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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세계 곳곳 끊이지 않는 분쟁으로 난민이 늘고 있다. 어렵사리 고국을 떠나 우리 땅을 밟은 난민들은 당장 생존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다. 이제는 더 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미룰 수 없는 난민 취업 문제를 다룬 <경기도 난민 취업 실태> 취재기를 따라가 본다. 편집자 주

험난했던 난민 시리즈의 서막
“그럼, 난민으로 하자. 난민도 사회적 약자잖아.”
지난 3월 어느 날, 인터랙티브 뉴스 제작을 위해 사회적 약자를 주제로 아이템 회의를 하던 중 튀어나온 저 한마디가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난민 좋지. 그런데 잠깐. 난민?’ 그 단어를 떠올리자 머릿속에는 쪽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건너려다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외국인들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그렇다. 난 난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우선 포털사이트에 ‘난민’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난민에 대한 법적 정의를 시작으로 정보를 하나둘 수집해 나가기 시작했다. 문제는 난민에 대한 지식이 쌓이면 쌓일수록 의문만 더해간다는 것이었다.
아직 구체적인 아이템조차 정하지 못한 그때, 유독 난민의 취업 문제 관련 자료가 전무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생존을 위해 모국을 버리고 떠난 이들이 생경한 외국 어느 나라에서 터를 잡고 살기 위해선 무엇보다 일자리가 가장 중요할 텐데. 난민 취업 문제로 생각이 모이고 자료를 검색할수록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이 가로막는 기분이었다. 그 누구 하나 명쾌한 답을 주지 않았고, 자료 찾기도 힘들었다. 사전 취재 과정에서 “난민 취업 관련 자료는 아마 거의 없을 거예요”라고 말한 어느 시민단체 관계자의 말도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도 가진 자료를 총동원해 난민 취업과 관련한 여덟 개 아이템을 구상했다. 2주에 하나씩 목요일 자 전면 기사로 게재할 예정이었다. 기사 하나당 2주의 시간이라면 충분히 여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계획이란 건 언제나 변하는 법. 2주가 1주가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도 구상한 대로 기사를 쓰고 취재만 가능하다면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그래, 할 수 있겠다. 그땐 분명 그런 확신이 있었다. 첫 취재를 나가기 전까지는.

수도권의 난민 숫자와 취업자 수, 취업자의 종사 업종 등의 통계 자료들을 취합해 ‘수도권 난민 중 제조업 종사 비율’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경기일보
섭외부터 난항 겪었던 난민 취재
난민 섭외부터 쉽지 않았다. 난민 대부분이 전면에 나서길 꺼렸다. 그도 그럴 것이 좋아서 한국으로 온 사람들이 아니었으니 당연했다. 큰일이었다. 여덟 개의 시리즈를 내보내려면 적어도 다섯 명 이상의 난민 인터뷰가 필요했다. 첫 기사 마감이 2주도 안 남은 시점이었지만 한 명도 섭외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일단 나가보기로 했다. 난민이 가장 많다는 부평으로 향했다. 그냥 아무 외국인이나 붙잡고 난민이냐고 물어볼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렇게 터덜터덜 부평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일단 간판에 쓰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마침 사무실에 누군가 있었다. 무작정 그곳으로 들어갔다. 마치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나도 모르게 환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혹시 여기 난민 안 계세요? 제가 취재 때문에 그러는데…도와주세요.”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미얀마 출신 상담 선생님은 “제가 한 번 찾아볼게요. 찾게 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라며 간절한 표정의 날 내보냈다. 불안했다. 과연 전화가 올까. 아니 와야 하는데. 불안감은 점점 커졌다. 그렇게 별다른 소득 없이 부평 곳곳을 스케치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발에 불이 나도록 걷고 또 걸은 뒤에야 다시 회사로 복귀할 수 있었다. 이곳저곳 전화를 돌렸지만 모두 인터뷰를 거절한다는 답변뿐이었다. 퇴근 후 착잡한 마음을 애써 짓누르고 있을 때 문자 메시지가 하나 왔다.
“인터뷰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름은 투안 상 씨고요, 미얀마 출신이세요. 한국에 온 지 오래돼서 한국어도 잘하세요. 연락처는 010-XXXX-OOOO 입니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는 ‘감사합니다’라는 메시지에 느낌표를 왕창 붙여 답장을 보냈다. 그 이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섭외가 이어졌다. 다행히 대부분 한국어에 능통한 분들이어서 인터뷰를 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난민 섭외는 마무리됐지만, 뭔가 시원치 않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뭘까. 아직도 해결 못 한 뭔가가 있는 걸까. 왜 이렇게 찝찝하지? 그렇다. 있었다. 이번 시리즈의 진짜 주제. 바로 취업 문제다. 난민의 취업 문제를 객관적으로 파고들 자료나 근거가 전무했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꽉 막힌 벽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첫 난민 인터뷰이였던 투안 상 씨가 인터뷰를 마친 뒤 한글로 자신의 이름을 써주고 있다. 덕분에 정확한 이름을 기사에 적을 수 있었다. <출처 - 필자 제공>
관련 통계도, 자료도 없는 난민 취업 문제의 실태
먼저 난민 숫자부터 파악해보기로 했다. 다행히 관련 자료는 차고 넘쳤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바로 난민 형태별 분류다. 난민도 다 같은 난민이 아니다. 난민인정자, 난민신청자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종류별로 할 수 있는 일, 얻을 수 있는 직업이 다르다. 일단 이들을 한 데 묶어 난민으로 정의한 뒤 전국 시·도별 통계를 냈다. 예상대로 경기도의 난민 숫자가 압도적이었다. 여기서 다시 도내 시·군별 난민 숫자를 파악했다. 그리고 이를 취업 중인 외국인 숫자와 비교해 대략적인 난민 취업률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일일이 엑셀에 입력하고 계산하고를 반복하는 고된 작업의 연속이었다.
결과를 확인해보니 허탈했다. 역시나 난민 대부분이 제조업에 종사 중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정작 괴로운 반복 작업 끝에 깨달은 건 우리 사회가 정말 난민에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만약 한국을 선택한 난민들에게 좀 더 관심을 두고 정책적 지원을 하려 했다면, 분명 관련 통계가 있어야 했다. 그 통계를 근거로 지원 규모와 대상을 파악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관련 통계조차 없다는 사실은 곧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그동안 너무나도 무관심했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난민으로 인정받느냐, 받지 않느냐에 골몰하는 동안 정작 이들이 생계를 위해 무얼 하며 살고 있는지는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혹시 알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힘들게 찾아낸 자료들도 대부분 오래된 것들뿐이었다. 차마 기사에 인용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유일하게 찾아낸 것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누군들 최신 자료를 인용하고 싶지 않았을까. 논문도, 리포트도, 기고문도 찾아봤지만 최근 2~3년간 난민 취업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은 없었다. 취재 중에 만난 최영일 김포시외국인주민지원센터 센터장도 내가 난민 취업 문제를 취재하고 있다고 하자 “어휴…어려운 걸 하시네요”라며 안타까워했다. 그 짧은 말속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 수 있었다.
인터랙티브 뉴스가 뭔데?
지금 이런 질문을 던졌다간 비웃음을 살지도 모르겠다. 이미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난 뉴스 형태니. 하지만 적어도 경험이 미천한 나에게 인터랙티브 뉴스 제작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살벌했던 마감과의 전쟁을 이제 막 끝마치고 온 내게 이번 미션은 비교적 수월해 보였다. 마침 외부 업체의 도움을 받기로 했던 터라 빠른 시일 내 완성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저희가 디자인까지 다 해드려야 하나요? 틀만 잡아주시면 안 돼요? 저희가 디자인까지 해드리면 최소 한 달 이상 걸릴 것 같아서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분명 외부 업체로부터 견적서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이런 얘기는 없었다. 급한 내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전체적인 틀을 만들어 보냈다. 그리고 약 일주일 뒤 초안이 나왔다. 나는 다시 수정안을 보냈고,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를 수차례 반복했다. 그럼에도 좀처럼 내가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다.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디자인은 버리자. 일단 기사 내용을 충실히 반영하는 데 최대한 집중하자고 생각했다.
불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긴 했지만, 그래도 완성된 뉴스를 보니 그동안의 취재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영상과 사진, 그래프를 최대한 반영하고자 애썼다. 곳곳에서 고민의 흔적이 느껴지는 것 같아 그나마 위안이 됐다. 어쩌면 기술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온전히 나만의 힘으로 만들어 낸 첫 인터랙티브 뉴스였다. 이 정도면 나름 선방한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관심이 없으니 모를 수밖에
시리즈를 마치고 목표였던 인터랙티브 뉴스 제작까지 마쳤지만 어딘가 허전했다. 아무리 지지고 볶아도 난민에 대한 관심은 변하지 않았다. 대다수가 난민인정자와 난민신청자의 차이를 모르고 있었고, 먹고 살기 위해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몰랐다. 심지어 한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는 “어떤 난민 정책들이 마련돼 있느냐?”는 물음에 당연하다는 말투로 “그런 거 없는데요?”라는 답변을 내놨다. 우리 사회에서 난민이라는 단어가 뉴스에 등장하는 건, 대규모 난민이 다른 나라 국경을 넘었을 때 혹은 ‘전세 난민’과 같은 단어가 등장할 때뿐이었다. 여전히 우리에게 난민은 먼 나라 뉴스로만 인식되고 있었다. 이런 막연한 인식은 난민에 대한 이유 없는 혐오를 불러왔고, 그들에 대한 차별과 냉대를 만들어내는 원인이 되고 있었다.
처음 <경기도 난민 취업 실태> 시리즈를 기획한 것도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보고자 하는 의도가 컸다. 단순히 그들의 취업 현황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 왜 난민이 됐고, 한국에선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왜 그런 일밖에 할 수 없는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조금이라도 난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떤 지원책이든 이해를 바탕으로 시작된다. 이해는 곧 공감의 원천이 되고, 공감은 여론으로 나타나 정책으로 재탄생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의 전제는 바로 ‘관심’이다. 관심이 없으면 그 어떤 위정자도 움직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지 못했지만, 그래도 난민을 검색해서 혹시라도 내 기사를 보게 될 독자들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여유가 있을 때 기사를 읽어보고, 반드시 시리즈 전체를 읽어달라고. 그래야 우리가 몰랐던 난민들의 현실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을 테니까. 그 관심이 난민에 대한 이해로 발전할 테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선순환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 역시 관심을 놓지 않을 생각이다. 결국 지속적인 관심만이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