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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갈등 부추기는 언론] 언론은 갈등을 어떻게 다뤘나1: 세대 갈등
커버스토리 | 등록일 : 2021-09-03

‘○○세대’라는 말을 우리는 흔히 쓴다. 특정 세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이 말은 한편으로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하고 프레이밍을 통해 범주 안에 들지 못하는 이야기를 생략하기 일쑤다. 시대별 세대론의 변화 양상과 언론 보도의 문제점, 해결 방안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세대론은 크게 문화적 세대론, 경제적 세대론, 정치적 세대론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이중 가장 갈등적이며 정치화된 세대 관계는 386 또는 586을 불러냈던 정치적 세대론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론은 이를 '세대 전쟁'으로 프레임하고 있다.

 

 

범람하는 세대론의 30년

 

“세대론은 그 시대를 드러내는 거울이다”라는 문구를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세대를 조명하는 방법에서 한 사회의 담론지형이 투명하게 드러나곤 한다. 2020년 총선 그리고 올해 재·보궐선거 이후 등장했던 ‘이대남(20대 남성)’에 대한 관심을 보자. 이대남에 대한 미디어 보도는 한편으로는 젠더 갈등의 구조와 내용을 드러내는 지점이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기획과 사회적 관심 모두가 교차되는 사안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대남은 기본적으로는 20대라는 세대에 대한 ‘묵시적인 전제’, 즉 젊으면 진보적일 것이며 ‘진보 정부’인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정부를 지지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빗겨났기 때문에 주목받은 것이었다. 행간에 있는 다양한 정치적 행위자와 미디어가 프레이밍 하는 문제 설정이 ‘이대남과 더불어민주당의 선거 패배, 그리고 이준석’으로 드러나게 됐던 것이다.

 

사회과학 연구자들은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몇 가지 범주를 왔다 갔다 하면서 다루곤 한다. 사회학자 최샛별에 따르면 세대는 △친족 중 같은 항렬 △같은 연배의 코호트 집단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 △생애 주기상 동일한 단계에 사는 사람들로 규정된다. 통상적으로 미디어는 ‘같은 연배의 코호트 집단’(1960년대생-86세대, 1970년대생-신세대, 1980년대생~2000년대생-MZ세대)을 활용하거나,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4.19 세대, 산업화 세대, 민주화 세대, 강경대 세대 등)을 활용한다.

 

다른 한 편에서 ‘청년’을 소환할 때는 앞서 언급한 ‘묵시적인 전제’, 그러니까 칼 포퍼(Karl Popper)나 몇 명의 사상가들이 말했다는 경구인 “젊어서는 진보, 나이 들어서는 보수”라는 가설을 가지고 생애주기적 해석을 하려고 시도한다. 과거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투표하지 않거나 보수 세력인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투표한 젊은이들을 미디어 지면을 통해 비난했던 진보 평론가들의 관점 역시 그러한 방식의 ‘청년’ 세대를 상정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선거 결과를 해석하는 이들은 이중 전자인 코호트 집단에 집중할 땐 ‘세대 효과’라고 하고, 후자인 생애주기적 해석에 집중할 땐 ‘연령 효과’라고 한다. 가령 86세대가 나이가 들어도 계속해서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한다면 ‘세대 효과’가 강하게 작용했다고 해석하고, 나이가 들면서 국민의힘 지지층이 늘어났다면 ‘연령 효과’가 강하게 작용했다고 해석하는 식이다. 물론 현실은 대체로 이 두 효과의 어정쩡한 조합 어딘가에 있다.

 

사실 20세기 말부터 현재까지 대략 30년을 풍미한 세대론이 항상 현실 정치의 문제와 조응하는 것은 아니었다. 세대론은 거칠게 세 가지 범주로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문화적 세대론, 경제적 세대론, 정치적 세대론이다. 우선 문화적으로 ‘신인류’라고 흔히 표현되는 해석하기 어려운 세대가 등장했을 때 흥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1990년대의 신세대론은 소비와 문화 그리고 스타일로서의 새로운 세대를 조명했다. X세대, 오렌지족 등이 그런 범주였다. 2000년대 초반 미디어에 주로 등장했던 N세대론, 최근 한국에서의 MZ세대론 등은 코호트의 문화적 특징 등을 포착하려는 시도다. 이러한 문화적 세대론은 갈등보다는 ‘차이’를 드러내고, ‘희한한 존재’로서 새로운 세대를 보여주기에 세대 갈등도 그렇게 첨예하게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예컨대 회식을 따라가기 싫어하는 MZ세대를 보면서 “90년생이 온다”고 외쳤을 때 그 심각성이 반드시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의 ‘한판 결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한 편에서 경제적 문제나 갈등 구조를 드러내려고 시도하는 경제적 세대론이 있다. 예컨대 2000년대 후반을 풍미한 《88만원 세대》(우석훈·박권일, 2007)가 대표적이었고, 여기에 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교육받지 않고 직업 훈련도 받지 않는 청년)나, 프레카리아트(Precariat, 불안정 노동자) 등의 말이 함께 따라왔다. 이러한 경제적 세대론은 문화적 세대론보다는 좀 더 갈등적 요소가 많은데, 여기에는 ‘분배’라는 쟁점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대기업 정규직 시니어 노동자의 인건비가 임금피크제 도입을 통해 절감된 만큼 신입사원을 많이 채용한다거나, 예산 중 일부분을 청년수당에 전용함으로써 노인복지의 몫을 줄인다는 식으로 분배 투쟁의 문제가 따라오는 것이다. MZ세대론은 경제적 성격을 일부 갖는데, 예컨대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정규직 전환, 공공의대 등의 이슈는 세대 간 분배보다는 세대 내 분배 투쟁의 성격을 가지는 세대론적 이슈였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를 계급 투쟁 관점에서 해석하면서 2010년대의 이른바 ‘수저계급론’과 이어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세대 전쟁’ 프레임의 등장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갈등적이며 정치화된 세대 관계는 (3 또는 5)86을 불러냈던 정치적 세대론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 내내 학생 사회를 조직화해 운동권을 만들고,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1987년 6월 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에 참여했고, 직선제 개헌 이후에도 정치세력화를 시도하면서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정치적 세대로 성장해온 86세대. 이들에 대한 이름 붙이기나 이들과 다른 세대를 견주면서 하는 미디어의 보도보다 더 정치적이며 갈등적인 사안은 지극히 드물다 할 것이다. 사실 86세대는 처음에는 보수 언론에 의해 새로운 뉴스의 소재로 호명되기 시작됐다. 1970년대생 신세대 담론과 거의 엇비슷하거나 외려 조금 늦게 이슈화됐다. 이후 지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386세대’에 관한 논의는 김대중 대통령이 운동권 출신 정치인을 적극적으로 수혈했던 2000년 총선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2002년 대선에서 당시 대체로 30대였던 86세대가 그 아래 세대들을 포섭하는 세대 선거를 주도해 노무현 대통령을 극적인 승리로 이끌면서 폭발적으로 확산했다. 이후 86세대가 언급될 때마다 선배 세대인 산업화 세대, 후배 세대인 1990년대 학번 신세대, 또는 산업화 세대 및 86세대의 자녀 세대인 MZ세대와 갈등하는 ‘세대 전쟁’의 프레임이 등장하곤 했다.

 

그리고 사회적 격변, 경제적 격변, 정치적 격변이 올 때마다 세대론은 범람한다. 정치의 시절이자, 코로나19로 사회적 격변과 경제적 격변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세대론이 흥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한 이 세대론의 양상을 봐도 앞서 말한 문화적 세대론, 경제적 세대론, 정치적 세대론의 요소가 혼재돼 있다. 문화적 세대론으로는 앞서 간단히 언급한 《90년생이 온다》(임홍택, 2018)가 대표적이고, 경제적 세대론으로는 논지를 투박하게 요약한다면 1990년대생에서부터 불평등이 심화되는 상황을 예측한 《불평등의 세대》(이철승, 2019)와 《세습 중산층 사회》(조귀동, 2020)의 논의가 주목받았다. 정치적 세대론도 현재진행형인데, 특히 다음 대선을 포함한 차후 선거에서 이른바 MZ세대가 지금의 86세대를 비토하는 길에 합류할지 아닐지를 점치거나 한쪽 선택의 당위성을 설파하는 논의들이 흔하다. 보기에 따라선 방금 경제적 세대론으로 언급한 《불평등의 세대》도 86세대에 대한 규탄을 담은 정치적 세대론이기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언론의 세대 갈등이 보여주는 것과 보여주지 않는 것

 

그러나 미디어에서 세대를 호명하는 일, 즉 불러내는 일은 그 자체로 보여주거나 보여주지 않는 일련의 선택적 과정의 연쇄 속에서 진행된다. 예컨대 386세대라고 말할 때, 그들이 대학에 진학하던 시절의 대학 진학률이 전문대 진학률을 합쳐도 20~30%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70~80%의 대학을 가지 않았던 1960년대생들의 경험은 드러나지 않기 쉽다. 오로지 1987년 6월 항쟁, 노동자 대투쟁,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민중가요 등의 상징과 당시 민주당 정부 안의 몇몇 정치인만 남게 되는 식이다. 물론 그저 1960년대생으로서 사회학적 코호트만 불러낼 경우 ‘특정한 역사적 시기’가 상실되기 때문에 86세대란 말을 써서 ‘임팩트’를 살리는 것이 언론의 전략이 되기 쉽다. 그렇게 20~30년간 86세대는 호출돼 왔다.

 

최근의 MZ세대 프레이밍도 비슷한 난점을 갖게 된다. 이들은 ‘공정’과 ‘능력주의’에 대해 집착에 가까운 옹호를 하는 것으로 보도된다. 예컨대 정유라 사태에 대해 싸웠던 이화여대 학생들과 조국 사태에 분노하는 청년들 모두는 같은 MZ세대일 것이다. 전자는 촛불혁명을 지탱한 진보적인 청년이며, 후자는 기득권 세력에 포섭된 보수적인 청년이라는 식으로 구별해서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건에서 묘사되는 MZ세대의 ‘공정’에 대한 생각은 동시에 ‘능력주의’라 불리는 일종의 ‘시험주의’와 연결돼 있다. 이 능력주의는 흔히 서구권에서 논의되는 단어의 뜻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어서 시험주의라는 부연이 필요한데, 동아시아의 유구한 과거제 전통이 보여준 것처럼, 시험 한 번의 응시가 성공을 거두면 과거에 합격해서 입신양명했던 것처럼, 공채 시험 및 선발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으니 시험을 보지 않은 비정규직들과는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게 마치 MZ세대의 일반론처럼 언론에 보도되곤 했다. 최근 논란이 됐던 KBS의 청년 설문조사도 그러한 인식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편집됐다.

 

그렇다면 MZ세대는 도대체 누구인가? 서울 아파트 가격이 폭등했을 때 ‘벼락거지’가 됐다면서 박탈감을 느끼고, 그걸 만회해 보겠다고 정체가 불분명한 라이트코인(암호화폐)을 매매할 권리를 달라고 하면서, 온갖 시험에서 특출난 실력을 발휘하는 자신들의 능력을 강조하며, 모욕 속에 생을 달리하는 청소노동자를 조롱하는 청년들이 과연 그 세대를 대표할 수 있는가? 냉정하게 말해 같은 세대 코호트의 10% 내외에 속하는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나온 기자, PD, 연구자들의 친구들과 선후배들, 그리고 그들의 연결망 속에 있는 다른 지인들이지 않나. 이른바 ‘에코 챔버’1) 혹은 ‘필터버블’2)을 통해서 자신들의 ‘닫힌 네트워크’ 안에서의 목소리만 재생산된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MZ세대론에는 세대 코호트의 다수를 차지하는 지방대생, 중소기업 노동자와 플랫폼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생략되기 일쑤다. 요컨대 평택항 사고처럼 중대재해 사고가 나거나, 구조조정이 벌어지는 등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만 희생자로서 등장하는 이들이 지워져 있다. 이들은 사회학적 정의상 MZ세대에 속하지만, 사실상 담론적으로는 MZ세대의 일원이 되지 못한다.


다시 대표성 찾기, 사회적 갈등을 제대로 표현하기


결과적으로 최근의 세대론은 지리적 관점에서는 서울·수도권 중심의 코호트만을 다룬 세대론이요, 계층적 관점에서는 입시 성적 상위 10%만을 비추는 세대론일 수가 있는 것이다.

 

한편 별도 주제로 독립된 것으로 알기에 자세한 서술은 생략하겠지만, 젠더 갈등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3) 최근의 청년 세대론과 과거의 청년 세대론의 가장 극적인 차이는 젠더갈등을 통해서 청년 세대론이 양분돼 있다는 점이다. 이는 386 세대론에서도, 신세대 담론에서도, 88만원 세대론에서도 없었던 현상이다. 이에 대한 최근의 도식적 접근은 경제적 세대론에선 청년 남녀를 기성세대에 대한 사회적 약자로 포지셔닝하되, 문화적 세대론에서는 ‘이대남’은 이기적인 이들로 ‘이대녀’는 이타적인 이들로 도식화한 후, 이대녀는 진보적이며 이대남은 보수적이라는 정치적 세대론으로 결론짓는 방식이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청년은 진보적이어야 한다’는 말의 함의가 무엇인지, 그 진보성을 더불어 민주당이나 국민의힘과 같은 기성 정당에 대한 지지율 추이를 통해 평가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세대 효과와 연령 효과가 동일한 집단에서 문화적 단절을 가정한 후 그에 입각해서 정치적 단절을 논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등의 질문이 될 것이다.

 

2008년 즈음의 세대론이 당시 민주당의 선거 패배를 손쉽게 설명하려는 ‘20대 보수화론’으로 잠깐 경도된 것과 같은 방향으로, 지금의 20대를 절반을 잘라내 ‘이대남 보수화론’으로 몰고 간다면, 그 담론이 낙인찍는 당사자들이 실제로 진보 담론이나 세대론적 논의의 타당성을 전적으로 불신하는 불행한 결말로 치달을 수 있다. 우리는 언제나 문화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 그리고 정치적인 것의 연결고리가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혹은 끊어져 있는지를 좀 더 섬세하게 탐색할 필요가 있다.

 

 

 

 

 

 

 

 

 

1) 반향실에서 소리가 울려 증폭되는 것처럼 정보, 아이디어, 신념이 정의된 시스템 내에서 증폭되거나 강화되는 상황. 편집자 주

2) 이용자의 관심사에 맞춰 필터링된 인터넷 정보로 인해 편향된 정보에 갇히는 현상. 편집자 주

3) 《신문과방송》 9월호 커버스토리는 세대 갈등, 젠더 갈등, 이념 갈등, 어떻게 할 것인가로 구성돼 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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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 양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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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 : 2021-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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