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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현장] 《미디어를 위한 젠더 균형 가이드》
미디어현장 | 등록일 : 2021-05-07

사회 전반에서 평등과 다양성 존중이 요구되는 시대, 언론은 여전히 성별과 무관한 사건에도 굳이 여성을 특정하는가 하면, 취재원을 다루는 방식에도 남녀 불균형을 일삼고 있다. 이같은 문제점을 지적하고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발간된 《미디어를 위한 젠더 균형 가이드》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위민인뉴스가 발간한 《미디어를 위한 젠더 균형 가이드》(왼쪽)와 이를 한국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가 낸 한국어판 책자(오른쪽)

<출처 – 위민인뉴스 홈페이지, 전국언론노동조합 홈페이지>

 

“선배, 아무리 제가 ‘검사’라고 써도 부장이 ‘여검사’로 고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시작은 한 방송사 후배 기자의 질문에서부터였다. 그에 따르면 방송 뉴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화면 아래쪽에 큼직하게 나가는 헤드라인 자막인데, 그 자막의 내용은 반드시 부장 데스크를 거친다고 한다. 남자 검사나 남자 경찰관과 관련한 리포트의 자막에는 성별을 명시하는 경우가 전혀 없는데, 성별이 여성일 경우 데스크가 ‘검사’, ‘경찰관’이라는 자막을 반드시 ‘여검사’, ‘여경’이라고 고친다는 얘기였다.

 

물론 사안의 성격상 여성이라는 성별이 중요한 경우라면 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성별과 무관한 사건에도 여성에 대해서만 굳이 성별을 강조해 표시하는 것은 특정 직업군은 남성이 맡는 것이 기본이라는 성별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잘못된 관행이다. 처음에는 담당 기자가 데스크에게 한두 번 의견을 말할 수 있지만 반복되면 더 이상 얘기하기조차 곤란해진다. 언론노조 성평등위원이기도 했던 후배 기자는 “윗사람에게 얘기할 때 ‘이걸 보라’고 제시할 수 있는 지침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당시 위원장을 맡았던 내게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한겨레 초대 젠더데스크를 맡았던 임지선 기자(언론노조 성평등위원)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젠더 보도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을 얘기했다. 젠더데스크를 맡아 사내 구성원과 소통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매번 전문가와 소통해 자문을 받았는데, 최소한의 기준이라도 적혀 있는 가이드라인이 있다면 설득하기 쉬울 것이라는 얘기였다. 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 등이 만든 성폭력·성희롱 보도 관련 지침 등이 있지만, 일상적인 보도에서 성평등을 추구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의 실무자들이 대안을 찾아보다 세계신문협회(WAN, World Association of Newspapers)의 이니셔티브인 위민인뉴스(WIN, Women in News)가 발간한 《미디어를 위한 젠더 균형 가이드(A gender balance guide for media)》1)를 발견했다. 그런데 WIN이 이 가이드를 발간하게 된 계기도 비슷했다. 멜라니 워커(Melanie Walker) WIN 대표는 성평등위원회와의 인터뷰에서, “뉴스 콘텐츠뿐 아니라 언론 사업 측면에서도 성평등과 다양성, 포용의 문제가 큰 주목을 받게 된 반면, 이를 실제 뉴스룸 업무와 콘텐츠에 녹여 낼 실질적인 도구가 전혀 없었다”고 가이드를 펴낸 계기를 설명했다.

 

성평등위원회는 이 가이드를 한국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번역하고, 자체 세미나와 좌담회 결과를 담은 책자2)를 발간해 각 언론노조 지·본부에 배포, 현장에서 활용하도록 하기로 했다. 지난해 세 차례 세미나와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과의 좌담회를 거쳤고, 올해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발간했다.

 

미디어가 성차별과 성별 고정관념을 확산시킨다

 

《미디어를 위한 젠더 균형 가이드》는 우리 언론이 “평등과 다양성을 장려해야 할 책무”를 갖고 있으며, 성장 가능성이 높은 독자층인 여성을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언론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그룹 내 72개 간행물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조사를 한 노르웨이의 미디어 기업 아메디아(Amedia)는 여성 취재원이 언급된 기사를 여성 독자들이 더 많이 보고, 이는 매체의 수익 증가로 연결된다는 점을 발견했다.

 

하지만 가이드는 언론이 실제로는 취재 대상의 역할, 신체적 특징 또는 성격을 성별과 연관 지어 표현하거나, 남성의 목소리를 훨씬 더 많이 담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적시하고 있다. 남성은 지적 능력이나 직업을 통해 묘사하지만 여성은 신체적 특징으로 묘사한다든지, 여성 인물에 대해 그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아내, 어머니, 여자친구 등 남성과의 관계를 기준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그렇다.

 

특히 가이드는 취재원 활용에 대해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언론은 여성 취재원보다 남성 취재원을 압도적으로 많이 활용하며, 설사 여성 취재원의 코멘트를 담는다 해도 대변인이나 전문가의 공식 답변으로서가 아니라 평범한 개인의 의견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용도로 활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원래 정치나 경제 같은 이슈를 다룰 수 있는 여성 전문가가 없다”, “여성 취재원을 찾기가 어렵다”, “여성 취재원들은 미디어와 대화하는 것을 기피한다” 같은 얘기를 듣는다고 가이드는 지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성 취재원을 많이 활용하자’고 의도적으로 노력한 언론사의 경우 뛰어난 여성 전문가를 많이 발굴했고, 블룸버그 같은 언론사는 여성 전문가에게 미디어 대응 방법을 교육하기도 했다.

 

필요한 때 활용할 수 있도록 내부적으로 여성 전문가나 기고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곳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겨레가 수년 전 신문 2개 면에 다수의 전문가 기고를 받았는데, 우연히 모두 남성이었던 것을 계기로 여성 전문가 DB를 구축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 언론사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하더라도 문제라는 것조차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젠더 균형’ 실천 위해선 ‘경영진의 약속’ 가장 중요

 

가이드는 언론이 불평등과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있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여성을 취재의 중심에 등장시키고, 여성의 목소리와 의견을 반드시 포함하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여성 기자, 여성 기고자 등 여성 바이라인 기사를 늘리고, 이들이 정치나 경제, 스포츠 등의 분야에서 많은 기사를 쓰고 데스크를 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차별적 표현, 성별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내용을 쓰지 않도록 하는 것은 기본이다. 가이드는 구체적으로 해야 할 것과 해선 안 될 것 등을 세세하게 정리해 놓았다.

 

아울러 ‘우리 매체의 젠더 균형 상황을 개선해야겠다’는 생각이 실제 실현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직화 전략도 제시한다. 무엇보다 최고경영진의 확고한 약속이 선행돼야 한다고 가이드는 강조한다. 문제의식을 느낀 구성원으로부터 먼저 변화가 시도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도 지도자가 이를 받아들여 확고히 하지 않고 오히려 변화에 저항하거나 하면 물거품이 되므로 지도자의 굳건한 약속이 최우선이다.

 

경영진을 포함한 직원들이 젠더 균형적인 보도 방식에 대해 정기적으로 교육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 정치·사회·경제 등 각 부서에 여성 기자와 데스크, 편집자를 늘리고 여성 직원에게 남성 중심적인 조직 내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등 콘텐츠뿐 아니라 내부 구성에서도 젠더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고 가이드는 조언한다.

 

목표를 정할 때는 성취하기 쉬운 것부터 설정해도 되고, 아예 전사적 목표를 세우고 강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반드시 성과를 측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과에 따라 방향을 재정비하기 위해서다. 성과 측정은 콘텐츠에서 여성과 남성을 언급한 비율, 여성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 비율, 여성 취재원 인용 비율, 여성 바이라인 비율 등을 직접 측정하는 방식으로 가능하다. 가이드가 예로 든 BBC의 ‘50 대 50 프로젝트’는 모든 프로그램에 대해 각각의 제작진이 출연자들의 성비를 매번 측정하고 이를 반반으로 맞추도록 조정해 나가는 방법으로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언론사 데스크 교육, 기자들이 먼저 요구해야

 

이번에 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가 펴낸 책자에는 WIN 가이드의 번역본뿐 아니라 멜라니 워커 대표에 대한 인터뷰, 권김현영 소장과의 좌담회, 한겨레 초대 젠더데스크의 경험담, 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가 냈던 성명과 한국기자협회의 성폭력·성희롱 보도 관련 권고기준 등을 추가로 담았다. 실제 한국의 언론 현장에서 참고하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다. 특히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기획위원으로 재직 중인 권김현영 소장과의 좌담은 한국 언론 현장에서 젠더 균형을 향상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중점적으로 토론했다.

 

언론 현장에서 기자들이 젠더 균형 보도와 관련해 성인지감수성이 떨어지는 데스크와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위해 ‘데스크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실제로 권김현영 교수는 지난해 하반기 서울신문과 KBS에서 데스크 대상 강연을 했는데, 두 번 다 “기자들이 내부에서 필요성을 제기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밝혔다. 다른 언론사에서도 데스크 교육을 실시하려면 먼저 기자들이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데스크 교육에서 “데스크는 그 자체가 시스템이다”라는 점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자꾸 시스템을 만들자고만 하지 말고, 성평등 저널리즘을 책임지고 있는 데스크 자체가 시스템이라는 점을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겨레 젠더데스크를 필두로 KBS 성평등센터, 서울신문 성평등연구소 등 다양한 시스템이 차례로 등장했는데, 다른 언론사들도 이와 관련해 자사에 맞는 시스템을 논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곳의 존재 자체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성평등 보도를 위해서는 이런 시스템과 함께 전문성 있는 취재 그룹을 유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면서 여성 전문기자가 있어야 성평등 저널리즘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성 전문가 취재원을 늘리는 방법에 대한 토론도 있었다. 한국에서 여성 전문가 DB를 만들기가 쉽지 않고 실제로 여성 전문가들이 미디어에 노출되기를 꺼리는 측면도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이는 방송 등에서 남성 진행자나 시사평론가는 계속 활용하는 반면 여성 출연진은 한 시즌 끝나면 교체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미디어에 노출됐을 때 남성보다 훨씬 더 많은 비난을 받는 등 본인에게 이득은 고사하고 손해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이유로 지적됐다. 하지만 블룸버그가 여성 전문가에게 미디어 대응 교육을 실시하는 것처럼, 여성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언론사가 먼저 의식적으로 노력하면서 여성 전문가를 키워 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항상 전화하던 사람에게 전화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이 분야에 여성 전문가는 없는지, 기자 스스로도 의식적으로 사람을 찾고 만나야 가능해진다.

 

한국의 ‘젠더 보도 가이드’를 향해

 

지난해 ‘N번방 사건’이 큰 이슈로 부각되자 일부 언론에서는 이미 존재하는 성폭력·성희롱 관련 보도 준칙에 어긋나는 기사들을 내보냈다. 가해자 개인을 악마화함으로써 상업적으로 이미 엄청난 규모로 성장한 디지털 성범죄 구조를 가린다든지, 불필요하게 피해자의 신원을 자세하게 묘사하거나 피해 행위를 선정적으로 묘사해 호기심을 자극하는 식의 보도들이다. 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는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3월 24일  < N번방 보도, 피해자 보호가 최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라는 제목의 긴급 지침을 발표했다. 이 지침은 언론노조 지·본부를 통해 각 언론사 편집국(보도국)에 전달됐다.

 

지침을 발표했을 때만 해도 실제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 의문이었으나 현장에서는 “지침 덕분에 내부에서 피해자의 신원과 관련된 아이템이 발제됐을 때 기사화를 막았다”, “선정적인 제목을 고쳤다”는 등의 반응이 나왔다. 기사의 흐름도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결국 ‘N번방 방지법’의 입법이 이뤄졌다.

 

《미디어를 위한 젠더 균형 가이드》를 출간하기로 한 데는 이때의 경험도 영향을 미쳤다. 현실에서 수많은 젊은 기자들이 성차별,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보도를 막기 위해 데스크와 싸우고 있는데, 이들에게 번역본이더라도 하나의 도구를 쥐여주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지난 3월 8일 발간 후 이 가이드를 제대로 읽어보았다는 후기를 들을 수 없어 안타까웠다.

 

전국 지·본부에 책자로 배포됐고 온라인에서 PDF로도 쉽게 내려받을 수 있지만 정작 읽어야 할 분들은 아직 읽지 않은 듯하다. 불과 80페이지의 짧은 책자이니 언론사 경영진과 편집국장, 보도국장 등 주요 책임자들이 시간을 내어 꼭 한번 읽어보시길 바란다. 혹시라도 언론노조에 대해 편견을 가지신 분이 있다면 이 가이드의 원저자가 세계 신문사 경영자들의 단체인 세계신문협회의 이니셔티브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래서인지 이 가이드는 콘텐츠에서 젠더 균형을 높일 때 여성 독자들의 추가 유입을 불러오며 결과적으로 비즈니스적 관점에서도 유익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경영진이나 편집국장 같은 주요 책임자가 아니더라도, 혹시라도 이 책자를 읽고 언론사 내부에서 변화를 꾀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의 문을 두드려주시길 바란다. 필자는 지금 초대 성평등위원장 임기를 마치고 평범한 조합원에 불과하지만 지난해 언론노조 성평등위원이었던 김수진 OBS 기자가 최근 제2대 성평등위원장을 맡았다. 성평등위원회는 가이드의 홍보나 교육 사업을 올해도 계속 추진할 방침이다.

 

 

 

 

 

 

1) https://womeninnews.org/ckfinder/userfiles/files/Gender%20Balance%20Guidebook_FINAL_RGB%20(1).pdf

2) 전국언론노동조합 홈페이지(http://media.nodong.org/bbs/view.html?idxno=123288&sc_category=)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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