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사 상세
[취재기·제작기] 주간경향 1422호 <시민은 승리한다>
취재기제작기 | 등록일 : 2021-06-04

직접 취재할 수 없다고 기사화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주간경향은 미얀마 현장에 가는 대신 국내에서 가능한 취재를 진행했다. 주간경향은 어떻게 미얀마 쿠데타를 다뤘을까. 독자의 큰 반응을 불러온 주간경향의 미얀마 시민혁명 취재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주간경향 1422호 <시민은 승리한다> 편이 많은 주목을 받았다. 표지 사진은 버스에 탄 미얀마 사람들이 창밖으로 세 손가락을 내미는 모습이다. 이들의 내민 세 손가락은 군부 쿠데타에 대한 저항,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상징한다. 버스 상단에는 ‘친환경-천연가스버스가 만들어갑니다’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짐작건대 이 버스는 미얀마로 수출된 우리나라 중고 버스였을 것이다.

 

이 사진, 그대로 가져가 6월 항쟁의 모습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 5·18광주민주화운동이라고 해도 믿을 수밖에 없다. 가로 편집으로 의미를 극대화했다.

 

커버스토리로 미얀마 전직 기자인 카멜리아(가명)의 글을 그대로 실었다. 관련 사진들은 미얀마 현지 사진기자들이 직접 찍은 사진들로 채웠다. 주간경향 1422호의 콘셉트는 ‘지면을 미얀마 시민에게 빌려드립니다’였다. 차제에 카멜리아의 기사를 미얀마어로 실으려 했지만 시스템이 미얀마어를 받쳐주지 못해 실패했다. 국내 미얀마인들이 직접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하자는 취지였다. 마감 직전까지 끙끙댔지만 방법이 없었다. 지금까지도 아쉽다.

 

미얀마 현장을 갈 수 없는 주간경향 기자들은 국내에서 할 수 있는 취재를 하기로 했다. 저항의 선두에 선 미얀마 MZ세대와 국제사회가 개입하지 못하는 지정학적, 국제정치적 상황을 분석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었다. 또 인터뷰를 통해 지명수배당한 국내 거주 미얀마민주주의민족동맹 주요 인사들, 현지의 한국 교민, 미얀마를 돕는 조계종 측이 밝힌 현지의 소식을 전했다.

 

3주 뒤 주간경향 1425호는 업데이트된 두 번째 상황을 전했다. 표지는 군부에 체포된 젊은 여성을 형상화한 현지의 퍼포먼스 사진으로 정했다. 제목은 ‘Where is justice?(정의는 어디에 있는가?)’다. 외신도 보라고 문구를 영어 그대로가져갔다. 초모툰(Kyaw Mo Tun) 유엔 주재 미얀마 대사도 한 시간에 걸쳐 인터뷰했다. 몇 차례 약속이 깨진 뒤 어렵사리 잡았다. 국내 인쇄매체 중에는 처음이었다. 저항의 중심지로 떠오른 몽유아(Monywa)와 이곳 시위를 주도하던 웨이 모 나잉(Wai Moe Naing)의 인터뷰도 담았다. ‘리틀 판다’로 불렸던 웨이 모 나잉은 몽유와 저항의 정신적 지도자였다. 그와는 인터뷰를 추진했지만 직전에 군부에 체포됐다.

 

많은 사람이 묻는다. 주간경향은 왜 미얀마 사태에 주목하느냐고. 그리고 궁금해한다. 미얀마 기사는 어떤 과정을 거쳐 제작됐느냐고.

 

해외 뉴스, 제대로 다뤄보자


오늘 출근길 대충 펼쳐본 뉴욕타임스. 1면은 체코 스파이 관련 기사다. 파이낸셜타임스 1면은 이스라엘 가자지구 폭격 기사다. 두 사건은 미국의 글로벌 전략과 세계경제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줄 것이다. 세계 유수 언론들은 오늘도 열심히 나라 밖 소식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국내 언론이 나라 밖 소식을 좀 더 비중 있게 다뤄야 한다는 생각은 꽤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다. 20년 전 영국에서 자원봉사를 할 당시 더타임스, 가디언을 자주 봤다. 영국에서 벌어지는 뉴스를 알고 싶어서였다. 특이하게도 이들 신문의 1면에는 나라 밖 소식이 더 많았다. 방송도 마찬가지였다. BBC도 해외 뉴스를 전하는 데 전파를 아끼지 않았다. 자국의 특파원을 통해, 혹은 프리랜서들을 통해 생생한 기사들을 독자들에게 공급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BBC 9시 뉴스의 톱은 한국이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더타임스는 전면 2개 면에 걸쳐 그에 관련된 보도를 했다.

 

기자의 꿈을 꾸던 시절이었지만, 내 눈에도 영국의 이런 보도 방식은 대단히 특이해 보였다. 으레 한국의 신문 1면, 혹은 헤드라인뉴스는 국내 정치 뉴스가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영국은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릴 정도로 세계를 경영했던 제국이었으니, 그 흔적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영국뿐 아니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ABC, 마이니치신문, 아사히신문 등 도서관에서 만난 이른바 선진국 언론들은 주로 국제뉴스를 전면에 배치하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그들은 강대국이고 우리는 개발도상국이니까’라고 자위했다.

 

기자가 된 지 22년이 지났다. 그동안 한국의 경제적 위상은 빠르게 커졌다. 지난해에는 세계 10대 경제국이 됐다고도 했다. 글로벌 무역량도 커졌다. 전 세계 한국 교민이 안 사는 데가 없고, 한국 물건이 안 가는 데가 없다. 해외에서 체감하는 K-POP과 K-드라마, K-웹툰의 인기는 생각 이상이다. 한국과 세계와의 관계는 정말 가까워졌다.

 

글로벌 뉴스에 대한 국내 언론의 시각도 과거에 비하면 많이 변했다. 하지만 그 변함의 정도가 더뎌 보인다. 빠른 속도로 달라지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 변화에 발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나라가 커진 만큼 나라 밖 소식에 대한 독자의 욕구도 커졌다. 하지만 국내 언론사에서 국제부는 여전히 주요 부서 취급을 받지 못한다. 독자의 니즈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주간경향 1422호 표지 ⓒ주간경향

 

 

주간경향 편집장이 됐을 때 여러 구상을 했다. 그중 하나가 국제뉴스였다. 해외발 뉴스를 국내 뉴스 수준으로 다뤄보면 어떨까. 표지 사진도 생생한 현지 사진으로 채우고. 타임이나 뉴스위크처럼 말이다. 프리랜서가 해외에서 단독 기사를 취재하면 이를 구매해 ‘exclusive(독점)’를 달고 내보고도 싶었다. <탈레반 반군 지도자, 전 세계 언론 첫 인터뷰> 뭐 이런 식 말이다. 그러려면 현지 인적 네트워크가 필요하고, 국내에 있는 해외 전문가를 확보하는 것도 필요했다. 하루 이틀 만에 쉽게 구축될 시스템은 아니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프리랜서 작가인 ㄱ씨였다. 15년 전 소말리아에 피랍된 마부노호를 취재할 때 알게 됐다. 그는 당돌하게도 소말리아까지 쳐들어가 해적을 만났다. 감히 소말리아는 생각도 못하고 인접국인 케냐에서 취재할 때였다. 생각해보면 그가 생산해내는 기사는 나의 그것과는 퀄리티가 달랐다. 취재원은 풍부했고, 해석도 농밀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그에게 가치 있는 해외 뉴스를 표지 기사로 다루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프리랜서 기자에게서 제값 주고 기사를 사서 게재한다는 개념이 아직은 낯설다. 우리 기자는 어디 두고 외부 글을 받느냐는 식이다. 그가 제시한 가격은 결코 크지 않았다. 항공료에, 숙박비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절차적으로, 비용적으로 회사를 설득시키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합의는 없었다. 서로의 의사를 응수타진한 것이 작은 성과라면 성과였다. 다시 보자며(그러나 실제로는 언제 볼지 모르는) 헤어졌다.

 

미얀마와 마주하다

 

처음부터 미얀마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동남아에서 흔히 보는 군부 쿠데타거니 했다.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대충 손꼽아봐도 아세안은 군부의 힘이 세다.

 

미얀마에서 날아오는 기사들은 생각보다 아팠다. 평화로운 시위를 군부가 무력으로 진압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태권도를 배운 18세 태권 소녀가 군부의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군경에게 끌려가는 사람,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시체…. 차마 보기 힘든 사진들이 온라인상에 계속 쏟아졌다.

 

그럼에도 미얀마 사태를 전면적으로 다루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미얀마는 아세안 중에서도 지리적으로, 경제적으로 큰 끌림이 없었다. 한국과 경제적 관계가 돈독해진 베트남이었다면 처음부터 관심을 가졌을지 모른다. 주간경향 편집장이 된 이후 동남아발 뉴스를 강화했다. 현지 거주 교민 또는 전문가들로부터 정기칼럼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베트남’, ‘우리가 모르는 인도’, ‘아세안 기업 열전’ 등 한국과 경제적 관계가 높은 나라가 우선이었다.

 

 

1425호 표지는 군부에 체포된 젊은 여성을 형상화한 현지의 퍼포먼스 사진으로 정했다. ⓒ주간경향

 

 

생각을 바꾸게 된 건 매일신문의 만평 한 컷 때문이었다. 종합부동산세를 비난하기 위해 5·18 당시 계엄군이 광주시민을 폭행하는 사진을 베꼈다고 했다. 그 만평의 역사의식과 주제 의식 자체도 동의할 수 없었지만, 나를 진짜 분노하게 한 것은 만평에 달린 지지 댓글들이었다. ‘5·18이 뭐가 대단한 거냐’, ‘광주가 특권이냐’ 식의 조롱과 폄훼들이었다.

 

형체를 알기 어렵게 훼손된 시체, 곤봉과 개머리판에 맞아 깨진 머리를 감싸는 시민들, 흥건한 피, 도로에 나뒹구는 누군가의 신발과 가방, 아버지 묘소 앞에서 우는 아이…. 5·18의 광주는 생각만 해도 잔인한데, 어떤 이에게는 조롱의 대상이었다. 5·18이 누구에게는 벌써 잊힌 과거가 됐다는 얘기일까. 어떤 이는 5·18을 의도적으로 폄훼하려 하겠지만 어떤 이는 미처 체감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1980년 이후 태어난 MZ세대라면 광주항쟁을 2017년 촛불 항쟁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전날 봤던 미얀마 사진이 떠올랐다. 미얀마는 딱 30년 전 광주 그곳이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퍼뜩 들었다. 미얀마에 대한 회피는 우리 현재와 미래를 왜곡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리랜서 작가 ㄱ에게 곧바로 연락했다. “지금이 등판할 때인 것 같다”고.

 

때마침 ㄱ도 미얀마에 대한 국내 언론 보도에 불만이 있던 차였다. 그는 흔쾌히 제안에 응했다. 그러면서 역제안을 했다. “기왕 할 거면 제대로 만들어봅시다. 외신들도 깜짝 놀라게. 잘못 만들면 먼저 독자들한테 욕 들어요”

 

ㄱ과 논의가 시작됐다. 주간경향이 원하는 방향성과 ㄱ이 제안하는 취재 방향을 놓고 제법 긴 대화를 주고받았다. 아이디어 회의는 새벽 1~2시까지 카톡으로 이어졌다. 미얀마 사태를 제대로 알리겠다는 그의 열정은 대단했다. 취재 계획이 확정됐을 무렵, 현실적인 문제에 부닥치기 시작했다. 현지 언론의 관행상 제시간에 마감을 기약할 수 없었다. 게다가 상황은 계엄령. 편하게 기사를 작성하기도 어려웠다. 군부는 인터넷망을 끊고 있었다. 대용량의 사진을 받기 힘들어졌다. 자칫하면 마감이 안 되는 악몽 같은 상황도 고려해야 했다. 목숨을 내놓고 취재하는 현지 기자들에 비하겠느냐마는 발행을 책임져야 하는 편집장으로서도 부담은 적지 않았다. 마감은 다음 주 목요일. 마감 이틀 전인 화요일까지는 관련 사진과 기사를 받자고 했다.

 

주말께 미얀마 기자들의 연락이 갑자기 끊겼다. 군부가 언론을 탄압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시위 현장에서 ‘PRESS’ 표식을 달면 군경에 끌려간다고 했다. 그들도 잡힌 건지, 도망을 다니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음을 졸이던 시간이었다. 월요일이 되니 현지 기자들과 다시 연락됐다. 화요일 몇 컷의 사진을 처음 받았다. 인터넷 망이 원활하지 못한 데다 기술 수준도 떨어져 사진 한 장 받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눈길을 잡는 사진 한 컷이 눈에 들어왔다. 그게 주간경향 1422호의 표지가 된 사진이다. 미얀마 시민들이 현지 운행 중인 시내버스에 앉아서 세 손가락을 내미는 모습. 내부에서는 다른 사진으로 표지를 가자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 한 컷만큼 한국과 미얀마를 이어주는 사진은 없었다. 논의 끝에 해당 사진을 최종 낙점했다. “차제에 가로 편집으로 가시죠!” 나의 제안에 내부 디자인 담당자의 눈이 잠시 동그랗게 커졌지만 이내 “좋은 생각”이라며 동의해줬다. 아마도 주간경향 15년 발행 동안 첫 가로 편집일 거라고 했다.

 

텍스트 기사는 미얀마 현지의 상황을 미얀마 언론인에게 직접 받자는 콘셉트였다. 카멜리아(가명)는 중견 기자지만 자신의 언론사가 폐쇄되면서 ‘전’이라는 직함을 달게 됐다. 미얀마 군부는 두 개의 친군부 매체를 제외하고는 모든 언론을 폐쇄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인들만 강제 해직시켰던 한국 군부와 비교해도 대응이 훨씬 거칠고 잔인하다. 현지에서 전달받은 글과 사진에 대해서는 원고료와 저작료가 지급됐다. 이 돈은 기고자들에게는 중요한 생활비가 된다. 그곳의 한 달 생활비는 우리 돈 30만 원 정도. 그러나 군부에 의해 언론사들이 문을 닫은 뒤 미얀마 언론인들은 생계의 위협을 받고 있다.

 

미얀마 보도의 의미

 

주간경향 1422호가 발매된 뒤 사내외의 반향은 뜨거웠다. 일부 독자는 “표지만 보고도 눈물이 난다”는 메일을 보내왔다. “이런 심층적인 기사를 기다렸다”는 전화도 있었다. 좀 더 퀄리티 있는 기사를 원하는 독자의 수요가 분명히 있었다. 기성 언론이 아니면 정보 전달이 되지 않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기사의 수준이 낮아도 큰 문제가 없었다.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을 통해 독자들은 실시간으로 현지 정보를 접한다. 게다가 현지에 거주하는 교민들, 국내에 있는 해당국 시민들도 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다. 언론이 해외 뉴스라고 내 맘대로 해석하거나 번역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언제고 항의성 댓글이 달리고 정정을 요청하는 이메일이 쇄도한다. 잘못하면 ‘공부 좀 하라’는 조롱을 당할 수도 있다.

 

주간경향에게 미얀마 보도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글로벌 뉴스를 공격적으로 다뤄본 첫 번째 사례가 됐다는 것이다. 두 차례에 걸친 미얀마 기사에 대한 사내외의 긍정적 반응은 변화에 자신감을 갖게 한다. 한국의 언론의 미얀마 기사는 대부분 번역돼 현지에 전달된다고 한다. 미얀마 군부가 직접 모니터링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KBS월드를 보유한 KBS의 경우는 영향력이 더 크다. 한국의 국력이 커지면서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과 책임도 커지고 있다. 중국의 부상, 일본의 쇠퇴와 맞물리면서 아시아에서 한국이 해야 할 역할도 커지고 있다. 상황이 그렇다면 국내 언론의 글로벌화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여기에서 새로운 니즈를 창출할 수도 있다. 세계 10대 경제국에 세계 10대 언론이 있는 것,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두 번째는 과거 우리가 쟁취해낸 민주화의 과정을 되새겨보는 계기가 됐다는 점이다. 5·18, 6월 항쟁 등 민주화의 기억과 성과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잊히고, 묻히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386에 대한 실망이 겹치면서 민주화 세대에 대한 불신이 커진 것도 한몫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민주화는 그저 얻어진 결과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피의 역사였고 희생의 역사였다. 누군가가 자신의 목숨을 바친 대가로 2021년 우리는 촛불만으로도 우리 의사를 밝힐 수 있게 됐다. 결코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저 주어진 것은 더더욱 아니다.

 

미얀마 사태가 언제까지 갈까. 아무도 모른다. 시민들의 저항이 거세지고, 군부가 강경대응을 고수하면서 장기화될 가능성이 더 커지고 있다. 주간경향은 미얀마 사태가 끝날 때까지 과감한 보도를 이어갈 생각이다. 어쩌면 이것이 80년 5월의 광주를 전 세계에 알린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Jrgen Hinzpeter)에게 한국 언론이 진 빚을 갚는 길인지도 모른다.

 

“아예더봉(혁명), 아웅야미(승리한다)!”

저자의 다른 미디어
  • 필자 : 박병률
  • 소속 :
  • 직함 :
  • 발행 : 2021-06-04
  • 조회수 : 18
  • 키워드 :
블로그 공유 트위터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