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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소식] KPF 취재고민상담소
재단소식 | 등록일 : 2021-07-30

 

현직 기자들을 상대로 한 토론형 취재 보도 윤리 교육, ©한국언론진흥재단

 

 

“만나주지 않는 취재원을 만나야 하는데, 그가 사는 아파트 공동현관에는 비번이 걸려있다. 마침 바로 앞에서 주민이 비번을 누르고 들어간다. 아무렇지 않은 척 따라 들어가고는 있는데 이래도 될까?”

 

“불법 현장을 발견했다. 분명히 단독이다. 그런데 기자라는 걸 밝히면 당연히 들어갈 수가 없다. 잠입 취재를 어디까지 해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다. 보고는 해야겠지?”

 

“취재원과 몇 날 며칠을 만나 취재했는데 아이템이 킬 됐다. 취재원한테 전화가 계속 온다. 왜 기사가 안 나오냐고…. 어느 날은 후속 기사를 요구하는 전화에 늦은 밤까지 시달린 적도 있다. 취재원의 전화는 어디까지 대응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출입처에서 만날 때마다 밥을 산다. 어떤 때는 선물도 준다. 모두 김영란법 테두리 안에는 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찜찜하다. 나만 그런 건가?”

 

강의 기획 단계에서 수집된 사례이자 강의 시간에 나온 실제 이야기다. 매일 수많은 기사를 쳐내기 바쁘기에 이런 고민을 토로하면 ‘한가하다’ 소리 듣기 십상이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고 부담스럽다. 남들은 잘만 취재하고 기사 쓰는 것 같아 어디 물어보기도 애매하고 데스크에 물어보면 면박당할 것 같아서 그냥 넘어갈 뿐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취재 보도 윤리와 직결돼 있고, 이전 세대의 기자들이 전혀 고민해보지 않았던 종류의 윤리적 문제들이다.

 

고민 상담의 외피를 쓴 토론형 취재 보도 윤리 교육, 의 시작은 작년 <저널리즘 윤리교육 체계수립 포럼>이었다. 재난, 젠더 등 이슈별로 대응해온 윤리 교육을 좀 더 체계화시켜볼 수 없을까 하는 문제의식이 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주니어 기자 대상의 토론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래서 올해 초, ‘강사의 일방적 강의’가 아니라 ‘모더레이터와 수강생이 토론하는’ 교육과정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토론 교육은 쉽지 않다. 무턱대고 수강생들에게 말해보라고 하고 끝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누가 토론을 지휘(?)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컸다. 고민 끝에 현장 기자 경험이 있는 학자와, 수강생의 고민에 공감해줄 수 있으면서 나름의 답을 찾아가고 있을 6~7년차 현장 기자를 짝지었다. 수강생이 고민을 말할까 말까 주저하고 있을 때 현장 기자는 자신의 사례를 먼저 풀어내는 ‘브릿지’ 역할을 해주고, 학자는 기자들의 시야를 넓혀줄 수 있는 ‘가이드’ 역할을 해주기로 했다.

 

 

이번 강의는 ‘강사의 일방적 강의’가 아니라 ‘모더레이터와 수강생이 토론하는’ 교육과정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현장 기자 경험이 있는 학자와, 수강생의 고민에 공감해줄 수 있으면서 나름의 답을 찾아가고 있을 6~7년차 현장 기자를 짝지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당일 돌발 질문을 대비해 취재 보도 과정의 윤리적 딜레마도 수집하기로 했다. 지난 5년간 재단의 수습기자 수료생을 대상으로 <아무에게도 물어볼 수 없었고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던 이야기들>이라는 제목의 구글 설문을 열었다. 이미 그 전해에 제2기 저널리즘위원회에서 진행한 주니어 기자 대상 FGI 결과도 있었기에 설문 결과와 종합해서 사례들을 분류했고, 석 달간의 치열한 모더레이터 워크숍과 회의를 거쳐 ‘기만취재, 어디까지 괜찮을까’, ‘범죄보도, 어디까지 해야될까’, ‘취재원과의 거리두기, 어떻게 해야 할까’, ‘출입처와의 관계,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총 네 가지 주제를 선정했다. 우리의 강의 목표는 이러한 질문에 ‘답’을 주는 게 아니었다. 기자들이 잘못된 타성에 젖기 전에 잠깐 멈추고, 바쁜 현장 속에서 놓치고 지나갔던 것들을 질문해보며 “나만의 답과 논리를 스스로 찾아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또 했다. 그리고 4주간의 강의가 진행됐다.

 

“나만 고민하고 있는게 아니구나”

 

이번 강의 진행에서 제일 힘들었던 건 수강생 모집이었다. 모더레이터를 맡은 기자 중 한 분이 저녁 강의 다섯 명 오면 성공입니다! 했던 걸 흘려들은 내 탓이었다. 기대만큼 수강생이 모집되지 않아 스팸처럼 홍보 문자를 발송했고, 강의 시작 1분 전까지도 신청한 수강생이 오지 않으면 마음이 타들어 갔다. 하지만 막상 강의가 끝난 저녁 8시 30분이 되면 마음이 되려 흥분됐다. 수강생이 토론 중 강의 기획 의도에 정확히 들어맞는 말, 예를 들어 “이렇게 살다가 선배처럼 될 것 같았다”랄 지, “한 번도 문제라고 생각해본 적 없었다” 등의 말을 할 때는 ‘이 강의 기획이 틀린 게 아니었구나’라는 내적 확신이 생겼다.

 

모더레이터를 맡은 6~7년차 현장 기자들은 마치 멘토처럼 자신의 팁을 전수했고, 학자들은 법적 판례나 해외 사례, 그리고 반대되는 견해 등을 짚어주면서 수강생의 시야를 넓혀주고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되새겼다. 일방적인 도덕 시간처럼 여겨지지 않도록 깊은 공감은 기본이었다. 수강생들은 “다른 기자들과 함께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름의 원칙과 방향성을 세웠다”(유성애 오마이뉴스 기자), “나의 선을 만드는 데 유익한 시간”(윤솔 연합뉴스TV 기자)이라는 후기를 남겼고, ‘중심을 다잡는 계기’, ‘처음 기자가 되었을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라는 수강생도 많았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해왔던 행동이 문제가 될 수 있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는 수강생도 있었다.

 

제일 놀랐던 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왔다는 수강생이 많았을 때였다. 토론 자리가 부담스러울까 봐 강의명에서 ‘토론’, ‘윤리’ 같은 재미없는 단어를 모두 빼고 라고 작명한 터였기에, 그런 반응은 신선했다. “고민을 나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꽤나 위로가 되었다”(정지혜 세계일보 기자)는 후기는 많은 수강생의 공통된 반응이었다. 자신의 양심과 다르게 행동하게 되는 모습 속에서 ‘내가 아직 기자가 덜된 걸까?’라고 고민해왔는데, 나랑 똑같이 생각하고 나아가 실천까지 하는 기자들이 있는 걸 확인한 거다. 처음 기획 단계에서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윤리적 감수성이 살아있는 사람들이 만나서 연대 의식을 느끼고, 나의 윤리적 행동에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되는’ 부수적 효과는 생각지도 못한 성과였다.

 

강의를 마무리했지만, 마음에 찜찜함과 숙제들은 여전히 있다. ‘나 혼자 윤리적으로 산다’고 될 문제가 아닌 환경에 처한 언론사가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런 기자들에게는 이런 강의가 한가한 소리일 수도 있다. 그래도 이 가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기자들을 위한 작은 출발점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음 시즌2를 기획해보려고 한다. 처음으로 시도되는 형태였던 만큼 지난 4주간의 강의를 돌아보는 결산 워크숍을 계획 중이다. 이런 교육 형태를 정례화하거나 확대하는 방안, 또한 이런 윤리적 질문들에서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인 세대 갈등을 데스크 교육 등으로 풀어내는 방안 등을 검토할 예정이다.

 

처음 시도하는 강의 방식에 모두 부담 백배였는데, 만반의 준비로 강의를 훌륭하게 마무리해준 여덟 명의 모더레이터가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강의를 마치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고민 해결을 기대하며 와준 수강생들에게도 큰 감사를 표한다. 뒤집어 생각하면 그만큼 그들의 고민이 깊고, 해답을 찾고 싶은 마음이 컸다는 뜻이리라.

 

마지막으로 바쁜 와중에 동료 기자들을 위해 모더레이터로 나서준 네 기자의 말로 저널리즘 윤리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갈음하고 싶다. ‘윤리’라는 말은 늘 지루하고 답도 없으며, 당장 내 앞에 쌓인 보도자료를 쳐내고 단독을 따는 게 급한 우리의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이유. 이들의 말이 결국 우리 강의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돌아보면 늘 간당간당한 지점에 서 있었던 거 같다. 윤리라는 말이 언론의 속박이 아니라 우리를 지켜주는 가이드라인, 방어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최미랑 경향신문 기자)

 

“비윤리적인 사람이 될 것인가, 뻔뻔한 사람이 될 것인가. 나는 내 이름 남는 게 무섭다. 정답은 없지만 매 순간 나만의 논리를 쌓는 게 가장 큰 일인 것 같다.” (이혜미 한국일보 기자)

 

“범행 수위 묘사에 대한 고민은 늘 한다. 수위만 갖고 논의할 게 아니라 이 기사가 가해자의 시선인지 피해자의 시선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박민지 국민일보 기자)

 

“저연차들은 기레기 소리 듣지 않으면서 취재를 하고 싶은 거다. 모든 것에 적용되는 취재윤리 원칙은 없지만, '할까 말까'의 순간들을 피드백하면서 나만의 취재윤리를 한 겹씩 쌓아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송승환 중앙일보 기자)

 

 

<KPF 취재고민상담소> 강의 내용 

 

• 1주 차: 기만취재, 어디까지 괜찮을까

(모더레이터 /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송승환 중앙일보 정치팀 기자)

모든 기자 공통인 ‘뻗치기’1)에서 시작했다. 뻗치기가 허용되는 범위와 요건들부터 시작해 몰래 촬영·녹음, 기자 신분 감추기 등 이른바 ‘거짓말’을 해야 하는 다양한 상황까지 확대됐다. 법과 별개로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해 우리가 최대로 할 수 있는 것과, 나아가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닐 수 있다는 윤리적 반성으로 1주 차 토론은 마무리됐다.


• 2주 차: 범죄보도, 어디까지 해야될까

(모더레이터 / 박아란 미디어연구센터 책임연구위원, 박민지 국민일보 사회부 기자)

 

기사 수정·삭제와 관련된 논쟁적 사례로 시작했다. 나아가 범죄 보도에서 피의자·피해자 신상 공개, 잠입 취재 시 보고의 중요성, 피해자 중심주의를 넘어서는 검증의 중요성, 동시에 범죄 사실 기술에 있어서 2차 가해를 하지 않는 것 등 범죄 보도를 둘러싼 다양한 이슈에 대한 토론과 법률적 조언이 이어졌다.


• 3주 차: 취재원과 거리두기, 어떻게 해야 할까

(모더레이터 / 이나연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최미랑 경향신문 뉴콘텐츠팀 기자)

 

취재원의 호의, 취재 소스의 당사자성, 기자의 시민단체 후원, 기자의 주식·부동산 투자, 취재원과의 정서적 거리와 기자의 트라우마까지 논의가 점진적으로 확대됐다. 당사자성이란 장점이자 한계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위치에서 기자가 명심해야 할 직업윤리는 무엇인지, 나아가 기자 역할에 대한 고민과 취재원을 대하는 팁까지 나눴다.


• 4주 차: 출입처와의 관계, 이대로 괜찮은가

(모더레이터 /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이혜미 한국일보 뉴스룸국 커넥트팀 기자)

 

출입처에서 제공하는 소소한(?) 편의적 관행부터 기사 수정 요청, 의도적 비판·칭찬 기사, 광고·협찬 요구까지 다뤘다. 각자의 양심고백(!), 출입처와의 난감했던 일화 등 솔직한 이야기가 오가는 가운데 내 이름을 걸고 나가는 기사를 생각하면 결국 나만의 선과 논리 설정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됐다.




 

1) 취재 대상을 무작정 기다리는 전통적인 취재 기법을 뜻하는 언론계 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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