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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일, 힌츠페터국제보도상조직위원회는 한국 최초 국제보도상인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수상작을 발표했다. ‘영상기자, 진실을 밝히는 눈’이라는 슬로건 아래 국제 공모로 진행돼 총 네 개 부문을 시상했다.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은 민주주의에 기여한 언론인들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세계 각지에서 인류의 평화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영상기자들을 응원하는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의 탄생과 진행 과정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가보지 않은 낯선 목적지를 향해 길을 나선다는 것은 설렘보다는 걱정과 두려움이 앞서는 일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국제보도상,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을 준비하고 공모, 심사를 진행하는 과정들이 그랬다. 한국영상기자협회와 5·18기념재단은 3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21년 3월 힌츠페터국제보도상조직위원회를 출범시키며 상의 성공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방송 현장, 언론 관련 학계, 시민단체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가진 분들로 구성된 힌츠페터국제보도상조직위원회는 5·18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독일의 영상기자 위르겐 힌츠페터(Jrgen Hinzpeter)의 기자 정신을 기념하는 이 상을 통해,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역사의 기록자, 현장의 전달자’로서 그 역할을 하지 못했던 한국 언론의 부끄러운 역사를 제대로 반성하고자 했다. 또 전 세계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민주주의, 인권, 평화 문제를 취재·보도하는 이 시대의 힌츠페터들을 찾아내, 그들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새로운 형태의 국제적 연대를 만들어 보고자 했다. 이를 통해 5·18정신과 민주주의, 언론 자유를 쟁취한 우리의 경험을 전 세계와 공유할 수 있다는 바람을 담아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의 본격적인 공모 작업이 추진됐다.
최초 국제보도상, 첫발을 내딛다
퓰리처상(Pulitzer Prize), 피바디상(The Peabody Awards), 로리펙상(The Rory Peck Award) 등과 같이 우리 귀에 익숙한 해외 언론상이 많다. 하지만, 국내에는 국제 공모를 진행하는 언론상이 없었기 때문에, 참고하거나 조언받을 대상이 없어 국제보도상이라는 성격에 걸맞은 새로운 운영체계를 만들고 상을 준비해나가는 일은 애초의 구상만큼 쉽지 않았다.
기존 국제보도상들이 특정 국가 단위의 매체에 소속된 기자나 협회 소속 회원들을 대상으로 공모를 진행하는 데 반해, 새롭게 출범하는 우리의 국제보도상은 현재의 미디어 환경을 반영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은 TV와 온라인 매체 소속 영상기자는 물론이고, 1인 미디어까지 그 공모 자격을 확대했다.
코로나19로 온라인 중심의 공모와 심사를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영상 업로드와 심사를 위한 영상 재생, 온라인을 통한 평가와 심사위원들의 의견 교류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는 홈페이지 구축이 중요한 과제가 됐다. 보도 영상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한 심사 규정과 심사 방법, 수상작 영상 사용 사전 동의를 확보하는 일도 세심하게 준비해야 했다.
지난 5월 13일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의 국제 공모 일정과 세부 사항을 공개하는 기자회견이 광주에서 열렸다. 새로운 국제보도상의 탄생에 많은 언론사가 관심을 가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5·18광주민주화운동 41주년 SNS 메시지를 통해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의 성공을 응원해 주셨다. 국내의 관심과 격려에 행사를 준비하는 조직위원들은 고무됐다. 이런 분위기라면 국제 공모가 순탄하게 진행될 것 같았다. 6월 1일 드디어 제1회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의 국제 공모가 시작됐다.
하지만 새롭게 생겨난 한국의 국제보도상에 대한 다른 나라 언론인들의 관심은 차가움도 느낄 수 없는 무관심이었다. 공모가 시작된 지 20일 가까이 됐지만, 상에 대한 문의조차 없었다. 한국의 기업, 한류 스타들이 전 세계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지만, 국제사회에서 한국 언론의 인지도와 영향력은 미미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결국 공모 3주 차에 조직위 긴급회의를 열어 7월 10일까지인 공모 마감을 17일 더 연장하기로 했다. 해외 방송사, 매체, 국내 주재 외신 기자들 중심의 홍보 전략도 수정했다. 해외 언론인 단체, 한인 교민단체들을 직접 접촉해 우리 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조직위원들이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해외 인연들을 총동원했다. 유튜브, 페이스북, 구글 등에서 여러 나라의 기자 단체, 언론인들을 찾고, 영상 보도를 검색해 이를 취재한 영상기자들에게 메일을 보내 우리 상을 소개하고 공모 참여를 요청했다.
상의 이름과 성격을 규정하는 힌츠페터 기자의 활동과 업적을 잘 모르겠다는 해외 의견들을 수용해 힌츠페터 기자를 소개하는 새로운 영상 콘텐츠를 추가 제작했다. 한국어, 영어로 제작된 홍보 콘텐츠들을 독일어, 스페인어, 아랍어, 일본어, 인도네시아어로 번역했다.
세계 13국에서 출품된 25개 작품
‘이러다가 한 편의 작품도 안 들어오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과 스트레스로 잠도 이룰 수 없던 어느 날, 미국과 이라크의 영상기자들이 문의 메일을 보내왔다. 국내 영상기자들의 출품작이 도착했다. 중남미의 방송사와 영상기자들이 공모 의사를 밝혀왔고,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아프리카에서 작품이 날아들었다. 팔레스타인, 인도네시아, 중국에서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영상 보도가 접수됐다. 여러 매체에 소속된 미얀마 영상기자들이 좋은 세상이 올 때까지 자신들의 신원을 보호해 줄 것을 요청하며 목숨을 걸고 취재한 소중한 보도 영상들을 고심 끝에 보내왔다. 공모가 마감되는 날 폴란드에 망명 중인 벨라루스의 영상기자가 자신의 애절한 사연을 담은 공적서와 영상을 보내왔다. 7월 27일, 제1회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의 국제 공모가 마감됐다. 공모 접수 페이지를 열어 보니, 전 세계 13개국에서 보내온 스물다섯 작품이 심사를 기다리며 칸칸이 자리하고 있었다.
출품작 심사는 이안 필립스(Ian Phillips) AP뉴스 국제 담당 부사장이 심사위원장을 맡아 진행했다. 국제보도상의 면모에 맞게 국내외에서 심사위원들을 모시려고 노력한 결과, 해외에서는 줄리아나 루흐프스(Juliana Ruhfus) 국제 전문 영상기자, 백태웅 UN인권위 소위 위원장, 노나카 아키히로(Akihiro Nonaka) 와세다대 교수, 팀 셔록(Tim Shorrock) 전 저널오브커머스 기자 등 8명, 국내에서는 이재의 5·18기념재단 연구위원, 서태경 전 MBC 영상기자, 김영미 분쟁 전문 PD, 채영길 한국외대 교수 등 12명의 언론, 인권, 국제문제, 학계 전문가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게 됐다. 한 달여에 걸친 1, 2차 온라인 심사와 화상회의를 통해, 대상 ‘기로에선 세계상’의 수상자로 벨라루스의 영상기자 미하일 아르신스키(Mikhail Arshynski), ‘뉴스’ 부문 수상자로 싱가포르 CNA 방송의 미얀마인 영상기자 노만(Norman, 가명)과 콜린(Collin, 가명), ‘특집’ 부문 수상자로 미국PBS 소속 프리랜서 영상기자 브루노 페데리코(Bruno Federico)가 선정됐다.

제1회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수상작
대상 수상자인 벨라루스의 영상기자 미하일 아르신스키는 작년 치러진 벨라루스 대선에서 27년간 독재 통치를 이어 온 루카센코(Alexander Lukashenko) 대통령에 맞서 정권 교체와 민주주의 회복을 꿈꾼 벨라루스 시민과 이들이 지지한 야당 후보들의 뜨거웠던 선거운동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독재 정권의 탄압과 방해로 시민들이 지지하던 야당 후보가 패배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좌절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고발하는 보도 다큐멘터리 <두려워하지 말라(Don't be afraid)>를 제작해 첫 대상 수상자의 영예를 안았다. 벨라루스 대선 당시 선거운동을 취재, 방송하다 구속되기도 한 아르신스키 기자는 현재 난민 자격으로 폴란드에 체류하며 벨라루스의 민주화와 언론 자유를 추구하는 온라인 매체 벨셋TV(belsat-TV)에서 영상기자 겸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수상 소식이 알려지면서 벨라루스에서 쫓겨난 민주 인사들과 언론인들이 크게 기뻐하고 있고, 자신들의 상황에 관심 갖고 상을 준 한국 시민과 언론인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해왔다.
뉴스 부문 수상자인 싱가포르 CNA 방송의 미얀마인 영상기자 노먼과 콜린은 올해 2월 27일 미얀마 양곤에서 일어난 군부 쿠데타 반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무장 경찰들이 최루탄을 남발하고 시민들에게 곤봉을 휘두르며 무력을 행사하고 강제 연행하는 현장을 영상에 담아 전 세계에 알렸다. 이 영상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0일까지,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원들이 시민들을 향해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고, 강제 연행을 했던 사태를 연상케 했다. 경찰에 쫓겨 차 안에 숨은 뒤, 촬영을 이어가는 영상기자의 거친 숨소리가 담긴 영상은 현장의 긴박함과 기자 정신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두 기자의 보도가 있던 다음날인 2월 28일, 미얀마 군부는 ‘피의 일요일’로 불리는 최악의 유혈 사태를 일으켰는데, 이는 1980년 광주에서 5월 18일부터 20일 사이 군의 무차별적인 폭력과 연행이 이뤄진 뒤, 21일 도청 앞 집단 발포가 이루어진 상황과 너무도 닮았다.
특집 부문의 브루노 페데리코는 우리에게는 생소한 콜롬비아와 파나마 사이에 위치한 ‘다리엔 협곡지대(Darien GAP)’를 찾아 전 세계에서 모여드는 이주자들의 험난한 여정을 동행취재한 기획 보도 <필사적인 여정(Desperate Journey)>으로 상을 받았다. 전 세계 이주자들이 죽음을 각오한 여정을 펼치는 과정과 그 사연을 생생하게 담아낸 이 작품은 수차례 해외 국제보도상을 수상한 영상기자의 역량과 고민을 녹인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이 시대 또 다른 힌츠페터를 위해
민주주의, 인권, 평화의 현장에서 큰 업적을 남긴 영상기자를 찾아, 그의 업적을 재조명하는 공로상인 ‘오월광주상’ 첫 수상자로는 미국 CBS 서울지국 소속 영상기자였던, 고(故) 유영길 기자가 선정됐다. 유영길 기자는 1980년 5월 21일 오후 광주로 들어와 광주를 취재·보도한 힌츠페터 기자보다, 이틀 전인 5월 19일 오전 광주로 들어왔다. 그는 전 세계 영상기자로는 유일하게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원들이 시민을 향해 벌이는 무차별적인 폭력과 연행, 군장갑차와 군 헬기가 광주 시내와 상공을 가로지르며 위협을 가하는 상황 등을 취재해, 당일 저녁 8시(미국 시간) 미국 CBS TV <이브닝뉴스>에 세계 최초로 보도한 공적을 인정받았다. 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장선우 감독의 <꽃잎>, 이명세 감독의 <나의 사랑, 나의 신부>,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 등 촬영을 맡은 1990년대 ‘뉴웨이브 시네마의 아버지’로만 알려져 있던 촬영감독이 한국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현장에서 동시대인의 시선과 마음으로 역사를 기록해나간 한국인 영상기자였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면서, 심사위원들은 큰 흥분과 감동을 느꼈다. 또 그의 영상 기록이 5·18 진상 규명 작업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는 사실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경험과 예산 부족, 준비 기간과 인지도의 한계로 상의 성공을 약속할 수 없는 위기의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첫 행사를 준비하며 겪었던 많은 시행착오와 소중한 경험들은 이 상을 더욱 발전시켜가는 초석이 될 것이다. 5·18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 민주화를 쟁취하고, 그 힘을 원동력 삼아 선진국으로 도약한 한국사회의 경험들은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을 통해 민주주의, 인권, 평화의 진전을 꿈꾸고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퍼져나갈 것이다. 이에 기반한 새로운 국제 연대와 활동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우리가 첫 시작점에서 가졌던 반성과 고민들이 변함없이 지속되고 발전돼 어느 날 우리 스스로를 바라볼 때, 우리도 이 시대에 또 다른 힌츠페터가 되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낄 날이 오기를 꿈꾸며 제2회 행사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