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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포토저널리즘 이대로 괜찮은가] 포토저널리즘을 위한 제언
커버스토리 | 등록일 : 2021-10-29

법무부 차관에게 우산을 받쳐주기 위해 무릎을 꿇은 공무원 사진이 논란이 된 바 있다. 사진 촬영 과정의 뒷이야기와는 별개로, 이 사진을 계기로 우리 언론의 취재 관행과 포토저널리즘에 대해 논의할 기회가 마련됐다. 한국의 포토저널리즘이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본다. 편집자 주 

 

 

2021년 8월 27일 연합뉴스에 실린 <꼭 이래야만 하는지...> Ⓒ연합뉴스

 

 

이 기획은 《신문과방송》 편집진이 처음 밝혔듯 김주형 연합뉴스 차장의 사진 <꼭 이래야만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계기였다. 그 사진이 포토저널리즘의 가치를 훼손시켰는지 아니면 원칙을 지켰는지에 대한 필자의 견해는 이 글의 주제로서는 부적절한 것 같다. 필자가 주문 받은 기획 의도는 논쟁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사진이었을 것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법무부 차관도, 저린 무릎을 견디지 못하고 꿇어앉은 젊은 공무원도, 법무부의 행사 실무자들도. 게다가 현장 기자들의 요청으로 상황이 벌어졌는데 우산을 든 젊은 공무원에게 비키라고 말했던 기자들이 침묵하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독자들에게도 그 사진은 불편한 사진이었다. 하지만 내가 현장의 사진기자였다면 어땠을까? 나는 그 장면을 찍었을까 찍지 않았을까? 사진 설명은 어떻게 붙였을 것이며, 사진을 세상에 보여줬을까 아니면 자체 검열로 지워버렸을까? 그 기자의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고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이 한 장의 사진 때문에 포토저널리즘을 둘러싸고 모처럼 논쟁이 붙었다. 몇 년 전부터 이쪽 분야에 산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던 터라 세상의 관심이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하다.

 

노력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한국의 신문사진은 갈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라고만 하기에는 상황이 복잡하고 해결책도 난망하다. 현재 많은 비판을 받는 사진기자들의 노력만으로 좋아질 수 있는 것인지 많은 의문을 품고 있다. 즉, 사진기자들의 자정 노력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닐 것이다. 한국 신문사진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지적이 가능하다. 연출·노령화·보도사진전 문제 등등…, 하지만 모든 문제 중 핵심이지만 현장의 사진기자들로서는 어찌해볼 수 없는 몇 가지 문제를 이번 기회에 여러분과 공유해보고 싶다.

 

1) 법과 제도로 사진기자 취재권 보장해야

10여 년 전부터 시위 현장에는 기자들의 신분증을 확인하는 질서유지대가 존재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움직임은 지금도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취재기자의 경우 외관상 신분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지만, 사진기자는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불편한 사진을 찍을 것 같은 기자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다. 신분증을 확인하고 기자회견장에 출입시키는 시민노동단체가 2021년 대한민국에 있다는 사실은 놀라

운 일이다.

 

허가받지 않은 사진기자로 발각되면 사진 찍은 칩을 포맷해야 하는 게 당연하게 됐다. 한 달전에도 필자 회사의 MZ세대 사진기자가 이런 일을 겪었다. 그가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정파대립에 어떤 부채가 있는지, 왜 그런 수모를 당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신문기자들은 자신이 쓴 기사와 사진에 대한 책임과 항의를 수용하기 위해 바이라인을 병기한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일하는 것이다. 최근 인터넷에는 특정 정치 세력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사이트를 만들어 기자들의 개인정보와 기사를 함께 분류해 놓고 있다. 그들은 기자들의 개인 SNS에 올라온 사생활과 가족사진까지 함께 올려놓고 있다. 기자들에 대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린치 행위’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민을 검문검색 하던 군사독재 시절은 30년 전 끝났다. 그러나 그 시절 미워하는 기자들을 통제하던 방식은 누군가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엄한 시어머니 밑에서 시집살이한 며느리가 오버랩 된다.

 

2) 학계의 심도 있는 초상권 연구 필요

신문방송학이 별로 인기가 없는 분야가 돼서일까? 우리 사회에서 큰 변화를 보이는 초상권 논의에 대해 현실적인 대안이 마련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냥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우리나라 신문과 방송은 초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장면을 모자이크 처리한다. 현장의 사진기자들은 현재의 모자이크 빈도와 범위가 과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8월 전 세계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의 보복을 피해 외국으로 탈출하는 아프가니스탄 시민들의 사진을 봤다. 카불에서 공포감에 휩싸여 있던 이들은 미국과 유럽 등 다른 나라에 도착하는 순간 밝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세계인들은 사진 속 밝은 눈빛에서 함께 안도했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기도 했다. 우리나라 또한 아프가니스탄 현지 조력자 390명을 카불에서 무사히 탈출시켰다. 그런데 미국과 유럽으로 탈출한 아프가니스탄 시민들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되지 않았지만, 한국으로 온 아프가니스탄 시민들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됐다.

 

예외적으로 프랑스의 경우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했지만 보도 시점상 탈레반의 영향력에 있는 시점’에 모자이크를 요청해 언론이 이를 수용한 경우는 있었다. 아부다비 공항 캠프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 아프간인 모습을 AFP가 프랑스 국방부 요청을 받아들여 블러(blur) 처리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들의 얼굴을 처음부터 끝까지 공개하지 못했다. 외교부를 비롯해 관련 부처에서 이들의 얼굴이 특정되지 않도록 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외교부는 사진과 영상기자들에게 보낸 공지를 통해 취재진을 영상 두 팀, 사진 두 명으로 제한했고, “군용기, 아프간 사람 얼굴은 촬영 시 특정되지 않도록 블록 처리(블러 처리의 오기일 것이다). 끝”으로 제안했다. 풀(Pool) 기자1)에게 문자를 보낸 외교부의 젊은 공무원을 통해 정부의 입장을 재차 확인했음에도 한국 정부는 얼굴 공개를 하지 못하게 했다. 한국 언론은 이를 충실하게 따랐다. 여기서 질문 하나.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AP와 AFP, 로이터통신 소속 사진기자들의 경우 외교부의 지침을 따르지 않았다. 모자이크해야 할 이유를 납득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그들이 찍은 사진을 우리나라 신문에 쓴다면 어떻게 되는가?

 

한국인으로 퓰리처상 두 번 받은 강형원 전 LA타임스 사진기자는 필자의 질문에 이번 모자이크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넓은 공항에서 왜 자유 취재가 제한되는지? 아프간 조력자들이 얼굴을 나오지 않게 해달라고 요구했는지? 만약 요구했다면, 사진기자들이 얼굴이 잘 안 나오게 찍어서 모자이크할 필요 없는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하던지, 도착 시 동선을 미리 전달해 멀리서 촬영 기회를 만들어줘서 모자이크할 필요 없는 사진을 찍게 해줘야 한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최근 초상권이 강조되고 있다. 필자가 사진기자 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1990년대 중후반 때, 경찰과 검찰은 조직폭력배 일망타진 발표를 하면서 피의자들의 윗옷을 벗긴 채 카메라 앞에 세웠다. 문신을 드러내 폭력성을 직관적으로 알게 해주려는 목적이었다.

 

인권을 지나치게 무시했던 야만의 시대에 대한 반작용 때문일까, 지금은 초상권 개념이 제대로 성립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가려야 하는 또 다른 극단이 상식이 됐다.

 

심지어 시위에 나갔다가 경찰에 항의하는 모습이 신문에 실린 사람이 초상권 침해로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한 경우도 있다. 법원이 합리적 판단을 했지만, 초상권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언론중재위원회에 올라오는 안건 중 초상권 시비가 늘어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사진과 영상을 전담하는 중재 위원이 있는 전담부를 구성했다는 얘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언론중재위원회에 초상권 침해 의견이 접수되면 위원회의 주요 업무는 언론사로 하여금 당사자에게 합의금을 물어주고 합의하도록 유도하는 일로 이해되고 있다. 초상권 분쟁 관련 논의가 언론중재위원회 합의로 중단되고 법원 판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모자이크만이 정답인지 현장 기자들은 답답해하고 있다. 이번 모자이크된 아프가니스탄 협력자 보도를 기회로 무조건 비공개가 아닌 ‘글로벌 스탠다드’를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과도한 초상권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가이드라인이 언론중재위원회와 학계를 중심으로 연구·제시되길 기대한다.

 

3) 영상 및 사진기자 담당 공무원의 전문성 향상 

워싱턴에 있는 미국 국방부에 들어가 행사를 촬영한 적 있다. 우리나라 VIP가 미 육해공군과 해병대를 사열하는 행사였다. 인상적인 것은 펜타곤(The Pentagon)의 포토 매니저(photo manager)였다. 그는 나에게 “너희 VIP가 이쪽에서 나와서 의장대 사열을 이 방향으로 한 후 사열대 위로 올라간다. 너는 여기서 와이드렌즈로 찍다가 이 시점에는 저쪽으로 뛰어가서 기다리면 몇 종류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다만 행사 중 가운데로 들어가면 안 된다”고 했다. 그들은 국민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는 행사를 촬영하는 사진기자들을 대상으로 분명한 가이드라인과 프로토콜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어떤가? 막내 공무원에게 사진기자를 맡긴다. 사진기자들이 현장에 개입하는 이유 중 하나일 수도 있다. 사진행사(photo opportunity)를 준비한 주최 측이 사진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인원 점검 정도만 하고 현장에 온 기자들에게 진행을 맡기는 경우가 꽤 있다.

 

현대의 정치인과 관료들은 사진을 중시한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유권자와 국민들을 직접 만나야 하는 상황보다 중간 매개체인 신문과 방송을 통해 자신들을 알려야 하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사진에 대해 준비하지 않는 것 같다. 누군가 알아서 잘 찍어주고 잘 편집해서 내보내 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피사체를 만족시키는(flattering) 사진만이 좋은 사진이라는 생각을 하는 분들도 있다. 전속 사진가와 매체 소속 사진기자는 접근법이 다르다. 뉴스로 접근하는 사진기자들이 피사체를 아름답게만 표현하는 걸 기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포토매니지먼트는 전문 영역이다. 사진이 중요한 시대라는 걸 이제는 상식처럼 다들 얘기한다. 현장 사진기자들이 제대로 촬영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책임질 수 있는 전문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4) 사진기자들의 자정 노력

나는 매일 밤 유혹에 빠진다. 우리 현장 기자의 바이라인으로 대장에 고쳐 넣고 싶은 유혹이다. 사진기자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유일한 기제가 바이라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의 보도사진계는 사진 인심이 후하다. 부끄러운 관행인데 공동 취재가 너무 많아 한 사람이 찍은 사진을 여러 사람이 나눠 쓰는 경우가 많다. 현장에는 출동했지만, 모두가 촬영할 수 없으면 대표 취재를 해서 현장에 출동한 기자 이름으로 신문에 싣거나 인터넷에 올린다. 신문에 올리면 그나마 낫지만 인터넷을 통해 독자에게 노출될 경우, 같은 사진 밑에 다른 매체 기자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은 여간 어색하지 않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나라는 한국 이외에 중국이 있다. 중국 역시 공동 취재 사진을 자사 소속 기자 이름으로 게재하는 경우가 많다. 바이라인은 신문사가 기자를 현장에 파견할 정도로 규모와 운용 능력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측면도 있지만, 독자들의 항의가 시작되기 전 자정 노력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비좁은 뉴스 현장에 비해 과하게 많은 매체로 인해 벌어지는 일이지만 독자들이 이해하거나 용서하기 어려운 관행인 것은 분명하다. 나 역시 그런 문화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모든 기사와 신문사진이 검색되는 시대에 혹시라도 누군가 이를 문제 삼을 것 같고 독자를 속이는 것 같아 ‘사진공동취재단’으로 표시하려고 노력 중이다.

 

우리나라의 포토저널리즘 역사는 100년이 갓 넘었다. 그보다 훨씬 긴 역사를 가진 미국에 비해 한국에는 아직 독보적이고 보편타당하다고 인정되는 포토저널리즘 교과서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게다가 문화적 사회적 차이로 인해 미국식 사진을 그대로 지면에 싣는 것도 정착하기 쉽지 않다. 다만 미국의 대표 신문 중 하나인 뉴욕타임스를 연구해보면서 느낀 점은 뉴욕타임스 사진기자들이 틀에 박힌(conventional) 앵글만 찍는 것은 아니더라는 점이다. 창의적인 앵글도 가끔 신문에 실리고 주인공이 꼭 가운데 있지도 않고, 와이드렌즈로 주제를 왜곡해서 강조하지 않아도 신문사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더라는 점이다.

 

내 이메일 주소는 ‘컷(cut)’이다. 신문에 실리는 한 컷은 민주주의와 대중의 행복을 위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아직 믿고 있다. 보도사진이 없는 세상, 우리는 지금 지구 반대편 탈레반이 권력을 차지한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에 대해 소문만 들을 뿐 제대로 된 보도사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막고 싶은 모습이다. 회사가 허락한다면 앞으로 9년 정도의 현역 사진기자 생활이 남았다. 글을 쓰다 보니 필자가 해결할 수 있는 숙제는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게다가 사진기자 동료들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진기자는 사진으로 말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니까. 그래도 말을 해야 할 것 같아서 길게 글을 썼다.

 

 

 

 

 

1) 사전에 허가받아 취재 후 취재 내용을 다른 기자들과 공유하는 대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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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 변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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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 : 2021-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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