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상세
10여 년 전 도쿄 특파원 시절, 사무실로 ‘eagle15’이라는 이가 보낸 우편물이 도착했다. 전투기 이름을 필명으로 쓰고 있다는 그는 일본을 다루는 한국 언론 보도에 대한 불만이 많아 보였다. 몇 달에 한 번씩 보내오는 편지엔 독도 문제나 위안부 문제에 관한 자신의 주장을 담기도 했는데, 우익단체 회원이거나 혐한 인사쯤으로 생각하고 넘겼다.
그런데 몇 달 뒤 ‘eagle15’이 보낸 우편 봉투 안에서 수십 장의 사진이 쏟아져 나왔다. 자신이 모은 유흥업소의 한국 여성들 사진이라는 설명과 함께. 불쾌한 감정이 들었지만, ‘치졸하게 숨어서 남에게 폭력을 가하는 사람쯤 무시하자’ 하고 스스로 되뇌던 기억이 남아있다.
귀국 후 한참 지나 ‘eagle15’이 이번엔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왜 이메일 답을 해주지 않느냐”, “귀사의 다른 기자들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며 온라인에서 갈무리한 동료 기자들의 프로필 사진을 보내기도 했다. 얼마 후엔 중앙일보 일본어 사이트에 나에 관한 댓글을 달고 있다는 소식도 알려왔다. 확인 결과 내 취재일기 사진을 프로필 이미지로 설정해놓고 몇 년에 걸쳐 댓글 창에 글을 쓰고 있었다. 댓글을 모두 삭제하자 이번엔 직접 만나 이야기하고 싶다며 서울 본사까지 찾아온 그는 70대 후반 백발의 할아버지였다. 몰래 촬영한 그의 사진과 함께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경고 메일을 보내자 비로소 메일은 중단됐다. 아직도 인터넷 공간 어딘가에서 이런 행동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다.
장황하게 내 경험을 소개했지만 요즘 동료 기자들이 겪고 있는 상황은 결코 이보다 가볍지 않다. 온라인에서 대부분의 뉴스를 소비하고 있는 독자들이 댓글이나 이메일로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무차별적으로 다는 악성 댓글로 인한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이메일과 댓글로 괴롭히는 스토킹 행위도 적지 않다. 포털의 댓글들을 살펴보면 몇몇 네티즌들은 기사 내용과 무관하게 다짜고짜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호칭을 남발한다. ‘기레기’가 일반명사로 정착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기자들이 얼마나 사이버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여성 언론인에 집중되는 사이버 폭력
국제언론자유단체인 국경없는기자회(RSF, Reporters sans frontières)가 ‘저널리스트들에 대한 사이버 공격’이란 주제로 2018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응답자의 40%가 사이버 공격 피해를 호소했다. 조사에 응답한 언론인 940명 중 40%가 지난 3년간 “사생활에 영향이 미칠 정도”의 괴롭힘을 당했다고 했고, 이 가운데 53%는 ‘사이버 학대’를 당했다고 답했다.
언론인의 사생활이나 사진을 온라인에 유포하거나 계정을 스토킹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고 했다. 언론인의 사진을 성적인 목적으로 악용하는 경우도 빈발했는데, 65%의 응답자가 젠더 기반의 폭력을 당했다고 한다. 보고서는 지난해 6월 방송 저널리스트 릴리 메이어스(Lily Mayers) 등 호주의 여성 언론인 수백 명이 연차를 막론하고 계정을 추적당했고, 사생활이 담긴 사진이 공공 커뮤니티에 유포돼 댓글 성희롱 대상이 됐다고 밝혔다. 한국 미디어 업계에선 이런 조사를 체계적으로 진행한 사례가 없다.
국가를 막론하고 온라인상에서 여성은 특히 공격의 대상이 된다. 국제인권단체인 앰네스티인터내셔널(Amnesty International)은 2017년 미국과 영국 등 8개국 여성을 대상으로 한 사이버 폭력 실태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23%가 피해를 봤다고 답했다. 한국여성정치연구소가 최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의뢰로 작성한 <온라인 스토킹의 실태 및 대응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20대 여성 응답자의 79.2%가 온라인 스토킹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국경없는기자회가 지난 3월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발간한 언론계에서 벌어지는 성차별 보고서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젠더 이슈를 전문으로 다루는 언론인을 포함해 전 세계 120개국 150명의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분석했는데, 응답자의 73%가 이메일과 SNS 등 온라인에서 젠더 관련 폭력이 발생한다고 답했다.
외모 비하, 성적 수치심 드는 단어도
온라인의 특성상 젠더 문제를 포함해 사회문제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여성이 타깃이 되기 쉬운데, 여기자가 여기에 해당되는 직업군이라 할 수 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여비서 성폭행 혐의 재판을 비롯한 유명 인사들의 성 추문을 고발한 미투(Me Too) 운동, 대학로와 광화문에서 페미니즘 집회가 열린 2018년엔 특히 여기자들을 겨냥한 사이버 폭력이 극에 달했다. 여전히 사이버 공간이 남성 우위의 환경이고, 여기에는 옥스퍼드 사전에도 등재된 ‘맨스플레인(man+explain, 여성은 잘 모를 것이라는 기본 전제하에 남성들이 설명하고 가르쳐주는 것)’이 작용한다는 분석도 있다.
여기자들에게 자주 사용되는 모욕적인 단어는 ‘걸레’와 ‘강간’, ‘창녀’ 등이다. 익명에 숨어 “못생긴 X, 죽어버려라”, “너희 가족 모두 쥐도 새도 없이 죽는다”는 끔찍한 표현, 여성 혐오적인 표현이나 신체 부위를 언급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가족관계나 출신 학교, 때로는 기자 개인 연락처까지 댓글에서 공유돼 신변의 위협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기레기’니까 혼내도 괜찮다?
대부분의 언론사는 대형 포털사이트를 통해 기사를 송출한다. 자사 사이트가 별도로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독자가 포털을 통해 뉴스를 소비하기 때문에 포털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당연히 포털에서 자사 기사가 돋보이게 하거나 자사 사이트로 독자를 유인하기 위해서는 눈에 띄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게 된다. 이런 기사를 쓴 기자들에 대한 악성 댓글과 조롱 메일이 양산되는 구조다.
한국의 포털 뉴스 서비스의 또 다른 특징은 단순히 생산자→소비자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하는 한다는 점이다. 독자가 기사 내용에 찬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물론, 독자의 생각과 제안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러다 보니 포털의 댓글 문화는 대중의 소통 공간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악의적으로 허위·비방정보를 생산하거나 가짜뉴스를 확산한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네이버를 비롯한 포털은 그간 꾸준히 뉴스에 달리는 악플을 없애려는 노력을 해왔다. 2019년 가수 설리가 악플에 시달리다 사망한 것을 계기로 지난해 초 연예 뉴스에 이어 8월부턴 스포츠 뉴스의 댓글을 폐지했다. 카카오(다음)는 지난해 욕설과 비속어를 음표(♩나 ♪)로 치환하던 기능을 욕설과 비속어뿐 아니라 차별·혐오 표현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확대했으며 보고 싶지 않은 댓글이나 해당 댓글 작성자를 앞으로 나에게 보이지 않게 하는 ‘덮어두기’ 기능을 마련했다.
네이버도 작년 2월 댓글 작성자의 활동 이력과 닉네임을 공개하고, 신규 가입 이용자는 가입 후 7일이 지난 시점부터 뉴스 댓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 5월엔 기사 댓글 목록에서도 댓글 작성자의 프로필 사진을 볼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실상은 사진을 설정하지 않은 사람들이 대다수며, 프로필 사진을 자유롭게 올릴 수 있어 실효성은 낮아 보인다. 포털의 댓글 규제가 강화될수록 이번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과 같은 SNS로 악플이 확산되는 풍선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사이버 공격으로부터 언론인을 보고하는 사회 여론이나 시스템은 여전히 미미하다. 올 4월 대법원은 댓글에 ‘기레기’라고 적었다가 모욕 혐의로 기소돼 2심까지 벌금형을 받은 네티즌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기레기라는 표현은 모욕적인 것은 사실이나 의견을 공유하는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 모욕적 표현이 있더라도 그 내용이 객관적으로 타당성이 있고 표현도 악의적이지 않다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해당 기사의 다른 댓글들의 논조나 내용과 비교해볼 때 표현이 지나치게 악의적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네티즌은 2016년 2월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한 자동차 관련 기사에 “이런 걸 기레기라고 하죠?”라는 댓글을 달았고, 기사를 쓴 자동차 전문지 기자를 모욕한 혐의로 기소됐다. 대법원판결을 해석해보면 ‘기레기’란 말을 들을 만한 기사를 쓴 기자에게 ‘기레기’라고 하는 것은 모욕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거북하면서도 서글픈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메일 보관, 댓글 화면은 갈무리
반드시 회사 차원의 대응 필요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고 댓글 관련 처벌 기준을 낮춰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없다. 누가, 어떤 이유로 비난하는지 알 수 없을뿐더러 기자 개인이 취할 수 있는 법적 조치도 마땅찮아 보인다. 기자 스스로 정확한 사실관계로 공정한 기사를 작성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부당한 인신공격이나 명예훼손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공격성 이메일이나 악성 댓글을 대면한 기자 중 일부는 직접 댓글에 대댓글을 달거나 이메일을 회신해 자신을 향한 반박과 악성 비방을 중단할 것을 경고한다. 하지만 기사 내용에 관한 건설적인 토론 내지는 공방이라면 모를까, 일방적인 폭력성 내용에는 개인적인 대응을 삼가라고 조언하고 싶다. 기자 개인의 대응은 상대방을 자극하고, 기자와 나눈 메일이나 SNS 글을 다른 사이트에서 공유하거나 또 다른 공격 소재로 악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응한 기자가 여성이라면 곧바로 성희롱적인 모욕이나 협박이 추가되기 일쑤다.
기자가 직무수행과 관련해 받은 악성 댓글이나 악성 게시물, 악성 이메일에는 반드시 회사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 디지털 콘텐츠 제작이 늘어나면서 회사마다 자사 인력 보호를 위한 사이버 폭력 대응팀 혹은 담당자를 정해 운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중앙일보도 2018년 ‘악성댓글 법적 대응 제도’를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편집국 행정국장이 기자로부터 피해 신고를 받아 법무팀과 모욕죄나 명예훼손죄 등 범죄 해당 여부를 검토한다. 그리고 피해 기자와 대응 방안을 결정한다.
기자는 문제의 이메일은 보관하고, 댓글은 반드시 갈무리해둬야 한다. 댓글의 경우 사이트나 개인이 삭제할 경우에 대비해 법적 근거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메일로 공격이 이뤄진 경우엔 일차적으로 법무팀 명의의 경고장을 발송한다. 온라인상 비방과 욕설, 성희롱, 사생활 침해, 명예훼손, 모욕 등의 행위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및 형법,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 관련 법령에 의거 최대 징역 7년, 벌금 5,000만 원 이하에 처해질 수 있는 중대한 불법행위다. 이때 이메일 발송자가 법률적으로 어떤 범법을 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향후 재차 본사 기자에 대한 공격이 이뤄질 경우 곧바로 형사고발이 진행된다는 따끔한 경고도 포함된다.
대부분의 이메일 사이버 공격은 여기서 일단락된다. 하지만 가짜 이메일 주소인 경우, 또 개인이 메일 주소를 추적하기 어려운 포털 댓글에 직접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댓글의 경우 사이트 운영자에게 폭력적인 내용의 댓글과 갈무리 사진을 첨부해 경고문을 발송한다. 언론사가 지속적으로 포털과 사이트 운영자를 압박함으로써 “기자를 보호하고 관리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줌과 동시에 포털의 악성 댓글에 대한 자체적인 검열과 규제를 촉구할 수 있다.
폭력 내용이 과도하게 악질이거나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경우는 고소·고발이 답이다. 법무팀 전담 직원이 고소 진행에 필요한 증거 수집(악성 댓글 채증)을 하고 고소장을 작성해 경찰에 접수한다. 경찰 조사와 재판 진행 과정에서 필요한 업무 역시 법무팀이 지원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2019년 본지 사설과 칼럼 댓글 창에 내용과 관계없는 악질적인 댓글 4만여 건을 지속적으로 쓴 댓글자를 형사고발 했다. 지난해 1심 교육 이수 조건부 기소유예 판결을 받아 민사소송을 준비 중이다. 이 밖에도 논설위원에게 가해지는 일방적인 이메일 폭력과 댓글에 대한 민·형사 소송도 진행 중이다.
우울증 예방 위한 상담 치료 병행
사이버 폭력에 노출된 기자들은 대부분 심적 고통과 우울감을 호소한다. 심할 경우 신변의 위협을 느끼며, 드물게는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는 이도 있다. 이들에게 “기자 일이 다 그런 거지”, “대한민국에서 기자 하려면 멘탈갑(정신력)쯤은 갖춰야”라는 조언은 또 다른 폭력이고 압박이다. 법적 대응 못지않게 심리 치료가 병행돼야 한다. 심리 치료를 해야 하는 기자에게는 언론사가 심리 상담 치료센터와 연계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 관리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