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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제작기] MBC PD수첩 <'LH'와 투기 연대기>
취재기제작기 | 등록일 : 2021-05-07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LH 사태’. MBC < PD수첩 > 취재진은 뉴스가 보도하지 않은 이야기를 찾아 등기부등본을 들고 발로 뛰었다. LH 사태와 신도시 지정 및 국가 주도 개발이 이뤄질 때마다 반복되는 투기 실태와 의혹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신도시 지정이나 국가 주도의 부동산 개발이 있을 때마다 ‘부동산 범죄와의 전쟁’은 반복됐다LH와 투기 연대기 >는 과거 발생했던 문제들이 이번에도 ‘반복적으로’ 터진 것이라는 의미를 던지고 싶었다. <출처 – MBC < PD수첩 > 방송 화면 갈무리>

  

 

“부동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이번 LH 사태가 터진 이후 정세균 전 국무총리의 일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겁니다. 1989년의 1기 신도시, 2003년 추진된 2기 신도시에서도, 발표만 났다 하면 터지던 투기꾼들의 몰림과 부동산 가격 폭등, 그리고 여지없이 꾸려지던 합동수사본부의 출사표였던 것입니다. 신도시 지정 및 국가 주도의 부동산 개발이 있을 때마다 반복되던 ‘부동산 범죄와의 전쟁’을 보고 있었기에, 정 전 총리의 메시지가 새삼스럽게 들렸던 모양입니다. 이번 회차의 제목이었던 < LH와 투기 연대기 >는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1기, 2기 신도시 당시에도 발생한 문제들이 이번에도 ‘반복적으로’ 터진 것이라는 의미를 던지고 싶었습니다.

 

저희가 취재에 돌입할 당시인 3월 9일. 저희 역시도 뉴스를 통해 한창 LH 전·현직 직원들과 공무원, 국회의원 등 각종 공직자의 믿을 수 없는 투기 의혹에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뉴스에 미처 다 나오지 않은 이야기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처음 취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취재의 첫걸음은 등기부등본과의 전쟁이었습니다. 부동산 거래가 이뤄졌던 3기 신도시 안팎 수천 여건의 등기부등본이 필요했습니다. 다행히도 선제적으로 취재를 진행했던 보도국의 도움을 받아 상당수의 등기부등본을 공유받았습니다. 그 이후 해당 부동산들의 주소를 네이버·다음 포털의 지도에 찍어놓고 발로 뛰었습니다. 5개로 나뉜 취재팀은 이 지도와 등기부등본을 가지고 온 신도시 예정지구 안팎을 뒤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자연스레 공통분모가 등장합니다.

 

수상한 땅 거래, 신도시 안이 아니라 바깥에 더 많다?

 

고양시나 대구, 세종에서도 늘 공공기관의 발표는 이렇습니다. “개발 지구 내에는 해당 직원이 거래한 부동산은 없다.” 깨끗하고 공정한 직원들의 성품을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알겠으나 이런 발표를 저희 취재진은 쉽사리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첫째로는 차명으로 거래한 것까지 자체 조사로 잡아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상식적인 의문이었고, 둘째로는 개발지구 내의 땅 거래보다 심각한 것이 바로 바깥이나 인접 지역의 땅 거래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저희 제작진이 만난 전문가와 지역 공인중개사분들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한 것이 그렇습니다. 진짜 ‘꾼’들은 신도시 바깥에다 산다고 말입니다. 그 신도시 지정 지구 내부에는 받을 수 있는 것이 보상뿐이지만 바로 바깥이나, 인접 지역은 추후 자유롭게 매매도 가능하며 개발이익을 훨씬 더 크게 얻을 수 있다는 점이 그렇게 만든다고 합니다.

 

“생각해봐요. 내가 작게나마 상가를 올릴 수 있는 땅을 사. 근데 그 앞이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와. 그러면 이 땅의 가치가 얼마겠어요?”

 

심지어는 이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취재 말미에나마 마음을 열어줬던 한 지역 공인중개사께서 은밀하게 연락해온 사례인데요. 신도시 예정 지구 바깥이지만 개발이익을 노리고 맹지를 산 케이스가 아닌, ‘신도시와 서울을 잇는 도로와 터널이 뚫릴만한 곳에 땅을 샀던 사례’입니다. 결국 취재 끝에 그 수상한 땅을 거래했던 관계자들이 경찰 조사를 받는다는 것까지만 확인됐습니다. 정말 기상천외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국가에 그 토지가 귀속돼 지번 정리를 하는 도중에 발견했기 때문인지, 등기부등본상에 해당 지번의 내역이 조회가 안 됐던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빠져나갈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닐 테지요.

 

 

취재 과정에서 당장 우리나라에, 개발에서 자유로운 땅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8개의 3기 신도시 예정 지역과 서울의 재정비 촉진 지구, 각종 혁신도시, 테크노밸리, OO산단 등. 이번 취재를 수도권의 신도시들에만 국한하지 않고 넓힌 이유다. <출처 – MBC < PD수첩 > 방송 화면 갈무리>

  

 

“그 양반 그럴(?) 사람 아니야”, 핑계로 가득 찬 땅의 역사

 

취재하러 다니며 우리 제작진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이겁니다. “내가 그 양반 잘 아는데, 그분 이런(LH 직원들처럼 투기하는) 분 아니야.” 그러면 저희가 묻습니다. 농지인데 왜 농사도 짓지 않으신 거냐고, 그동안 뭐하셨냐고. 그러면 정말 많은 경우의 대답이 이렇습니다. “그 양반이 2년 전부터 몸이 안 좋았어.”

 

분명 신도시 발표 나기 2년 전에, 그것도 근저당을 꽤 높이 설정한 채로 산 땅이었습니다. 논밭이었지만 농사를 지었다는 증언도 없었고, 땅도 어떤 작물을 심은 적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땅이, 신도시 발표 시점 전후에 팔립니다. 꽤 높은 마진이 붙은 채로 말입니다. 이른바 땅을 가지고 한 ‘단타’ 같은 느낌이 드는 이러한 거래가, LH 직원들과 퇴직 직원들, 그리고 공무원들과 각종 의원님을 타깃으로 한 취재가 아니라, ‘땅’을 중심으로 진행했던 저희 취재 결과 꽤 많이 포착됐습니다.

 

어렵게 당사자의 근처에까지 닿아 수상한 ‘땅 거래’에 관해 물어보면 앞선 문장들이 마치 ‘복붙(복사 붙여넣기)’ 하듯이 주르륵 나오는 것입니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본인들의 땅 거래와 용도에 맞지 않은 땅의 사용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한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고양과 시흥, 심지어 대구에서도 비슷한 말들을 듣습니다. 막 아파지려 하시는 분들이 개발 지역 인근의 땅을, 빚내서 사시기라도 하는 걸까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유지만, 이분들의 땅 거래가 사전에 어떤 정보를 가지고 한 투기 행위인지를 가려내기가 역부족이었습니다. 다만 방송에서는 그러한 목소리들을 담아서 ‘일반인들도 투기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달코자 했습니다.

 

세상에 개발에서 자유로운 땅은 없다


등기부등본과 네이버·다음 지도의 지적편집도를 지참하며 다녔던 것이 취재의 일상이었습니다. 그저 ‘길 찾기’에만 사용되던 지도가 유용한 취재 도구로 바뀌면서, 새삼스레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됐습니다. 당장 우리나라에, 개발에서 자유로운 땅이 얼마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3기 신도시 예정 지역 8곳. 그리고 서울의 재정비 촉진 지구들. 아래로 내려가면 각종 혁신도시, 테크노밸리, OO산단 등등.

 

이번 취재를 수도권의 신도시들에만 국한하지 않고 넓힌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LH가 주도하는 공공주택지구 사업만이 아닌, ‘스마트 산업단지’ 등에도 비슷한 ‘투기’의 양상들이 보였습니다. 며칠 밤새 똑같은 모양의 건물들이 우후죽순 생겼던 세종시 연서면. 조립식 건축물이라도 보상이 나오는 것을 노리고 외지인들이 들어와 전입신고만 해둔 상태로 비어 있습니다. 대구의 공공주택지구인 연호지구에서도 비슷한 양상입니다. 거기는 아예 다세대 빌라를 세워버립니다. 재개발 발표가 나기 직전까지 전입을 해와서, LH가 적용했던 보상 기준을 가까스로 충족하려 했던 사람들. 세종시와 대구의 사례들은 이번 LH 사태가 반드시 수도권의 신도시에만 적용되는 문제가 아니라, 전국이 투기판이라는 방증입니다.

 

 

보도가 나간 후 지금까지 LH 사태는 진정되지 않고 있다. 다른 이슈들에 가려져 있지만, 여전히 대응은 미온적인 것으로 보인다. <출처 – MBC < PD수첩 > 방송 화면 갈무리>

 

 

개발구역으로 지정된 곳들의 대부분은 전답 혹은 임야입니다. 우리의 먹을거리가 길러져야 할 땅이거나 생태계 보전을 위해 남겨진 땅입니다. 이 땅들이 목적에 맞게 제대로 쓰이지도 않고 엉뚱한 가치로 재단돼 거래, 개발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여타 뉴스 보도를 제외하고는 TV 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서는 저희 < PD수첩 >이 가장 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뉴스보다는 더 깊숙이 들어간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하나의 대상처럼 객관화된 사람들(예컨대 투기꾼이나, LH 직원, 보상 때문에 나무 심는 사람들 등등)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취재를 진행하면서 저희 팀의 고민은 ‘투자와 불법적인 투기를 구분하는 방법’에 대해서였습니다. 모든 수상한 땅 거래를 다 투기로 보자는 의견도 있었고, 불법적인 정보 획득으로 인한 땅 거래를 투기로 보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전자와 후자 모두, 제작진이 끝까지 취재해 결론짓기에는 시간적, 물리적 제약이 많았습니다.

 

보도가 나간 후 지금까지 LH 사태는 진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이슈들에 가려져 있지만, 여전히 대응은 미온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가 터지면 일차적인 지자체들의 자체 조사에 의존하고 있고, 가장 최근 뉴스인 홍남기 총리 대행이 발표한 ‘한 달 만에 6명 구속, 244억 몰수’로 보아 그렇습니다. ‘패가망신’, ‘철저한 책임’ 등 격한 표현들이 점령해버린 부동산 정책. 하루 이틀 일이 아니듯, 지난 1기 신도시 때부터 축적된 실패의 노하우가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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