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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제작기] JTBC <5·18 ‘북한군 개입설’ 거짓의 뿌리…북 특수군 김명국 추적>
취재기제작기 | 등록일 : 2021-07-02

5·18 북한군 개입설의 살아있는 증거로 알려진 김명국. JTBC 취재진은 끈질긴 추적 끝에 그를 찾아냈고 그가 광주에 간 적이 없음을 밝혀냈다. 바이러스처럼 만연한 가짜뉴스의 진상을 밝히기까지 지난한 취재 과정을 공개한다. 편집자 주 

 

 

지난 5월 6일 JTBC 뉴스가 보도한 <5·18 ‘북한군 개입설’ 거짓의 뿌리…북 특수군 김명국 추적> <출처 – JTBC 뉴스 화면 갈무리>

 

 

“근데 김명국이 누구냐?”

 

아직 찬바람이 휑하던 때였습니다. JTBC 탐사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일하는 라정주 PD와 술잔을 부딪치며 물었습니다.

 

“아, 광주에 갔다는 그 북한특수군!”

 

라 PD는 연신 머리를 쥐어뜯었습니다. 찾아야 방송을 하는데, 도대체가 행적을 모르겠단 겁니다. 방송사고를 앞둔 PD의 고통이 술잔 너머로 느껴졌습니다.

 

‘북한군 개입설’을 추적한 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필자도 <스포트라이트>에서 ‘열일’하던 시절인 2019년.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5·18 공청회’를 열었습니다. 지만원이 등장했고 그의 입에선 예의 ‘김명국’이 나왔습니다. 그때도 취재진은 김명국을 찾아 떠돌았습니다. 김명국의 증언을 엮은 논픽션 《보랏빛호수》의 저자 이주성 씨를 만났습니다. 거기까지였습니다. 이 씨는 알고 있었겠지만, 입을 꾹 다물었습니다.

 

5·18 당시 광주로 갔던 북한특수군 김명국. 그는 ‘북한군 개입설’의 살아있는 증거였습니다. 후폭풍은 거셌습니다. 공청회 사건은 몇몇 의원의 제명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시나브로 김명국은 잊혔습니다. 그러다 올해 초 난데없이 튀어나왔습니다. 주인공은 박훈탁 위덕대 교수. 대학 교단에서 학생을 상대로 ‘북 개입설’을 가르친 겁니다. 황당한 이 뉴스를 아직도 믿는다고? 믿고 안 믿고를 떠나 역사 왜곡을 버젓이 학교에서 말한다고? 생각난 김에 라 PD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번엔 김명국 꼭 찾아야겠다.”

 

김명국의 실명은 탈북민 정명운

 

탈북자 그룹을 수소문했습니다. 그렇게 파악한 김명국의 실명, 탈북민 정명운이었습니다. 회령 출신으로 2007년 탈북했다고 합니다. 경기도 어디에 있단 소문이 무성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신체적 특징, 군에서 훈련 중 부상당했다고 합니다. 그것뿐이었습니다. 시간은 또 막막히 흘렀습니다.

 

그러던 중, 한 장의 사진을 발견합니다. 모 주간지에 나온 정명운의 탈북 스토리. 거기에 실린 정명운의 얼굴. 그리고 사진 배경에 있는 한 회사의 로고. 바로 저기다! 사진의 각도를 원근으로 분석해 일대를 떠돌았습니다(심지어 그 사진을 찍은 기자도 김명국이 정명운이란 사실을 몰랐으니까요).

 

경기도에서 김 서방 찾기, 한 달여 만입니다.

 

“김명국 선생님이시죠?”

 

예고도 없이 밀고 들어간 어느 사무실. 분명 정명운이 아닌 김명국이냐고 물었는데, ‘네’란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어라, 이건 또 대체 뭐야. 왜 이렇게 쉽게 대답하지. 오히려 취재진이 당황했습니다. 그렇게 찾아 헤매던 그를 그렇게 만났습니다. 여러 얘기를 나눴습니다. 물론 “말하기 싫다. 얼른 가라”가 절반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묻는 얘기에는 곧잘 대답했습니다. 결론은 “나는 광주에 간 북 특수군이 맞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설명이 필요합니다. 왜 김명국(정명운)이 중요할까? 전두환 신군부가 ‘북한’ 운운했던 건 일종의 레토릭입니다. 즉, 뻔한 얘기였단 겁니다. ‘북한군 개입설’의 역사를 쭉 훑어봤습니다. 최초라고 볼 만한 지점이 있었습니다. 2006년 탈북민 임천용이 땅굴을 통한 광주 침투를 주장한 것입니다. 이듬해 정명운이 탈북해 한국으로 옵니다. 그런데 정명운은 임천용과 레벨이 다른 인물이었습니다. 우리로 치면 ‘중령’까지 역임한 군인 출신입니다(본인 주장은 대령급입니다만). 1980년 당시엔 남파 간첩을 양성하는 대남연락소 2처에 있었습니다(국정원 합동신문 자료상에도 동일). 북에서의 신분이 그를 살아있는 신화로 만들었습니다. ‘북한군 개입설’의 뿌리라고 볼 만했습니다.

 

2009년쯤 이주성 씨는 정명운의 얘기를 소책자로 묶었습니다. 듣고 또 들었다고 합니다. “형님 이거 널리 알립시다”며 의기투합했습니다. ‘김명국’의 이야기는 처음엔 그렇게 사소하게 퍼져나갔습니다. 그러다 지만원이 나타납니다. 광주의 수상한 사람들. 이른바 ‘광수설’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황당무계한 얘기에 열광하는 이들이 돈을 댔습니다. 지만원은 마이크를 잡으면 ‘김명국’ 얘기를 꺼냈습니다. 실제로 온 북한군이 지금 여기 있다! 태극기 부대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2012년쯤 얘기입니다.

 

2017년엔 아예 서점의 책으로 나옵니다. 이주성의 《보랏빛호수》가 바로 그 책입니다. 이보다 한 달 전엔 《전두환 회고록》이 나왔습니다. 회고록엔 북한군 개입에 대한 이야기가 18번쯤 등장합니다. 우연일까요? 북한군이 개입한 것이니 군부의 진압과 발포는 정당했다. 그런 논리를 펼친 겁니다. 추론하건대, 이 모든 주장을 당당히 할 수 있었던 건 바로 김명국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2019년 국회를 거쳐 올해 대학 강단까지, 가짜뉴스는 바이러스처럼 퍼져왔습니다.

 

 

5·18 당시 광주로 갔다는 북한특수군 김명국. 그는 ‘북한군 개입설’의 살아있는 증거였다. <출처 – JTBC 뉴스 화면 갈무리>

 


그는 광주에 가지 않았다

 

“아, 좀 오지 말라니까요. 좀, 글쎄.”

 

세 번째 만남이었습니다. 이럴 땐 두꺼운 낯짝이 중요합니다. “아, 선생님 얼굴 보고 싶어서 왔죠.” 약간의 알랑방귀는 필수 양념입니다. 몇 번 만나니, 북한 사투리가 정겹게 느껴집니다(생각해보니 2018년 5월엔 북한식당 여종업원 집단 탈북도 다뤘습니다. 허강일 지배인을 비롯해 여종업원들을 자주 만났습니다).

 

“아, 그러니까 저희가 좀 안 오게 해주세요” 라며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습니다. 오랜 실랑이를 하려면 편안한 자세가 중요합니다. 몰래카메라의 각도도 고려해야 합니다. 최대한 모자이크를 치지 않도록 애초에 화면 각을 잘 잡아야 하는 겁니다.

 

 

2017년 김명국 증언록인 《보랏빛호수》와 북한군 개입설을 담은 《전두환회고록》이 비슷한 시기에 출간됐다. <출처 – JTBC 뉴스 화면 갈무리>

 

 

“거, 나 때문에 고생하시는 건 알겠는데, 내 말은 똑같아요. 고조 거기 커피라도 한 잔씩들 하시라우.”

 

웃는 낯에 침은 못 뱉어도 커피는 주나 봅니다. 대화의 꽃이 피어오릅니다. 앞서 한 시간은 평행선이었습니다. 몸을 풀었으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봅니다. 《보랏빛호수》는 꽤 디테일합니다. 너무 자세해서, 이걸 어떻게 기억해서 썼을까. 그런 생각마저 듭니다. 책 내용을 하나씩 물어봅니다.

 

“아니 그러니까 20일 밤에 서해안에 상륙하셨다고 했는데, 시간이 어디고 장소가 어디였죠? 가슴팍까지 물이 차올랐다고 소책자엔 돼 있는데 이 책엔 그게 또 빠졌네요?”

 

“아, 그걸 내가 몇 명이 갔는지, 어디로 몇 시에 도착했는지 내가 어떻게 아는가? 그거는 그냥 주성이가 고조 내 얘길 듣고 이렇다 저렇다 하니까 제가 알아서 그렇게 써놓은 거라니까?”

 

분명 책 표지엔 ‘논픽션 실화’라고 써있습니다. 그렇다면 광주로 침투한 북한군이 머물렀다는 증심사. 그 절은 일종의 거점으로 나옵니다.

 

“증심사 절에서 당신을 맞이한 스님 손성모를 기억하시나요?”

 

“절? 난 뭐 절에 갔다고 얘기한 적이 없는데?”

 

꼬리에 꼬리를 물더니, 양파 껍질이 하나씩 벗겨집니다. 일단 픽션인 건 확실해졌습니다.

 

“아, 그러니까 선생님도 그간 많이 힘드셨을 거 같아요. 저희도 힘들지만, 이제는 좀 내려놓고 싶지 않으세요? 그럼 제가 여기 다신 안 올 테니까, 한 가지만 여쭤볼게요. 광주에 가셨어요? 안 가셨어요?”

 

순간 정적이 흐릅니다.

 

“안 갔어요.”

 

아니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이제 와서 광주에 간 적이 없다니. 그렇게 그의 고백이 시작됐습니다. 1980년 5월 정명운은 19살이었습니다. 대남 간첩을 후방 지원하는 대남연락소 2처 소속 전투원이었다고 합니다. 훈련 중 다리 부상을 입었고, 5·18 기간 중엔 광주가 아닌, 평양의 군인 병원에 있었다고 합니다. 광주가 아닌 평양이라니!

 

퇴원 후 조장 리상국으로부터 귀에 못이 박이게 광주 얘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거기에 자신을 끼워 넣고, 애매한 건 평소에 자신이 훈련받은 것들로 채웠습니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깁니다. 정명운의 부대원들은 광주로 간 것이 아닐까? 조장이 들려줬단 광주 스토리엔 이런 내용도 있었습니다.

 

계엄군이 임신부를 배를 갈라 창자까지 길바닥에 흩었다. 남한에는 어떤 가죽 기계가 있는데, 포로로 잡혀서 거기에 머리를 갖다 대면 모든 기억과 생각이 줄줄 나온다. 즉, 잡히면 머리를 날리는 자폭을 해라 등이었습니다. SF 영화도 이렇게 만들면 실패합니다.

 

아직도 온라인을 떠도는 가짜뉴스

 

그렇다면 당시 왜 북에서 이런 얘기가 나왔을까. 북한이 바라본 5·18은 어땠을까. 좀 더 객관적인 자료를 찾았습니다. 동독 외무성이 만든 비밀 문건입니다. 성상환 서울대 독문과 교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어느 언론도 주목하지 않은 따끈따끈한 마이크로필름들이었습니다. 거기엔 평양 주재 동독 대사가 본국에 보낸 전문들. 동독 외무성이 북한을 분석한 내용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5·18 직후 북은 우방의 대사들에게 5·18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여줬습니다. 남한이 이 모양이고, 우리가 훨씬 낫다는 겁니다. 체제 선전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필름은 북이 수집한 자료가 아니었습니다. 일본 언론을 짜깁기한 것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또 당시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은 북의 무력 투쟁을 강력히 반대하던 상황이었습니다. 10.26 궁정동 총소리에도 북이 움직이지 못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에서 북한 특수군 500명이 남파를 했다고?

 

“자, 선생님 오늘 말씀 너무 감사합니다. 하지만 정식 인터뷰를 해야 방송할 수 있습니다. 저희 회사로 한 번 와주시겠습니까?”

 

고심을 거듭한 정명운은 공식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JTBC 인터뷰실을 찾은 정명운은 광주 시민께 사죄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자신도 이렇게 일이 커질 줄 몰랐다고 합니다. 뒤늦게 고백하는 게 너무도 창피했고, 오히려 이런 기회를 줘서 감사하단 말도 덧붙였습니다.

 

2013년 자신이 채널A 방송에 등장한 이유, 2009년부터 3번에 걸쳐 국정원 조사를 받았던 일, 자신에게 돈을 줄 테니 기자회견을 하자고 꼬셨던 세력에 대한 존재 등 상상 그 이상의 일들이 이번 보도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보도 후 5·18진상규명위원회는 정명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정 씨가 위원회 조사에 임한 건, 저희와의 만남도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누구도 믿지 않았던 ‘북한군 개입설’. 이 가짜뉴스는 아직도 온라인에 떠돌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도 전후를 살펴보니, 상당수가 삭제되고 있었습니다. 정명운의 양심선언으로 ‘북한특수군 김명국’은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게 됐습니다(물론 지만원은 아직도 정명운이 탄압받아서 허위 자백을 했다고 주장합니다만).

 

5·18 진상 규명에 그리고 우리 역사를 바로잡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다면 저희는 그걸로 만족합니다. 라정주·오승렬 PD를 비롯해 송우영·채승기·김동훈 기자, 남동근 VJ까지 모두 고생 많았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의 다음 추적 대상은? 노숙자담요!(지만원에게 광수설 자료를 건넨 자, 베일에 싸인 인물) 후배들의 원망 섞인 눈초리가 벌써 눈에 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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