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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예능 프로그램에 대선 후보들이 등장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얼마 전에도 대선 주자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늘 그렇듯 예민한 정책 관련 이야기는 교묘히 피해간 채 인간적인 면만 부각했다. 대선 후보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 실태와 문제점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제가 그때 학원에 다녔는데, 검정고시 학원을. 저는 낮에 공부하고 싶었어요. 근데 나는 학원비를 내주는 사람이 없잖아. 내가 벌어서 다녀야 하니까. 월급이 한 1만 4,000원, 5,000원 했는데, 학원비가 7,000원, 1만 원 했어요. 누가 한 달에 7,000원만 내줬으면 공부를 좀 더 많이 했을 텐데. 그 생각이 들어서. 저는 정책 만들 때 꼭 제 경험이 많이 반영 되거든요? 그것도 역시 제가 그때 생각해 본 거예요. 누군가 돈 좀 빌려줬으면 하는 그런 생각. 그래서 제가 그 경험 때문에 청년 기본 소득을 하는 이유도 있어요.”
지난 9월 26일 방영된 SBS <집사부일체>의 한 장면이다. 청문회를 통해 이재명을 심층 탐구하겠다던 <집사부일체> MC들은, 이재명이 자신의 검정고시 경험을 이야기하다가 자연스레 경기도지사 시절 추진했던 정책을 언급하자 웃으며 기겁한다.
“어우, 지금 홍보가 굉장히 물 흐르듯이 이뤄지는데?!”(이승기)
“말려야 돼, 말려야 돼.”(양세형)
기회만 닿으면 자신의 정책과 노선을 홍보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이재명과, 대화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 노력하는 MC들의 귀여운 기 싸움 정도로 포장된 장면이지만, ‘대선주자 특집’으로 ‘청문회’를 마련했다는 말에 <집사부일체>를 켠 사람들은 다소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대선 주자를 검증하겠다면서 그가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에 관해 안 물으면 과연 무엇을 물을 것인가?
‘검증’하겠다면서 정책 얘기하면 당황하는 예능
아직 거대 양당의 대선 후보 경선이 채 안 끝난 시기에 마련된 이 특집은, 총 3주에 걸쳐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예비 후보,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 후보, 이낙연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 후보를 만났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굵직한 유력 대선 주자들을 연이어 만난다는 기획은 아주 새로운 건 아니다. 과거 2012년 대선 당시에는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가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만났고, 2017년 대선 국면에서는 유승민, 문재인, 안철수, 안희정 등의 정치인들이 JTBC <썰전>에 출연했다. 그러나 <집사부일체>는 콘셉트부터 ‘청춘들이 멘토를 찾아가 하루를 함께 보내며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한다’는 프로그램이다. 이런 프로그램이 유력 정치인을 연이어 만나는 기회를 얻는다면,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집사부일체>는 그 기회를 대선 후보가 살아왔던 삶,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의외의 모습 같은 것들을 발굴하는 데 할애했다. 윤석열을 만나서는 그가 의외로 요리에 소질이 있고 사람들 밥 해 먹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했고, 이재명을 만나서는 그도 악성 댓글에 상처를 입는데 그저 티를 안 내는 사람이라는 면을 확인했으며, 이낙연을 만나서는 그가 자신의 배우자를 만난 과정을 전해 듣고 그의 ‘아재 개그’ 사랑을 확인했다. 만일 이들이 대선 후보가 아니었다면 이런 식의 접근도 나름대로 의미 있었을지도 모른다. 정치인이 지닌 권력의 크기가 클수록 유권자인 나와 정치인의 거리는 더 멀게 느껴진다. 그런 정치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확인하는 것은, 정치인에게 투사된 권위를 걷어내어 주권자로서 더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상대로 관계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게 ‘대선주자 특집’이었다는 것이다. 후보 개개인의 인간적인 매력이나 살아온 인생사가 부각될수록, 구체적인 정책 방향이나 펼치고자 하는 국정 철학에 대한 질문은 뒤로 물러난다. 세 명의 예비 후보 모두 ‘젊은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나라’, ‘규칙 어기면 이익 못 보고 규칙 지킨다고 손해 안 보는 상식적인 세상’, ‘노련한 리더십으로 선진국의 과제를 해나가는 대한민국’과 같은 비전을 이야기했지만, 구체성이 결여된 슬로건은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다. <집사부일체>팀은 ‘젊은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나라’라는 윤석열의 말에 구체적인 취업난 대책이나 부동산 대책을 질문하지 않았고, 이재명이 기본소득 이야기를 꺼낼 때 재원은 어디에서 마련할 것인지, 보편 복지의 확대가 정말 도움이 필요한 계층을 향한 선별 복지의 축소로 이어질 위험은 없는지 묻지 않았다. 이낙연이 ‘노련한 리더십’과 ‘선진국의 과제’ 이야기를 할 때 저성장과 양극화 심화 같은 선진국형 문제를 총리 시절 어떻게 대응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후보가 정책 이야기를 할 때 당황하면서 “말려야 돼”라며 손사래를 쳤다.
예능이라서 더 깊게 물어볼 수 있었을 텐데도
물론 그런 진지한 질문을 왜 예능에서 하느냐고 물어볼 수 있다. 그러나 ‘예능’이기 때문에 상대가 방심한 틈을 노려 웃음을 핑계로 더 깊은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성공적인 정치 풍자 코미디나 정치 예능 프로그램은 웃음으로 상대가 무장 해제된 틈을 타서 보다 까다로운 질문을 밀어 넣거나, 그냥 물어보기에는 다소 껄끄러운 질문을 웃음으로 감싸 충격을 완화해서 물어보는 방식을 택한다. 이를테면 이런 사례가 있다. 미국의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토크쇼 호스트인 하산 미나즈(Hasan Minhaj)는, 자신이 진행하던 <하산 미나즈 쇼: 이런 앵글(Patriot Act with Hasan Minhaj)>에서 캐나다 총리 쥐스탱 트뤼도(Justin Trudeau)를 인터뷰할 때, 캐나다 퀘벡주가 통과시킨 ‘세속주의 법안’에 관한 입장을 물었다. 공적인 자리에서 종교적 상징물을 착용할 수 없도록 규정한 이 법안은, 종교적 규율상 터번을 벗을 수 없는 시크교 신자나 히잡을 벗기 힘든 이슬람교 신자들에 대한 차별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슬람교 신자이자 인도계 미국인 1.5세대인 하산 미나즈는, “무슬림들이 모든 사람에게 제 믿음을 강요하고 전도하려 한다는 고정관념이 지긋지긋하다”고 말하며 해당 이슈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해서, 끝내 쥐스탱 트뤼도에게 이슬람으로 개종할 것을 권유하고는 “전 노력했어요, 여러분”이라고 말하는 장면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자신의 입으로 ‘지긋지긋하다’던 고정관념을 끝내 실천으로 옮기는 것으로 끝나는 내용은 전형적인 코미디의 문법이었지만, 그 코미디의 힘을 빌려 진행된 대화가 지니는 정치적 의미는 분명했다. 퀘벡주를 정치적 기반으로 성장해 온 가톨릭 신자인 트뤼도 총리의 입에서 “세속주의 법안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코멘트를 끌어내는가 하면, “이슬람으로 개종하겠느냐”는 기습 질문에 대처하는 트뤼도 총리의 반응을 통해 그가 이끄는 내각의 문화적 포용성을 엿보는 인터뷰였으니까. 무슬림을 향한 서구 사회의 고정관념과 혐오를 지적하고, 다른 종교를 향한 혐오에 맞서겠다는 발언을 유력 정치인으로부터 이끌어내는 방식의 대화는, 코미디의 외피 없이는 한결 더 무거웠을 뿐 아니라 지금처럼 널리 퍼지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정치 풍자 코미디의 역사가 유구한 미국과 그 맥이 거의 끊긴 한국을 등가비교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유력 정치인에게 그가 생각하는 구체적인 정책에 관해 조금이라도 묻는 것과, 질문을 아예 포기하는 것 사이에는 거대한 간극이 있다. 그리고 <집사부일체> ‘대선주자 특집’은 정책에 관한 질문은 꺼내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는 윤석열이 검찰총장 재직 시절 추미애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이재명이 자신의 가족에게 심각한 욕설을 뱉은 건 어떤 상황이었는지, 이낙연은 무슨 생각으로 경선 중에 종로 지역구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는지를 묻는 말로 채워졌다. 앞서 이야기했듯 정치인으로부터 권위를 벗겨내는 건 예능이니까 가능한 순기능일 수 있다. 하지만 선거철이면 누구나 인간적인 매력을 뽐내고 싶어 하지, 그 어떤 정치인도 선거철에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집사부일체>는 정치인에게 부여된 권위를 해체하고 그들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힘을 쓴 게 아니라, 격의 없이 소탈한 모습을 연출해 표를 얻고 싶은 정치인들의 필요에 착실히 부응한 셈이다.

정치 풍자와 정치 혐오는 같은 말이 아닌데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지 못한다는 한계는 쿠팡플레이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코리아 리부트>(이하 < SNL 리부트 >)의 ‘주기자가 간다’ 코너에서도 반복된다. < SNL 리부트 >에서 배우 주현영이 선보여 인기를 끈 캐릭터 ‘인턴기자 주현영’이 이번 대선의 유력 주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나눈다는 내용의 이 코너는, 보다 날것의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후보의 보좌관들조차 인터뷰 룸에 들어오지 못하게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코너의 주된 코미디 요소는 ‘길고 장황하게 정견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대선 후보들’과 ‘내가 준비해 온 코너를 빨리 진행해야 하는데, 정치인들 말은 너무 길어서 지루하고 센스 있는 척은 더 답답한 젊은 주 기자’의 대립에서 나온다. 말을 길고 장황하게 하는 윤석열을 떨떠름한 표정으로 제지하며 “간략하게 말씀 부탁드린다고 했는데…”라 말하는 대목이나, 걸그룹 오마이걸의 구호를 어설프게 패러디하는 심상정의 멘트에 시큰둥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주기자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식의 코미디다. 얼핏 정치의 허례허식을 걷어내고 본질을 질문하기 좋아 보이는 코미디이지만, 그렇다고 딱히 “지루하고 센스 없는 기성 정치인”에 대한 야유 이상을 수행하지는 않는다.
‘주기자가 간다’ 코너의 또 다른 코미디 요소는 ‘밸런스 게임’인데, 해맑은 표정의 주 기자가 후보에게 대답하기 곤란한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한 뒤 그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요구하는 코너다. 홍준표에게 “다시 태어나면 사랑하는 아내분과 결혼하기 vs. 대통령 되기”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묻거나, 윤석열에게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캠프에서 일하기 vs. 윤석열 후보가 이재명 캠프에서 일하기” 중 하나를 선택하게 시키는 장면, 혹은 이재명에게 “휴가 중에 볼 영화로 한 편을 골라야 한다면 <말죽거리 잔혹사> vs. <아수라>”를 묻는 장면은 온라인상에서도 화제가 됐다. 그러나 이 질문들 역시 대권을 향한 후보 개인의 의지나 상대 후보를 향한 불편한 심경, 후보 개인을 둘러싼 가십과 루머를 언급하며 놀리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주 기자 캐릭터는 특유의 ‘해맑고 눈치 없는’ 캐릭터성의 힘으로 후보들에게 불편하고 까다로운 질문을 던지기 좋은 캐릭터임에도, 후보들이 정말로 대답하기 어려울 만한 정곡을 찌르는 질문 대신 놀리기 좋은 질문을 던지고는 뒤로 물러서는 것이다.
< SNL 리부트 >
정치 풍자 코미디를 하려면 일단 정치 향해 제대로 된 질문을 할 수 있어야
대선의 계절에 대권 주자들을 출연시킨 두 예능 프로그램이, 한 편은 대권 주자들의 이미지메이킹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다른 한 편은 고도의 정치 혐오에 그쳤다는 점은 여러모로 안타까운 일이다. 예능은 웃음을 무기로 정치인의 무장을 해제시킨 뒤 허점을 노린 날카로운 질문으로 정책을 검증할 수도 있고, 그냥 던지기에는 껄끄러울 만한 질문을 웃음으로 감싸서 던질 수도 있으며, 하다못해 농담을 섞어가며 정치인이 꿈꾸는 미래에 관해 더 구체적으로 물어볼 수도 있는 장르다. 하지만 대선을 앞둔 2021년 한국의 예능은, 아직 정치인들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몰라 헤매는 듯 보인다. 그들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면 좋을지 깨달았을 때, 비로소 주 기자가 그토록 원하는 ‘정치 풍자 코미디의 귀환’도 가능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