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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하면 딱딱한 다큐멘터리가 생각나지만, 이것을 주제로 다양한 연령의 시청자를 만족시킨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SBS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다.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작해 시즌2까지 제작되며 화제를 모은 이 프로그램의 제작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시작
때는 2020년 추운 어느 겨울, 월요일 오후 5시. 프로그램 기획 회의를 빙자한(?) 맥주 타임이 시작됐다.
“근현대사에 관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근현대사요…?”
헉…. 근현대사라니.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근현대사’라면 학창 시절 때 쳐다보지도 않았던 선택 과목 중 하나였다. 달달 외워야 했던 역사 과목은 딱 질색이라 가능한 한 피하고 싶었는데. 내 마음을 하나도 모르는 선배는 맥주를 꿀꺽꿀꺽 마시며 한술 더 뜬다.
“실제로 맥주 한잔 하면서.”
맥주? 근현대사와 맥주라니. 이 무슨 연관성 하나 없는 조합인가. 듣는 순간 벌써 노잼(?)이다. 선배를 말리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일개 막내 팀원인 내겐 그럴 용기가 없다. 일단 해보지 뭐. 망하면 어때? 프로그램이란 게 다 그런 거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는 그렇게 시작됐다. 망하더라도 한 편만 가볍게 해보자던 <꼬꼬무>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3월 이야기>라는 이름의 파일럿을 시작으로 두 번째 파일럿, 시즌1, 시즌2를 지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레귤러로 안착했다. 수많은 콘텐츠가 쏟아지는 요즘, 하나의 프로그램이 탄생해 레귤러화 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뼈저리게 겪었던 시사교양 PD로서 참으로 놀랍고 감개무량하다. 비결이라고 할 만한 거창한 것은 사실 없지만, 제작 과정에서 내가 느꼈던 생생한 순간들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근현대사라…. 일단 역사에 대한 각자의 기억과 생각부터 다시 더듬어보기로 했다. 괜히 떠오르는 질문. ‘역사는 객관적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본다. 아니다.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다음 질문. 그렇다면 역사는 개별적인가? 아니다. 역사 속에서 하나의 사건은, 그 후에 다른 영향을 끼치며 다른 사건을 야기하고, 통째로 뒤흔들곤 했다. ‘어찌 보면 역사라는 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 모든 것들의 집합체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 없는 무덤은 없듯이 현재 일어나는 것들은 과거와 어떠한 방식으로든 연결돼 있다는 생각으로 출발했다.
다양한 시청층을 사로잡은 이유
사실 나에게 <꼬꼬무>는 참으로 어려웠다. 왜냐? 역사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어서. 나의 무식함은 매주 회의 시간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번 아이템으로 1·21 사태는 어때?”
1·21 사태? 들어본 거 같긴 한데, 그게 뭐였지? 갑자기 머리가 하얘진다. 뭐가 떠오르기라도 해야 이렇다 저렇다 한마디라도 할 게 아닌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선배는 눈치 100단이다.
“설마 몰라?”
창피하지만 아주 솔직히 자백했다.
“들어본 거 같긴 한데, 잘 모르겠는데요.”
순간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몰려온다.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어? 혹시 너는 아냐?”
“어, 저도 잘 모르는데요.”
옆에 있던 조연출이 대답한다. 휴, 천만다행이다.
“맙소사, 너도 몰라?”
대학교 때 공부 안 하고 뭘 했냐며 날 놀리던 선배는 그야말로 ‘문화충격’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신기했다. 동시대에 같이 살고 있고 심지어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선배와 내가 이렇게나 다르다니. 그날부터 회의 시간에 우리의 대화는 ‘선배가 아는 것’과 ‘내가 모르는 것’으로 점철됐다. 돌이켜보면 이 시간은 꽤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내가 모르는 것은 내 친구들도 잘 모를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하나의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떤 부분이 재미있고 재미없는지 적나라한 의견을 제시했다. <꼬꼬무>가 다양한 시청층에게 관심을 끌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제작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바로 ‘가족끼리 함께 보면서 대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이다. 엄마·아빠 세대에겐 ‘한 번쯤 들어본, 나도 아는 이야기’로 친숙함을 주고, 요즘 젊은 세대에겐 ‘전혀 몰랐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로 쉽고 새롭게 다가가기 때문이 아닐까.

주관적인 이야기의 힘
다시 ‘1·21 사태’로 돌아가 보고자 한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1·21 사태는 이렇게 한 줄로 나온다. ‘1968년 1월 21일 북한의 무장 공비들이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한 사건’. 그렇게 나는 시즌1의 1·21 사태 편 연출을 맡게 됐다. 그때부터 각종 문서와 관련 영상들을 섭렵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1·21 사태의 유일한 생존자인 김신조 씨를 인터뷰하기로 한 디데이가 왔다. 북한에서 어떻게 지령을 받았고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거쳐 선발됐으며 두 발로 남한에 침투하던 모든 순간을 당사자에게 직접 듣는 건, 어떤 자료 혹은 영화에서 보고 들은 것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하고 생생했다. 어느 순간 내 앞에는 79세 노인이 27세 젊은이가 돼 앉아있었다. 너무 흥미로웠다. 남겨진 활자로는 전해질 수 없는 그때만의 오롯한 감정이 살아 꿈틀거리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인물의 시선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객관보다는 주관을 과감히 시도해보기로 한 거다. 어떻게 보면, ‘역사’와 ‘주관’이라는 단어는 서로 공존할 수 없는 관계일 것이다. 우리는 항상 객관적인 역사를 추구해왔으니까. 물론 사실이 왜곡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제작진이 지키고 있는 철칙 중 철칙이다. 하지만 <꼬꼬무>의 생명은 ‘주관적인 시점’에 있다. 이미 알고 있는 사건이라도, 한 사람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시작되는 ‘그날 이야기’는 그 어느 때보다 새롭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인터뷰 말미에, 김신조 씨는 이런 이야기를 남겼다. 북한 측에서 김신조라는 무장 공비를 보낸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던 순간, ‘그럼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믿었던 조국으로부터 나의 존재를 부정당한다는 것은 어떤 걸까?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인생에서 저런 순간을 마주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1·21 사태를 단순히 역사적 사건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된 순간이었다. 그렇게 1·21 사태는 무시무시한 무장 공비 사건을 뛰어넘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남기며 내 머릿속에 짙게 남았다.
이후 나는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됐다. 어쩌면 역사는, 이미 끝나버린 사건의 집합체가 아니라 여전히 누군가의 기억 속에 살아 숨 쉬는 유기체라는 생각. 그리고 이 프로그램의 백미는 그 사건의 소용돌이에 있던 사람의 시선을 오롯이 따라가며 ‘그날’로 돌아가 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결국, 사람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
이렇듯 <꼬꼬무>는 단순한 역사 프로그램이 아닌, 여러 사람의 기억을 소중히 모아 새로운 그림으로 복원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을 ‘조각 모음’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같은 사건이라도 각기 다른 기억을 한 조각 한 조각 모아 미처 보지 못한 사건의 이면을 보여주는 것 말이다.
한 가지 순간을 더 공유하고자 한다. 시즌2
“아니, 다 지난 일을 뭘 그렇게 듣고 싶어서 그래요?”
앉자마자 당돌하게 인터뷰에 응한 그녀들이 꺼내 놓은 ‘그날 이야기’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참혹함과 충격 그 자체였다. 같은 여자인 나로서도 듣기 수치스러운 순간들도 있었다. 장장 5시간 동안 그 고통의 순간들을 덤덤히 꺼내어놓고 그녀들은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겼다.
“그래도, 다시 돌아가도 우린 그렇게 살 거예요. 그치?”
그러고 껄껄껄 호탕하게 웃는 게 아닌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질문을 던졌다.
“그때의 기억이, 어떻게 보면 여성으로서, 한 개인으로서 비참했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웃으면서 이야기하실 수 있는 걸까요?”
예상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우린 한 번도 그 순간을 비참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편견이 와장창 깨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여공분들에 대한 연민이 있었으리라. 착취당하고 불쌍한 소녀들이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자리하고 있었으리라. 순간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녀들의 기억 속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바야흐로 ‘그날 이야기’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끝난다.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꼬꼬무>는 결론이 없는 프로그램이다. 사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판단하지 않고 이야기를 들은 당신에게 온전히 그 몫을 넘긴다. 똑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개인마다 꽂히는 부분이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엄마의 관점에, 어떤 사람은 아들의 관점에 이입한다. 신기하게도 장트리오에게 같은 자료를 넘겨줘도 그렇다. 나는 그것 또한 역사의 한 조각이라고 생각한다. 보이지는 않지만, 과거의 조각과 현재의 조각이 이어져 결국 오늘의 나를 만들어 가고 있는 건 아닐까.
감사하게도, 많은 분이 사랑해주셔서 <꼬꼬무>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혹자는 이렇게 묻는다. 아직도 다룰 사건이 남았냐고. 그 질문에 쉽게 답할 수는 없지만, 이건 확실하다.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그날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고.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의 이야기’는 여전히 있다고.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이 영영 잊히기 전에,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묵은 먼지를 닦아내고자 한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함께 기억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하나의 프로그램을 하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이번 주는 간만에 선배에게 맥주 한잔하자고 얘기해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