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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비중 5% 이상이 되면 ‘다문화 사회’라 불린다. 2008년 이 비율을 넘긴 경기 안산은 한국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다. 이주민을 낯선 이방인이 아닌 ‘우리’로 받아들이자는 취지로 안산 거주 이주민의 생활을 담아낸 동아일보 <공존: 그들과 우리가 되려면>의 취재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후덥지근해 웃옷을 펄럭거려야 하는 날씨였다. 지난해 9월 초 어느 금요일,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 4기 취재팀 4명은 경기 안산시 원곡동에 있었다.
멀리서 보면 여느 동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골목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가자 금세 뭔가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가게에 들어가면 주인들이 얼굴을 유심히 보다 “한국인이죠?”라고 물었다. 읽을 수 없는 글자로 적힌 간판이 즐비했다. 은행에는 중국어로 된 안내문이 있었다. 흔한 프랜차이즈 카페 하나 찾기 어려웠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았던 ‘이주민과의 공존’이라는 주제가 처음으로 피부에 와 닿았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 4기 팀의 <공존: 그들과 우리가 되려면> 시리즈가 본격적인 취재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데드라인 없는 무제한의 자유
히어로콘텐츠팀은 2020년 동아일보 100주년을 맞아 차별화된 콘텐츠를 선보이기 위해 꾸린 일종의 ‘뉴스 실험 조직’이다. 2020년 5월 1기 팀이 출범해 <증발: 사라진 사람들>과 <낙인> 시리즈를 선보였다. 이후 2기 <환생: 삶을 나눈 사람들>, 3기 <99℃: 한국산 아이돌>이 3~5개월의 간격을 두고 보도됐다.
목표는 크게 두 가지다. 출입처 중심의 일간지에서는 쉽게 하기 힘들었던 아주 깊이 있는 취재를 하는 것. 그리고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독자들이 더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팀에 소속된 기자들에게는 아무 제한 없는 완전한 자유가 주어진다. 어떤 주제, 대상이라도 취재할 수 있다. 데드라인에서도 자유롭다. 언뜻 들으면 신나고 즐거운 이야기다.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시험대에 오르는 일이기도 하다. 그만큼 완성도가 높은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히어로콘텐츠 4기 팀은 지난해 8월 셋째 주에 꾸려졌다. 4기는 이전 팀과 다른 점이 있었다. 3기까지는 팀을 꾸린 뒤 팀원들이 자유롭게 주제를 제시해 그중 아이템을 선택했다. 이번엔 동아일보 편집국 기자들을 대상으로 히어로콘텐츠 주제를 공모했다. 최종 선택된 것이 인구 감소 현상과 엮어 안산의 이주민들을 들여다보겠다는 남건우 기자의 아이템이었다. 남 기자는 자연스럽게 히어로콘텐츠팀의 4기 멤버가 됐다.
비록 사전에 선정된 아이템이 있었지만 4기 취재팀은 히어로콘텐츠팀의 취지를 살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원점에서부터 새로 아이템을 검토했다. 인구 감소에 대한 논의도 했지만 한반도 기후변화나 한국인의 종교 같은 전혀 다른 주제도 이야기했다. 책을 읽고, 논문을 검색하고, 다큐멘터리를 보고…. 그리고 모여서 난상토론을 벌였다.
아이템 탐색 단계에서 현장을 가보기도 했다. 정말 아이템으로 선정할 만한가를 보기 위해 소멸 위기 지역으로 꼽혔던 경북 의성과 지방 대도시인 대구 등을 취재했다. 인구 감소라는 주제가 사전에 던져졌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때 취재팀이 가장 많이 했던 말 중 하나가 바로 “우리는 실패할 시간이 있다”였다. ‘데드라인이 없다’는 히어로콘텐츠팀의 특징 덕분에 아이템에 대한 확신을 갖기 위해 조금 돌아가더라도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해볼 수 있었다.
안산 주민과 이주민의 공존
3주에 가까운 탐색 기간을 거친 지난해 9월 초, 최종적으로 남은 아이템은 역시 안산 이주민 콘텐츠였다.
안산과 이주민으로 윤곽을 좁히자 다시 한번 고비가 왔다. 해외동포,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 등 신분이나 직업에 따라, 혹은 출신 국가와 연령에 따라 이주민들이 겪는 문제가 서로 달랐다. 이들이 겪는 문제의 범위도 주거, 교육, 노동 등 매우 넓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취재해 기사에 무엇을 담을지 결정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원래 취재팀은 한 가족의 이야기로 전체 시리즈를 구성하려 했다. 펄 벅의 《대지》나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생각했다. 독자들이 소설 읽듯 다음 회를 기다리도록 하고 싶었다. 하지만 취재를 진행하며 서로 다른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한 가족 안에 녹여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신 ‘공존’ 시리즈는 이주민들의 삶을 생애주기별로 보여주기로 했다.
1회는 전교생 중 한국인(할아버지 때부터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국인)이 단 6명뿐인 안산원곡초를 통해 한국의 공존 현실을 담았다. 2회는 안산원곡초 아이들의 출발점을 보여주기 위해 미등록 이주아동인 조나단(가명)을 앞세웠다. 어린이집조차 가기 어려운 이주 아동의 입학 전 보육 문제를 다루면서, 동시에 왜 안산이 외국인들의 제2의 고향이 됐는지를 보여줬다.
3회는 안산원곡초 아이들이 자란 뒤의 모습, 즉 청소년이 된 이주아동의 진로 문제를 다뤘다. 여기에 더해 이주민들이 계층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고, 이 과정이 얼마나 지난한지를 담았다. 4회는 이주민 2, 3세들이 성년이 돼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회차였다.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는 이주민과의 공존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다.
각오를 하고 시작한 취재였지만 예상보다 더 어려웠다. 얼굴과 이름을 드러내고 개인사까지 털어놓을 취재원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취재팀은 거의 매일 안산을 오가며 학교, 파출소, 동사무소, 식당, 이주민 단체, 공공기관 등 가볼 수 있는 곳은 모두 다녔다. 4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100여 명과 마주 앉아 인터뷰를 했다.
이주민으로서 한국에서 사는 것이 어떤 의미냐는 질문은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과의 만남이 모두 소중하고 또 어려웠다. 세 번째, 네 번째 만나서야 생각하던 핵심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취재팀 김재희 기자는 “기사 취지에 공감한 취재원들의 순수한 호의에 기대는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김재희, 남건우 기자 외에도 현장 취재 전반을 담당한 신희철 기자, 사진 취재를 전담한 송은석 기자는 안산에서 포항까지 전국을 누벼야 했다.
코로나19도 장벽이었다. 1회에 등장한 안산원곡초가 대표적이다. 몇 주에 걸친 협의와 사전 취재 끝에 겨우 현장 취재 기회를 잡았지만 코로나19 확산세에 따라 일정이 요동쳤다. 기사 취지에 공감한 학교 측이 양해해주지 않았다면 중도에 취재가 무산됐을 것이다. 미성년자 취재가 많았던 만큼 취재 전부터 취재원 본인은 물론 학부모와 선생님 등 보호자들의 동의를 받고 취재 내용을 공유하는 데도 시간을 들였다.
인터랙티브 그래픽부터 영상까지
독자에게 읽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또 다른 목표였던 만큼, 히어로콘텐츠 4기 팀은 취재 초반부터 디지털 페이지를 별도로 기획했다. 기사와 디지털 페이지가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디지털 페이지 기획을 총괄한 위은지 기자를 포함해 개발자들과 취재 초반부터 제작 회의를 하며 소통했다.
‘공존’ 시리즈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핵심 중 하나는 전체 회차를 총괄하는 예고편 성격인 인트로 페이지1)를 별도로 제작했다는 점이다. 전체 회차를 하나로 묶고, 다른 회차를 독자들이 연속해 읽도록 유인하기 위해 위은지 기자가 낸 아이디어였다.

인트로 페이지에는 여러 가지 기술이 활용됐다.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개발자)가 안산에서 전국으로 넓어지며 이미 다문화사회로 접어든 다른 지역을 표시하는 지도 형태의 인터랙티브 그래픽을 제작했다. 안산 상공에서 촬영한 드론 영상, 안산 거리를 스케치한 영상도 넣었다.
영상 촬영은 취재팀의 또 다른 도전이었다. 취재팀은 취재 초반부터 되도록이면 실명과 얼굴을 공개할 수 있는 취재원을 찾으려 했다. 이주민들이 우리 이웃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이 피부로 느끼도록 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어렵게 섭외한 취재원을 사진과 글로만 담기엔 아까웠다. 영상까지 활용한다면 현장감과 몰입도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남건우 기자가 자원해 취재 기간 내내 영상 촬영을 병행했다. 회사에서도 카메라와 캠코더, 마이크 등 장비를 구매하도록 지원해줬다. 촬영도 촬영이지만 글과 사진 중심인 기사 속에 영상을 어떻게 삽입할지도 중요했다. 결정적인 순간을 영상에 담아내면서도, 자연스럽게 글과 연결해 볼 수 있도록 수없이 영상을 다시 편집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채널A 소속 ‘1theC스쿼드’(현재 동아일보 소속 ‘디지털콜라팀’)에서 여러 조언을 주며 영상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을 줬다. 보도 직전 공개된 티저 영상은 디지털뉴스팀에서 맡아 편집했다. 말 그대로 동아일보를 넘어 동아미디어 그룹 전체의 역량이 투입된 셈이다.
지면 역시 보도 약 3주 전부터 편집을 담당한 한우신 기자와 협의를 시작했다. 가장 강렬해야 할 1회 1면 구성이 관건이었다. 수많은 아이디어가 오갔지만 최종적으로 기자들이 취재한 이주민들의 얼굴 사진으로 구성한 액자 모양의 그래픽이 선택됐다. ‘그들과 우리가 되려 ’이라는 부제와 가장 잘 어울리면서 수십 명을 취재한 4기 팀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긴, 김충민 뉴스디자인팀 기자의 손에서 탄생한 작품이었다.
취재만큼 오랜 시간이 걸린 작업이 바로 기사 작성과 데스킹이었다. 온라인 버전의 경우 △기자가 디지털 페이지 콘티 초안을 작성 △기획자인 위은지 기자와 상의해 초안 수정 △수정된 초안을 데스크를 맡은 조은아 차장과 상의해 확정 △위은지 기자가 초안을 바탕으로 디지털 페이지 기획안 작성 △기획안에 맞춰 기사 작성 △최종 기사 데스킹 및 확정이라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했다.
지면 기사는 구현 방식도, 기사 양도 다른 만큼 사실상 새로 썼다. 회차마다 기사를 두 번 이상 쓴 셈이다.
히어로콘텐츠팀은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취재 단계에서 데스크가 최대한 개입하지 않고, 기사 데스킹에만 관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기사를 쓰며 완성도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취재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제3의 관점, 데스크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느꼈다.
온라인 공론장 이끌어낸 공존 시리즈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닿은 끝에 올해 1월 17일 ‘공존’ 시리즈의 첫 회가 보도됐다. 사실 취재 도중에는 공감하기 쉽지 않은 이주민 이야기라는 점에서 독자들이 무관심할까 불안할 때도 있었다. 내국인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리즈인 만큼 많이 읽히길 바랐다.

걱정과 달리 반응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온라인 기사에 수천 건의 댓글이 달리고, 페이스북 등에서 댓글로 토론이 벌어지는 등 말 그대로 ‘온라인 공론장’이 열렸다. 해외에서 살고 있거나 살았던 경험이 있는 독자들은 “나 역시 그들(이주민)이다”라며 해외 경험을 바탕으로 이주 정책 대안을 적극적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물론 “내국인이 우선이어야 한다”는 댓글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반응 자체가 한국의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주민과 이주 정책의 중요성을 환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본보 보도 직후 법무부가 조나단 같은 미등록 이주아동의 체류 자격 부여 요건을 완화한 것도 소중한 성과였다.
‘요즘 기자’라면 ‘이 기사 누가 읽지?’라는 자조 섞인 질문을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보도 이후의 반향에서 독자들이 기사를 정말로 꼼꼼히 읽고 있다는 점을 새삼 느꼈다. 한 독자는 미등록 이주아동을 다룬 2회 기사의 디지털 페이지 영상을 언급하며 “영상을 보며 아이가 어린이집을 제때 다니지 못해 한국어가 서툴다는 점을 피부로 느낄 수 있어 좋았다”고 의견을 보냈다. 이렇게 기자들이 고심하고 공을 들인 부분을 독자들이 정확히 짚어낸다는 사실을 여러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동아일보는 지금 히어로콘텐츠 5기 팀을 준비하고 있다. 4기 팀을 이끌며 1~3기에서 쌓아온 유형, 무형의 노하우가 고맙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영상 삽입, 인터랙티브 그래픽, 사진 활용 모두 지난 팀이 해놓은 것이 있었기에 조금 더 발전할 수 있었다. 주제 선정이나 취재 역시 지난 팀의 궤적을 따르며 조금씩 다른 방식을 시도해볼 수 있었다. 이번 취재 후기를 통해 이런 경험이 조금이나마 더 많은 동료들에게 알려지길, 그를 통해 좀 더 많은 독자들이 알아보는 기사가 세상에 나오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