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상세
개인적인 이야기를 약간 하고 시작하는 것이 이 글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현재 데이터 과학자로 일하고 있으며, 페이스북에서 <오하이오의 낚시꾼>이라는 이름의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페이지는 데이터과학, 통계, 기계학습 등에 관한 유용한 정보 공유를 목적으로 출발했지만, 어쩌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주제, 특히 한국 사회에서 데이터가 사용되고 해석되는 구체적 현실에 대해서도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언론의 데이터 사용 방식을 이야기하게 된 것 또한 자연스러운 귀결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언론은 사회를 비추는 창이자, 데이터의 중요한 소비자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데이터 왜곡 초래하는 시각화 오류
안타깝게도, 그동안 저는 언론에서 데이터를 잘못 활용하는 경우를 자주 봐 왔습니다. 이를테면 잘못된 데이터 시각화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기사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보다 선명하게 하기 위해 도표를 이른바 ‘마사지’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중 특히 자주 눈에 띄는 것으로 ‘Y축 해킹(y-axis hacking)’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는 도표 작성자가 막대그래프나 꺾은선그래프 등에서 자의적으로 세로축 중간 부분을 잘라내거나 비율을 조정해, 실제 데이터를 왜곡되게 보이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 어느 정도 Y축 조정이 필요한 사례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Y축 해킹은 막대그래프 등에서 실제 차이를 보다 크게 보이게 만들어 자료에 대한 왜곡된 상을 전달합니다.
아주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지만, 도표의 세로축 비율을 조정해 실제보다 차이가 더 커 보이게 하는 사례 하나를 들겠습니다. [그림 1]은 <[단독] 1인당 국민소득 10% 증가한다는데…물가급등·청년실업에 체감경기 싸늘>1)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수록된 도표입니다. 도표의 막대들과 실제로 표시된 숫자들의 비율을 보면 잘 맞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실제 비율대로 그려보면 [그림 2]와 같습니다.

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표 <출처 - 한국경제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그림 2] [그림 1]을 실제 비율대로 그린 도표 <출처 – 필자 제공>
앞의 그래프와 비교해 보면 연도별 차이가 보다 작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해당 기사의 그래프에 나타난 연도별 차이는 다소 과장돼 있다는 것입니다. 이 기사의 경우에는 별다른 악의적 의도가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때로 Y축 해킹은 기사 작성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데 사용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림 1] 도표에서 봤듯 Y축 해킹은 차이를 더 크게 보이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해석으로 독자에게 혼선 줄 수 있어
기초적인 수준의 데이터 관련 오정보 외에도 일반 독자들로서는 보다 알아채기 힘든 경우도 존재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언론에서 기본적인 팩트체킹 없이 기사를 내보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조용한 학살’, 20대 여성들은 왜 점점 더 많이 목숨을 끊나>2)라는 제목의 기사에서는 한 전문가를 인용해, “1951년생 여성이 스무살일 때 자살사망률을 1로 본다면, 1986년생이 스무살일 때의 자살사망률은 1951년생에 비해 6배 높고, 1997년생은 약 7배 높다”라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인용된 논문과 기사에서 인용한 도표를 보면, 6배나 7배 높았다는 것은 자살률 자체가 아니라 자살률에 기여하는 이른바 ‘코호트 효과’였습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코호트 효과란 출생 시기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특정 사회 현상에 대한 인과적 효과입니다. 이를테면 자살이라는 현상이 있을 때, 이것에 ‘1951년생이다’, ‘1986년생이다’ 등이 고유하게 기여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에서는 코호트 외에도 ‘연령효과’, ‘시기효과’라는 것을 언급했는데, 전자는 출생 시기와 상관없이 특정 연령(이를테면 20세)으로 인해 발생하는 효과, 후자는 연령이나 코호트와 상관없이 자살률 측정 시점 자체가 특정 시기(이를테면 1997년)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효과를 일컫습니다. 연구자들은 자살률에 대해 코호트, 연령, 시기의 세 가지가 미치는 효과를 분석하려 시도했는데, 그중 코호트의 효과에 대해서만 6배, 7배 등의 결과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기사에서는 자살률 자체가 그만큼 증가한 것처럼 보도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 자살률 통계를 조사해 보면, 20대 여성 집단에서 어느 정도의 증가는 발견되지만 그만큼의 증가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실제 통계자료를 조사해 보면 쉽게 잡아낼 수 있었던 오류지만, 해당 부분은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지면을 타게 됩니다. 그런데 이 기사는 젠더 이슈, 자살이라는 소재의 자극성 덕분에 빠르게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실제로 해당 기사가 올라온 이후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서 해당 기사 관련 내용이 리트윗 되는 등 꽤 자주 보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화제성 중 상당 부분은 잘못된 정보에 근거를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데이터 시대에 필요한 데이터 저널리즘
사실 이런 것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우리 사회는 날이 갈수록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 저장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데이터가 핵심이거나 유의미한 부분을 차지하는 보도의 양도 날이 갈수록 더 늘어나는 듯합니다. 하지만 언론에서 데이터를 소비하고 해석하는 관습이 그에 맞춰 변화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달립니다. 여전히 각종 언론 기사에서 질 낮은 데이터 기사 및 시각화 자료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지는 것일까요? 미디어 비전문가로서 저는 다음의 것들을 거칠게 추측해 봅니다.
첫째, 수용자 측면에서, 질 높은 데이터 저널리즘에 대한 수요가 부족해 보입니다. 이는 질 낮은 데이터 보도가 생산 및 유통됐을 때, 이를 지적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능동적 독자들이 별로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실 좋은 데이터 기사를 생산하려면 노력과 시간, 다시 말해 비용이 꽤 듭니다. 그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질 낮은 기사를 생산해도 독자들로부터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면, 언론사들이 좋은 기사를 생산하기 위해 각종 비용을 들일 이유가 있을까요? 제 생각에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이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독자층 일반에 이른바 미디어 문해력(media literacy) 또는 데이터 문해력(data literacy)을 갖춘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런 사람들이 언론에서 질 낮은 데이터 기사를 생산했을 때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할 것입니다. 아니면 적어도 그런 역할을 담당하는 준 전문가 집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당장은 우리 사회에 그럴 만한 기반이 조성돼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 그런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오하이오의 낚시꾼>에서 지속적으로 질 낮은 데이터 기사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둘째, 공급자 측면에서 보면 애초에 미디어 생산자, 특히 언론사들이 좋은 데이터 기사 생산에 자원을 투자할 유인이 별로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데이터 관련 전문성은 하루아침에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데이터 과학자라는 직업이 최근에 떠오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만, 데이터 전문가의 수는 적고 몸값도 상당히 비쌉니다. 이런 사람들을 상당수 모아 팀을 구성하려면, 아니 단 한두 명이라도 제대로 된 사람을 고용하려면 상당한 탐색 시간과 비용이 듭니다. 이런 비용을 언론사에서 들이려면 상당한 결단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영세한 언론사에서는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를 넘어서서, 때로는 데이터를 다루는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를 고의적으로 생략하면 독자들에게는 오히려 더 호소력 있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선명히 전달하는 기사를 생산할 수도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Y축 해킹의 경우가 좋은 사례겠지만, 그 밖에도 예를 들어, 상관관계만 존재하는 두 요인을, 인과관계 확립을 위한 복잡한 절차를 모두 생략하고 과감하게 인과관계로 엮어 적당한 스토리텔링과 함께 독자들에게 전달하면 더 매력적인 기사가 생산됩니다. ‘상관관계는 인과관계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통계학에서는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는 매우 중요한 원칙이지만, 언론 보도에서는 이를 무시하는 경우를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는 독자들에게 쉽게 이해되는 쉬운 스토리텔링을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게 합니다. 물론 이렇게까지 고의적으로 데이터 저널리즘을 생략하는 경우는 많지 않겠지만, 여기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미디어 생산자 측에서 데이터 관련 베스트 프랙티스를 따를 유인이 적다는 것입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저도 아직 뾰족한 해답이 없습니다. 앞서 여러 차례 말했듯, 잘못된 데이터 보도 관행은 수용자 및 생산자 측 유인 구조와 직결돼 있으며 이를 하루아침에 바꾼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관련 분야 전문가들과 사회의 지속적인 개선 요구 및 압박이 필요할 것입니다. 또한 언론 및 관련 분야 종사자들의 의식 개선 또한 필요할 것입니다. 실제로 제 주변에도 더 나은 데이터 저널리즘을 위해 노력하는 언론인이 꽤 많습니다. 함께 꾸준히 노력해 나가면 현 상황을 조금씩 개선해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바야흐로 데이터 시대가 도래한 지금, 더 나은 데이터 저널리즘을 언론 지상에서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1) 김익환, <[단독] 1인당 국민소득 10% 증가한다는데…물가급등·청년실업에 체감경기 싸늘>, 한국경제, 2021.12.5,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2D&mid=shm&sid1=101&sid2=263&oid=015&aid=0004636853
2) 임재우, <‘조용한 학살’, 20대 여성들은 왜 점점 더 많이 목숨을 끊나>, 한겨레, 2020.11.13,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69898.html#csidx3f150d17614071a833fdbde764e18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