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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포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미디어포럼 | 등록일 : 2021-06-04

미디어와 언론을 대표하는 직함은 PD와 기자지만, 그들의 이름을 걸고 나온 결과물 뒤에는 수많은 인력의 땀과 눈물이 존재한다. 그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촉구하며 세상을 등진 고 이한빛 PD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지난 4년의 발자취와 앞으로 이어갈 행보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이한빛 PD의 사후 CJ ENM이 적반하장으로 일관하자 유가족들은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대책위를 결성해 진상 규명을 시작했다. 그 결과 그간 수면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미디어 산업의 노동문제가 속속 밝혀지기 시작했다. <출처 - 필자 제공>

 

 

“혹시 여러분은 미디어나 언론을 만드는 사람이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기자요.”

“PD요.”

“그런가요? 정말로 기자나 PD만이 미디어를 만드는 사람인가요? 한 번 예를 들어봅시다. 여러분이 취재한 기사를 편집하거나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 아니면 직접 취재에 동참하진 않지만 원활한 취재 활동을 위해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미디어를 만드는 사람이 아닌가요?”

 

그 이후로 1분 정도 기다렸지만 답이 없었다. 이것이 바로 어떤 의미에서는 현실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 이후로는 별도의 질의응답 시간 없이 강의를 이어나갔다. 작년 6월, 부산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 주최한 ‘2020 청년저널리즘캠프’에서 있었던 하나의 해프닝이다. 단체에서 ‘언론·미디어계 노동 인권’을 주제로 강의를 부탁한 자리였다. 장차 신문사나 방송사 같은 언론에 취직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모인 자리였기에, 이들이 생각하는 미디어 노동의 현실을 듣고 싶어서 처음부터 강의를 진행하는 대신 가볍게 이야기를 주고받고자 던진 질문이었지만 내심 생각대로는 잘 안 됐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과연 그때 강의장에 모인 사람들만의 생각이었을까. 언론이나 미디어 영역에 종사하지 않는 일반인에게도 미디어를 만드는 사람은 누구인지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기자’나 ‘PD’만을 언급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미디어를 만드는 현장에는 기자나 PD 이외에도 수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매일, 매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영상의 만드는 데 있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촬영·조명·녹음·그립 등의 기술 스태프는 물론, 등장인물이나 세트, 소품 등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미술 영역의 스태프, 촬영을 마친 뒤 매끈한 결과물이 나오도록 다듬는 후반 작업 영역의 스태프, 그 외에도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동시에 집중도를 높이는 멘트를 개발하는 작가·스크립터, 힘들게 만든 결과물이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힘쓰는 홍보·마케팅 담당자, 그리고 점차 ‘유튜브’로 대표되는 스트리밍 플랫폼과 각종 SNS 활용이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이를 별도로 담당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단 한 명이라도 빠지면 결코 원활한 미디어 기획과 제작은 불가능하다. 이들 모두가 ‘미디어를 만드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상당수의 사람은 이들을 미디어를 만드는 이들로 인식하지 않는다. 무수한 미디어 스태프들을 현장에서 계속 만나는 언론인, 미디어인들의 시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디까지나 이들은 미디어를 만들기 위해 수고스러운 일을 하는 일종의 ‘도우미’일 뿐, 함께 같은 현장에서 땀 흘리는 ‘동료’이자 ‘노동자’로 여기는 이들은 많지 않다.

 

고 이한빛 PD의 뜻을 기리며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이러한 미디어 영역 내부의 ‘격차’를 해결하기 위해 생겨났다. 그리고 그 뒤에는 이러한 ‘격차’를 자기 일처럼 생각하던 한 명의 젊은 PD가 있었다. 바로 2016년 대형 미디어 그룹 CJ ENM의 정규직 신입 사원으로 입사해, 그해 10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고 이한빛 PD다. 대학 시절부터 대형마트 ‘홈에버(현 홈플러스)’ 노동자들의 투쟁을 비롯한 노동문제, 용산 참사와 같은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이한빛 PD는 방송과 미디어에도 뜻을 품은 청년이었다. 꾸준히 방송 관련 공모전에 응모하면서 미디어 업계의 꿈을 키우던 이한빛 PD는 학교 졸업 이후 곧바로 CJ ENM의 PD로 취업을 하게 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CJ ENM을 대표하는 케이블 채널 tvN의 드라마 <혼술남녀>의 신입 조연출로 배치됐다.

 

하지만 이한빛 PD는 그곳에서 매우 충격적인 모습들을 봐야만 했다. 마냥 멋있고 아름다울 것으로 생각했던 드라마 촬영 현장은 생각 이상으로 열악했다.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일일, 주간 노동시간 기준은 물론 휴식 시간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 직장 선배들은 이한빛 PD를 비롯해 그해 막 입사한 PD들에게 ‘신입’이라는 이유로 과중한 업무를 마구 부여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심각한 것은 드라마 제작 스태프들이 놓인 상황이었다.

 

이들은 엄연히 방송사나 외주 제작사 소속 PD의 지시를 받고 일하는 ‘노동자’지만, 역시 근로기준법에서 보장된 권리들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아니, 애당초 계약서를 쓰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설사 쓴다고 하더라도 허울뿐인 ‘프리랜서 계약’, 아니면 팀별 감독급 스태프가 팀에 속한 스태프 전원의 인건비와 장비 비용을 한꺼번에 받아 추후 분배하는 ‘턴키 계약(통계약)’이 다수였다. 당연히 인격적인 대우도 기대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감독의 생각과 맞지 않으면 마구 욕을 하는 상황은 너무나도 일반적이었다.

 

이한빛 PD가 점차 자신이 좋아하던 방송이 생각하던 이미지와 다른 현실 속에 피폐해져 가는 사이, 결정적인 사건이 그에게 닥쳤다. CJ ENM 경영진이 <혼술남녀>의 촬영분을 보고 마음에 들지 않아 했고, 모든 스태프의 교체를 지시했다. 그리고 스태프마다 한 명씩 연락해 더 이상 같이 일할 수 없게 됐다고 말하는 역할을 이한빛 PD가 맡았다. 대학 시절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함께 싸우던 이한빛 PD에게 관행이지만 명백히 불법적인 행동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한빛 PD가 머뭇거리는 사이, 선배 PD들은 이한빛 PD에게 온갖 폭언과 비아냥을 남기며 ‘일터 괴롭힘’을 가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혼술남녀>는 겨우 끝까지 촬영을 마쳤지만, 종방연을 앞두고 갑자기 이한빛 PD는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촬영팀은 이한빛 PD의 행방보다는 이한빛 PD가 회사 법인카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만 혈안이 돼 이한빛 PD의 부모를 찾아가 윽박지르기에 바빴다. 한동안 행방을 알 수 없었던 이한빛 PD는 2016년 10월 26일 몇 장의 유서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유서에는 일 년도 안 되는 기간 방송 제작 현장에서 느낀 무수한 고뇌가 담겨 있었다.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하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2020년부터 이한빛 PD처럼 미디어 노동 영역의 변화를 위해 힘쓴 이들을 격려하는 ‘이한빛 PD 미디어노동인권상’을 제정해, 유지은 대전MBC 아나운서와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를 첫 수상자로 결정했다. <출처 - 필자 제공>

 

 

미디어 신문고, 센터의 1순위 사업

 

유서에는 이한빛 PD가 죽음을 택하게 된 이유, 그가 방송 현장에서 목격한 온갖 노동의 문제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러나 CJ ENM은 한동안 이한빛 PD는 업무에 불성실했고 그의 죽음 역시 개인적인 차원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 이한빛 PD의 유가족은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 사건 대책위원회’를 조성해 진상규명 활동에 나섰고, 그 결과 이한빛 PD가 회사에서 겪은 무수한 고통, 그리고 <혼술남녀>를 비롯한 드라마 촬영 현장에 오랜 시간 도사리고 있던 문제적 관행이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 그리고 2017년 6월 14일, CJ ENM이 이한빛 PD의 유가족과 대책위에 공개적으로 이한빛 PD의 죽음에 대한 자사의 책임을 인정하며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방송 노동환경 개선과 재발 방지 대책 수립을 약속하며 대책위의 활동은 마무리됐다.

 

그러나 한 번 터진 물꼬를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이한빛 PD가 죽음으로 호소한 고발은 많은 미디어 노동자들을 움직이게 했다. 한동안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던 미디어 산업 내부의 문제적 관행들도 이때를 기점으로 점차 언론에 드러나게 됐다. 재발 방지를 약속했던 CJ ENM은 공개 사과한 바로 그해 2017년 12월 tvN 드라마 <화유기>의 미술팀 스태프가 새벽에 무리하게 샹들리에를 달라는 지시를 받은 뒤, 사다리에 올라 3m 높이에서 작업하던 중 추락해 하반신이 마비되는 산재 사건이 발생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2018년 1월에는 당시 SBS의 인기 예능프로그램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를 비롯한 무수한 프로그램이 외주제작사 스태프에게 현금이 아니라 상품권으로 임금을 지급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큰 충격을 낳았다. CJ ENM이 공식적으로 사과를 했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결국 이한빛 PD의 유가족은 이한빛 PD가 남긴 뜻이기도 했던 ‘방송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2018년 1월 미디어 사업이 밀집한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DMC(디지털미디어시티) 지구에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이하 한빛센터)’를 창립해 올해로 4년 차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한빛센터가 창립 이래로 계속 중요하게 여기며 공을 들이는 사업은 미디어 노동자를 위한 익명 상담창구 ‘미디어 신문고’다. 이한빛 PD가 방송사가 손쉽게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음에도 호소할 창구가 없어 속앓이만 했던 것처럼, 다른 미디어 노동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역별 노동위원회를 찾아가도 방송·미디어 노동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분명 노동자로서 근무함에도 불구하고 근로계약서를 쓰지 못하는 속칭 ‘무늬만 프리랜서’가 관행이 된 업계의 상황을 이해하는 위원들은 극소수다. 결국 미디어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어떤 문제를 겪어도 참아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아니면 어떻게든 업계에서 버텨 이른바 ‘팀장’이 된 뒤, 후배 노동자에게 분풀이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한빛 PD의 고민을 진솔하게 듣고,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이렇게 안타까운 비극은 없었으리라. 주변 사람 누구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아도, 최소한 우리만은 당신의 말을 듣는다고 믿음과 신뢰를 줄 수 있는 창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한빛센터는 미디어 신문고를 만들어 현재까지도 센터의 1순위 사업으로서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한빛센터의 존재를 잘 몰랐던 미디어 노동자들도 점차 한빛센터가 미디어 영역의 문제적 노동 관행에 목소리를 내고 변화의 발걸음을 걸어가기 시작하자 조금씩 미디어 신문고에 자신이 겪은 문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2020년까지 매년 약 60건의 상담이 신문고에 접수되고 있다.

 

미디어 노동환경이 전기를 맞는 그 날까지

 

이외에도 한빛센터는 미디어 산업의 고질적인 병폐에 더해 이중으로 차별을 겪기 쉬운 여성·아동과 청소년(아역배우, 아이돌 등)·성 소수자 미디어 노동자들을 위한 별도의 연대 사업을 진행하는 한편, 법과 제도의 차원에서 미디어 노동자들의 권익이 보장될 수 있는 연구 사업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동시에 더욱 많은 시민과 미디어 노동자들에게 방송·미디어 산업 노동의 현실과 한빛센터의 활동을 알리기 위한 여러 온·오프라인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방송 노동자 상당수가 평일에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느라 센터를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빛센터는 최근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의 팬들이 커피차를 촬영 현장에 선물하는 것에 착안해 ‘상생커피차’라는 이름으로 커피차를 끌고 미디어 제작 현장에 찾아가 직접 미디어 노동자를 만나 이야기를 듣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을 반복한 덕분일까. 작지만 변화의 움직임은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아직은 형식적인 수준에 불과하고 여전히 근로기준법에 위배되는 상황이지만 CJ ENM을 시작으로 주 68시간 촬영이 점차 퍼지고 있다. 2020년 12월에는 방송통신위원회가 향후 방송사 재허가 심사와 상시 방송평가에서 비정규직 고용 개선 방안을 평가하기로 했다. 미디어 영역에서 활동하는 아동·청소년 권익 보호에 대한 방안도 함께 공표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여전히 방송통신위원회를 비롯한 미디어와 관련된 유관 기관에서는 미디어 영역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프리랜서 노동자의 실태 조사도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더군다나 넷플릭스나 유튜브로 대표된 OTT, 스트리밍 서비스가 대두하며 빠른 지각변동에 따라 미디어 노동자들의 환경도 급변하지만, 정부 부처의 대응은 여전히 느린 상황이다.

 

그렇지만 그간 한빛센터가 걸어왔던 길은 누군가 한 번 갔던 길도, 다른 이가 대신 걸어줄 수 있는 길도 아니다. 한국과 달리 미국이나 프랑스를 비롯한 해외에서는 일찌감치 미디어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해 정기적으로 방송사나 외주 제작사와 단체 협상을 맺지만, 한국의 미디어 노동환경이 그렇게 되려면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변화의 순간을 앞당기기 위해선, 차근차근 한빛센터만의 길을 걸을 수밖에는 없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미디어신문고에 접수된 약 120건의 상담 사례를 정리해 만든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는 미디어 산업에서 근무하는 노동자가 다양한 노동 문제에 대응할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2021년 한빛센터는 2018년 창립 첫해부터 2020년까지 접수된 약 120건의 상담 사례를 정리해 방송·미디어 노동자를 위한 상담사례집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를 펴내 온·오프라인으로 상시 배포하고 있다. 동시에 매년 9월 3일이 방송의 날이라는 것에 착안해, 올해 9월 3일을 목표로 방송·미디어 노동자들의 요구를 모아 집중적으로 제기하는 이슈 파이팅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활동들이 계속 쌓이고 또 쌓여 시민들이 진정으로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미디어를 만드는 사람들이 누구며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는지 알고, 다시 미디어 노동자 본인이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는 움직임이 더해갈 때 미디어 노동환경은 지금과 다른 전기를 맞이하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는 미디어 노동환경이 구축될 때, 정체 상태에 놓여 있는 한국 미디어 제작의 흐름도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 그런 미래를 위해, 한빛센터는 오늘도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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