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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위원회는 방송에 대한 시청자의 직접 참여와 권익 보호를 위한 법정 기구다. 유사 사례를 찾기 어려운 한국만의 제도인 시청자위원회가 과연 소임과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그 현황과 문제점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시청자위원회가 있기까지
시청자위원회의 전신은 1987년에 제정된 방송법에 따라 설치·운영된 방송자문위원회다. 자문위원회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시청자에 관한 문제보다는 방송 순서 즉, 프로그램 편성에 대한 이슈를 심의하고 그 결과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었다. 따라서 전문적인 학식과 경험을 갖춘 사람들이 자문위원으로 위촉됐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시청자위원회라는 명칭은 1990년 8월에 개정된 방송법에서 처음 사용됐다. 이때부터 시청자위원은 학식과 경험이 아니라 시청자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인지가 중요한 요건이 됐다. 2000년 통합 방송법 제정과 함께 시청자 권익이 더 강화됐고 이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시청자위원회의 위상도 함께 높아졌다.
이러한 시청자위원회는 시청자가 방송사와 소통하고 방송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로 규정하는 제도로서의 의미가 있다. 즉, 시청자가 자유롭게 방송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며 스스로 주권을 찾고 권익을 보호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법적 장치다. 해외에서는 유사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만의 유일한 제도기도 하다. 시청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창구로서 법정 기구 지위를 부여받은 시청자위원회가 그 소임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방송법(제87조)은 종합편성 방송사업자, 보도전문편성 방송사업자, 상품소개와 판매에 관한 전문편성을 행하는 방송사업자에게 10~15인 이내로 시청자위원회를 구성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현재 지상파 3개, 지역 MBC 계열사 16개, 지역 민영방송 10개, 종합편성채널 4개, DMB 3개, 종합편성 라디오 3개, 홈쇼핑 방송사업자 12개 등 54개 방송사에서 650명 안팎의 시청자 위원이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방송사업자의 등장과 함께 시청자위원회는 양적으로 증가했지만, 질적인 발전이 함께 이뤄졌는지는 의문이다.
또한 방송법(제88조)은 시청자위원회의 권한과 직무를 △방송편성에 관한 의견 제시 또는 시정요구 △방송사업자의 자체 심의규정 및 방송 프로그램 내용에 관한 의견 제시 또는 시정요구 △시청자평가원의 선임 △기타 시청자의 권익 보호와 침해구제에 관한 업무로 명시하고 있다. 이 내용은 2000년 통합방송법에서 만들어졌는데 해석과 적용 범위가 모호하다 보니 여러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시청자위원은 이 권한과 직무가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시청자 주권과 권익 측면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활용돼야 하는지 숙지하고 이를 실천에 옮겨야 할 의무가 있다. 시청자 위원은 명예나 대접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시청자를 대변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자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시청자위원회의 운영과 역할, 방송사의 시청자 위원 선임 과정, 방송사와의 관계 설정, 위원회에 대한 방송사의 인식 등 많은 문제점이 지적됐다.
비판적 평가 많았던 시청자위원회
시청자위원회의 역할에 대해서는 학계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제기된 비판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시청자위원회 운영의 구조적 측면과 관련된 평가가 가장 자주 언급된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시청자위원회는 위원들이 그달에 방송된 프로그램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고, 이에 대해 방송사가 응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어 각 방송사가 회의 내용과 의견에 대한 처리 결과를 자사 홈페이지에 공개하며 방송통신위원회에 보고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회의 시간은 통상 두 시간 정도인데, 위원 한 사람당 발언 시간이 5분 남짓 주어진다. 준비해온 의견서를 읽고, 방송사 담당자의 모범 답안을 듣기에도 빠듯한 시간이다. 때로는 시간 제약으로 인해 의견 발표를 포기하는 일도 발생하며, 심각한 사안임에도 피상적이거나 형식적 수준으로 언급되는 경우도 많다. 방송사별로 다소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 시청자위원회의 현실이다.
방송사에서 공개하는 회의록을 분석해보면, 시청자위원들이 제기하는 의견은 대부분 방송 프로그램 관련 내용에 국한돼 있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편성 전반이나 시청자 복지, 서비스 정책, 시청자 권익 증진에 필요한 사안 등에 대한 문제 제기와 논의는 거의 없다. 또한, 시청자위원회는 시정을 요구할 수 있고 이것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때는 방송통신위원회에 불만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이런 경우도 찾아보기 어렵다. 방송사는 시청자위원회의 의견이 방송 프로그램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는 인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으며, 시청자위원들은 위원회의 권한과 역할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회의 운영 문제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시청자 위원은 학부모단체, 소비자보호단체, 여성단체, 청소년 관련 단체, 노동단체, 과학기술 단체, 문화단체, 언론 관련 시민·학술단체, 변호사단체 등 14개 분야의 단체에서 적임자를 추천하고 방송사에서 나름의 기준에 따라 위촉한다. 예전보다 추천 단체의 영역이 확장됐는데 이것은 더 다양한 시청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의미에서 바람직하다. 문제는 시청자위원회에서 추천 단체별 전문성이 충분히 발휘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위원이 같은 프로그램에 대해 비슷한 의견을 제시하는 사례도 있다. 노동단체에서 추천받은 위원이라면 보다 노동문제에 집중해서 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평가하거나 시정 요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단체 추천이라면 청소년에 관한 시각에서 전문성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추천단체의 정체성이나 전문 분야와는 무관하게 일반적 평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이와 함께 시청자 위원 선임에 있어서 방송사별로 기준이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주목해야 한다. 물론 방송사마다 합리적인 기준에 근거하고 있겠지만 시청자 위원의 정치적 편향, 성별·연령별 불균형, 방송사와의 관계 등에서 자주 문제가 제기된다. 특히 KBS의 경우 이런 비판에서 늘 자유롭지 못했다. 최근에는 사측이 주도했던 시청자 위원 심사에 편성위원회 산하 보도·제작·라디오 부분 실무자 대표의 참가를 의무화하고 위원의 다양성 확보를 위해 여러 단체를 고려하는 등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현재 활동 중인 30기 시청자위원회는 여성 위원이 남성 위원보다 많고 30~40대의 비교적 젊은 위원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각 방송사는 공정하고 투명한 기준에 근거해 시청자의 목소리를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시청자 위원을 위촉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종합하면, 시청자위원회는 매월 한 차례 정기 회의를 개최해 위원들이 프로그램에 대한 의견을 진술하고 방송사의 해명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어서 논의 내용이 부실하고 시청자의 권익을 증진한다는 시청자위원회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또 시청자 위원의 전문성과 시청자와의 소통 의지 부족 그리고 시청자위원회에 대한 방송사의 인식 등의 영역에서 다양한 문제점이 거론되고 있다. 결국, 시청자위원회 운영과 회의 방식은 제도적인 의무를 다하기에 적절하지 못한 가운데 소극적으로 수행되고 있다고 진단할 수 있다.
변화를 위한 제안
학술대회나 토론회를 통해 시청자위원회 발전을 위한 여러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먼저, 시청자 위원과 시청자와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 시청자들이 시청자 위원에게 직접 의견이나 불만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방송사 대부분은 시청자의 고충을 처리하는 담당 부서나 자유게시판 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시청자 위원을 추천한 단체나 전문성에 따라 개별적으로 민원을 제기하고 이를 시청자 위원이 적극적으로 반영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시청자위원회의 직무가 프로그램 내용에 대한 평가나 시정 요구에 머물고 있다는 한계를 넘어 시청자의 권익 보호와 침해 구제를 도모하는 활동에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방송법상 시청자위원회의 권한과 직무를 더 구체화하고 이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시청자 위원들도 프로그램과 편성 및 급변하는 방송 환경과 기술 등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 편성은 방송사의 철학과 이념을 드러내며 구체화하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며, 이러한 노력은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구현된다는 점에서 프로그램이나 편성의 문제를 미시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광의적 관점에서 평가의 폭을 넓게 가져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시청자위원회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방송사의 인식이 변화해야 한다. 방송 경영과 방송 정책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열린 논의가 가능한 장을 만들고 실질적인 시청자 참여기구로서 기능할 수 있게 해야 한다. KBS의 경우 시청자권익센터와 시청자 청원 제도를 신설하는 등 시청자의 권익을 강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방송사마다 이와 같은 변화가 요구된다.
최근 시청자위원회의 존재감을 알린 사례들도 있다. 작년 11월 YTN 시청자위원회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 3인이 YTN을 항의 방문한 사안에 대해 정치적 유불리와 이념에 따라 언론에 압력을 가하는 부적절한 행동이라는 비판 성명을 냈다. SBS 시청자위원회는 편파 방송과 불공정 방송 시비를 극복하기 위해서 편성·시사교양·보도본부장에 대한 임명동의제를 강력하게 사측에 권고하기도 했다. KBS와 MBC의 시청자위원회에서는 중요 사안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해 자세한 조사와 함께 대책을 제시하는 활동으로 주목받았다. KBS 시청자위원회는 자체적으로 지역 시청자 위원들과의 전국대회를 열어 지역방송의 현안을 토론하고, 효과적으로 시청자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다양한 시민사회단체와 연석회의를 개최하는 등 새로운 모델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은 시청자위원회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존재 목적을 환기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시청자위원회가 대변해야 하는 시청자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선택하고 시청하는 힘을 가진 존재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단호하게 비판하는 능동적 존재이며, 시청자위원회의 역할과 소임에 대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 비판적 존재다. 모든 시청자위원회는 바로 이런 시청자를 대표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부여된 기구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올해부터 방송의 공적 책임 제고를 위해 시청자위원회 운영 평가 항목의 배점을 확대하고, 경영진 참석 및 시청자 위원을 위한 상시적 창구 운영 등 평가 방식을 마련했다. 시청자위원회에 더 강력한 권한이 부여된 셈이다. 시청자위원회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문제점이 속히 극복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 시청자위원회 앞에 놓인 비판적 시선과 기대 그리고 각 위원의 발언과 역할을 주목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청자위원회 본연의 임무인 시청자 권익과 권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위해 더욱 적극적인 활동을 기대한다.



