무력감과 회의감 속에서 태어났다. 사실 기획했다는 표현보다는 그저 잠시 연출자라는 생각을 버리고 한 명의 생활인으로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뿐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프로젝트 무산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 ‘그래 나도 PD이기 이전에 직장인인데, 나도 생활인인데’, ‘나도 30대 여성인데’, ‘콘텐츠 기획 말고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꼬리를 물었고, 어쩌면 이 질문이 유튜브 콘텐츠 기획의 시작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속된 말로 방송국 놈들, 누군가의 사연이나 어떠한 사건이든 일단 방송으로 만들 생각에 머리부터 굴리고 덜컥 카메라를 들이미는 놈들에 속한 내가 만약 그러지 않을 수 있다면, 방송국 놈들로 살지 않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을 하고 살까?

 

그러던 어느 날, 답답한 마음에 친구와 함께 시골 폐가를 구경하겠다며 도깨비 여행을 떠나고 있는 게 아닌가. ‘아, 진짜 다 때려치우고 이런 데 내려와서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 마음속에 가득한데, 내 마음속 수만 명의 내가 시끌시끌한 회사를 그만두라고, 저질러 버리라고 꼬시는 중인데, 다행히 단 한 명, 똘똘한 내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면, 한국의 직장인들 역시 절반쯤은 같은 생각이지 않을까? 잠깐만 미친척(?)하면, 아니, 잠깐만 미치면 모두가 공감할 만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다들 때려치우고 떠나고 싶지만 99%는 그럴 수 없으니까, 그만두는 1%도 아니고, 회사도 안 그만두고 떠날 수 있는 0.0001%의 누군가가 돼보자.’ 이런 내 생각을 회사에 처음 설득하는 과정은 어렵지 않았다.

 

“집도 내가 사고, 리모델링 비용도 내가 댄다. 손과 발만 나와도 콘텐츠가 되는 유튜브 세상이니 내가 출연한다. 고로 출연료도 따로 없다. 3개월 정도 해 보고 반응이 없으면 군말 없이 다시 서울로 올라오겠다. 어차피 프로젝트가 엎어지면서 생긴 내상으로 조금 쉬어야 하는데 조금 긴 휴가 보내신다고 생각하면 어떻겠느냐. 매주 콘텐츠로 생존 신고를 하겠다. 개인 맥북으로 편집하고, 회사 서버 이용하지 않으니 굳이 출퇴근도 필요 없고, 제작 중인 PD가 재택근무를 하기는 쉽지 않은데 나는 마침 집이 촬영장이 될 터이니,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새로운 유형의 재택근무라고 생각하시라. 1인 콘텐츠니 근태(근무 태도)는 콘텐츠의 질과 양으로 체크하시면 될 것.” 한 번 미친 척하자 생각하니 말이 청산유수였다.

 

 

<오느른>은 사실 기획했다기보다 그저 잠시 연출자라는 생각을 버리고 한 명의 생활인으로서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뿐이라고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출처 - 유튜브 화면 갈무리>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 배수의 진을 쳤다. “허락해주시지 않으셔도 좋다. 어차피 그 집은 내가 원해서 샀고, 내 돈으로 고칠 거니까. 그런데 이번에 이걸 못하면 저도 당분간은 조금 적당히 살고 싶어질 것 같다. (주말에 집 고쳐야 하니까요…)” 이미 부동산 계약서를 쓰고 온 내게 당시 이동희 센터장(현 D크리에이티브스튜디오 대표)은 “너 정말 미쳤구나”라고 했지만, 왜인지 칭찬처럼 들린 것은 기분 탓이었을까. 그렇게 브이로그 제작을 업무로 인정받고, <오느른>을 기획했다. 처음 기획안은 약간의 분노(?)로 휘갈겨 써 별 내용이 없다. 다만, 핵심은 이것, ‘무계획이 계획이다.’

 

솔직하고 담백하게, 자신 있게

 

일반인들이 디테일한 기획이나 구성도 없이 촬영하다가 우연히 터지는 상황들로 인기를 얻는 유튜브 세상에서 방송국 PD의 정형화된 기획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트렌드를 따라가다가는 항상 트렌드보다 한두 달 늦은 기획을 하게 된다. 그러니 이번에 나는 기획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시골 살이’를 찍기 위한 공부도, 준비도 없었다. 그저 한 명의 생활인으로서 내가 평소에 하고 싶던 것을 해보는 것뿐이다. 나같이 비현실적인 꿈과 로망만 있는 사람이 시골에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두고 보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그게 곧 이런 제작 환경에서 내가 만들 수 있는 최선의 세계관이다. 다만 방송국 PD로서가 아니라, 평범한 서울 여자 사람인 나로서 콘텐츠를 만들어보겠다는 게 다짐이었다.

 

처음 시작한 지 세 달 동안은 구독자가 채 1만 명이 안 됐다. 개인 유튜버치고는 빠른 성장이라 하지만, 그래도 MBC 소속 PD인데 1만 명이면 시청률로 치면 1%도 안 된다는 꼬리표가 3개월을 따라다녔다. 회사에서는 성적 압박을 받고 유튜브 세상 속에서는 내 정체성에 대한 대중들의 심판이 진행됐다. “너는 도대체 PD인가, 일반인인가.”, “이 콘텐츠는 MBC 기획인가, 네 개인 콘텐츠인가.”

 

유튜브 세상에서는 방송할 때 전혀 생각지 못한 사사로운 정보에 대한 미스 커뮤니케이션이 큰 파도가 돼 날 덮쳤다. 몇 개월 새에 처음 유튜브를 시작할 때의 오만함은 온데간데없고 제목의 키워드 하나, 댓글의 말투 하나 신경 쓰는 천생 유튜버가 돼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에는 한 편 대견하고, 한편 씁쓸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시골 살이’를 찍기 위한 공부도, 준비도 없었다. 그저 한 명의 생활인으로서 내가 평소에 하고 싶던 것을 해보는 것 뿐이다. <출처 - 유튜브 화면 갈무리>

 

 

특히 지난 9월, 인기 급상승 유튜버로 불과 2주만에 구독자가 20만이 늘었을 때에는 그 어느 때보다 씁쓸했다. 처음에는 회사에서 콘텐츠 광고를 돌렸나 하는 고마운 마음이 앞섰다. 앞에서는 냉정히 말해도 뒤에서 신경을 써 주고 있구나 싶어서였다. 그런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시청자들이 내 유튜브 채널을 시청하는 지속 시간이 늘어나자 유튜브 AI(알고리즘)가 내 채널을 좋은 콘텐츠로 판정 내려 대한민국 전 국민에게 추천 동영상으로 띄워주고 있었다. 기껏 한 땀 한 땀 손수 만들어서 유튜브 AI PD에게 시사를 받는 모양새다. 뉴미디어 시대란 이런 것이구나. 그러나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나는 이미 스스로를 유튜버라 선언하고 조회수에 영혼을 판 신세 아니던가. 민망하고 씁쓸해도 갈 데까지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PD=방송국 놈들=거짓말쟁이들’로 통하는 유튜브 세상에서, 만 10개월 만에 나는 PD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자, 여러분과 똑같은 생활인이고, 적어도 이 플랫폼에서는 방송을 만들 듯하지 않는 정직한 플레이어임을 시청자들에게 인지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판단한다. 여전히 새로 구독하는 사람들은 <오느른> 안에서 ‘오느른 PD’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지만 30여 개가 넘는 콘텐츠를 연재하면서 나름의 세계관이 공고해진 덕에 내가 실수만 하지 않으면 악플로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수준까지 올 수 있었다. 가장 애쓴 부분은 ‘솔직하고 담백하게, 그리고 자신 있게’였다.


지상파의 유튜브 진출, 그 이후의 방향성

 

이것이 지난 1년간 쉬지 않고 일하며 일하는 듯 쉬어 온 내가 일궈온 콘텐츠의 전부다. 나의 방송 커리어는 잠시 멈춤이고, 유튜브라는 자본주의가 판치는 뉴미디어 플랫폼에서 나는 ‘유튜버 오느른 PD’라는 부캐로 활동하며 방송 PD일 때에는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던 내 개인의 개성과 감성을 차별점으로 한 고퀄리티 영상을 제작해 돈(월급)을 벌고 있다. 가끔 기분이 울적할 때에는 나의 숨소리마저 모순의 극치로 느껴지며(모순은 이 평화롭고 느린 시골에서 굳이 유튜브를 하며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부터 시작한다), 기분이 좋을 때에는 ‘내 인생에 언제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껏 즐기리라 생각한다.

 

사실 이전에 없던 시도라며 이곳저곳에서 치켜세워 줄 때에는 민망해 고개를 들 수가 없다. PD가 그저 본인 하고 싶은 대로 해봤다고 해서, 개인 돈으로 집을 샀다고 해서 분에 넘치는 칭찬과 과한 평가를 듣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작년의 나는 생떼 쓰던 어린 PD였고, 개인의 회의감과 PD로서의 직업의식 그 중간 어딘가에서 헤매며 성장 중이었다. 다만, 내 개인의 일탈로 끝날 수 있었던 한 발화점을, 단 1%라도 우습게 보지 않고 콘텐츠의 가능성으로 알아봐 주고 기회를 준 MBC D크리에이티브스튜디오에 무한한 애정을 표현하고 싶다.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많은 방송국에 수많은 젊은 PD들이 얼마나 ‘열린 기회’에 목말라 있는지를.

 

어쩌면 지난 봄, 나는 정말 PD를 그만뒀을지도 모른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직업을 말이다. 그 슬픈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어 기뻤던 2020년이다. 쉬고 싶어 찾은 시골에서 나는 실제로 단 한 순간도 쉬지 않았지만 어느 때보다 충만한 에너지로 <오느른>에서만 할 수 있는 콘텐츠를 준비 중이다. 이제야, <오느른>이 지상파의 유튜브 진출 그 이후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지 평가받을 위치에 겨우 서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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