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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현장] 사라진 방송사의 특집 특수
미디어현장 | 등록일 : 2022-03-25

 

명절이나 연말연시를 겨냥한 특집 프로그램은 방송사의 호재였다. 일회성이라는 특징과 소재의 신선함을 무기로 다양한 특집 프로그램이 사랑받아왔다. 그러나 시청 형태가 변화하며 과거와 같은 영광을 누리기는 어려워졌다. 특집 프로그램의 흥망성쇠를 톺아본다. 편집자 주

 

 

가족 중심 문화에서 활발했던 특집 방송

 

방송가에서 어느샌가 특집물은 계륵이 됐다. 안 할 수도 없고, 해도 화제가 되지 않으니 힘들게 제작을 해도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한동안 연말 특집이나 명절 특집은 나름의 문화 소산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고 크게 이바지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일단 매스미디어의 영향이 클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미디어 환경이 분화되지 않았고, 문화적 향유의 수단이 제한돼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방송 시청과 가족주의는 밀접하게 연관돼있기 때문이었다. 가족 구성원이 많을수록 같이 텔레비전을 볼 가능성이 높아서 텔레비전 시청 효과는 더욱 컸다.

 

방송사의 연말이나 명절 특집 프로그램은 가족문화 때문에 생성되고 발전, 진화됐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특히 연말연시에는 온 가족이 집 안에 있기 마련이고 집안에서 가족이 함께 텔레비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명절에도 온 가족이 실내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하며 시간을 보내거나 담소를 나눌 여지가 커진다.

 

그래서 특집물의 구성을 보면 연말 특집과 명절 특집은 어린이들에게는 만화영화를 편성하고 한 해 동안 방영된 인기 작품의 편집구성이 제작되는가 하면 극장 화제작의 판권을 사들여 편성하기도 했다. 여기에 연예인들이 팀을 나눠서 벌이는 스포츠·게임 프로그램이 제작되기도 했다. 연말에는 가요, 드라마 등의 연말 시상식이 특집으로 편성되기도 한다. 최고의 스타들이 무대를 꾸며주기 때문에 이러한 점은 팬들에게도 브라운관 앞에서 본방송을 사수해야 할 명분과 실리를 제공했다.

 

만화영화나 특집 영화들은 기존 방영분을 재탕하는 때도 있었지만 나름 비싼 판권을 주고 구입하는 경우 타 방송사보다 우위에서 홍보 효과를 누리기도 했다. 최신 대작 영화를 구입할수록 타 방송사보다 잘 나간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만화영화를 아예 자체 제작하는 흐름이 있었던 이유기도 하다. 스타들이 스포츠나 게임에 참여하는 것은 나름의 기획과 자본의 투입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방송사의 영향력을 생각할 수가 있었다. <아이돌 육상 선수권 대회> 같은 프로그램이 나름 그 계보를 잇는 것에서 그 영향력을 가늠할 수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프로그램이 더는 화제나 시선을 끌지 못하고 있다.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는 프로그램들만이 선방한다. 내부적인 원인과 외부적인 원인이 함께 작용했다.

 

미디어 발전에 따른 이용 행태 변화

 

가족주의가 느슨해지거나 해체되는 현상이 작동하고 있다. 개인이 모바일로 미디어를 소비하는 환경이 됐고, 1인 가구가 대세가 됐다. 언론에서 1인 가구의 증가에 따른 새로운 트렌드들을 앞다퉈 보도한 지도 꽤 됐다. 기업들은 ‘솔로 이코노미’나 ‘싱글 이코노미’라는 개념에 바탕을 두고 마케팅을 한 지 오래다. 물론 자발적인 1인 가구보다는 그렇지 않은 1인 가구가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인 1인 가구의 등장은 미디어 소비 현상을 변화시켰다. 젊은 세대들은 더 이상 자신의 거주 공간에 텔레비전을 필수 가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1인 가구 현상은 단지 가족의 형태만이 아니라 콘텐츠의 소비에서도 개인화가 심화했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다.

 

설령 집안에 가족 구성원이 모여 있어도 각자 자신의 퍼스널 미디어로 콘텐츠를 소비한다. 따라서 예전처럼 텔레비전 앞에서 프로그램을 기다리는 아이들이나 청소년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젊은 세대들은 아예 텔레비전이라는 미디어 매체와 거리를 두고 있다. 텔레비전보다 오히려 유튜브가 무서운 미디어 환경이 됐다. 어린이들도 텔레비전을 본다면 방송사의 프로그램보다는 IPTV를 시청할 가능성이 큰데, 이것으로도 유튜브 등 SNS 플랫폼의 유혹을 벗어나기 힘들다.

 

이는 비단 젊은 세대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전반적으로 갈수록 텔레비전 시청은 줄고 있다. 연말이나 명절에도 시청하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오래됐다. 시청률 조사 기업 TNS미디어코리아가 2005년 설 연휴(2월 8~10일)부터 2006년 추석 연휴(10월 5~8일)까지 2년간 가구당 설, 추석 연휴 기간의 TV 시청 행태를 조사한 결과 시청 시간이 명절 연휴로 갈수록 감소했다. 이렇게 감소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가족 여가 문화의 변화가 작동하고 있다.

 

이제 연말이나 명절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가족 여가 문화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이 때문에 실내에서 텔레비전을 보기보다는 야외로 나서는 경우가 일반화됐다. 단순히 야외 나들이 정도가 아니라 먼 여행지에 숙박 시설을 예약하고 온전히 휴식을 취하려고 한다. 또한, 여행지에 나가지 않는다고 해도 도심에서 호캉스를 즐기기도 한다. 특히 코로나19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더욱더 이러한 양태가 강화됐다.

 

아울러 한류의 힘과 K-콘텐츠의 세계적 위상 확립은 이런 연말 특집이나 명절 특집의 콘텐츠의 매력도 자체에 영향을 줬다. 즉, 한류의 힘은 방송사의 권위에 대한 이반을 낳았다. 이 때문에 방송 콘텐츠가 가진 셀럽의 효과를 떨어뜨렸다. 예전에 인기 최고의 스타들이 구르고 굴욕을 당하기도 하면서 스포츠나 게임에 참여한 것은 지상파 방송사의 위력 때문이었다. 물론 여전히 그 힘은 있다. 특히 연예계 지망생이나 신인 연예인, 그리고 중장년 스타들에게는 여전히 그 영향력이 남아 있다. 하지만 가장 화젯거리인 스타들은 텔레비전 출연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연말에 바쁜 일정을 놔두고 방송 일정을 우선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세계적인 한류 스타로 발돋움한 상황이라면 더욱 해외 일정이 중요하다. 단지 국내 팬들을 도외시한다고만 말할 수 없다. 가수의 경우를 보면, 해외에서는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나 연말 시상식이 없다. 특히 영미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방송 포맷이라고 할 수 있다. 단지 한국에서는 방송의 영향력이 막강하므로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출연했던 시기가 있었던 것일 뿐이다. 저렴한 출연료에 마음대로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이 국제표준에 맞지 않았다. 요컨대 연말과 명절의 화젯거리인 주인공들은 예전처럼 분골쇄신할 이유가 없어졌고, 한류 스타들이 아무 때나 브라운관에 나타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세계적으로 화젯거리인 셀럽들의 출연은 기대할 수 없으므로 더이상은 힙한 특집이 되지 않고 만다. 이는 거꾸로 그동안 지상파 방송사가 엄청난 특권적 혜택을 입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지금은 그것이 해체되고 있는 것이다.

 

방송이 스타의 면모를 영상으로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던 때가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와 셀럽들을 접할 수 있는 통로는 이미 다양하게 서비스되고 있다. 예를 들어 팬 커뮤니티 플랫폼에서는 일대일로 자신이 좋아하는 ‘최애’ 스타와 채팅을 할 기회도 주어진다. 일부 팬 커뮤니티 플랫폼에서는 메타버스 공간을 통해서 상호소통의 기회도 주고 있다. 팬들은 단순히 방송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제공 당하고 소비하는 매스미디어 시대의 수동적인 수용자로 남아 있지 않다.

 

거꾸로 시청률 때문에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기도 한다. 시청률이 하락하면서 텔레비전에 익숙한 세대의 문화적 취향에 쏠리는 현상 때문이다. 물론 새로운 기획을 시대 변화에 맞게 시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세대를 위한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해도 결국 실패하기 때문에 익숙한 기획과 콘텐츠 제작의 관성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렇게 되면 더욱 새로운 세대들은 텔레비전을 볼 이유가 없어진다. 이럴 때 지칭하지 않으려 해도 레거시 미디어라는 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훈아, 심수봉, 송해 특집 관련 프로그램은 전 세대 관점에서 보면 화제성이 있는 건 아닐 수 있다. 임영웅 특집 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한때는 연말이나 명절 특집의 대안으로 새로운 파일럿 프로그램들을 선보였다. 파일럿 프로그램의 가치와 의미는 명확하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도할 수 있다. 참신하고 실험적인 프로그램을 제작해볼 수 있다.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을 수 있다. 상대적으로 위험부담이 덜할 수 있다. 일단 정규 편성에 들어갔을 때의 실패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시청자들이 주목하는 프로그램을 발굴할 수 있다. 시청자의 반응을 고려해 이후 정규 편성을 고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한계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주목을 받았던 예능 <무한도전>조차도 자리를 잡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중간에 포맷이나 콘셉트 자체가 많이 바뀌었다. 장수 음악 프로그램인 <불후의 명곡>도 다른 방송사의 작품을 베낀 혐의를 받았지만,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 오늘날 포맷과 내용으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방송 프로그램은 어린 묘목처럼 심은 자리에 뿌리를 뻗고 잎을 피우려면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방송 환경은 이것을 기다려줄 수 있는 여력이 없는 모양이다. 사실상 알묘조장(揠苗助長) 할수록 나무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자리를 잡지도 못한다.

 

TV와는 다른 플랫폼의 공식

 

반면 넷플릭스를 포함한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은 명절이나 연말에 맞춰서 오리지널 시리즈를 선보이면서 화제를 불러 모아왔다. 넷플릭스의 첫 정체성은 콘텐츠 대여점이었다는 점에서 왜 그들이 오리지널 시리즈에 집중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고 이는 지상파 방송사 등에 주는 함의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상파 방송사 등의 연말·명절 특집 만화영화나 특집 영화는 자체 제작이 아니라 이미 다른 곳에서 선보인 콘텐츠다. 이미 극장에서만이 아니라 IPTV는 물론이고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에서도 선택할 수 있는 콘텐츠들이었다. 그러므로 애써 텔레비전에서 재방, 삼방 사골 우려내는 듯 반복하는 콘텐츠를 본방송으로 시청할 이유가 없다. 물론 미처 이런 영화를 보지 않은 시청자들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시청자들은 적극적으로 입소문을 내고 능동적·자율적 홍보를 하는 얼리 어답터도 아니다. 또한,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에서는 단지 특집극 형식이 아니라 완전한 스토리 라인을 갖춘 콘텐츠를 제공한다. 더구나 한 번에 시리즈 전체를 공개하므로 온전히 콘텐츠를 소비하려는 욕구가 충만한 수용자들이 감상 삼매경에 빠진다. 이런 정주행 문화는 가볍고 짧은 콘텐츠만 좋아한다는 디지털 콘텐츠 이용 방식에 대한 분석이 편견이라는 점을 밝혀준 지 오래다. 젊은 세대일지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나 스토리텔링일 경우에는 깊이 몰입한다. 그것이 연말과 명절 연휴에 빈번하게 발생하는 정주행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정주행 문화를 반영한 콘텐츠는 오히려 방송 프로그램에는 없다. 한없이 가볍고 짧아져야 한다는 스낵컬처에 관한 강박 심리가 생겨 있을 뿐이다. 웹 예능 방식의 포맷이 시대적 대세라며 시도해도 호응을 얻어내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설령 인터넷에서 웹 예능 방식이 대세라고 해도 그것이 방송 프로그램에 적용됐을 때 유입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다른 범주의 문제이다. 텔레비전은 텔레비전이기 때문이다.

 

한편, <오징어 게임>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많은 제작비를 주지 않고 저렴한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꾀하려고 하던 제작 방송 관행이 이러한 시청자의 외면을 불러일으킨 배경 요인이다. 사전 제작비 등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서 방송 프로그램의 퀄리티를 끌어올렸다면 반응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연말이나 명절 특집의 경우에는 그러한 자율적이고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야 특집이라는 이름이 어울릴만하다.

 

파일럿 프로그램은 시범적으로 만들어 반응을 떠보는 경향이 강한데, 이 역시 한 번에 대박을 터트릴 수 있는 방송 프로그램을 찾는 관성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파일럿 프로그램 역시 대부분 될 만한 방송 포맷이나 콘텐츠의 범주에 있게 되고,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이 된다. 물론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과 방송사를 기계적으로 비교하는 것도 위험하다. 적어도 구분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넷플릭스에서 선택하는 기획안은 적어도 10%의 확실한 니즈가 있는 장르나 소재에 기반한다. 이는 더 많은 시청자가 볼 수 있는 기획안을 찾는 방송국과 다른 선택 패턴이다. 손안에 많은 물고기를 잡으려다가 물고기 전부를 잡지 못하는 형국은 여전한 것이다.

 

이제 우리 방송은 좁은 우물에서 왕 노릇 하던 시대를 벗어나야 한다. 저렴하게 가용자원을 이용하여 시청자의 눈길을 잡고 광고 수익을 통해 유지하던 상황에서 탈피해야 한다. 제대로 비용을 지급하고, 얻은 이익을 나누며 글로벌 디지털 환경에 맞게 협업해야 한다.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과 협업이 많아지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방송제도의 변화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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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 김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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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 : 2022-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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