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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제작기] KBS <다큐 인사이트> '여성 아카이브 연작'
취재기제작기 | 등록일 : 2022-01-28

KBS <다큐 인사이트>는 ‘여성 아카이브 연작’을 통해 동시대 감수성에 맞는 여성의 얼굴을 되살리고자 했다. 직업인으로서 기록할 만한 성취를 이뤄낸 여성의 삶과 서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연작의 제작기를 따라가 본다. 편집자 주

 

 

KBS <다큐 인사이트> ⒸKBS 

 

 

KBS <다큐 인사이트>에서는 2020년 여름부터 2021년 겨울까지 ‘다큐멘터리 개그우먼’, ‘다큐멘터리 윤여정’, ‘다큐멘터리 국가대표’, ‘다큐멘터리 뉴스룸’을 방송했습니다. 내부에서는 ‘방송국 여자들’이라는 프로젝트명으로 불렸고, 외부에서는 ‘여성 인터뷰×아카이브 시리즈 다큐멘터리’라는 타이틀이 붙었습니다. 몇몇 시청자들은 ‘이은규(연출)-김선하(작가)-이은비(촬영)’의 작품이라며 제작진의 이름을 기억해주기도 했습니다. 네 편의 다큐멘터리(이하 다큐)가 어떻게 하나의 연작으로 묶일 수 있었는지, 연작의 흐름 속에서 각각의 다큐는 어떠한 위치에 놓이는지, 더 늦기 전에 정확한 언어로 제작 과정을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방송 1시간 동안 여성의 얼굴을 본다는 것

 

“여성의 이야기를 여성이 만들어 여성의 입으로 전한다. 단순해 보이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은 일이다. (중략) 권위 있는 전문가의 자리마다 남성을 우선 섭외하는 방송가의 관성을 벗어나 출연자들과 함께 그 세계 안에서 성장해 온 여성 동료에게 마이크를 건넨 것이다.”1)

 

입사 7년 차. 하고 싶은 것은 모호했지만, 하기 싫은 것은 명확했습니다. 기존 방송 다큐의 관성 중 반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제외하니 나름의 기준이 생겼습니다. 제일 중요했던 기준은 ‘여성의 경험을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말한다’였습니다. 이 기준을 준수한다는 것은 제작 전 과정에서 “남자들 인터뷰도 있어야 하지 않아요?”라는 질문을 계속 마주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다큐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선의의 질문도 있었지만, 왜 유사한 질문이 반복돼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모든 인터뷰이가 남성이던 다큐에서는 제기되지 않았던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여성의 이야기를 여성의 언어로 전한다는 기초적인 원칙만이라도 제대로 준수해보자는 것이 이번 다큐 연작의 시작점이었습니다.

 

당사자인 인터뷰이의 목소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촬영 환경과 구성을 만들고,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여성 동료가 프리젠터로서 목소리를 더하며, 그들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과거 아카이브 영상들을 꼼꼼히 찾아낸다는 방법론을 설정했습니다. 하지만 개괄적인 방법론만 있을 뿐 디테일은 부족하니 헤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순간마다 두 편의 영상을 반복해서 찾아봤습니다.

 

하나는 유니프랑스(UniFrance)에서 제작한 다큐 <70편의 영화 속 프랑스 여성 감독들!(French female directors in 70 films!)>이었고, 다른 하나는 음악가이자 영화감독인 이랑이 만든 ‘제12회 여성인권영화제 공식 트레일러’였습니다. 다양한 여성의 얼굴이 담긴 푸티지(footage, 장면)를 연속적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이상한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낯설고 서툴 수 있겠지만, 방송 다큐에서 한 시간 동안 여성의 얼굴을 중단 없이 보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는 기운을 얻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단순한 마음이 이번 연작을 마지막까지 지탱하는 동력이 됐습니다.

 

 

<70편의 영화 속 프랑스 여성 감독들!> ⒸUniFrance

 

 

12회 여성인권영화제 공식 트레일러 ⒸFiwom 

 

보다 구체적이고 선명하며 용감한 질문들이 이어지길

 

“KBS의 아카이브는 물론, 타사의 영상자료들까지 수집해가며 한국의 언론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여성들을 어떤 식으로 대접해 왔는지 꼼꼼하게 짚어내고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낸 이 세 편의 연작들은 한국 사회의 여성 인권 수준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기록이자 훌륭한 소셜 코멘터리가 되었다. 상업성을 높여야 한다는 압박이나 트렌드를 숨 가쁘게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회사만이 가능한, 실로 공영방송이니까 가능한 작업들이었다.”2)

 

KBS에 소속된 PD로서 “수신료의 가치를 다했다”라는 시청자 후기가 제겐 가장 큰 칭찬으로 여겨집니다. “내가 30여 년간 낸 수신료로 KBS가 드디어 나 보라고 프로그램 하나를 만들었다. 그나저나 다음 프로그램은 2055년쯤인가…”라는 감상평에 웃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공영방송에 무엇을 기대하는지 고민하게 됐습니다. KBS <다큐 인사이트> 팀은 10명 내외의 PD로 구성돼 있습니다. 동시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질문들을 각자 하나씩 품고, 상업성과 화제성에서 살짝 비켜 나와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다큐를 한 땀 한 땀 만들고 있습니다. 제 질문은 ‘젠더’였습니다.

 

첨예한 질문일수록 더 많은 시청자가 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다만 불특정 다수가 보는 방송인 만큼 다음의 제작 기준을 준수하고자 했습니다. 첫째, 제작진의 주관적 평가나 판단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내레이션은 사용하지 않는다. 둘째, 젠더 관련 배경지식이 없는 시청자들도 논리적 흐름을 충분히 따라올 수 있도록 친절하게 편집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자막을 더한다. 셋째, 과거 영상을 오늘날 소환하는 것만으로도 당시의 차별적 시각이 드러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하며 아카이브를 발굴한다. 넷째, 하소연이나 불평불만이 아닌 통쾌한 성장담을 공유할 수 있도록 엔딩을 구성한다.

 

이와 같은 제작 기준에 기반을 두되, 네 편의 연작에 각각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개그우먼의 활약이 늘어난 것은 시대가 변했기 때문인가? 윤여정은 어떻게 한국인 최초로 오스카 상을 받은 배우가 됐는가? 여성 운동선수들의 성과와 대우는 비례하는가? 뉴스룸은 누구의 목소리를 대표하는가?’

 

이는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여성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마주했던 질문들이기도 했습니다. 1년에 52편의 다큐를 방송하는 <다큐 인사이트>에서, 4편 정도는 여성 시청자들이 자신의 삶에 와닿는 질문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저희가 던진 기초적인 수준의 질문을 시작으로 보다 구체적이고 선명하며 용감한 질문들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KBS <다큐 인사이트> 제작 현장 ⒸKBS

 

 

동시대 감수성에 맞는 여성의 얼굴을 재현하다

 

“다큐멘터리는 때때로 현실 그 자체라는 오해를 받는다. 그러나 다큐멘터리의 편집을 거치는 순간 현실은 선별과 배제를 거친 ‘구성물’로 거듭난다. (중략) 똑같은 사람을 누군가는 뜨개질하는 여성으로, 누군가는 ‘우리 누나’로, 누군가는 강인한 국가대표로 그려냈다. 우리는 지금까지 어떻게 재현된 여성 선수만을 봤으며, 그 속에서 지워진 어떤 이야기를 원했는가? <다큐 인사이트>는 바로 이 지점을 정확하게 건드렸다.”3)

 

저는 교과서 대신 <인물현대사>, <한국 사회를 말한다>를 보던 학창시절을 거쳐, <도자기>, <차마고도>와 같은 문명 다큐를 보며 다큐 PD의 꿈을 키웠습니다. 제가 자라면서 본 다큐와 제가 만든 다큐 사이에는 간극이 있습니다. 20세기에서 21세기를 거친 사회적 변화는 창작자로서 제 개인의 정체성을 바꿔놓았습니다. 이번 다큐 연작을 제작하며 이러한 변화가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동등한 책임감으로 네 편의 다큐를 함께 만들었던 제작진들 역시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동시대 감수성에 맞는 여성의 얼굴을 재현하고 싶었습니다. ‘공영방송 KBS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으로 그간 지워져 있던 여성의 이야기를 꾸준히 내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최지은, <앞·뒤·옆의 여자들>, 한겨레21 제1377호, 2021.8.24,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0819.html 

2) 이승한, <우리가 다 유혈낭자한 ‘오징어게임’만 보며 사는 건 아니랍니다>, 2021.10.17, 엔터미디어, http://www.entermedi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725 

3) 이진송, <“우리가 흘리는 땀에는 성별이 없다”>, 경향신문, 2021.8.20,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108201626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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