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사 상세
[취재기·제작기] 한국일보 <국가가 버린 주민들>
취재기·제작기 | 등록일 : 2021-10-29

모든 국민이 좋은 환경을 누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딘가에는 환경오염 문제로 고통받으며 소외된 이들이 있다. 국가와 사회가 관심 갖지 않는 환경오염 지역 주민의 주거 실상과 피해 상황을 들여다본 한국일보의 <국가가 버린 주민들> 취재기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지난 8월 2일 취재를 위해 찾은 인천시 서구 왕길동 사월마을 마을회관 앞에 이주 대책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한국일보

 

 

아침에 집을 나서면 서쪽 하늘을 향해 들판과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고 한다. 동네 아이들과 저수지에 가서 한바탕 멱을 감고, 망둥이를 잡아 나뭇가지에 꽂아 집으로 가져가면 부모님이 텃밭에서 기른 감자를 넣고 졸여줬던 기억이 생생하다. 부모와 조부모, 형제와 친구들이 한데 모여 살았던 곳. 팔십 평생을 인천시 서구 왕길동 사월마을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순재(87세) 노인이 그리는 사월마을의 옛 풍경이다.

 

그러나 지금 이곳은 들어가기만 해도 목이 칼칼하고 눈이 따끔거리는 ‘쇳가루 마을’로 바뀌었다. 1992년 마을에서 약 1km 떨어진 곳에 수도권매립지가 들어서면서부터다. 매립지 근처에 폐기물 처리 시설이 들어왔고, 기타 제조업체들도 잇따라 들어서면서 마을은 산업공단이 됐다.

 

이순재 노인의 집 앞에도 2층짜리 공장이 들어섰다. 불과 3m 간격이다. 밤낮없이 고철 소리가 울리고, 건물이 현관 앞을 막아 들도 하늘도 보이지 않는다. 집 앞에 공장을 지어버리면 어떡하냐고, 도대체 어떻게 살라는 거냐고 따져 물어도 아무도 듣지 않았다. 50가구 남짓한 마을에 들어선 공장은 이제 200개에 달한다. 2019년 환경부에서 주거 환경 부적합 판정을 받은 주민들은 집단 이주를 요구하고 있지만, 인천시에서는 관련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심각한 마을 주거 환경

질병 시달리는 주민들

 

사월마을을 포함한 환경오염 지역 취재는 지난 1월에 시작했다. 부장의 아이디어였다. 환경오염 지역은 건강영향조사 청원을 넣은 지역으로 한정했다. 건강영향조사 청원은 주민들이 환경오염으로 인한 건강 피해를 조사해달라고 청원하면 환경부가 역학조사를 하는 제도다. 2009년 환경보건법이 제정되며 마련됐다. 올해 7월 법이 개정되며 지방자치단체로 조사 권한이 넘어왔다.

 

1월 기준 건강영향조사를 청원한 지역은 총 8곳이었다(현재는 울산 울주군이 추가돼 총 9곳이다). 기사에서 마을을 하나씩 소개하진 않았다. 환경오염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문제를 각 회차의 주제로 삼았다. 건강 피해가 제대로 인정받고 있는지, 지방자치단체 대응은 적절한지, 유해 물질 사전 검사는 잘 지켜졌는지 등이다. 이런 방식은 제도의 허점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됐다. 취재하며 새로이 문제를 알게 돼 기획안이 바뀌기도 했다.

 

나는 인천시 서구 왕길동 사월마을과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장점마을 현장 취재를 맡았다. 사월마을은 서구 외곽의 작은 마을이었다. 지난 5월과 8월 두 차례 방문했다.

 

사실 첫 방문 전까지만 해도 기사에 몰입돼있지 않았다. 팀에서 진행하는 다른 기획이 있었고, 사월마을은 널리 알려진 사례였다. 마을은 2016년 쇳가루 마을로 처음 알려진 뒤 건강영향조사를 거치며 여러 차례 언론에 보도됐다. 흙에 자석을 대니 쇳가루가 붙어 나왔다는 사진도 눈에 익었다. 그만큼 잘 알려졌으니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됐겠거니, 또는 명백하게 문제 삼기 애매한 지점이 있겠거니 추측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을 환경은 한눈에 봐도 심각했고, 실질적인 대책도 없었다. 5월 첫 방문 날은 바람이 세게 불고 화창했는데, 차에서 내리자 눈이 따끔거렸던 기억이 난다. 코로나19 탓에 끼고 있던 마스크를 벗으니 호흡기도 불편했다. 마을 주민들의 팔다리엔 두드러기가 오돌토돌 돋아 있었다.

 

 

50가구 남짓한 사월마을엔 공장 약 200개가 들어서 있다. Ⓒ한국일보

 

 

주거 환경도 엉망이었다. 공장 대여섯 개가 주택에 이격 거리 없이 붙어있었다. 고철을 차에 싣고, 내리고, 옮기고, 자르는 소리도 쉬지 않고 들렸다. 환경부 보고서에 따르면, 사월마을 주택 52개소에서 주야간 생활 소음 기준을 초과했다. 심한 경우 야간 소음이 69.3dB까지 측정됐는데, 이는 사무실에서 전화벨이 울리는 정도 소음이다.

 

밤 귀가 밝은 고령 주민들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을 것이다. 환경부의 1차 건강영향조사 결과, 사월마을 주민 중 우울증·불안증을 호소하는 비율은 각각 24.4%, 16.3%로 전국 대비 4.3배, 2.9배 높았다.

 

어떻게 이 지경이 되도록 마을에 공장이 들어올 수 있었을까. 누가 이걸 다 인허가해 준 것이며, 어떻게 누구도 제동을 걸지 않은 것일까. 사월마을 주거 환경은 비밀리에 악화된 게 아니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상황에서, 대낮에, 합법적으로 공장이 들어찼다. 취재갔던 날도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인부들에게 물어보니 새 공장이 들어선다고 했다.

 

주민들은 “서울이었으면 절대 이렇게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입 모아 말했다. 환경오염 지역을 방문한 기자들은 모두 한 번쯤 이 말을 들었다.

 

2016년 주민들이 처음 문제를 제기하고, 2017년 환경부의 첫 건강영향조사가 진행됐다. 2019년 마을 주택 중 71%(37세대)가 주거하기에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사월마을은 암과의 인과성이 명확히 인정되지 않았다는 등 이유로 건강영향조사에서 건강 피해를 인정받지 못했다. 주민들은 암 외에도 정신질환, 안구질환, 피부병 등을 호소하고 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서구청에서 주민들을 상대로 건강영향조사를 다시 하고 있지만, 2017년 첫 조사가 시작된 지 벌써 4년째. 주민들은 치료비 한 푼 안 나오는 상황에서 각종 소음·분진 피해를 견디고 있다. 주민 권순복(74세) 씨는 지난 5월 6촌 동생을 잃었다. 그는 8년 전부터 호흡기 질환으로 투병 생활을 해왔다. 권순복 씨는 이렇게 말했다.

 

“사월마을에서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한 게 5년 전이었어요. 언론에도 무진장 나왔는데, 그때만 해결해줘도 지금 안 죽었어요. 이게 너무 억울한 거야. 생때 같은 애를 갖다가. 내 6촌 동생인데, 내 친동생이나 남편 같았으면 시체 끌고 가서 송장이 썩든지 말든지 시 앞에서 포장 쳐놓고 해결하라고 하지 가만히 안 있어요. 시골 사람이라 무시해도 된다는 거 아니에요. 서울 같았어 봐요. 우리 올케, 집도 못 팔고 애들이랑 아직도 이 마을에서 쇳가루 마시고 살아요. 말도 못 해요. 정말.”

 

 

사월마을 주민 권순복 씨가 환경오염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한국일보

 

 

십여 년간 문제 제기했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아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장점마을 취재는 인근 왈인·장고재마을 위주로 진행됐다. 장점마을은 비료업체 금강농산이 담뱃잎 찌꺼기(연초박)를 태워 집단 암 발병을 일으킨 지역이다. 2018년 환경부 건강영향조사에서 인과성을 인정받았다. 장점마을은 건강영향조사에서 암 인과성을 인정받은 유일한 사례다.

 

그러나 장점마을 옆 왈인·장고재마을은 집단 암 발병 보상 논의에서 제외됐다. 2017년 건강영향조사 청원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주민들은 정부·지방자치단체·업체를 상대로 십여 년간 투쟁하는 데 지쳐 있었다고 한다. 잠깐 판단 착오의 대가는 컸다. 익산시는 2018년 환경부의 건강영향조사 결과가 나온 뒤, 장점마을에만 의료비 등을 지원했다.

 

왈인·장고재마을은 장점마을과 붙어있다. 왈인-장점-장고재 순으로 붙어있는데 왈인·장점마을은 작은 도로로 나뉘고, 장점·장고재마을은 논 하나 차이다. 마을을 처음 방문했을 땐 지금 있는 곳이 왈인인지 장점인지 구분이 안 됐고, 왈인이라고 생각하고 차를 몰았는데 장점마을 경로당이 나온 적도 있었다. 장점마을이 건강 피해를 입었다면 왈인·장고재마을도 같은 피해를 입었으리라는 건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상식이다.

 

 

전라북도 익산시 비료공장 인근 주민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것 중 하나는 피부질환. 과거 장점마을 주민의 피부병 모습이다. 비슷한 피해를 입은 인근 왈인·장고재마을은 조사조차 받은 적이 없다. Ⓒ한국일보

 

 

무엇보다 인근 마을 주민들이 청원에 참여하지 않은 책임을 전부 떠안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청원 당시 오경재 원광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환경부와 익산시에 주변 주민들도 함께 조사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요구했다고 한다. 그는 장점마을 환경비상대책 민관협의회 민간위원이었다. 그러나 어느 기관도 이 역학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놓고는 이제 와서 “청원을 받지 않았으니 지원 못 한다”며 주민에게 책임을 돌린다. 게다가 이제 금강농산은 파산했고, 핵심 설비가 타 업체에 경매로 넘어가서 재조사할 수도 없다.

 

오경재 교수는 마을 공동체가 파괴돼가는 것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가끔 후회될 때가 있다. 주민 건강과 단합을 위해 조사를 벌였는데 오히려 갈등과 혼란이 왔다. 인간적인 갈등이 삶의 질을 더 피폐하게 만든다.”

 

하지만 반성과 후회는 이 모든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 조정할 수 있었던 시와 정부의 몫이어야 하지 않을까.

 

문제 해결은 언제쯤


길게 보자면 1월부터 시작한 취재는 10월 7일 8회 차 기사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국회의원실에서 국정감사 때 문제를 제기하겠다며 연락이 오고, 시민사회단체에서도 관련 문의와 행사 소식을 전해왔다. 원로 정치인이 기사를 언급하며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도 했고, 몇몇 언론사가 왈인·장고재마을을 방문해 지원 배제 문제를 알리기도 했다.

 

그러나 기사를 털고, 취재기를 쓰는 지금까지도 마음이 편치 않다. 이제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한 것일까. 그러나 취재 과정에서 온갖 이유를 들며 “주민들 지원은 불가능하다”고 응답하던 지방자치단체의 완고한 자세를 생각해보면 상황이 나아지리란 확신을 갖기 어렵다.

 

기자와 통화한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은 건강영향조사 결론부터 주민들의 지원 요청 의도까지 모든 것을 문제 삼았다. 담당자 답변이 너무 황당해서 담당자 개인 의견인지 인천시 공식 입장인지 되물어야 하는 일도 많았다. 이미 알려진 문제가 수년간 방치되고 있는 상황만큼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는데, 내가 과민한 것인지 원래 이치가 그런 것인지 아직도 혼란스럽다.

 

인천시 관계자는 “인천 사월마을의 주거 환경 부적합 평가는 52가구 중 37가구에 내려진 것일 뿐”이라며 “주거 환경 부적합이라는 평가 방법도 사월마을에만 이례적으로 적용된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시에는 사월마을뿐만 아니라 환경적으로 열악한 지역이 많은 상황에서 사월마을은 지원 우선순위가 떨어진다”며 “2026년이면 수도권매립지 사용이 종료되는데, 지금 집단 이주를 시키는 것이 최선인지 의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인천시는 주거 환경 부적합 판정을 받은 37가구의 이주 정책조차 마련하고 있는 바가 전혀 없다. 주거 환경 부적합 평가는 역학 전문가들이 제안해 시와 환경부 동의 하에 이뤄진 것이었다. 다른 지역과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은 사월마을에만 내려진 건강영향조사의 역할을 지나치게 축소하는 발언이며, 수도권매립지 사용 종료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건 5년의 희생을 더 요구하는 것인 데다가 그때 나머지 공장들이 전부 철수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이 밖에 시비로 주민 이주를 지원할 경우 공공자금이 개인에게 귀속돼 위법 소지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는데, 이는 정당한 지적으로 들렸다. 인천시는 집단 이주를 위한 법적 근거를 환경보건법에 마련해달라고 환경부에 요청했는데, 환경부로부터 ‘환경보건법의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이에 관한 구체적인 논의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전라북도는 더했다. 관련 부서 팀장은 “익산시가 인근 마을 주민들 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며 사실관계를 틀리게 말했다. “주민들 주장은 결국 보상을 해달라는 것”이라며 주민들 요구를 폄하하기도 했다.

 

사실 주민 지원은 지방자치단체 인력과 예산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입장도 있다. 각 마을을 위한 특별법이 별도로 제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사월마을 지원을 위한 조례 개정안을 발의했던 전재운 인천시의원은 “주민 이주는 시의 여러 부서와 중앙 정부가 연계돼있어서 특별법을 제정하지 않는 이상 행정으로 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 호소가 발생할 때마다 이 진통을 거치고 특별법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경재 교수는 앞으로 건강영향조사 청원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산업화 시대 성장을 위해 환경과 지방 주민들을 희생시킨 폐해가 표출된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정부·지방자치단체 기준과 태도로는 이런 문제를 원활히 해결할 수 없다”며 “지금이라도 환경오염 관련 규제를 전반적으로 들여다보고, 법도 만들고, 지침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성장과 수도권에 온 힘을 쏟고 있는 우리 사회에 이를 헤쳐나갈 힘이 있을까.

저자의 다른 미디어
  • 필자 : 김현종
  • 소속 :
  • 직함 :
  • 발행 : 2021-10-29
  • 조회수 : 7
  • 키워드 :
블로그 공유 트위터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