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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제작기] 경인일보 <백년가게>
취재기제작기 | 등록일 : 2021-04-08

기성 언론의 디지털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왔다. 어떤 주제를 어떻게 다뤄 구독자들을 만족시켜야 할지가 큰 숙제가 된 가운데, 경인일보는 보통 사람을 조명한 진정성 있는 이야기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지역신문이 지역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만나 기록한 진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수원의 한 전통시장에서 30년간 고깃집을 운영해 온 대표. 그는 아픈 몸을 이끌고 “옛날에 먹던 고기 맛이 생각나서 왔다”던 손님을 떠올리며 눈물을 보였다. <출처 - 필자 제공>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은 정치인만큼 언론에 자주 노출된다. 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기사 대부분은 부정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자영업은 코로나19, 최저임금 인상, 임대료 상승 등 외부 충격에 취약하면서도 그 피해가 즉각 나타나다 보니, 시장의 변화를 짚어야 하는 기자로서 좋은 취잿거리가 아닐 수 없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사연은 간혹 미담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배고픔을 호소하던 어느 형제에게 공짜 치킨을 내준 한 업주의 사연이 알려져 이른바 ‘돈쭐’이 났다고.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다룬 기사는 이처럼 대개 양극단에 있다. 이들이 처한 상황이든 경험한 사연이든 그게 무엇이든 ‘좋거나 나빠야’ 주목받을 수 있다. 당연히 양극단 사이, 그 중간 어딘가에 위치한 뜨뜻미지근한 이들의 말과 사연은 조명받기 힘들다. 경인일보 디지털미디어센터의 <백년가게> 콘텐츠는 이러한 양극단에서 벗어나 평범한 이야기를 전한다. 모토는 ‘보통 사람들이 일군 귀한 이야기’, 짠맛, 단맛, 신맛처럼 자극적인 맛은 분명 없다. 다만 설렁탕 국물 같은 진한 맛을 추구한다.


왜 백년가게였나

 

나는 사회부와 정치부를 거쳐 지난해 센터 내 디지털취재팀으로 발령받았다. 정확히는 자원했다. 당시 회사는 디지털 분야를 강화한다며 지원자를 공개 모집했다. 매일 신문을 만드는 일에 지쳐있던 터라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바람대로 발령은 받았는데, 무얼 해야 할지 막막했다. 막연한데, 욕심은 또 많았다. 기사도 쓰고 싶고, 영상도 만들고 싶었다. 지역신문의 매력도 살리고 싶었다. 이 모든 게 가능한 주제를 잡아야 했다.

 

구체적이진 않았지만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대신 화자가 평범하길 바랐다. 모순돼 보이나 ‘평범한 성공’을 거둔 사람으로부터 감동을 이끌어내고 싶었다. 이런 고민을 하던 즈음 경기지방중소벤처기업청에 출입하는 동기가 ‘백년가게’를 추천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 업체들이란다. 경기도·인천 지역에만 100곳이 넘었다. 일단 사람의 이야기를 전할 순 있겠다 싶었다.

 

백년가게로 지정된 업체 명단을 천천히 살폈다. 수십 년간 한결같은 모습으로 한자리를 지킨 다양한 업종의 가게들이 많았다. 일부 음식점을 제외하면 언론에 소개된 적도 거의 없었다. 이곳의 대표들은 큰 유명세를 얻지 않고도 경인 지역에서 오랜 기간 가게를 일군 사람들이었다. 회사 앞 식당가만 가도 코로나19로 폐업한 가게들이 속출하는 상황이었다. 이보다 앞서 IMF 등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가게를 지킨 선배 업주들의 사연을 코로나로 힘겨워하는 여러 자영업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젠 어떤 요리를 만들지 구상해야 했다. 백년가게로 재료는 마련됐다. 단순히 기사만 쓰는 단품 메뉴로 만들지, 기사에 영상물까지 더한 세트 메뉴로 구성할지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디지털 부서에 오니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알았다. 이 또한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왔다. 편집국에서처럼 혼자 취재해 기사는 쓸 수 있었겠지만 그럴 거였으면 부서를 옮긴 이유가 사라졌다. 영상물은 디지털콘텐츠팀과 협업하기로 했고, ‘배 기자의 백년가게’는 그렇게 막을 올렸다.

 

머리카락을 깎고, 얻어맞기도 하고

 

TV 프로그램 중에 tvN의 <유 퀴즈 온 더 블록>을 가장 좋아하는 나는 불행하게도 희극인 유재석도, 그렇다고 조세호도 될 수 없음을 곧 깨달았다. 백년가게 콘텐츠를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 썼던 점은 ‘볼 맛 나는’ 기사와 영상을 만드는 일이었다. 기사는 어찌어찌 쓰겠는데, 영상은 도무지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영상 제작을 맡은 콘텐츠팀의 가이드라인이 없었다면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일단 내지르고 봤다. 기획 당시에 영상 콘셉트는 영화 <백투더퓨처>에서 가져오기로 했다. 시간여행을 하는 박사가 돼 백년가게를 찾아다니는 콘셉트였다. 콘셉트가 정해지고 난 뒤 일단 흰 가발과 가운을 사비로 구입했다. 분장을 하고 망가지면 어떻게든 재밌는 영상이 나올 거라는 매우 단편적인 생각을 한 것이다. 역시나 이상과 현실은 딴판. 실제 분장을 하고 촬영까지 했지만 큰 재미가 없어 결국 ‘통편집’ 당했다. 백년가게 콘텐츠 초기 영상에 이런 모습이 한두 번쯤 등장하니 좌충우돌하는 기자의 몸짓을 찾아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을 것이다.

 

첫 번째로 소개한 백년가게는 안산에 위치한 바버숍이었다. 바버숍을 젊은 세대의 문화로만 여긴 터라 백년가게 타이틀이 붙은 바버숍은 왠지 생경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이곳의 대표는 오랜 기간 이발소를 운영했다. 몇 년 전부터 이용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는 점을 알아차리고, 관련 기술을 배워 새롭게 바버숍을 연 것이다. 물론 이런 사연을 단순 인터뷰 기사와 영상을 통해 선보일 순 있었겠지만 독자로 하여금 ‘새것’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적인 인터뷰 기사와 영상에서 탈피해야 했다.

 

바버숍 스타일로 머리카락을 잘라보기로 했다. 이발과 면도를 받으면서 대표와 인터뷰를 하면 조금 더 생동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다 싶었다. 촬영 날까지 머리카락과 수염을 억지로 기르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 역시나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어제까지 노트북 앞에 앉아 기사를 쓰던 사람이 별안간 카메라 앞에서 머리카락을 자르며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인터뷰의 깊이, 재미 등 모든 면에서 낙제점이었지만 절반의 성공이었다. 결과물이 어떻든 일단 출발선은 뛰쳐나가지 않았나.

 

 

바버숍에서 머리를 자르며 인터뷰하는 기자 <출처 - 필자 제공>

 

 

다음 촬영은 군포의 태권도장이었다. 이곳에선 치한 역할을 맡아 태권도 사범에게 뒤차기를 맞는 경험을 했다. 오산의 소머리설렁탕 가게에서는 먹방을 처음 해봤고, 평택의 맞춤 양복점에서는 작게나마 패션쇼를 하기도 했다. 조금이나마 독자의 흥미를 끌 수 있는 기사와 영상을 만들고자 했던 노력이 이어진 결과,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느덧 경인 지역 백년가게 아홉 곳을 소개했다.

 

나는 분명 엉성했지만 백년가게 대표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 하나하나에는 그들이 걸어온 지난 수십 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배어있을 만큼 귀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수원의 한 전통시장 안에서 30년간 고깃집을 운영하는 대표 부부를 만났을 때다. 이곳의 대표는 아픈 몸을 이끌고 “옛날에 먹던 고기 맛이 생각나서 왔다”던 손님을 떠올리며 눈물을 보였다. 이 가게뿐 아니라 지금까지 만난 백년가게 대표들은 하나같이 자기 일을 하면서 느끼는 보람을 이야기했다. 이 보람은 거창하지 않았다. 용인의 떡집 대표는 손님의 ‘맛있다’는 인사에, 성남의 고가구점 대표는 가구를 사고 만족하는 손님의 얼굴에서 행복함을 느낀다고 했다. 이런 마음을 오랜 기간 유지하는 게 ‘평범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비법이라면 비법이었던 셈이다.

 

지역신문과 디지털

 

디지털 부서에 온 지 수 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다. 지역신문을 포함한 대부분의 올드 미디어들이 디지털 전환을 추구하곤 있지만 정석이라고 불릴 만한 잘 닦인 길은 아직까지 없는 듯하다. 경인일보도 다른 매체들과 마찬가지로 신문 지면에서 탈피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정형화된 신문 지면에서 벗어나 그 내용과 방식에서 새로움을 더한 뉴스를 만들기 위함이다.

 

백년가게 콘텐츠는 부족하게나마 지역신문의 한정된 자원 속에서 해볼 수 있는 여러 도전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온라인 기사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지면에서 다루기 애매한 내용이어도 상관없다. 한정된 지면에 전부 담기 힘든 긴 호흡의 기사도 쓸 수 있다. 특히, 정형화된 신문 문법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 읽는 이들이 조금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신문에서보다 조금 더 유연한 문체로 기사를 써보는 시도도 하고 있다.

 

이런 시도는 큰 반향이라고 할 순 없지만 유의미한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신문 기사를 포함해 경인일보가 제작하는 콘텐츠에 다양성을 더하고 있는 동시에 독자들에게 노출되는 정도도 처음치곤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자극적인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오랜 기간 우리 곁을 지킨 소상공인들에게 지역사회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일 테다.

 

물론 이런 결과물에 비판적인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편집국을 벗어나 무얼 하고 있느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시도가 우스워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가끔 한다.

 

그래도 괜찮다. 인력과 자원이 부족한 지역신문이라서 안 될 거라고 지레 포기하기엔 지역신문이기 때문에 새롭게 만들어 보고 싶은 콘텐츠가 아직 많다. 백년가게는 그 시작점이다. 앞으로 경인일보 디지털미디어센터가 만들 다양한 콘텐츠에도 많은 관심 보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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