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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포토저널리즘 이대로 괜찮은가] 언론사의 사진 강박증
커버스토리 | 등록일 : 2021-10-29

뉴스에 있어 사진의 역할이 컸던 시대를 지나 세계적으로 포토저널리즘의 영향력도 전 같지 않다. 특히 한국의 포토저널리즘은 시대의 흐름과 상관없이 오랜 관행을 답습 중이다. 한국 포토저널리즘 위기의 원인과 대안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이 열린 부산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의 모습. 대표적인 서술적 양식의 사진으로 전체를 보여준다. Ⓒ연합뉴스

 

 

사진이 언론 보도에서 문자나 다른 수단에 비해 유용하다는 것은 상식에 가깝다. 100년 전, 월터 리프먼(Walter Lippmann)은 《여론(Public Opinion)》1)에 “사진은 오늘날 상상을 뛰어넘는 권위를 갖고 있다. 그것은 과거 문자가, 그리고 그 이전의 시대에 발화가 가졌던 권위다. 사진은 철저하게 진짜로 보이며 다른 이의 간섭 없이 곧장 우리에게 다가온다”고 썼다.

 

연구자들은 사진이 유용하다는 것을 실험으로도 보여준다. 돌프 질만(Dolf Zillmann) 등은 논문2)에서 본인과 또 다른 연구자의 논문을 재인용하며 “뉴스 속 이미지는 (다른 어떤 표현방식보다 더) 감정을 자극하고 대중의 분노를 조장할 수 있다. 생생한 이미지는 뉴스 이용자의 기억에 더 강렬하고 오래 남는다”고 주장했다. 질만은 논문을 통해 놀이공원의 안전성을 다루는 기사에 즐겁게 롤러코스터를 타는 사람들의 사진과 롤러코스터 사고 부상자가 구급차로 이송되는 사진으로 실험을 했고 해당 보도사진이 이용된 기사와 그렇지 않은 기사를 비교해 사진이 뉴스 이용자의 지각에 미치는 영향이 유의미하게 나타났음을 입증했다.

 

포토저널리즘의 역사

 

저널리즘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에 악타디우르나(Acta Diurna)라는 관보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간에 돌이나 금속에 새겨진 형태로 게시됐고 비슷한 시기 고대 중국에도 저보(邸報)라는 관보가 있었다. 최초의 포토저널리즘 사진은 1842년 더일러스트레이티드런던뉴스(The illustrated London news)에 실린 것이었으나 아직 판화의 형태로 인쇄된 단계였다. 1880년 뉴욕데일리그래픽(New York Daily Graphic) 신문에 하프톤 인쇄 사진이 실리면서 본격적인 포토저널리즘의 시대가 열렸다. 이후 지면에서 사진의 중요성은 점차 확대됐다. 1920년대 영국에서 1면 대부분을 사진으로 채운 세계 최초의 타블로이드 신문이 성공을 거두면서 미국 신문들의 사진 의존도가 커졌다. 타블로이드 신문으로 인해 모든 기사에 사진을 동반하는 포토저널리즘 관행이 생겼고 포토저널리즘 없이 대중적 신문은 불가능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점차 대판 신문도 이런 관행을 따르게 됐다. 두 번의 세계대전과 한국전, 월남전을 거치면서 포토저널리즘은 최전성기를 누렸다. 1960년대 미국의 텔레비전 보급률이 90%에 이르고 《라이프(Life)》 같은 사진 화보 중심의 잡지가 몰락하면서 포토저널리즘의 시대는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한편, 한국의 경우 시차가 있다. 1987년 6·29 선언 이후 신문 시장의 진입이 자율화되면서 신문 시장의 경쟁이 심화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거치면서 지면이 점차 늘어났고 섹션 편집, 가로쓰기와 더불어 지면에서 시각물의 중요도가 높아졌다. 1990년대 중반부터 디지털 시대로 오면서 읽는 문화에서 보는 문화로의 변화가 한층 빨라졌지만, IMF 구제금융사태를 거치고 21세기가 되면서 한국의 포토저널리즘도 위기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사진 전문잡지 《포토닷(Photodot)》3)에 실렸던 기사가 흥미롭다. 전문가의 영역으로 보였던 포토저널리즘은 스마트폰의 확산으로 모든 사람이 사진을 쉽게 찍을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함에 따라 존재가치가 희미해지게 됐다. 주요 원인은 디지털이란 테크놀로지로 보이지만 보도사진가 혹은 언론사 차원에서 자초한 면이 적지 않다.

 

과도한 후보정으로 논란을 초래한 연평도 포격 사진 조작 사건은 언론의 윤리의식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를 기자들이 직접 시식하면서 일반 손님으로 둔갑시킨 연출 사건도 있었고 사생활 공간을 아무렇게나 넘나드는 초상권 논란 또한 언론과 언론사에 책임이 있다. 관행이라고 치부할 일이 아니다. 잘못된 관행은 악행이다. 진실 보도란 칼날 아래서 최선을 다해야 할 언론인, 특히 현장에 있지 않으면 보도할 수 없는 포토저널리스트들에겐 현장에 손을 대는 사소한 비윤리적인 행위도 스스로와 동료를 벼랑 끝으로 몰게 하고 기레기란 멍에를 벗을 수 없게 한다.

 

‘그림’의 유혹 벗어나지 못해

 

자초했든, 시대의 조류에 휩쓸렸든 한국 포토저널리즘이 위기에 처했고 문제가 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이고 대안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사진 ‘연출’

가장 큰 문제는 연출이다. 일부 사진기자들은 몇 가지 이유로 연출을 한다. 우선 마감 시간을 핑계로 댄다. 하루에 서너 건의 취재가 있는 날엔 무작정 기다릴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현장에서 일이 진행되기 전에 미리 만들어서 찍고 다른 현장으로 옮긴다. 박재영의 연구4)는 사진 기자들을 심층 인터뷰한 것이다. 현직 사진기자 아무개 씨는 “연출은 개연성이 관건이므로 어쩔 수 없는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돼야 한다”라고 진술했다. 또 다른 사진기자는 “연출된 사진이 일반 홍보용 사진과 뭐가 다른가, 그게 보도사진이라면 사진기자는 뭘 하는 사람인가?”라고 진술했다. ‘그림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해 연출의 공모자가 되는 일도 있다. 가벼운 경우엔 정치인들에게 “악수해 주세요”라고 시키는 정도이지만 지나친 경우엔 경험이 많은 고참 기자가 방송사의 PD처럼 현장에서 세팅하고 연기까지 시킨다. 지난 8월에 문제가 됐던 법무부 차관 브리핑 사진도 이런 연출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장에 있던 취재진 중 일부가 우산을 든 직원의 자세와 위치를 바꿀 것을 요구하면서 그 직원이 급기야 화면에 보이지 않는 뒤편에서 무릎을 꿇게 된 것이다. 과잉 의전으로 논란이 될 것이 아니라 무리한 연출 요구가 논란이 돼야 마땅하다. 현장에서 자세 변경 요청을 한 취재진은 지금도 침묵하고 있고 연합뉴스가 제공한 사진을 놓고 소설을 쓴 일부 언론도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연출은 관행이 아니라 금기 사항이다. 이건 언론사의 문제라기보다는 언론인 개인들의 기본 자질 문제다. 미국에선 아주 사소한 연출을 하다가 탄로가 난 사진기자들도 해고당했다.5) 서구 신문은 사진에 연출이 가미되면 기사나 사진 설명에 이를 명확히 밝혀 독자의 양해를 구하도록 권고하고 있다.6) 이런 것을 관행이라 부른다.

 

2) 톱뉴스엔 톱 사진

뉴스를 접하는 독자들이 더 감각적인 것을 요구하게 되면서 언론도 덩달아 더 감각적인 것을 전면에 내세우게 됐다는 주장은 핑계에 불과하다. 20년 동안 세 개 중앙일간지 1면 사진을 분석한 이종수의 논문7)에 따르면 1980~1987년보다 1996~2000년에 신문 1면 사진의 크기는 평균 두 배 이상 커졌다. 시각물을 중시한 결과다. 시각물을 중시하는 것은 좋으나 포토저널리즘의 속성을 무시하는 것이 문제다. 즉 기사 본문 관련 이슈를 사진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편집국의 관행은 1면 기사에 어울리는 1면 사진을 요구한다. 이건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조직 관행의 문제다. 한국 언론 역사상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언론이 같은 프레임으로 목소리를 낸 희귀한 사례가 있다. 2000년 의약분업 때 사상 초유의 병원 파업 사태가 벌어졌다. 진보나 보수나 모두 1면 머리기사로 강하게 의사들을 성토했다. 2000년 8월 21일 자 각 조간의 서울시내판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북한의 비상 방역 요원들이 방독면을 쓰고 행진하는 모습. 대표적인 표현적 양식의 사진이다. Ⓒ연합뉴스

 

 

<의료마비 대혼란>, 동아일보

<응급환자 다 죽겠다, 분노 폭발>, 국민일보

<환란, 전국이 혼란>, 중앙일보

<진료공백 인명피해 속출>, 경향신문

<진료마비 잇단 인명사고>, 한겨레

<환자피해 속출 대혼란>, 조선일보

<의료재앙 피해 속출>, 한국일보

<생명볼모 폐업 있을 수 없는 일>, 대한매일

<폐업주동 30명 구속방침>, 세계일보  

편집국에서 1면 사진으로 대혼란에 빠진 응급실을 원했으나 현장에 갔던 사진기자들은 망연자실했다. 병원이 파업하더라도 응급실은 문을 연다는 사실이 국민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서 평소보다 더 한가한 응급실 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강도 높은 1면 사진이 없으니 사진 설명을 거짓으로 쓰거나 침소봉대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평소보다 빨리 치료받고 나가면서 의사에게 고맙다고 인사까지 하고 나간 환자의 사례를 사진 설명에선 “차례를 기다리다 고통을 참지 못해 울고 있다”는 식으로 쓴 것이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1면에는 1면에 걸맞은 사진이 있어야 한다는 후진적인 관행을 답습하고 있지 않은지 살펴볼 일이다.

 

포토저널리즘을 바라보는 틀이 아직도 과거에 사로잡혀 있어 편집국 간부나 편집 실무자들이 기사 내용에 맞는 사진, 기사를 입증하는 사진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진기자들이 주요한 불만의 하나로 ‘포토저널리즘의 표준화’를 지적하는 목소리를 내는 데서 알 수 있다.

 

 

2021년 10월 4일 자 조선일보 지면. 지면에 쓰인 사진은 표현적 양식의 사진으로 분류할 수 있다. 드라마나 영화의 한 장면이야말로 영상미학의 정점이다. 기사에 맞는 사진을 드라마 컷으로 쓰지 않고 사진기자가 현장에서 직접 찍는다면 무엇을 어떻게 찍어야할까? 쉬운 일이 아니다. Ⓒ조선일보

 

 

3) 천편일률적인 사진들

물론 뉴스 사진이 비슷비슷해지는 원인은 기자 개인에게도 있다. 사진기자들은 “특종을 하겠다”보다는 “낙종만은 면하겠다”는 방어 자세8)로 함께 몰려다니고 있으며 그 정도는 외국보다 심한 편이다.9) 갈수록 예민해지는 초상권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명의 사진기자가 귀성길에 오른 한 가족을 동시에 찍고 보도했던 사례도 있었다. 현장의 고민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서로 다른 매체에서 유사한 사진을 발견하는 독자들은 포토저널리즘을 외면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토저널리즘 표준화는 언론사 조직 차원에서 제도화된 문제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여러 연구는 오랫동안 보도사진이 내용과 구도 측면에서 관습적이며 표준화돼 있다고 지적했다.10)

 

박재영의 연구는 2004년 12월에 열린 이색적인 보도사진전을 언급하고 있다. 국내 다섯 개 언론사의 사진기자 일곱 명이 취재 현장에서 촬영했지만, 신문에 쓰이지 않은 65점의 사진을 전시했다. 일곱 명의 사진기자는 거의 모두 ‘편집자들이 사안을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전체 서술적 사진을 늘 선호한다’고 말했다. 또한 사진기자들은 일탈적 구도의 사진을 지면에 쓰고 싶어 하지만 편집자들은 정형화된 구도의 사진을 선호한다고 했다. 박재영은 연구11)를 통해 보도사진이 표준화되는 이유와 표준화된 사진이 관행으로 굳어지는 과정을 게이트키핑, 이차적 추측, 꾸러미 저널리즘 등 세 가지 개념으로 설명했다. 게이트키핑을 반복적으로 경험한 기자들은 상사의 직접 구두 지시가 없더라도 일종의 준칙으로 체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 언론사의 위계질서는 서구보다 강하므로 이차적 추측의 가능성이 더 크다. 상사가 사진기자에게 취재 지시를 내릴 때 사진기자는 게재될 사진의 대강을 이미 염두에 두고 있을 수 있다.

 

한편 앞서 언급한 1980년부터 2000년까지 20년 동안 세 개 중앙일간지의 1면 사진을 분석한 이종수의 논문을 보면 1면 사진의 크기가 커진 것 못지않은 중요한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이종수는 리얼리즘과 표현주의 관습에 관한 전통적 영화 이론에서 차용해 신문 1면 사진을 서술적 양식과 표현적 양식으로 구분해 조사했다.

 

“서술적 양식은 사건이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전달하려는 전통적인 신문의 표상관습으로 기사본문에 대한 증거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며 영상미학적 요소로는 롱샷(longshot), 눈높이 앵글, 표준렌즈 사용 등의 특징이 있다.”

 

“표현적 양식은 사진을 통해 현실의 한 단면을 인위적으로 강조하여 구성하는 표현양식이다. 주로 중심인물과 사건의 디테일을 강조하며 인간의 정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영상미학적 요소로는 클로즈업, 얕은 피사계 심도, 렌즈의 변화 등이 사용된다.”

 

이종수의 연구 결과를 보면 1980~1987년 1면 사진에서 서술적 양식과 표현적 양식의 비율은 8:2로 서술적 양식의 표상관습이 많았다. 그러던 것이 연구 4기인 1996~2000년 1면 사진의 비율을 보면 4:6의 비율로 표현적 양식이 더 많아졌다. 이종수는 이를 “신문사진이 기사 본문의 증거로 제시되는 단순한 예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정서적으로 소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체 신문이 아니라 세 신문사만을 분석 대상으로 삼아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의미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언론사와 사진기자들이 변화를 모색한 결과다.

 

 

표현적 양식의 사진이다. 통신사에서도 간혹 인간의 정서에 호소하는 사진을 송고한다. Ⓒ연합뉴스

 

 

4) 줄어든 사진기자

위 이종수의 연구는 2003년에 이뤄진 것으로 1980년부터 2000년까지를 대상으로 삼았는데 2021년 현재 한국 포토저널리즘의 현주소는 어떨까? 그사이의 연구 조사가 부족해 단언하긴 어렵지만, 조금이라도 진상을 엿보기 위해 이 글을 작성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최근 한 달 치 신문12) 1면 사진을 분석했다. 위 이종수의 연구와 동일하게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세 개사를 대상으로 했고 서술적 양식과 표현적 양식으로 구분했다. 그 결과, 서술적 양식의 1면 사진은 평균 15회, 표현적 양식의 1면 사진은 평균 6회로 나타났다. 기사 본문에 대한 증거 역할을 하는 사진을 모두 서술적 양식으로 구분한 것도 이종수의 연구 방법과 동일했다. 한 달에 불과했지만 최근 10여 년간 신문사진을 지속적으로 관심 있게 봐왔기 때문에 조사 기간을 확대해도 유사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더 정밀한 연구는 꼭 필요하다.

 

왜 1980년대로 회귀하고 있을까? 회귀라고 단정하는 것이 비과학적이라면, 왜 현장 사진기자들의 불만도 여전하고 현재 한국의 포토저널리즘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도 끊이지 않을까?

 

이와 관련해 앞에서 언급한 2015년 《포토닷》 기사에 인용된 한 사진기자의 진술이 인상적이다.

 

“10년 전에 비해 지금의 보도사진은 오히려 후퇴했다고도 볼 수 있다. 과거에는 기사(텍스트)보다 사진 자체에 무게를 두는 보도형식도 있었지만 요즘은 기사 내용에 맞는 사진만 보도되는 형국이다. 특히 사진기획은 몇몇 신문사를 제외하고는 거의 사라져버렸다.”

 

2000년 이후 20년 동안 무슨 일이 생겼을까? 가장 큰 변인은 사진기자 수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초반과 IMF 위기 직전까지 최고조에 달했던 대다수 중앙일간지 사진기자 수가 고화질 사진 촬영이 가능한 스마트폰 보급 시기와 맞물리면서 2021년 현재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 2013년에는 미국 시카고선타임즈(Chicago Sun-Times)가 사진기자 전원을 해고한 사례가 있다.13) 2021년 10월 현재 한국사진기자협회에 등록된 사진기자 회원은 전국적으로 496명이다. 협회에 따르면 전체 회원 수는 20년 전과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일간지 사진기자가 줄어든 만큼 통신사 사진기자가 대폭 늘어났고 인터넷 매체도 늘어났기 때문이란 것이다. 통신사에서 공급하는 사진의 질이 일간지 사진기자가 찍는 사진보다 내용이 빈약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다만 통신사는 속보성이 더 강하고 계약된 모든 매체에 동일한 사진을 보낼 수밖에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 또한 실험적이고 표현적인 양식보다는 설명적이고 관습적인 양식의 사진을 더 많이 보낸다는 것도 통신사의 특징이다. 중앙일간지 사진기자 숫자가 줄어든 만큼 사진은 통신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또한 남아있는 사진기자들이 실험적이고 표현적인 양식의 사진에 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둘째는 매체가 가진 게이트키핑 과정 차이로 짐작된다. 박재영 연구에서 인터뷰에 응한 기자들의 진술은 비록 개인의 의견이지만 참고할 만하다.

 

“조선일보 사진부장은 복수의 사진을 편집기자와 편집국장에게 제안하는 역할인 반면, 경향신문은 사진기자와 사진부장의 합의 아래 결정하는 편이어서 사진부장의 권한이 가장 강했다 (…) 참고로 경향신문은 사진기자의 독자성이 가장 강했는데 사진기자가 취재보도를 단독으로 마무리하는 정기코너를 세 개나 갖고 있었다.”

 

연구자 박재영이 “편집기자가 선택하여 게재된 사진과 사진기자 본인이 게재되길 원했지만 실리지 못한 사진의 사례를 제출하라”고 했을 때 경향신문의 기자는 한 건만 제출했고 나머지 여섯 명의 사진기자들(동아일보, 문화일보, 중앙일보 두 명, 조선일보 두 명)은 각각 1인당 평균 10건의 사례를 제출했다.14)

 

연구에서 빠진 언론사도 있고 전체 사진기자의 의견을 청취한 것도 아니기에 이 연구 결과 하나만 가지고 매체의 이념 성향에 따른 현행 보도사진의 표준화 관행을 단정하긴 어렵다. 하지만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하는 한국 포토저널리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현장 기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각 언론사 게이트키퍼들의 구조를 파악해 포토저널리즘 수용자들의 반응에 관한 후속 연구가 필요한 것만은 확실하다.

 

 

 

 

 

 

1) Walter Lippmann, 《Public Opinion》, pp.62, 1922.

2) Zillmann, D., Gibson, R., & Sargent, S. L., <Effects of Photographs in News-Magazine Reports on issue Perception>, Media Psychology, 1999.

3) 이기원, <보도사진은 CCTV, 블랙박스, 스마트폰과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포토닷, 2015.7 

4) 박재영, <보도사진 게이트키핑-관행화된 틀에 대한 사진기자의 인식을 중심으로>, 언론과사회, 14(1), 2006.

5) Kenneth Kobre, 《Photojournalism: The Professionals’ Approach》, 구자호·이기명 옮김, 《포토저널리즘-프로사진가의 접근》, 청어람미디어, 2005.

6) 이민규, <디지털 환경, 보도사진에 대한 신뢰와 사진기자>, 사진기자, 여름호, 2004.

7) 이종수, <신문 1면 사진에 나타난 한국 포토저널리즘의 변화 경향 : 1980년에서 2000년까지의 3개 중앙일간지 1면 사진 내용분석을 중심으로>, 한국언론학보, 47(2), 2003.

8) 정경열, <사진기자 사진을 말하다>, 104쪽, 2004. 박재영, 2006에서 재인용

9) 김영수, <기록자와 해설자: 조선일보와 뉴욕타임스의 사진비교>, 2004. 박재영, 2006에서 재인용

10) Andrew Mendelson, <Effects of Novelty in News Photographs on Attention and Memory>, Media Psychology, 3(2), 2001.

11) White, D. M., <The gatekeeper: A case study in the selection of news>, 1950. Hagaman, D., <How I learned not to be a photojournalist>, 1996. 박재영, 2006에서 재인용

12) 추석 연휴가 끼어 발행일수가 줄었다. 또한 사진을 이용한 인포그래픽의 경우는 제외했다.

13) <Chicago Sun-Times Lays Off All Its Full-Time Photographers>, 뉴욕타임스, 2013.5.31, www.nytimes.com/2013/06/01/business/media/chicago-sun-times-lays-off-all-its-full-time-photographers.html

14) 박재영, 2006, 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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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 곽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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