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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은 국민의 공론장 역할을 해야 한다. 언론이 신뢰를 잃고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우리 현실에서 미디어 비평은 그 해법이 될 수 있다. 미디어 비평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살펴보고, 언론 본연의 기능 회복을 위한 방향성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주인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해 사회를 운영하는 체제를 말한다. 거대하고 복잡한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 시민이 자신의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려면 언론이 제대로 기능해야 한다. 시민은 판단에 필요한 정보와 지식, 다양한 견해를 접하고 공론 과정을 통해 바람직한 여론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언론이다. 하지만 이런 언론의 이념형과 언론의 현실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특히 한국은 정치권력의 언론 장악 경험, 자본권력의 개입, 지나친 상업화 등으로 인해 언론 신뢰성이 낮아졌고 언론 혐오증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더군다나 새로운 플랫폼들로 소통의 중심축이 이동하면서, 경쟁력이 약해져 언론으로서 존립할 수 있는 기반마저 약화하고 있다. 시장에서 경쟁력이 약화하면, 사라지면 그만일까? 한편 언론의 약화에 비례해 새롭게 등장한 플랫폼들이 기존 언론에 요구됐던 사회적 기능을 대체하고 있을까? 매체의 관점이 아닌 민주주의 체제 유지 측면에서 보면 기존 언론이든 새로운 플랫폼이든 민주주의에 필요한 ‘언론’ 기능을 수행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이다. 기존 언론의 기능을 재강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플랫폼에서 공적 가치가 구현되도록 하려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그런 방법의 하나가 미디어 비평이다.
언론, 한국 사회 난제의 원인이자 해법
산업적 위기에 직면한 언론으로서는 매체가 생산한 콘텐츠의 질적 수준을 향상하고, 이를 통해 신뢰도를 회복하는 것이 시급하다. 미디어 간 상호 비평이 이에 기여할 수 있다. 매체 간 비평은 메기 효과와 같이 매체에 긴장감을 유발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매체 경쟁을 견인할 것이다. 또 비평을 통해 수용자의 인식 능력이 향상되고 수많은 매체 속에서 옥석 가르기가 가능해지면 제대로 된 언론의 콘텐츠 소비가 늘 것이고, 신뢰할 수 있는 콘텐츠의 시장 경쟁력 역시 올라갈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디어 비평은 언론의 자구적 노력의 일환일 수 있다. 하지만 더 본질적인 것은 지금 한국 사회에는 해결해야 할 사회적 난제가 존재하고 그 원인과 해법은 일정 부분 언론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한국이 직면한 난제 중에는 갈등의 극대화, 사회적 양극화가 있다. 한국 사회는 갈등이 갈수록 극심해지고 있다. 갈등은 어느 사회나 존재하지만 한국 사회는 갈등을 해소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이는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민주주의적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적 논의는 언론이 구축하는 공론장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언론을 통해서 일방적 정보가 아닌 비교 검토 가능한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언론은 외려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언론의 정파성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정보 유통의 중심축이 이동하면서 문제를 더욱 심화시켰다. 기존 언론의 수용 과정은 종합적이었다. 언론의 정파성과 별개로 언론이 제공하는 다양한 정보를 접하는 수용자는 종합적 인식을 형성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시민의 정보 수용 창구가 포털과 새로운 플랫폼으로 점차 이동하면서, 한국 사회는 종합적 정보와 지식, 숙의를 통해 해법을 찾기보다는 분절·파편화된 정보 소비에 탐닉하고 필터버블에 따라 확증편향이 심화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 결과 한국 사회의 양극화는 심각한 상황이다. 경제적 양극화도 문제지만 정치 양극화 등 사회 제반 분야의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 양극 사이에 소통 또는 인식의 단절이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체제가 유지되기 위한 공론장으로서 언론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는 것이 시급하다. 새로운 플랫폼에서도 공적 가치가 구현되는 공론장 기능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디어 비평은 이런 변화를 위한 초석이 될 수 있다.
활발했던 미디어 비평
개별 기사에서 신문과 방송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가 간헐적으로 있었지만 정기적으로 다른 신문 또는 방송을 본격적으로 비평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부터다. 한겨레를 시작으로 인쇄 매체들에서 미디어 비평 지면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2001년 MBC가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을 시작함으로써 방송에서도 미디어 비평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2003년에는 KBS가 <미디어 포커스>로, EBS가 <미디어 바로 보기>라는 프로그램으로 미디어 비평을 시작했다. 1990년대 말에서 2007년까지는 미디어 상호 비평이 활발했던 시기였다. 언론 개혁 화두가 언론계에 확산하면서 언론 개혁 필요성에 동의했던 일부 신문과 공영방송, 그리고 김대중 정부 시절 세무조사에 반발했던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을 중심으로 미디어 상호 비평이 활발해졌다(홍원식·김은정, 2013).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 이후에는 방송에서는 KBS에서만 <미디어 비평>을 거쳐 <미디어 인사이드>라는 이름으로 2016년까지 존속했을 뿐이다. 신문에서도 미디어 상호 비평은 이전만큼 활발하지 못했다. 방송에서 미디어 비평 명맥을 다시 이은 것은 2018년 시작한 KBS <저널리즘 토크쇼 J>다.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에 토크쇼 형식을 결합해 전문성과 재미를 살린 성공한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2020년 12월 종영하고, 2021년 4월부터 <질문하는 기자들 Q>를 통해 명맥을 잇고 있을 뿐이다.
물론 미디어오늘, 미디어스 같은 미디어 전문지가 존재하고, 일부 신문들에는 미디어 관련 칼럼들이 존재한다. 또 시민단체, 시민 모니터 활동도 비교적 활발하다. 시민들의 미디어 비평 활동은 언론이 추구해야 할 목표의 방향타 구실을 할 수 있다. 전문가의 칼럼은 언론 활동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점을 제시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더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고, 언론의 내밀한 취재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언론계 내부의 비평으로 미디어 비평이 보완돼야 한다. 언론은 충분한 취재를 통해 진실에 기반을 두고 사건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즉 보도의 단순 비판을 넘어 수용자가 진실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이런 언론의 미디어 비평이 꼭 필요하다.
그런데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활발했던 미디어 상호 비평이 줄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당시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들이 정파적이었다고 비판한다(김세은, 2014). 미디어 비평은 ‘자성-비평-옴부즈맨-객관적 비평’과 같은 순기능적인 모습도 있지만 ‘선전-공격-PR-도구적 비평’의 역기능적 모습을 보일 수도 있는데(최영재, 2004), 2000년대 미디어 비평은 도구적 비평의 성격이 더 크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라는 것이다(남재일, 2005). 당시 미디어 비평이 실제 도구적 비평에 가까웠는지, 또 모든 매체의 기사나 비평이 그랬는지는 좀 더 세밀하게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다만 당시 미디어 비평을 보는 인식이 그랬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또 타 매체를 비평하는 것은 담당 기자나 PD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었고, KBS에서 했던 것처럼 자사 보도를 비판하는 것은 더욱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미디어 기사 지면이나 프로그램은 일반인에게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고 사명감을 지녔던 일부 기자, PD를 제외하고는 선호하지 않는 것이었다. 따라서 미디어 비평을 지속하는 것이 언론 매체로서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정파성 극복과 전문성 강화 필요
전술한 대로 매체 산업의 관점에서든 민주주의 체제 유지 관점에서든 미디어 비평의 재활성화는 매우 필요하다. 그렇다면 정파적이거나 도구적이지 않은, 그래서 사회 기여적인 미디어 비평은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 활발했던 미디어 비평의 감소를 초래한 원인 제거부터 시작해야 한다. 즉 정파적이라는 외부의 왜곡된 인식을 벗어나서 매체 발전에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편 손석춘(2020)은 최근 들어 미디어 비평 활성화에 또 다른 난관이 있음을 제기한다. 정파적 성격의 시민들이 행하는 ‘비평’ 행위가 미디어 비평이 정파적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정파적 비평 행위에 언론인들이 조응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비평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라는 우려다. 또 김세은(2014)은 미디어 전·현직 담당 기자들 조사 결과 각이 서지 않는 미디어 기사의 특성, 어려운 기사를 기피하는 수용자, 기자들의 엘리트주의와 보호 본능 등이 미디어 비평 활성화 이전에 풀어야 하는 과제임을 주장했다.
미디어 비평이 나아갈 길은 과제로부터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정파성 또는 정파성으로 비치는 인식의 극복이 급선무다. 극복의 길은 언론이 일반적으로 지켜야 할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 있다. 미디어 비평의 기준은 정파적 유불리의 문제가 아니라, 저널리즘 원칙의 준수 여부여야 한다. 그 첫째는 진실이다. 언론의 첫 번째 존재 이유가 진실의 전달이고 비평의 출발점 역시 진실을 전달하는지를 따지는 데 있다. 진실은 사실과 다르고, 진실은 단편적이지 않고 복합적이며, 맥락 속에서 구성되는 것이다. 미디어 비평은 비평의 대상인 기사 또는 프로그램, 즉 콘텐츠가 진실을 전달하고 있는가를 따져야 한다. 이를 위해 미디어 비평은 비평 이전에 취재를 통해 진실을 확인하려는 노력을 우선해야 한다. 두 번째는 공정성이다. 공정성은 편파적이지 않은 올바름을 의미한다. 특정 집단에 유불리를 따져 잣대가 달라져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공정이 기계론적, 절차적 공정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모두가 주인임을 의미하며, 주인인 시민이 평등하게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기계적, 절차적 공정성에 빠져 사회적 불평등에 눈을 감는 것은 올바름이 아니다. 세 번째는 해법의 추구다. 미디어 비평은 정파적 적대 관계에 있는 또는 시장에서 경쟁 관계에 있는 매체를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다. 더 나은 언론 행위를 끌어내기 위한 운동의 성격이 있다. 따라서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넘어 바람직한 기준과 행위를 제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저널리즘 원칙이 이 세 가지만은 아닐 것이다. 다양한 저널리즘 원칙들을 적용해 상대에 따라 잣대가 달라지는 정파성의 함정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기본이 전문성의 강화다. 미디어 비평을 하는 기자나 PD가 자신의 경험과 상식이 아니라 전문성에 근거해 비평해야 한다. 전문가나 기자를 짧은 인터뷰 대상으로 한정하지 아니하고 심도 있는 토론의 장에 초대한 <저널리즘 토크쇼 J>는 그런 점에서 진일보한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 미디어 비평은 일반 시민과 상호작용하는 것이어야 한다. 미디어 비평은 전문가의 평가 작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비평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내용을 이해하고, 옥석 가르기부터 언론의 변화를 요구하는 행동에 이르기까지 수용자의 변화를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시민과 유리된 엘리티즘(elitism)에 빠지지 말고 시민의 눈높이로 다가가야 한다. 이는 전문성의 강화와 관점의 전환을 의미한다. 전문성은 일차적으로 정확한 이해에 기반을 둔 저널리즘 원칙 적용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일반 시민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전달하는 능력을 포함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지식은 정확히 이해할수록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전문성의 또 다른 측면이다. 더불어 비평의 대상과 목적은 시민의 관심과 필요성을 반영해야 한다. 가르치려 드는 엘리티즘에 빠져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 주권자 시민이 갖춰야 할 시민의 능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언론은 대부분이 중산층 이상인 ‘언론인’의 관심사가 아닌 사회의 다수를 구성하는 ‘시민’의 의제를 다루려 노력해야 한다. 미디어 비평의 의제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언론은 소외된 약자에 더 집중해야 한다.
새로운 플랫폼도 공적 가치 구현의 대상
미디어 비평이 마지막으로 더 고민해야 할 지점은 비평의 대상이다. 간헐적으로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과 그 현상들이 미디어 비평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작금의 미디어 비평은 신문, 방송 같은 기존 미디어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시민의 소통 중심축이 이동하는 현상을 도외시할 수 없다. 기존 언론들이 매서운 비판에 직면해 있지만, 기존 언론에서는 지켜야 할 원칙이나 이념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새로운 플랫폼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영역이고 규제 밖에 존재한다. 공정 거래 차원에서 뒷광고가 문제가 된 적이 있지만 새로운 플랫폼에서 생산·유통되는 콘텐츠들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 질적 수준 등은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공적 관심의 영역에서 제외돼 있다. 다양한 생산자가 자유롭게 다양한 내용을 생산하는 새로운 플랫폼의 장점이 존재하고 그것이 자유로운 플랫폼 환경에서 비롯되는 측면은 있다. 하지만 거짓 정보, 사기성 정보, 선동적 정보, 선정적 정보 등이 무작위로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방치해도 좋은가? 더군다나 시민들은 기존 매체보다 점점 새로운 플랫폼에 의존해 정보를 획득하는데, 거짓 정보 등에 의존해 내린 판단과 그에 따라 행동하는 시민의 존재가 민주주의를 파괴할 것이라는 우려를 하지 않아도 될까? 이미 수없이 지적된 플랫폼의 알고리즘으로 인한 토끼굴 현상, 필터버블, 확증편향 등을 이대로 방치해도 좋을 것인가? 사기성 광고, 선정적 광고는 방치해도 좋을까? 다양성을 표방한 새로운 플랫폼에서 더욱 획일화되는 이용자의 경향은 비판의 대상이 아닐까? 사실 비평의 소재는 많다. 문제는 새로운 플랫폼에서 공적 가치의 구현이라는 개념이 플랫폼의 속성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인식에 있다. 하지만 공적 가치는 별개의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시민의 삶 곳곳에 걸쳐 있는 문제이고, 새로운 플랫폼도 예외는 아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새로운 플랫폼도 공적 가치의 고려가 필요한 영역이라는 인식으로의 전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