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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이 독자의 가족, 친구, 동료의 사진과 이야기를 실어준다? 낯설지만 잔잔한 감동이 일고 딱딱하고 멀기만 했던 신문이 가깝게 느껴진다. 보도사진 수록의 원칙을 과감히 깨고 독자에게 다가간 중앙일보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의 뒷이야기를 들어 본다. 편집자 주

Q. “신문 여행면 사진엔 왜 사람이 등장하나요? 등장인물은 왜 손가락으로 여행지를 가리키고 있나요?”
A. “보도사진엔 사람이 들어가는 게 원칙입니다.”
Q. “‘보도사진에 사람이 들어가야 한다’는 원칙은 누가 만든 건가요? 신문사에서 만든 것이지 독자가 만든 원칙은 아니죠? 신문사 독자가 백만 명이라 칩시다. 등장인물의 손가락을 본 만 명의 독자가 그곳으로 여행 갔다 칩시다. 넉넉잡아 만 명일 텐데 그래 봤자 고작 1% 독자만 여행가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행 못 가고 사진으로만 보는 99%의 독자는 무엇으로 만족하게 해주실래요?”
1996년 어느 독자와 주고받았던 편지 문답을 간략히 정리한 내용이다. 이메일조차 없던 시절, 꾹꾹 눌러쓴 손편지에 담긴 독자의 의문이었다. 당시의 나는 이 편지에 적잖이 충격받았다. ‘보도사진엔 반드시 사람이 들어가야 한다’는 원칙은 수습 시절 선배로부터 배운 것이다. 그 선배들 또한 그들의 선배로부터 배워왔을 뿐이다. 원칙이라니 원칙대로 찍었던 게다. 그런데 편지를 보낸 독자는 그 원칙이 어디서 비롯된 건지 묻는 게다. 나아가 그 사진을 보는 독자의 마음을 헤아려 보았냐고 묻는 게다. 다시 그 독자에게 편지로 되물었다.
Q “그러면 당신은 신문에서 어떤 사진을 보길 원하십니까?”
A “아침에 신문을 펼친 내가 그 풍경 앞에 있는 듯 여기게 해주세요. 더는 모르는 사람의 뒷모습과 그 사람이 가리키는 손가락을 신문 사진에서 보고 싶지 않습니다.”
독자의 편지를 곱씹었다. ‘신문 사진의 풍경을 당신이 보고 있는 듯하게 해달라’는 독자의 요구가 내내 맘에 머물렀다. 고민 끝에 두 가지 버전의 사진을 열 꼭지 남짓 만들어 테스트해보기로 했다. 보도사진의 원칙을 따른 사진과 사람을 뺀 사진(사람이 있더라도 사람이 풍경의 일부가 된 사진)을 주변 독자에게 보여주며 고르게 했다.
테스트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단 한 명의 독자도 보도사진의 원칙을 지킨 사진을 고르지 않았다. 그래서 편지를 보낸 독자의 요구대로 신문에 사람 없는 여행 사진을 과감히 게재했다. 그날 아침 신문사의 반응이 뜨거웠다. 우선 보도사진이 아니라 달력 사진이라는 데스크의 질책이 뜨거웠다. “기자 자질 없다”는 소리까지 들었으니 심장이 뜨겁디뜨겁게 뛰었다. 한편 그 질책으로 뜨거울 때, 사진 찍은 장소를 묻거나 사진을 구하고 싶다는 독자의 전화 또한 뜨거웠다. 전화 받느라 취재기자가 기사를 쓸 수 없을 만큼 전화벨이 뜨겁게 울렸다.
당시 난 3년 차 기자였다. 보도사진의 원칙을 깨고서도 홀로 뒷감당할 수 있는 그런 연차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계속 원칙을 깬, 사람 없는 여행 사진을 게재했다. 그 원동력은 신문사에 울렸던 독자의 전화벨 소리였다. 결국 그들의 피드백이 원칙을 허물고, 그들을 위한 원칙을 새로 세우게끔 한 게다.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그 편지로부터 25년이 지났다. 요즘도 독자와의 소통은 여전하다. 온라인 세상이 되면서 더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한다. 신문 기사 크레딧에 이메일 주소를 밝히는 게 기본이며, 나아가 SNS로 실시간 소통까지 한다. 그 소통을 통해 그들이 필요로 하는 걸 살피는 게 일상이다.
근자에 코로나19로 인해 가족이 해체되고, 인연이 소원해지는 독자의 현실이 보였다. 이른바 가족이 해체되고, 인연이 끊어지는 언택트 시대다. 이 시기에 불현듯 사람과 사람의 인연을 잇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차에 올 3월 최훈 중앙일보 편집인과 식사 중 독자의 인생 사진을 찍어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가족, 연인, 동료, 친구, 인연을 사진으로 기록해주는 프로젝트다. 편집인은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당장 시행하라고 했다. 편집인 또한 언택트 시대에 무엇보다 독자를 위한 프로젝트라 인식한 게다.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3월 한 달 동안 사연을 받아 4월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프로젝트 제목은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로 정했다. 가족사진 한 장 없는 가족, 오랜 우정을 쌓은 친구, 늘 동고동락하는 동료, 오래 간직하고픈 연인 등 기록하고 싶은 어떠한 사연도 좋으니 응모하라는 사고를 신문에 게재했다. 만약 기억해야 할 곳이 특별한 장소라면 나는 물론이고 중앙일보 포토팀이 어디든 가겠노라며 덧붙였다. 이를 덧붙인 건 기자 권혁재 개인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중앙일보 포토팀 전체 프로젝트라는 의미였다. 사진 전문가 집단인 포토팀이 그들의 노하우로 독자의 사연을 찍어 주는 프로젝트임을 공표한 게다.
세부적으로는 매주 한 사연을 선정해서 그들의 인생 사진을 찍은 후, 중앙일보 온라인에 사연과 함께 사진을 게재하기로 했다. 끝으로 소개된 사연의 주인공에겐 대형 액자를 선물하는 것까지 계획에 포함했다.
선정된 첫 사연이 딸의 간을 공여받아 제2의 인생을 사는 엄마의 이야기였다. 사연은 딸의 아빠가 보내왔다. 당신이 공여하려 검사를 받았지만, 당뇨가 심해 어찌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안 딸이 부모 몰래 검사를 해 적합 판정을 받았다. 딸의 공여 사실을 알게 된 엄마는 젊은 딸 앞날에 흠을 낼 수 없다며 한사코 수술을 거부했다. 결국 딸의 고집으로 둘은 서로 간을 나누게 됐다. 엄마가 몸으로 딸을 낳았지만, 딸은 가슴으로 엄마의 새 삶을 낳았다는 사연, 첫 인생 사진으로 더할 나위 없었다. 이 사연이 게재된 후, 감동했다는 독자의 피드백이 줄을 이었다. 사연의 가족은 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위치에 액자를 걸었다고 전해왔다. 오가며 볼 때마다 가족애를 느끼며 감동받는다는 감사 인사까지 덧붙여 왔다.

15년 후원한 ‘아프리카 아들’과 함께
두 번째는 15년간 아프리카 어린이를 후원한 독자의 사연이었다. 후원받던 여덟 살 어린이가 대학원생이 됐고, 그 어린이가 자립하게끔 15년간 도운 후원자는 비로소 후원을 졸업하게 됐다는 사연이었다. 사실 이 사연을 응모한 이는 후원단체 직원이었다.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후원하는 후원자에게 아주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사연을 보내온 게다. 그런데 처음엔 후원자가 사진 촬영을 거부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후원한 일이라며 촬영을 거부한 것이다. 한사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겠다니 낭패였다. 이때 사연을 응모한 후원단체 직원이 어머니로 시작하는 아프리카 청년의 감사 편지를 후원자에게 보여줬다. ‘다른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후원하는 지지자가 되고 싶은 꿈까지 가지게 됐습니다’며 고마움을 전하는 아프리카 소년의 마지막 편지였다. 편지를 읽은 후원자는 울컥했다. 그 순간 후원자에게 제안했다.
“비록 아프리카에 있는 아들이지만, 오늘 이 자리에 함께 있는 듯 사진을 찍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사진으로 인해 또 다른 후원자들이 생길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 제안에 후원자는 카메라 앞에 섰다. 노트북으로 전송받은 어엿한 아프리카 아들 사진과 함께 둘이 함께인 듯 사진을 찍었다. 사연 게재 후 감동했다는 사연은 물론이거니와 실제 그를 본받아 후원자가 되고 싶다는 피드백 또한 있었다.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의 두 번째 주인공. 15년간 아프리카 어린이를 후원한 독자는 후원받던 어린이가 성장해 자립한 후 비로소 후원을 졸업했다. Ⓒ권혁재 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
독자와 신문이 공감하는 사연 이어지길
이렇듯 사연이 매주 하나씩 소개되자 누구보다 먼저 흥미로워한 게 신문사 동료들이었다. 그간 신문사에서는 없었던 프로젝트이니 여러 경로로 흥미롭다는 반응이 전해져 왔다. 게 중 신문에 사람 이야기를 소개하는 피플 담당 팀장은 직접 찾아와 사진팀과 피플팀의 협업을 제안하기도 했다.
다음으로 신문사 사보팀에서 연락이 왔다.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의 탄생 스토리가 궁금하다며 인터뷰를 요청했다. 오래지 않아 기자협회보에서도 연락 왔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진행 상황, 앞으로의 계획과 현재 반응 등을 기자협회보에 소개하겠다고 했다. 게다가 월간 《신문과방송》에서도 이 프로젝트에 관한 원고 청탁이 왔으며, 그로 인해 지금 이 원고를 작성하고 있으니 반응이 예사롭지 않은 건 사실이다.
한편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요즘 독자의 마음을 새로이 읽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가족사진의 경우 대체로 부모들이 사연을 신청한다. 그런데 이런 경우 사진 촬영 일정 협의 과정에서 취소되는 일이 허다했다. 공교롭게도 부모는 신청하고 자녀는 거부하는 이유가 뭘까? 대체로 자녀들은 그들의 사연이 공개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었다. 개인정보와 개인 신상을 중요시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성향이 인생 사진 프로젝트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한 달 새 네 가족이 이런 이유로 촬영을 취소했다. 취소가 이어지니 뭔가 해결책을 강구해야 했다. 우선 원치 않으면 이름, 나이, 학교, 직장 등을 비공개로 하기로 했다. 신문 기사의 신뢰를 위해 공개하는 게 원칙인 기본 정보를 비공개로 바꾼 게다. 어차피 이 프로젝트가 독자를 위한 일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들이 원하는 바에 맞게끔 수정하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더는 촬영 취소가 발생하지 않았다. 신문의 원칙이 아닌, 독자의 요구를 수용한 결과였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아쉬운 점 또한 있다. 그건 응모한 독자의 사연들이 하나같이 묵직하다는 점이다. 첫발을 뗀 사연이 묵직했으니 이어지는 사연 또한 묵직했다. 물론 사연이 묵직하니 감동 또한 묵직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가벼운 우리 이웃의 이야기가 거의 없으니 적잖이 아쉽다. 처음 기획할 땐 독자 당신의 이야기인 듯 공감할 수 있는 가벼운 사연이 이어지길 바랐다.
25년 전 아침 신문을 펼친 독자가 그 풍경 사진 앞에 있길 바랐듯, 다른 이의 사연이 나의 사연인 듯 공감할 그런 이야기를 원했던 바다. 물론 독자의 클릭 수는 묵직한 사연이 월등할 터다. 하지만 클릭 숫자가 적을지라도, 신문과 독자가 함께 호흡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야 신문과 독자가 우리라는 한 울타리에 오래도록 들 수 있을 테니…. 더욱이 독자와 독자, 독자와 신문이 서로 공감하는 사연이 이어져야 이 ‘인생 사진’ 프로젝트 또한 오래도록 이어질 테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