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사 상세
[취재기제작기] EBS <하트가 빛나는 순간>
취재기제작기 | 등록일 : 2021-12-31

SNS상에서 ‘하트’는 10대들에게 큰 의미를 가진다. 하트 하나에 울고 웃는 10대들이 디지털 세상에서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드라마’라는 어려운 주제를 재미있게 풀어내고자 한 드라마 <하트가 빛나는 순간> 제작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눈뜨자마자 밀린 카카오톡을 보는 일. 짬짬이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영상을 보는 일. 스마트폰 너머의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와 아무렇지 않게 소통하는 일. 다음날 후회할 걸 알면서도 ‘빨리 자야 되는데…’ 주문만 외며 새벽이 되도록 밀린 웹툰들을 읽는 일. 우리의 일상은 미디어로 가득 차 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하루하루를 미디어가 어떻게 채우고 있는지 일일이 언급하는 게 진부할 정도다.

 

자연스러운 장면은 또 있다. 뉴스 기사를 보러 들어갔다가 뜨는 성인 콘텐츠 광고창을 아무렇지 않게 끌 때. 엄마가 정말로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모르는 번호로 내게 카톡했을 뿐인데 ‘혹시 보이스 피싱?’하고 의심하는 순간. 내 얼굴이 잘 나온 사진을 혹시 누군가 저장할까 봐 SNS에 그냥 올리지 않았던 기억.

 

우리 팀이 표현하고자 했던 ‘미디어 리터러시’는 이런 장면들에 가까웠다. <하트가 빛나는 순간>은 이미 너무나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어서 특별할 것도 없지만, 분명히 불쾌하고 때론 법의 경계를 넘나들기도 하며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고 싶은 디지털 세상의 문제들에 관한 드라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드라마’ 한 줄에서 시작된 기획

 

<하트가 빛나는 순간>의 시작은 한 줄짜리 기획이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드라마.’ 드라마 제목도 정해지기 전부터 우리 기획 앞에 붙어있는 수식어였다. 디지털 세상과 관련된 문제들이 날로 사회면에 오르내리는 시대에 해당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의미도 깊을뿐더러, 드라마라는 형식 자체도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 웹드라마 형태로 인기를 얻어 온 지 오래였다. 교육방송의 틀 안에서 의미와 화제성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명쾌한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그런 명쾌한 기획이 있을 리가 없었다.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룰수록 스토리는 ‘노잼’이 돼갔다. 그렇다고 이야기의 재미만을 생각하자니 주제 의식을 대충 버무리는 수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결국 우리는 뻔하디 뻔한, 모든 TV 프로그램이 마주하게 되는 두 가지 질문 앞에 섰다. △TV 프로그램 안에서 우리의 주제 의식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까? △재미있는 드라마가, 아니 애초에 볼만한 드라마가 될 수 있기는 할까? 다음은 우리 제작진이 두 가지 괴로운 질문을 어떻게 헤쳐나갔는가에 관한 명쾌하지 못한 설명이다.


드라마로 미디어 리터러시를 어떻게 다룰까?

 

미디어 리터러시는 다양한 미디어를 다루는 기술적인 능력부터 미디어에 노출된 정보들을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까지 넓은 범위를 포괄한다. 이는 다시 말하면 미디어 세상과 관련된 이야기면 무엇이든 그 카테고리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코딩 교육과 같은 기술 교육에 가까웠고 어떤 이에게는 유튜브 동영상 제작 방법 강의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자문하거나 주변인들과 아이디어를 나눌 때면 각자 거대한 코끼리의 서로 다른 부분을 만지며 실패하기 일쑤인 의사소통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거대한 울타리 안에서 무엇을 다룰지를 정하는 것은 결국 우리 팀의 몫이었다. 우리는 실제 사례들로 눈을 돌렸다. 같은 반 친구의 얼굴을 합성한 딥페이크 영상으로 고통받는 학생이 있다는 기사, 여전히 학교 폭력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단톡방 감옥, 반에서 금지어로 지정된 유튜브에서 쓰이는 혐오 단어들. 그에 더해 열정적인 자문 선생님이 들려주신 실제 학교 현장의 이야기들도 있었다. 코딩이나 유튜브 업로드 방법을 알려주는 것보다 실생활에서 누구나 겪고 있는 디지털 관련 문제들을 다루고 그 해결 방법을 논할 때, 더 살아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는다는 드라마의 본질적인 속성과도 어울리는 소재들이었다.

 

‘사이다’와 ‘참교육’은 의도적으로 피했다. 피를 튀기며 주먹질하는 학교 폭력 현장, 불법 촬영물이나 따돌림을 견디다 못해 목숨을 끊는 어린 학생들, 사이다를 마신 듯 악을 응징하는 멋진 주인공. 많은 학원 드라마들에서 자주 등장하는 높은 수위의 설정들은 드라마틱하고 흥미롭지만 동시에 드라마 속 세계와 시청자들의 현실을 동떨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그보다는 10대 시청자들이 우리 드라마를 자신의 생활과 겹쳐볼 수 있기를 바랐다. 나에게 어느 때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드라마 속에서 보고 그 해결 방법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때, 교육 드라마로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트가 빛나는 순간> 포스터 ⒸEBS​

 

 

라이브 방송을 하다가 딥페이크 범죄에 노출된 빛나라, 날씬한 몸에 대한 강박으로 과도한 다이어트를 감행하는 인플루언서 초현, 아이돌 포토 카드를 교환하다 낯선 이를 만나게 된 지혜와 같은 캐릭터들은 그렇게 탄생했다. 시청자들이 이들을 나와 같은 세계에 발붙이고 선, 있을 법한 인물들이라 느낄 수 있길 바랐다. 그런 인물들이 디지털 세상과 관련된 문제들을 현실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는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거창한 이름을 갖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다룰 필요가 있는 이야기였다. 또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드라마가 끝나는 지점에 긴급 전화 혹은 사이트와 같은 정보를 덧붙이기도 했다. ‘저도 어제 이상한 메시지를 받고서 빛나라처럼 행동했어요’하고 달린 댓글을 보았을 때, 우리는 처음 구상했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드라마에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었다.

 

교육적이면서도 재미있는 드라마가 될 수 있을까?

 

EBS에서 탄생하는 대부분의 콘텐츠는 필연적으로 공통의 목표를 부여받는다. ‘교육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콘텐츠’. 그리고 대부분의 PD는 짐작할 수 있는 이유로 그 목표 앞에서 좌절한다. 교육적이면 재미가 없고 재밌는 콘텐츠는 대개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시청자들의 선택은 받지 못한 채 ‘우리는 나름의 교육적인 의미가 있었어’하고 자기 위로만 남는 프로그램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재미’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정확한 타깃 분석이 필수다. 다년간 유아, 어린이 프로그램 부서에서 제작하며 알게 된 사실은 ‘10대’로 퉁칠 수 있는 시청 타깃층은 없다는 사실이다. 초등학교 저학년과 고학년 시청자가 다르고 중학생과 고등학생 시청자가 또 다르다. 성인 시청자들보다 훨씬 취향과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해 지금 유행하는 것을 녹여내 프로그램을 제작하면 방송 시점에는 금세 옛날 스타일이 돼 버리기도 한다. 대충 ‘10대는 이런 걸 좋아하지’로 접근했다가는 누구의 관심도 얻지 못하게 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타깃으로 삼은 드라마 시청층은 초등 고학년부터 중등 저학년까지의 10대 초중반 세대였다. 최근 TV에서는 이들만을 위한 콘텐츠 제작이 부진한 상황이었다. TV를 멀리하는 탓에 높은 시청률을 기대하기가 어렵고 상대적으로 시장성이 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유튜브 콘텐츠로 향하거나,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바로 성인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예능·드라마 프로그램으로 뛰어넘곤 했는데, 오히려 우리는 그 때문에 이들만을 위한 콘텐츠에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기획 초기 SF, 추리물, 시대극, 사극 등 다양한 콘셉트를 놓고 논의가 있었지만 마지막에는 가장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학교 생활 스토리로 돌아왔다. 청소년 시청자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으면서도 디지털 리터러시와 관련해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설정이었기 때문이다. 아주 신선한 설정은 아닐 수 있더라도 청춘 드라마에서 기대하는 내용은 다 보고 갈 수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스킨십 없이도 설레고, 풋풋해서 더 좋은 청춘 로맨스도 녹이고자 했다. 그 덕인지 ‘EBS에서 이런 드라마를?’ 혹은 ‘EBS에서 로맨스를?’과 같은 반응을 볼 수 있어 재밌었다.

 

우리끼리 한 가지 더 목표로 삼은 것이 있다면, 드라마 속 서사가 의미의 앞에 서길 바랐다는 점이다. 교육적 콘텐츠와 비교육적 콘텐츠를 나누는 선을 우리 머릿속에 두지 않기로 했다. 대신 보는 이들이 가슴 설레하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마음속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남아 있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 유튜브에 1화를 업로드하고 일주일 남짓 됐을 때 100만 뷰를 달성했는데, 이렇게 나름 좋은 반응이 왔던 것도 그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하트가 빛나는 순간>은 ‘사이다’와 ‘참교육’은 의도적으로 피하며, 10대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자신의 생활과 겹쳐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작했다. <출처 - EBS 홈페이지>

 

 

누군가에게 최소한의 이정표가 되기를

 

아쉬움이 없지 않다. 실존하는 디지털 세상의 폭력과 범죄를 보다 사실적으로 전하지 못한 점이 그렇다. 그런 문제들로 인해 현실 속 피해자들이 겪을 수도 있는 괴로움들을 너무 가볍게 다루기만 한 것은 아닐까, 우려도 남는다. 여러 부족한 점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를 본 이들이 30분 남짓의 러닝타임을 지루하지 않았다 느낀다면, 제작진으로서 더 바랄 게 없다. 하지만 몇 가지 더 욕심낼 수 있다면 꼽고 싶은 것들이 있다. 어쩌면 우리 드라마를 봤을 10대들이 매일같이 들여다보는 작은 창 안에서 좋아하는 것들을 맘껏 표현하고 불필요한 걱정에 휩싸이지 않기를, 혹시라도 원치 않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면 숨고 피하기보다는 해결책이 될 수 있는 조금의 힌트를 얻을 수 있기를, 이 드라마가 누군가에게 100%의 교재는 아닐지언정 최소한의 이정표가 되어줄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바란다.

 

저자의 다른 미디어
  • 필자 : 손예은
  • 소속 :
  • 직함 :
  • 발행 : 2021-12-31
  • 조회수 : 13
  • 키워드 :
블로그 공유 트위터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