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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3일 시사IN 저널리즘 콘퍼런스가 ‘저널리즘과 연대-미얀마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열렸다. 언론의 위기는 곧 민주주의 위기이기에 시사IN은 콘퍼런스를 통해 미얀마 쿠데타 이후 아시아 민주주의를 둘러싼 고민과 경험을 나누고자 했다. 독자들의 성원으로 더욱 뜻깊었던 본 행사의 면면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미얀마와 한국의 시차는 약 2시간 30분이다. 지난 2월 1일 이후 시사IN 기자들 역시 때때로 ‘양곤의 시간’을 살았다. 현지와 연락이 닿지 않을 때마다 갖가지 불길한 예감이 꼬리를 물었다. 불안정한 인터넷 연결, 사실상 군부가 통치 수단으로 쓰는 건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엉망인 코로나19 방역 상황 등 이유는 정말 많았다. 취재원 중에는 군부에 끌려가거나 고문을 경험한 언론인도 이미 여럿이었다. 시위 현장을 보도하는 일은 가짜뉴스를 유포하는 범죄가 됐고 언론사 수십 곳이 면허를 취소당했다.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가 벌어진 지도 어느덧 반년이 넘었다. 군부의 강경 진압과 유혈 사태는 미얀마 시민의 일상이 됐다. 미얀마정치범지원협회(AAPP, Assistance Association for Political Prisoners)는 하루도 빠짐없이 새로운 부고를 업데이트한다. 희생자 수가 1,000명을 훌쩍 넘어섰다. 장기화하는 위기에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다. 사태 초기 한 달 사이 2,000건 넘게 쏟아지던 국내 언론의 관련 뉴스는 또 다른 이슈로 눈길을 옮겼다. 자연스럽고, 매끈한 이동이었다.
그래서였다. 2017년 창간 10주년 특별기획으로 시작된 이래 매년 겨울 열었던 시사IN 저널리즘 콘퍼런스(SJC)를 올해 처음 여름에 진행했다. 8월 23일 오후 6시 30분, SJC 2021 ‘저널리즘과 연대-미얀마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가 시사IN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온라인 생중계됐다. 사전 신청자가 360여 명, SJC가 진행되는 3시간 내내 동시 접속자 수도 200명대를 유지했다.

독자들이 정해준 콘퍼런스 주제
이번 콘퍼런스 주제는 사실상 봄에 이미 결정됐다. 그동안 SJC는 편집국이 전체 회의로 정한 독립 언론, 탐사보도, 비영리 언론 등을 주제로 삼았다. 이번에는 달랐다. 독자들이 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SJC에 앞서 캠페인이 있었다. 시위대 강경 진압으로 유혈 사태가 이어지던 3월, 시사IN 편집국은 미얀마 소식을 그저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군부의 봉쇄·차단·감시를 뚫고 미얀마를 돕고자 하는 한국 시민들과 분투 중인 미얀마 시민들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하늘길마저 끊긴 팬데믹 시대에 언론의 역할은 무엇일지 고민했다.
캠페인은 독자들이 기사를 읽으면서 답답해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상황은 알겠고, 그래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는 독자들이 많았다. 완벽한 답은 아니어도 한두 개의 답은 언론이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언론이 잘하는 방식이어야 했다. 기자들은 많은 전문가를 안다. 캠페인 전문가를 찾았다. 4월 7일부터 5월 18일까지 41일간 시사IN과 사회적협동조합 ‘오늘의 행동’이 진행한 캠페인#WATCHINGMYANMAR(#왓칭미얀마)는 그 결과였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고, 공동체에 기여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묶어내는 것 역시 저널리즘의 역할 중 하나다. 그럴 수도 없었지만 처음부터 ‘모두’를 돕고자 하지 않았다. 한국의 독립 언론과 그 독자들이 미얀마 언론인을 지원하는 일로 범위를 좁혔다. 명분도, 의미도 있었다. 드물고 또 어렵게 민주주의 공고화를 이뤄낸 국가의 시민으로서 책임감을 느낀 독자들의 성원이 이어졌다. 41일간 857명이 3,723만 5,386원을 모아줬다. 언론의 위기가 곧 민주주의의 위기임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었다.
군부가 민간으로 권력을 이양하기 시작한 2010년 이후 미얀마에도 여러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출판물에 대한 규제가 대폭 완화된 점이었다. 이는 숫자로도 나타났다. 일간지 30여 개, 주간지 400여 개, 월간지 350여 개 이상이 새로 창간됐다. 감옥에 갇혀 있던 기자들이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고, 검열 부서의 장관이 텔레비전에 나와 ‘진정한 민주주의가 되려면 검열을 철폐해야 한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1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오랜 식민 지배와 군부 통치로 누적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다. 의회 의석 25%를 차지한 군은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었고, 대안 세력은 번번이 헌법 개정에 실패했다. 군부 쿠데타는 그 틈을 비집고 벌어졌다. 하지만 명분은 시민에게 있다. 지난 10년간 경험한 자유와 변화는 특히 미얀마 젊은 세대들에게 유산으로 남았다. 인종과 민족주의에서 자유로운 세대인 이들은 아웅산 수치(Aung San Suu Kyi)라는 아이콘에 기대지 않고 그들 스스로 미얀마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얼굴이 됐다.
시사IN은 모금을 전달하기 위해 국내외 전문가들과 함께 미얀마 매체를 두루 검토하고 취재했다. 2015년 창간된 독립 언론으로 민 아웅 훌라잉(Min Aung Hlaing) 군 총사령관의 가족 사업 비리를 고발하는 데 앞장섰던 미얀마나우(Myanmar Now), 1998년 인도 뉴델리에서 망명 언론으로 시작해 국제언론인협회 ‘자유언론 개척자상’을 수상하기도 한 미지마(Mizzima), 탐사보도 전문 매체로 미얀마 국내 언론이 외면해왔던 로힝야 학살을 심도 깊게 다뤄온 프론티어미얀마(Frontier Myanmar) 등 세 개 매체는 물론 도피 중인 미얀마 언론인들에게 카메라와 노트북 등 취재 장비를 제공하고 있는 타이외신기자클럽(FCCT, The Foreign Correspondents' Club of Thailand)까지 네 곳에 우선 지원을 확정했다.
그 과정에서 SJC의 이른 개최 여부가 검토됐다. 미얀마 사태 이후, 아시아 민주주의를 둘러싸고 새롭게 커져가는 고민과 경험, 현장의 목소리를 한국의 독자와 연결하고자 했다. 미지마와 타이외신기자클럽 소속 기자가 SJC 연사로 최종 확정됐다. 김원장 KBS 타이 특파원과 이유경 국제분쟁전문기자, #WATCHINGMYANMAR 캠페인을 이끈 김영화 시사IN 기자가 토론자로 나섰다.
‘미얀마 독립 언론이 살아남는 법’을 주제로 카메라 앞에 선 소 민트(Soe Myint) 미지마 대표는 2021년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있었던 1988년 시위를 주도했던 학생운동가 중 한 명이기도 했다. 군부의 잔인한 진압으로 수천 명이 숨진 1988년 민주화운동은 수포로 돌아갔다. 소 민트 대표는 1990년 11월 알칼리염으로 만든 가짜 폭탄을 들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를 납치해 전 세계에 미얀마 현실을 알리려 했던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물 한 살이었다.
이후 인도 뉴델리에서 망명 생활을 이어가며 독립 언론 미지마를 창간했다. 2012년 민간으로 정권 이양이 시작되고서야 미지마는 미얀마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망명 언론의 설움도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2021년 쿠데타를 일으킨 정부가 가장 먼저 했던 조치는 미지마의 텔레비전 채널 중단과 발행 허가 취소였다. 공동 설립자를 포함해 기자 17명이 체포되거나 수배 중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 민트 대표는 암 선고를 받고 현재 투병 중이다.
이번에는 비행기를 납치했던 때와는 달라야 했다. 역사를 반복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이들을 움직였다. 양곤을 떠나 모처에 임시 편집국을 차려 계속 뉴스를 만들고 있다. 그들은 매일 아침 세 가지 맹세를 함께 낭독한다. ‘우리는 미얀마 사람들과 항상 함께할 것이다’, ‘우리는 미얀마 군부에 의해 억류된 기자들의 희생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항상 독립 언론으로 존재할 것이다.’, 소 민트 대표는 단언했다.
“미얀마는 반드시 민주주의 연방국가가 될 것입니다. 군사정권은 반드시 패망할 것입니다. 모르는 것은 그것이 언제인지 시기의 문제일 뿐입니다. 그날이 오면, 양곤에서 만납시다.”
시민 저널리즘의 성장
지난 4월 국경없는기자회에 따르면 한국, 타이완, 일본, 몽골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의 언론자유지수는 모두 100위권 밖이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군부 독재와 언론 탄압은 아시아 기자들이 공유하는 위기의 본질이나 마찬가지다. SJC 두 번째 연사로 나선 그웬 로빈슨(Gwen Robinson) 타이외신기자클럽 전 회장은 ‘미얀마를 위한 아시아 언론 연대’를 주제로 한국 시민들을 만났다. 타이는 미얀마와 가장 긴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나라다. 타이외신기자클럽은 회원 800여 명이 등록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기자클럽으로 미얀마 쿠데타 직후부터 현재까지 미얀마 언론인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쿠데타 이후 지역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독립 언론이 폐쇄됐지만, 위기가 언제나 위기인 것만은 아니다. 극단적인 폭력은 시민 저널리즘을 좀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그웬 로빈슨 전 회장에 따르면 미얀마 언론인들은 뉴스를 확산시키는 방법들을 계속 개발해 나가고 있다. 군부가 와이파이 서비스를 중단하면 ‘미니 신문’ 형태의 인쇄물을 발행하는 식이었다. 이 인쇄물은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어 SMS 문자 메시지로 전달, 또 전달했다. 또 미얀마 위기는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언론인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마음을 모으는 계기가 됐다. 특히 앞서 위기를 겪고 있는 홍콩, 타이완, 타이 기자들이 주축이 돼 미얀마 언론인을 돕고 있었다.
이어지는 토론 시간에는 김원장 KBS 기자가 ‘모바일 시대, 혁명은 어떻게 전파되는가’를 주제로, 이유경 국제분쟁전문기자는 ‘나는 왜 미얀마 소수민족에 주목하게 되었나’를 주제로 토론에 나섰다. 2019년 홍콩, 2020년 타이에 이어 2021년에는 미얀마 민주화 시위를 취재하고 있는 김영화 시사IN 기자는 격동기에 접어든 아시아 민주주의와 아시아 청년들이 위기를 돌파해나가는 방식에 주목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김원장 KBS 기자는 1,000명 넘게 숨지고 7,000명 가까이 잡혀간 상황이 미얀마 시민들에 의해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이들이 남기는 기록이 모두 역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얀마 시민들이 알려주는 정보가 실시간으로 저에게 들어옵니다. 한국인들의 연대의 마음도 실시간으로 미얀마에 전해집니다. 1980년 광주의 진실이 밝혀지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고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미얀마의 진실은 매 순간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기자는 첫 취재의 추억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 기자는 2004년 세계 최장기 내전지인 미얀마 카렌주에서 10박 11일 동안 반군과 동행했었다. 그리고 2017년 민주적으로 선출된 민간 정부와 사회도, 박해받는 소수민족을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가해자가 되는 상황을 마주해야 했다. 이 기자는 “미얀마 소수민족이 배제된 민주주의는 허상이다”라고 말했다. 희망이 없지는 않다. 현재 시위를 주도하는 청년 그룹들은 로힝야를 포함한 소수민족과의 연대를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다.
“하루아침에 편견과 혐오가 깨지기는 어렵지만 방향은 이전과 다르게 가는 중이라고 조심스럽게 낙관하고 있습니다.”
이번 SJC의 주제인 ‘저널리즘과 연대-미얀마를 어떻게 도울 것인가’는 콘퍼런스 참가 신청자들이 가진 질문이기도 했다. 역대 콘퍼런스와 비교해 유난히 사전 신청자의 질의응답이 많이 접수됐다. 미얀마의 오늘에서 한국의 어제를 본 사람들은 어떻게든 ‘접점’을 만들고자 했다. 한 참가자는 “한국의 역사가 생각나서 자꾸 울컥해진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궁금해서 참가를 신청했다”고, 또 다른 참가자 역시 “비극적인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비슷한 내용의 질문이 많았다.
이유경 기자는 한국 언론의 절대적인 관련 보도량은 줄어들었지만, 미얀마 현지 언론의 보도는 전혀 줄지 않고 오히려 많아지고 있음을 주목했다.
“한국 언론을 통해서만 미얀마 이슈를 접하다 보면 조용해졌나 싶고, SNS 연대도 동반해서 줄어드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기자는 미얀마어로 된 뉴스를 한국어로 번역해주는 SNS 페이지(페이스북 미얀마투데이)를 소개하기도 했다. 김원장 기자는 여론이 정치와 정책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1980년 5월에 광주 시민들이 고립돼 죽어가고 있다는 걸 외국에서 알고만 있어줘도 얼마나 큰 위안이 됐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미얀마를 향한 우리 국민의 지지와 연대는 절대 헛된 게 아닙니다. 또 한국은 미얀마의 6~7번째로 손꼽히는 투자국가입니다. 미얀마에 민주 정부가 들어서면 지금의 연대가 국가 간 연대로 나아가는 데 큰 기초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온라인상의 연대가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물을 수 있지만, 진공상태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없다. 어떤 식으로든 사회적 압력을 만들어야 한다. 바깥세상에서 보내오는 관심은 미얀마 시민사회가 늘 필요로 하는 자원이었다. 미얀마 내에서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이들에게 국제사회의 관심은 절실했고, 그 압력이 때로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아웅산 수치 여사는 1997년 2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 “당신들의 자유로 우리의 자유를 북돋아 주십시오”라고 썼다. 안타깝게도 이 요청은 여전히 유효하다.
단순히 쓰고 보도하는 것을 넘어 동료 시민을 연결하고자 하는 일은 요즘 시사IN의 숙제기도 하다. 기자라는 직업이 글을 쓰는 것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보다 넓어질 수 있는지 실험 중이다. 무엇을 위해 쓸 것인지, 누구를 위해 쓸 것인지를 고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영역도 넓어질 것이다. ‘민주주의를 응원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가장 크게는 아프가니스탄 사태에서도 불거졌던 난민 문제가 얽힐 수 있다. 이 ‘복잡성’을 한국 사회가 새로운 숙제로 받아들이고 함께 고민하고 풀어나가는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야말로 저널리즘이 해야 할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