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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제작기] 대전MBC <노래하라! 저항하라!_항일 음악 6천 곡 대발굴>
취재기제작기 | 등록일 : 2021-12-31

항일 음악은 음악 교과서에도 실리지 않고, 관련 연구도 이뤄지지 않아 기억하는 이가 드물다. 대전MBC는 단국대 동양학연구원이 항일 음악의 보급 프로젝트를 통해 항일 음악 6,000곡을 발굴해내는 과정과 의미를 다큐멘터리에 담았다. 다시 ‘우리 모두의 노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 제작기를 따라가본다. 편집자 주 

 

 

뮤지컬 배우 고은성이 부르는 <한국행진곡> ⒸMBC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1991년 대학에 입학했다. 이후 30년 동안 적지 않은 투쟁의 현장에서 항상 들렸고, 목 놓아 함께 따라 불렀던 노래가 있다.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상징하는 곡으로 당시 전남대 3학년으로 ‘5월 광주’를 목격했던 현 세종시문화재단 대표인 김종률 작곡가가 1982년 만들었다. 지난해 사석에서 만난 그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제 개인 역량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피워낸 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노래는 영원히 생명력을 가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진단은 정확했다. 군부 쿠데타로 자유와 인권이 유린된 미얀마 현지에서 그의 음악이 울려 퍼졌던 것이다. 음악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기에 사방으로 퍼질 수 있고, 서로 마주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마음을 연결하는 통로가 된다. 시대와 국경을 뛰어넘어 공감대를 이루는 것, 바로 음악의 힘이다

 

저항의 현장

그곳엔 언제나 음악이 있었다

 

촛불집회, 6·10민주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 4·19혁명.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민주화운동 현장에서도 노래는 모두가 공감한 절규이자 희망의 외침이었다. 그렇다면 무력으로 한민족을 탄압하고 민족정신을 말살했던 일제강점기 시절에도 한민족을 일으켜 세운 음악의 힘이 있었을까? 대전MBC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한시준 독립기념관 관장의 말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독립기념관장으로 부임하기 전 단국대 동양학연구원에서 항일 음악 관련 연구를 진행했던 한 관장은 “음악이라는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어떤 것을 크게 느끼게 하는 주요한 요소였습니다. 독립운동 조사를 위해 만주 지역 같은 곳을 가면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자기 아버지가 불렀던 노래들을 기억하고 부릅니다. 독립운동가의 삶의 애환이나 독립의지가 그 음악을 통해서 가슴에 절절히 박히죠”라고 말했다. 나라를 빼앗긴 슬픔과 절망 속에서 불안하고 위태로운 삶을 이어가면서도 우리 민족은 노래를 잊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100년이 흐른 지금 그 음악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1910년 한일병탄 이후 일제는 우리 민족의 음악을 통제하는 법령을 일본 본토보다도 먼저 시행해 적극적으로 막았고, 광복 이후 국내 음악계나 학계도 일제강점기 항일 음악을 서양 선교사들의 찬송가로 치부하고 별도 후속 연구를 하지 않은 탓도 있다.

 

독립 염원의 열정 담긴 무형의 자산 ‘항일 음악’

 

100년 전 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불렀던 노래, 지금의 음악 교과서에는 없지만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노래,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노래. 한시준 독립기념관장을 통해 접촉한 단국대 동양학연구원이 최근 4년 수집한 항일 음악은 무려 6,000곡에 달했다. 연구원 측은 중국 동북 지역과 중앙아시아 등을 답사해 구전된 음악과 현전하는 자료를 수집해 데이터화했다. 광복 이후 항일 음악을 전수 조사한 사례는 이번이 최초다. 발굴된 항일 음악의 수는 6,000개로 2017년 고 노동은 교수의 《항일음악 330곡집》과 비교할 때 무려 20배가량 많다. 발굴된 항일 음악은 애국가, 독립군가처럼 나라 사랑과 항일 정신을 노래한 것부터 독립을 위해 교육과 계몽을 독려한 노래, 국외에서 항일 투쟁을 하는 독립운동가가 고향을 그리워한 노래 등으로 구성돼 있다. 반혜성 동양학연구원 교수는 “곡들이 다 분명한 출전이 있고 또 누가 가창했는지 정보가 있기 때문에 6,000곡 모두를 항일 음악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항일 음악은 투쟁 현장에서 독립투사를 일으켜 세운 힘이었고, 고통스러운 민중의 삶 속에서는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래주는 한 줄기 빛이었다. 적극적인 무장투쟁이 민족 독립을 위한 한 축이었다면, 모두 함께 불렀던 항일 음악은 한민족을 일으켜 세웠던 더 큰 무형의 힘이었다. 항일 음악은 한민족 정체성을 지켜내고, 나라를 되찾고자 했던 그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소중한 문화유산인 것이다.

 

 

도산 안창호 작사 <거국행>(1910) 악보 ⒸMBC

 

 

숫자보에서 오선보로… 모두의 노래로


빛바랜 종이에 숫자로 표시된 한민족의 노래, 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흐릿한 필사 악보. 단국대 동양학연구원은 낡은 숫자보로 전해 내려온 항일 음악 6,000곡 가운데 1,000곡을 현대적인 오선보로 표준화했다. 제작진은 이 가운데 10여 곡을 선정해 현대적인 복원 작업을 진행했다. 1914년 북만주 광성학교 《최신창가집》에 수록된 <애국가>, 1914년 도산 안창호 선생이 작사한 <소년남자가>, 1910년 이상준 선생이 미주 지역에 독립군 진영을 세우기 위해 조국을 떠나며 만든 <거국행>,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제2지대에서 활동했던 한형석 선생이 작곡한 <여명의 노래>와 <한국행진곡> 등이 그것이다. 특히 연구원은 <한국행진곡>에 주목했다. 한형석 선생은 광복군으로 활동하던 1940년 <아리랑>이라는 오페라 형식의 가극을 만든 주인공이다. 당시 200여 명의 배우와 악기 편성, 광복군들이 직접 출연해 연기를 하고 노래를 불렀다. <아리랑>은 현제명의 <춘향전>보다 10년이나 앞선 우리나라 최초의 오페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행진곡>은 한형석의 가극 <아리랑>의 가장 핵심적인 곡이다. 한형석 선생의 자제인 한종수 씨는 부친을 이렇게 기억한다.

 

“선친은 예술로도 얼마든지 나라를 위해서 독립운동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예술구국’이라는 넉 자를 항상 몸에 지니고 공부도 하셨고, 독립운동도 이어 나가셨습니다.”

 

험난한 복원의 길 

네트워크 활용 복원 작업

 

항일 음악 복원은 세 가지 고민 속에서 출발했다. 우선 ‘무장 독립 투쟁 당시 부른 항일 음악의 감성을 그대로 살릴 수 있을까?’, ‘지금 세대의 눈높이에 맞게 현대적으로 되살려낼 수는 없을까?’, ‘당시 독립군의 목소리를 과학기술로 복원해 항일 음악 원곡 자체를 재연할 수 없을까?’였다. 항일 음악의 당시 감성을 되살리기 위해 먼저 육군과 해군 군악 의장대대와 접촉했다. 당시 항일 무장 투쟁 상황을 제대로 살리는 데 군 장병들이 제격이라고 판단됐다. 각 군 군악 의장대대의 적극적인 협조 약속도 있었다.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세지면서 부대 내 출입 통제가 강화됐고 군악 의장대대와의 항일 음악 복원은 수포로 돌아갔다. 다큐멘터리 송출까지 남은 시간은 한 달 반. 눈앞이 캄캄했다. 위기가 곧 기회라고, 3년간 사업부서 근무 때 맺은 인연들이 떠올랐다. 대전문화재단이 발주한 비대면 공연 사업 등을 진행했던 경험을 살려 지역 가수들을 섭외했고, 항일 음악을 현대적으로 편곡할 지역 작곡가들을 만나게 됐다. 대전 지역 가수와 대전 출신 뮤지컬 배우, 작곡가들, 그리고 대전시민천문대 어린이합창단. 모두 항일 음악의 가치를 되살리는 프로그램 취지가 너무 좋다며 적극적으로 동참했고, 출연료도 최소 실비만 받았다. <한국행진곡>의 교향곡 버전 역시 다큐멘터리 제작 취지에 공감한 대전시립교향악단의 자발적인 도움 덕에 이뤄졌다. 독립투사가 직접 부르는 항일 음악 부분은 수퍼톤, 라이언로켓 등 AI 기술 활용 음성 복원 기업들과 시도에 나섰다. 40분 분량의 독립투사 육성이 필요하지만 현재 기술로 확보된 당시 육성은 10분에 불과해 미완의 프로젝트로 보류됐다. 그러나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만큼 조만간 100년 전 독립투사가 당시 목소리로 힘차게 부르는 항일 음악의 복원이 가능한 날이 올 거란 희망을 갖게 됐다.

 

 

광복군제2지대 소속 한형석 선생의 <한국행진곡>(1948) 악보 ⒸMBC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한 역사는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가 항일 음악을 연주해서 다른 지역으로 전파하는 것 자체가 독립운동이라고 봅니다.”

 

항일 음악으로 직접 학교 종소리를 만든 경남 밀양 미리벌초등학교 6학년 석하랑 학생의 인터뷰 내용이다. 다큐멘터리 제작 내내 가장 큰 의문 부호였던 ‘과연 한일병탄 이후 100년이 지난 지금, 여기, 우리의 아이들이 항일 음악의 가치와 의의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에 대한 명확한 답변이었다. 항일 음악 6,000곡 대발굴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의미가 있지만, 그 가치를 현세대가 제대로 공유하지 못한다면 그 큰 울림이 반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에서 복원된 항일 음악들은 2021년 10월 25일 대전 현충원에서 열린 홍범도 장군 78주기 추도식과 11월 17일 독립기념관에서 진행된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에 활용되며 국민 곁으로 더욱 다가가고 있다. 특히 이번 다큐멘터리를 계기로 충청남도와 세종교육청은 항일 음악회와 항일 음악 다시 부르기 대회 등을 추진해 항일 음악 활성화에 나설 예정이다. 무엇보다 하루 빨리 아이들의 교과서에 항일 음악이 실려 한민족이 어떻게 고통스러운 역사를 견뎌내고 오늘 이 자리에 도달했는지 어릴 때부터 체득하는 교육 체계가 갖춰지길 기대해 본다. 역사의 암흑기, 항일 음악은 그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자유와 독립의 희망을 잃지 않았던 저항과 투쟁의 기록이자 민족정신의 정수가 담긴 소중한 유산이기 때문이다. 이제야 한데 모인 6,000곡의 항일 음악. 그 의미와 가치를 밝히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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