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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저널리즘 하우투 - 인터뷰 하우투
기획연재 | 등록일 : 2021-05-07

1.

날이 갈수록 ‘인터뷰 하우투’에 대한 요청이 많아지고 있어 신기한 생각이 듭니다. 인터뷰가 이렇게 인기 있는 장르였던가 싶어서요. 기자가 쓰는 글에는 수많은 영역이 있습니다. 심층 취재, 르포르타주, 스트레이트, 기획 시리즈 등등. 제가 만난 기자 중 많은 분이 특별히 ‘인터뷰’에 대한 애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곤 했습니다. 인터뷰는 매혹당한 사람이 다양한 물음표를 사용해 상대가 얼마나 가치 있는 인물인가를 공증해나가는 작업이죠. 구체적이고 치밀한 사랑입니다. 지금은 기자들뿐 아니라 유튜브 크리에이터, 소셜 관련 ‘업’에 종사하는 분들,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열정적인 보통 사람들도 ‘인터뷰 노하우’를 궁금해 합니다.

 

인터뷰가 뭐길래, 점점 더 ‘비대면 사회’, ‘혼자 사회’로 가는 이 시점에도 타인과 말을 섞고 감정을 섞고 지식을 섞는 인터뷰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져가는 걸까요. 인터뷰가 뭐길래, 사람들은 점점 더 좋은 인터뷰를 찾아 탐독하고 싶어하고, 깊은 인터뷰로 상호작용하고 싶어하며, 밀도 높은 인터뷰에서 정보를 얻길 원하는 걸까요. 어쩌면 인터뷰란 인간이 타인과 맺고 싶어 하는 ‘상호작용의 정점’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2.

20대 초년병 기자 시절 제가 인터뷰에 관심을 가졌던 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유명 인사를 만나는 공식적인 방법이 인터뷰였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유명한 사람과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싶은 욕망이 있지요. 지금도 여전히 당대의 유명 인사를(그가 연예인이건 정치인이건 지식인이건, 이슈 피플일수록 더더욱) 공적으로 만나 사적으로 점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터뷰는 타인의 부러움을 사는 매혹적인 만남의 장입니다.

 

두 번째는 제가 가진 남다른 ‘듣기력’ 때문입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제게 그러더군요. “당신을 만나면 비밀을 털어놓고 싶어진다”고요. 왜 인터뷰이들은 남들에게 하지 않은 이야기를 저에게 하는 걸까요? 그건 자연인인 김지수의 특성과 오랜 시간 훈련된 직업 인터뷰어로서의 제 모습이 내뿜는 어떤 총체적인 분위기와 관련된 것입니다.

 

3.

일단 자연인으로서 저는 살짝 가는 귀가 먹었고, 거절 공포가 있고, 그래서 타자에게 호감을 표현하는 최선의 자세가 ‘정성껏 듣기’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습니다. 일차적으로는 눈을 빛내며 듣는 자세, 예컨대 수업 시간에 집중해서 선생님 말씀을 듣던 초등학생 시절부터 훈련된 태도의 덕을 봤겠지요. ‘수업 태도가 좋다’는 말처럼 ‘인터뷰 태도가 좋다’는 말도 있을 법합니다. 그 바탕엔 ‘나는 당신을 존중합니다’, ‘당신의 말을 믿습니다’, ‘사소한 단서도 놓치지 않겠습니다’라는 지적 천진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기자는 언제든 ‘합리적 의심’을 칼처럼 꺼내 드는 자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이 ‘지적 천진성’이 의아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인터뷰어가 인터뷰이에게 보내야할 결정적 신호는 ‘저 사람은 전문가구나!’라는 느낌을 주는 ‘부드러운 장악’과 더불어 이러한 지적 천진성과 호기심입니다. 타인을 향한 지적 천진성과 호기심은 인터뷰를 매우 철학적인 ‘신뢰 게임’으로 격상시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4.

인터뷰이의 입장으로 들어가볼까요? 인간이 한 인간에게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건넨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경계 없이 속마음을 털어놓는 그 상태는 ‘상대가 신뢰할 만하다’는 본능적 신호입니다. ‘이 사람은 나를 왜곡하지 않겠구나’, ‘이 사람은 나를 판단하지 않겠구나’, ‘이 사람이라면 나를 수용하겠구나’, ‘ 이 사람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겠구나’, ‘이 사람이라면 나의 정체성을 찾아주겠구나’라는 다양한 방식의 신뢰의 신호들이 쌓인 결과가 바로 인터뷰라고 할 수 있지요.

 

인터뷰어는 인터뷰이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런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인터뷰어가 속한 매체가 매우 공신력 있는 미디어일 수도 있고, 인터뷰어가 해온 이전의 작업들이 매우 사려 깊은 톤앤매너를 유지하고 있을 수도 있지요. 가령 제가 진행하는 <김지수의 인터스텔라>는 칼럼이 지속돼온 6년여의 시간, 인물을 향한 심층적인 롱스토리, 최전선의 지식 인사이트, 그리고 무엇보다 선의에 기반한 인터뷰라는 컨셉으로 ‘크레딧’을 쌓아왔습니다. 그렇다면 인터뷰에서 상대를 향한 ‘믿음’은 언제부터 생기는 걸까요?

 

5.

그 믿음은 인터뷰이를 선정할 때부터 시작됩니다. 누구를 만나 인터뷰할 것인가는 그래서 매우 중요한 기준점이 됩니다. 내 인생의 스펙트럼은 ‘어떤 사람과 교류했는가’의 총합이고, 기자로서의 나의 정체성은 ‘누구를 만나 인터뷰해 왔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김지수의 인터스텔라>의 인터뷰이 또한 제가 세상을 보는 시선과 희망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에서 이어령까지, 김훈부터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까지, 배우 이병헌부터 감독 이병헌까지…. 그들은 학자, 배우, 예술가 등 직업의 경계를 넘어서 ‘깊은 눈으로 빅히스토리를 그리는 선지자’이자 ‘용기 있게 다름을 추구한 자기다움의 수혜자’들이지요. 기자로서 항상 레이더를 곧추세우고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이슈 피플과 그들에게서 내가 무엇을 취할 수 있을 것인가를 세밀하게 크로스체크해서 인터뷰이를 선정해야 합니다. ‘왜 만나야 하는가’ 라는 목적이 불분명하면, 인터뷰어는 물론이고 인터뷰이에게도 ‘불안’이 생깁니다. 그 불안이 ‘미지를 향한 흥분과 설렘’이 될 수도 있겠으나, 훈련된 인터뷰어만이 그 ‘미지’를 통제하고 소화할 수 있습니다.

 

6.

좋은 인터뷰란 어떤 형태일까요? 제가 매혹적이라고 느끼는 인터뷰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조화롭게 스며들어 있고, 그걸 지켜보는 독자가 그 다정한 침범을 함께하는 듯한 ‘참여’의 즐거움이 느껴지는 상태입니다. 내 인생, 내 감정, 내 경험을 겹쳐보면서요. 인터뷰어는 인터뷰이의 특별한 서사와 정보에 보통의 독자들이 감정이입할 수 있도록 익숙하고 보편적인 접점을 계속 만들어내야 합니다. 독자가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도록 만들어내는 것은 인터뷰어의 능력입니다. 따라서 인터뷰어는 자신이 생각하는 타깃 독자들을 자신의 몸 안에 흡수한 채, 그들의 입장에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드라마적인 긴장을 살린 채, 긴 호흡과 짧은 호흡을 유지하며 적절한 리듬을 타야 합니다. 인터뷰라고 하면 보통 단순한 문답처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영상이든 텍스트든 인터뷰 콘텐츠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발견하는 한 장면의 ‘좋은 다이얼로그’ 같은 것이어야 합니다. 좋은 다이얼로그는 누구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함께 ‘낳는’ 것입니다. 나의 질문과 너의 대답, 너의 지혜와 나의 지식이 무한한 환대 속에 섞이는 상태지요. 생각이 섞여서 더 높은 순도로 나아가는 그 광경은 굉장한 지적 황홀경을 선사합니다.

 

7.

무엇보다 좋은 인터뷰는 인터뷰어와 독자와 인터뷰이의 삼위일체에서 나옵니다. 믿음과 수용의 하모니이자 지적 호기심과 사랑의 텐션이지요. 저는 인터뷰를 하기 전에 《플라톤의 대화편》이나 인문학자 앤드루 하비(Andrew Harvey)가 피아니스트 시모어 번스타인(Seymour Bernstein)을 인터뷰한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 알랭 보스케(Alain Bosquet)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를 인터뷰한 《지식인은 돼지다, 고로 나는 최상의 돼지다》 혹은 책 한 권 전체가 괴팍한 소설가와 기자의 인터뷰로 돼 있는 아멜리 노통브(Amélie Nothomb)의 소설 《살인자의 건강법》을 읽습니다. 스릴 넘치는 대화가 주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제 몸속에 기억시키고 싶어서죠. 더불어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이 대화를 유리방 너머 독자나 관객이 지켜보고 있다는 상상을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저는 인터뷰를 녹음조차 하지 않습니다. 한 편의 연극처럼, 이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어떤 절박함이 더 진실한 상태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물론 최근엔 녹음을 하기 시작했지만, 인터뷰 이후 다시 녹음을 듣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8.

인터뷰어는 독자에게 신뢰를 위임받아 인터뷰이에게 질문합니다. 자, 그렇다면 처음 만나 무엇을 물을 것인가가 궁금해지겠지요. 첫 질문은 굉장히 중요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인터뷰는 일종의 즉흥적인 재즈 연주 같아서 기본 음계와 박자는 있지만, 서로의 반응에 따라 우리의 대화가 어디까지 나아갈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료 조사를 통해 인터뷰어에게 무엇을 얻어낼 것인지에 대한 밑그림은 그려두는 것이 좋습니다.

 

주도권을 확실히 쥐고 싶다면, 상대를 놀래킬만한 질문을 많이 준비할 수도 있습니다. 작가라면 그 사람의 문체에 관한 특별한 비평, 상대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독창적인 칭찬, 그 사람의 인생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어떤 패턴, 때로는 아무도 모르는 그의 정서적 사각지대까지…. 자료를 들여다보면, 대체로 한 사람의 인생은 파악이 됩니다.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보통 사람이든 유명 인사든, 인간은 자신을 숨기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파악되길 간절히 기다리고 있지요. 안타깝게도 그걸 애써서 탐색하려는 사람이 없을 뿐입니다. 그러니 사실 어마어마하게 멋있는 질문이건, 반대로 어이없을 만큼 멍청한 질문이건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상대를 알고자 하는 자세와 그걸 제대로 전하고 싶어하는 진정성만 있다면, 인터뷰어는 인터뷰이에게 모든 걸 낱낱이 얘기할 겁니다. 어쩌면 인터뷰의 신비는 질문을 던지고 받는 미묘한 행위 그 자체에 있습니다. 상대의 컨디션에 맞춰, 묻는 순서를 재배치하는 게 이 기술의 전부죠. 뭔가 우리가 깊은 결속 관계에 빠져있다는 착각이 들수록, 평범한 질문은 ‘맥락’ 속에 한층 더 드라마틱해집니다.

 

9.

세상은 기존의 지식과 관습을 ‘외우는 자’가 아니라 ‘질문하는 자’를 통해서 앞으로 나아갔지요. 기자의 인터뷰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가수 장기하나 영화감독 이길보라, 데이터과학자 송길영, 배우 유아인, 《팩트풀니스》의 안나 로슬링 뢴룬드(Anna Rosling Rönnlund)를 인터뷰하는 것을 통해 세상에 ‘이런 삶은 어떻습니까?’, ‘세상은 더 좋아지고 있나요?’, ‘당신의 열심은 무엇인가요?’ 등의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제가 하는 ‘인터스텔라 인터뷰’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거시적인 담론이지만, 그 톤앤매너는 엉뚱하기도 천진하기도 따뜻하기도 합니다. 상황에 따라 인물에 따라 첫 질문은 ‘신뢰란 무엇인가요?’, ‘에고란 무엇인가요?’, ‘프로토타입이란 뭐죠?’ 등 새로운 테마의 정의를 확실히 하는 것으로 시작하기도 하고, ‘기분이 어떠세요?’, ‘디자이너답게 입으셨군요!’ 등 상대의 긴장을 풀어주는 스몰토크로 시작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시작하든 질문은 큰 것과 작은 것, 크레센도 디크레센도 등의 호흡을 거쳐 모든 관문을 거쳐 가도록 설계하고 있습니다. 밀도 높은 지식으로 시작해도 인터뷰이의 정서와 컨디션으로 반드시 쉼표와 ‘개인화’ 과정을 거치고, 반대로 주변적인 것부터 두드려도 결국 ‘당신에게, 행복이란, 일이란 무엇인가요?’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과 만나게 합니다. 전체 질문은 20~30개 정도로 준비하고 그 안에서 바리에이션을 둡니다. 질문의 문장이 인터뷰이의 마음을 건드리도록 정밀하면서도 시적인 단어를 심어두면 좋습니다.

 

10.

현장에서 인터뷰를 하는 것과 인터뷰를 편집하고 쓰는 것은 또 완전히 다른 차원의 창조입니다. 인터뷰를 쓰는 것은 기자의 혹은 작가의 세계관에 따른 미학적인 행위입니다. 제 경우는 한 인물의 전체를 전지적 시점에서 다루는 바이오그래피 기법을 쓰고 있습니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적절한 거리, 코멘트의 범위, 문체의 온도, 배경 등을 설정해서 갑니다. 인터뷰이를 정밀하고 아름답게 그리기 위해, 독자를 현장에 끌어들이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긴 이야기를 축약해서 전달하기도 하고, 사소한 부분을 롱테이크로 확장하기도 하지요. 고백하자면 저는 저 자신을 좋아하는 편이 아닙니다. 저는 저 자신을 좋아하기 위한 방법으로 인터뷰를 합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은 한 인간이 가진 아름다움의 최대치를 볼 수 있고, 실망하지 않을 수 있고, 그렇게 우주적 범위로 상대를 포용하는 제가 자랑스러워지기 때문입니다.


11.

인터뷰할 때나, 쓸 때나 주의할 것은 ‘나도 너도 독자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누구도 다치면 안 된다’, ‘오해하면 안 된다’, ‘상처입히면 안 된다’라는 원칙은 사실 굉장히 어렵고 지키기 힘든 룰이지만, 그러한 평형을 지킬 때 인터뷰는 파워풀해집니다. 의도적으로 함정을 파서 상대의 신경을 건드리거나 도발하는 질문은 하지 않습니다. 가령 법정에서 ‘심리적 압박’을 가하거나 ‘유도 심문’을 통해 원치 않는 불리한 사실을 말하게 만드는 그런 기법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설사 인터뷰이가 스스로 그런 이야기를 했더라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은 노출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포용하는 ‘더 나은 언어’를 배우는 데 도움을 주는 것에 인터뷰의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는 갈등과 혐오를 조장하는 콘텐츠가 아니라 인간의 다양성과 공감을 위한 콘텐츠입니다. 그리하여 인터뷰어는 변화하는 세계에서 가장 앞에 선 채, 더 다양한 사람들과 마음과 경험과 언어를 섞어 스스로를 확장해야 합니다. 당신이 만나온 사람이 바로 당신의 전부입니다! 그렇게 당신도 한껏 넓어지고 벼려진 언어로 독자에게 ‘최선의 삶’을 제안해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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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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